1/31/24
후배들의 공연을 보다.
참 오랫만에 수준급 이상의 아름다운 합창공연을 보았다.
그것도 사랑하는 나의 어린후배들이 마음을 담아 정성으로 부르는....
처음 몇곡을 들을 때는 “어머 꽤 잘하네.” 하며 듣다가 점점 빠져들어 나중에는 내영혼에 뎅-뎅-에밀레종이 울리고 있었다.
정말 너무 너무 잘해서 무어라 표현하기가 어렵다.
청중이 많지 않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동포사회에서 큰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했던 일세대 동문들이 다 은퇴를 하셔서 청중을 동원하는것이 힘들었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후배들이여, 너무 섭섭해 하지 말기를....
공연을 보고 며칠씩이나 황홀경속에 있었던 나같은 선배들이 대부분이었을테니, 그것이 귀하지 아니한가?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옛추억에 잠겼는데…
때는 71년, 숭실대 사학과에 입학하고 서너명 떨어지는 오디션을 거쳐 웨스트민스터 합창단에 들어갔다.
시골교회에서 중학교때부터 성가대를 했으니 학교성가대에 들어가는것은 당연하다 여겼다.그해 여름 합창단 합숙훈련이 있었다.
점심식사 시간에 지휘자셨던 김정해 교수님께서 나를 보시더니 “너 막내지?” 물으셨다.
형제가 많았던 집안의 막내였던 나는 온몸에 어리광이 배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날부터 나는 합창단의 막내가 되었다.
학년이 올라가니 후배들이 남학생들 까지 막내언니로 불렀다.
졸업반이 되자 우리들은 의논을해서 후배중 귀여운 희순이를 선택해 플라스틱 반지를 끼어 주며 막내 인계식을 했다.
그렇게 합창단의 막내라는 특별한 지위가 생겼는데 지금까지 내려 온다니 역사를 만들었네.
고희의 나이가 되어 뒤돌아보니 합창단에서 배운 합창에 대한 깊은 이해는 나의 인생을 충만하게한 엘레멘츠중 하나가 된듯하다.
숭실대를 다니면서 제일 잘한 일이 웨스트민스터 합창단의 멤버가 된 일이다.
이원숙(사학71)
24년 숭실 웨스트민스터 합창단 미주순회 공연에..
80년 숭대 입학 84년 졸업하며 웨민 합창단과 저와의 관계를 회상합니다.
대학 새내기로 접한 캠퍼스의 분위기는 아주 조용했습니다. 아마 2차 전형인지라 제 마음도 약간 침체 되었던것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2학년 수업을 마치고 무심히 걷고 있던 저에게 말을 걸어온 사사과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출석하고 있던 교회 성가대에서 그저 안면이 있던 친구가 저에게 웨민 합창단을 같이 하자고 제안하였습니다. 저는 찬양부르는 것이 좋아 고등부 부터 줄곧 성가대를 이어가고 있는데 그 당시 왜 웨민 엔 관심이 없었는지 모르고 졸업을 하였습니다.
85년 대학원 입학과 미국 유학 시절 디트로이트에서 대학원 다닐때 겨울로 기억합니다. 당시 출석하던 디트로이트 연합장로교회에 웨민 합창단이 공연을 온다는 소식에 얼마나 반가웠는지 혹시 내가 알던 그 친구가 있지는 않을까 하는 설렘으로 후배들의 찬양 공연을 들었습니다. 미국에서 처음 만난 후배들의 찬양에 눈물이 날정도로 좋았습니다.
세월이 지나 2007년 엘에이에 취업이민을 와있을때 웨민 미주순회공연이 있었습니다. 당시 LA 윌셔 감리교회 예배당의 찬양의 울림은 정말 훌륭한 성가 공연이었습니다. 거기에 저의 주일학교 친구인 현재의 장세완 지휘자의 인도하에 미주공연을 하였으니 후배들의 화음과 지휘는 최상이었습니다.
20년 코비드 팬데믹이 일어나기 직전 웨민 LA 공연을 마치고 당시 황준성 총장님과 단체 회식을 하면서 숭대의 평양본교 재건을 계획하고 있고 그때에 제일 먼저 할일이 웨민의 평양공연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나는 그날을 위해 기도하자는 덕담을 나누고….
24년 코비드가 물러가고 숭대의 새로운 발전을 기약하는 재단이사진의 출범과 최고의 음향시설을 갖춘 남가주새누리교회의 공연 그리고 엘에이 최상의 음식점에서 후배들을 챙겨 먹이느라 혼신을 다해 이번 미주LA 공연을 준비한 탁재동 동문회장의 열정과 수고에 이제 우리 숭대 동문들은 모교의 무궁한 발전에 큰 자부심을 갖게되며 다음에 있을 또 한번의 미주공연을 기대하게 합니다.
이경렬(전기80)
숭실대학교 웨스트민스터 합창단 !
해외연주여행은 탁월했다. 국내에서 해외로,
성 밖으로 지역을 넓혔다. 연주곡들도
Repertoire가 성스러운 곡들이다.
