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하지 않는 체험의 대가
鐵山 김종길
손안의 핸드폰으로 20초만 통화를 했어도 이 추위에 4시간 이상을 허비 안 해도 되는데…. 좇아내지 못한 감기는 더 심해졌고, 30여 년 백수가 돈은 돈대로…. 여름. 가을 그 좋은 계절 다 보내고 이 칼 추위에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다녔다.
스마트폰 활용지도 봉사를 하면서, 불치하문(不恥下問) ‘모르는 것을 묻는 것은 수치가 아니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녔다. 며칠 전 용인시 죽전전철역 인근 단국대학교에 갔다가, 물어보지 않고, 어련히 죽전 전철역으로 가겠지 하고 버스를 탔다. 그런데 그 버스는 긴 터널을 지나 산속, 다른 방향으로 가기에 그때야, 다시 물어물어 죽전 전철역으로 돌아오는 실수를 하고서도…. 또 물어보지 않고 이 고생을 하고 다녔다.
연말이 되어 갑자기 운전면허증 갱신 기간 6개월의 끝자락이란 생각이 났다. 주섬주섬 들춰보니 12월 31이까지 정해져 있었다. 안내장을 보니 1종 보통면허는 건강보험공단의 정기검사 통보서가 있는 사람은 인터넷으로 신청이 가능하단다. 컴퓨터를 열고 인터넷으로 신청서를 작성했다. 그런데 양쪽 시력이 0.8과 0.5 이상이라야, 인터넷 신청이 가능하단다. 정기검사 통보서를 확인해보니 교정 없는 시력이 0.5 이었다. 그러면 신체(시력) 검사를 ‘보건소 또는 지정병원’에 해야 한다고 안내되어 있었다.
우선 필요한 사진을 현상하기 위하여 인터넷으로 보건소 인근 사진관을 검색해 현상을 했다. 그것도 괘나 까다로웠다. 사진 뒤에 배경이 없어야 되고, 반드시 두 귀가 보이게 정면으로 찍어야 한단다. 약삭빠르게 몇 푼 아끼려고 스마트폰으로 찍은 셀프 사진 3종 중에 하나가 겨우 적합하다며, 생각보다 많은 가격으로 현상을 했다. 성남 중원경찰서 바로 옆 보건소에 시력검사를 위해 찾아갔다. 그러나 서울특별시 보건소 이외는 신체검사를 할 수 없다며 인근 지정병원을 소개해 주었다. 영하 10도 이상을 오르내리는 추위에 너무 번거로 왔다. 운전도 하지 않을 텐데, 그만 둘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러나 이미 마음먹은 일인데….
집에 오는 도중에 있는 지정병원에서 시력검사는, 안경을 쓰고도 양쪽 다 0.6이었다. 1종 보통면허 기준인 한쪽이 0.8이상에 미치지 못하였다.
검사한 간호사가 1종 보통면허를 2종 보통면허로 하향갱신은 가능하단다. 추위를 조금 피해 볼가 하고 택시를 타고 경찰서 민원실에 갔다. 그러나 하향 면허갱신은 운전면허시험장에서만 가능하단다. 이 추운겨울에 4시간을 헤맨 것이 다 허사가 되었다. 착잡한 심정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서야 도로교통공단에 전화를 걸었다. 면허시험장에 가야만 1종을 2종 면허로 갱신할 수 있단다. 면허를 갱신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임이 고개를 들었다. 갱신 가능한 날짜도 토. 일요일 공휴일을 빼면, 31일 하루밖에 없었다.
4년 전에 친구의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경주까지 친구 네 명이 승용차로 문상(問喪)을 갔다. 귀갓길에 운전을 하는 친구가 대구를 지나 문경휴게소에서 운전을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초기 공황장애로 약을 먹고 있는 친구였다. 어쩔 수 없이, 운전대를 놓은 지가 20여 년 가까운 내가 몰고 올 수밖에 없었다. 고속도로 운전이 쉬우니까 무난히 왔다. 그때를 생각해 면허를 갱신을 해야지.
연말인데 올해 들어서는 유독 추웠다. 기침감기로 약을 먹으면서, 섣달그믐날 면허 시험장을 갔다. 용인 신갈 면허장보다 서울 강남면허장이 편리한 것 같아 강남으로 갔다. 엄청난 사람들에 놀랐으나 노인들은 12번별도 창구가 있어 1시간 정도로 2종 면허증을 받아 쥐고는 신기한 특혜를 받은 것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쉬운 것을. 손안에 있는 스마트폰으로 30초만 사전에 물어보았어도, 추위에 그 고생을 안 해도 될 것을……. 기침감기는 음성이 변할 정도로 깊어졌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다음날(2019년 1월 1일)부터는 75세 이상 노인은 면허갱신이 까다롭게 되었다. 운동신경과 인지능력이 떨어져 사고가 많았단다. 갱신 기간도 5년에서 3년으로 단축되었다. 사전에 2시간 안전교육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 교육 중에 인지능력 즉 기억력, 주의력을 진단하고, 진단 결과가 좋지 않으면 추가 적성검사를 실시해야 한다. 그 결과에 따라 면허갱신을 제한할 수도 있게 된단다. 그러니 노인은 사전에 반드시 도로교통공단의 고객센터에 전화(1577-1120)는 필수다. 유일한 국가자격증인데. 전철에서 면허증을 다시 꺼내 보았다.
평소에 내가 입버릇처럼, ‘체면 불고 모르면 물어보라’는 불치하문(不恥下問)을 실천하지 않는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