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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잘 영위하는 조건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 태어난 이 세상에서 잘 살 수 있기를 희망한다. 여기까지는 누구도 이의가 없겠지만,
그렇다면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한 대목에 가면 사람마다 생각들이 실로 다양해진다.
오늘은 이 점에 대한 명리학적인 지혜는 무엇인지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필자가 명리학(命理學)이란 것과 연을 맺은 이래, 30 년간 끊임없이 연구해 온 주제도 바로 이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잘 산다는 것은 부귀영화를 누리는 삶을 의미한다. 부귀스럽고 영예를 누리는 사람들의 사주를 보면
분명 사주에 부와 귀를 누릴 상이라는 것이 확인되지만, 문제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가령 엄청난 부를 축적했거나 권력을 누린 사람 중에, 그 인생 궤적이 사회 도덕적인 견지에서 긍정적이지 않은
사람도 많이 경험했다. 이런 경우, 우리는 과연 이런 인생을 잘 살다가는 인생이라고 긍정해야 하는 것일까?
여기에 윤리와 도덕의 문제, 그 사람의 사주에 반영된 그 사람의 가치관과 심성의 문제도 대두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시시비비(是是非非)란 것이 다분히 자의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이며, 선입견이나 시류의 분위기에 휩쓸릴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현세적인 부귀가 그 사람의 도덕성과 반드시 부합하지도 않으며, 엇갈릴
경우도 상당히 많다는 점이다.
한 때, 필자는 도덕이나 정의란 것이 근본적으로 관념이고 배부를 때 하는 얘기가 아닌가 하는 극단적인 회의
주의에 치우친 적도 있었고, 반대로 명리학 에서도 도의와 명분을 지선의 가치로 인정하고 그런 삶만이 성공적인
삶이 아닌가 하는 극단적인 명분론에도 빠진 적도 있었다.
한편으로 명리학이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이 또한 별 볼일 없는 잡술(雜術)이 아닌가 하는 명리학 자체에
대한 회의도 가진 적이 있다.
사실 명리학에서 다루는 많은 사상과 가치들은 송명(宋明)유학, 즉 성리학의 발전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또 역(易)에도 상수(象數)역과 의리(義理)역이란 양대 흐름이 있다. 간단히 소개하면,
상수역이란 육효나 사주를 통해 어떤 일이나 사람의 미래를 예측하려는 기술이며, 의리역이란 문자 그대로 사물의
옳고 그름을 더 중시하여 심신의 수양과 인간성의 고양에 보탬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공자가 만년에 주역을 즐겨 읽다가 책 끈이 세 번이나 끊어져서 다시 매었다는 위편삼절(韋編三絶)의 고사에서 알
수 있듯이, 공자 역시 역에 심취했지만 여기서 말하는 공자의 공부 방향은 당연히 사물의 시비에 관한 측면,
즉 의리역이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공자가 과연 의리역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일까? 그 해답은 영원히 알 수
없겠지만, 율곡 이이의 글이나 퇴계 이황 등 우리의 대학들이 남긴 글을 보면 두 가지 측면 모두에 관심이 있었다고
여겨진다.
필자의 명리학과의 인연은 그러나 참으로 질기고 길어서 오랜 사상적 방황을 거듭해 왔지만, 몇 년 전부터 서서히
가닥을 잡은 것을 이제부터 얘기하고자 한다.
명리학에서 사람의 운명을 예측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다섯 가지 기운의 관계를 기초로 한다. 이를 간단히 열거해
보자.
1) 비겁(比劫), 그 사람의 주관과 심지, 내지는 그 사람 자체
2) 식상(食傷), 그 사람의 행동력과 용기, 추진력, 자기주장, 재주
3) 재(財), 그 사람의 물질적 욕구와 지배욕
4) 관(官), 자기를 다스리는 자제력과 위험관리 능력
5) 인수(印綬), 사물로부터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기운
사주는 기본적으로 1백4 만 가지인데, 그 차이란 결국 이 다섯 가지 기운(세분하면 열 가지)의 차이를 말한다.