청중들은
옛 정서를 달래주고 추억을 회상하며
위로와 용기를 주는 곡들을 기대했는데,
합창단 후배들은 그들대로 여유롭게
천사의 화음을 만들며
그들만의 추억을 남기고 갔다.
연주후 식사대접 또한 풍성했고
남가주동문회가 창립했 던
역사적 장소로 의미가 새롭다.
고생과 수고는 오랫동안 기억된다.
웨스트민스터 합창단의 연주는
1987년을 시작으로 30여년 이
지났어도 잊을 수 없다.
초창기 이민생활로 어려운 때였지만,
후배들을 집에서 재우고 식사대접하고
빨래까지, 뒷바라지를 정성껏 했던
추억들이 우리 마음에 늘~새롭게
떠오르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연주여행은 사뭇 다르다.
"강건너 불구경하는 꼴"이 된 거 같다.
미국현지 사정을 잘 이해하고
청중과 합창단이 혼연일체가 된
연주여행을 펼쳐가지 못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선배와 후배들이 사전에
좀더 밀착 준비해서 청중들을 동원하고
연주날짜를 협의하고 더욱 효과적인
연주여행을 만들었다면 좋았을텐데 하는
욕심과 아쉬움을 숨길 수 없다.
이런 연주여행을 통해서
김동진, 현재명, 조두남, 같은 대가들이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다음 연주여행은 훌륭한 선배들의 곡을
테마로 정하고 Repertoire 를 만들어도
좋을 거 같다.
양약은 고구나 이어병이란 말이있다.
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병에는 좋다는 말이다.
쓴소리를 듣고 싶은 후배들이 있을까 싶다!
장범식 총장님과 관계자들의 수고와 노력에
감사드리며 지혜와 능력을 내려주신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린다.
김도림(영문과61)
웨민 천사들에게 !
만나서 참 기뻤어요.
엘에이 공연장에서
연주를 들을 때도 설레임이 있었지만
공연 후 개인적인 만남에서
미래를 향한 Vision을 엿본 후
YouTube를 열고 노래를 들어보니
감동이 배가 됩니다.
열흘남짓 동안 ...
여러분의 모습을 30번도 넘게 바라보며...천상의 소리에 감동감격...
친구.친지.소속단체에 웨민천사들의 연주를 쉐어링하면서...
기적같은 나날을 향유중이랍니다.
웨민합창단의 미주순회공연을 위해 최선을 다하신
모교총장님이하 관련 동문님들과
순회공연의 시종을 인도하시고
무사히 귀국하도록.동행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Thank the Lord.
이목자(영문61)
합창단과의 만남은 근 2시간 빗속을 헤치고 새누리교회에 도착하고 난뒤에 이루어졌다.
웨스트민스터 합창단의 실력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막상 듣고 있자니 꿈을 꾸고 있듯이 너무 감미롭고 황홀했다.
나는 어느새 50년전 20대의 추억을 더듬고 있었다.
70학번으로 입학해 합창단에 들어가 첫번 맞은 여름방학의 합숙을 잊을수가 없다.
시골집 같은 정겨운 여자 기숙사에서 연습하러 오가며 그 오솔길에서 목장길따라 밤길 걷으며를 노래하며 오갔다.
저녁식사후 금녀의 집인 남자 기숙사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모여 오락시간을 가졌었고 노란 셔츠를 멋지게 부르던 사학과 김일순은 인기가 많았고 지금조지아주에 사는데 아직도 연락하며 지낸다.
아름다운 화음속에서 나는 그옛날 나의 합창단 시절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상도교회에서 저녁예배 찬양을 마치고 어두운 밤길을 걸어 걸어기숙사로 돌아 오는길이 힘들지도 무섭지도 않았고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오늘의 합창단들을 만나보니 모두 멋지고 세련되고 인물들도 출중했다.
우리땐 좀 촌스러웠던게 사실이다.
단원들 계속 catering음식만 먹일 수 없다고 특별히 배려한 탁회장님 덕분에 한인타운에서도 가장 맛있고 비싸다는 박대감에서 고기를 구워 먹으면서 후배들과 귀하디 귀한 시간을 가졌다.
이 역시 탁회장님의 아이디어로 후배와 선배가 같이 섞여 식사를 하자고 했는데 완전 대박아이이더였다.
김수연 나상현 곽주희 지승언 이예빈과 함께 식사하며 숭실이라는 또 웨스트민스터 합창단이라는 이름아래 많은 이야기들을 진솔하고 편하게 나눌수 있었다. 50여년의 나이차이는 문제가 아니었다 너무나 사랑스런 후배들과 함께 정을 나룰수 있었고 아스라한 나의 그 시절을 소환해 주었다.
너무도 아쉬운 짦은 만남을 뒤로하고 다시만날것을 기약했다.
미국생활 45년중 오늘은 손꼽을수 있는 의미 있는 날이었다.
돌아오는 차속에서 후배들에 대한 사랑과 숭실에 대한 감사 너무 뜻깊고 행복했던 시간을 되새기고 새겼다.
참으로 멋진 나의 후배들을 사랑한다.
빛나는 청춘 후회 없이 만끽하며 보내길 바란다.
2024.2.1
정인옥(영문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