그리고 그 다섯 가지 기운들이 서로 밀어주고 견제하고, 돕고, 시샘하고 누르고 하는 것, 이를 생극제화(生剋制化)의
관계라 하며, 이로서 그 사람의 심성과 능력, 재운, 명예, 건강 등등 인생 전반의 일을 예측한다.
비겁이 강한 사람은 스케일이 크고, 비겁이 많은 사람은 친구가 많다. 주로 정치에 관심을 가지며, 우두머리 기질이
있다. 식상이 강한 사람은 재주가 있으며, 많은 사람은 다재다능하고 유능하다. 재가 강한 사람은 금전이나 물질에
대한 욕망이 크고, 많은 사람은 현실적인 감각이 좋고 자기 일에 성실하다.
관이 강한 사람은 자기절제가 뛰어나서 직장이나 관료로서 출세하며, 많은 사람은 지나치게 모든 일을 살피는 사람
이다. 인수가 강한 사람은 배우는 일에 인연이 많아서 학자형이며, 많으면 대개의 경우 집안이 유복하고 좀 보수적인
사람이다.
물론 이런 것들은 나머지 기운과의 관계 속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며, 그에 따라 천차만별,
아니 1백4 만 가지의 인간상이 구분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다섯 기운 중에서 성공적인 삶, 잘 사는 삶을 영위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비겁과 식상, 그리고 인수,
이 세 가지에 달려 있다는 결론을 그간의 연구를 통해 얻게 되었다. 풀어서 얘기하면, 자신의 주체성과 자신의
주체성을 표출하는 기운, 그리고 사물과 환경으로부터 받아들이는 수용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이것을 좀 더 쉽게 풀면, 남의 얘기를 들을 줄도 알고(受容),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할 줄도 알며(主體性),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남에게 전달할 줄도 아는 능력(表現)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을 도가(道家)에서는 정기신(精氣神)이라 해서 세 가지 보배(三寶)라고 한다.
이 세 가지 보배, 精氣神을 달리 설명하면 정은 수용하는 것이니 사람의 귀가 되고, 기는 주체성이니 사람의 눈이
되며, 신은 표현하는 것이니 입이 된다. 즉, 귀로 듣고 자신의 눈으로 보며, 입으로 말할 줄 알면 누구나 성공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런데 사람마다 받은 기운이 실로 다양하기에-이를 일러 개성(個性)이라 한다-듣는 능력도 다르고 보는 능력도
다르며 말하는 것도 천차만별이다.
또 듣고 판단하기에 앞서 말이 앞서는 사람을 실(實)이 없다하며, 들을 줄도 말할 줄도 모르는 사람은 그저
자신의 닫힌 생각만 있으니 그 또한 외곬이 된다. 그런가 하면, 들을 줄만 알지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은 답답하고 베풀지 못하니 인색하다는 느낌을 준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정기신의 삼보가 중요
하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삼보가 균형 있게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정기신 삼보에 비해 재(財)와 관(官), 재물에 대한 욕구와 지배력, 그리고 자기 절제력은 또 다른 성질의 것이다.
정기신이 인간의 자아와 정신세계를 말하는 주아주의(主我主義)적인 측면이 있다면 재관(財官)은 현실 세계이고
물질적인 측면을 말한다.
물질에 대한 욕구는 현실적인 것이며, 또 그 현실은 언제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기에 자제가 중요한 것이다.
다시 말해 장자(莊子)가 주장하는 무위자연 속에서 우리의 삶을 고양하고 누리라고 말한 것이 정기신의 세계라면,
재관은 그 반대되는 측면이다
부귀를 누린 자는 사주를 보면 반드시 재나 관의 기운이 뛰어나다. 현실적인 감각이 있고, 위험을 피해 가는
처신의 능력도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사주를 볼 때에는 재관을 중시한다. 하지만 앞서 얘기했듯이
정작 중요한 것은 정기신의 삼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재관이 그대로의 현실을 말하는 세계(sein)라면 정기신은 그렇게 되어야 할 것을 말하는 당위의 세계(sollen)
로서 우리 삶의 주체적인 측면이자 자아를 실현하는 경계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사주를 통해 한 사람의 운명을
들여다보면 그러한 바를 말하는 소연(所然)과 그렇게 되어야 할 바인 응연(應然)이 어떤 식으로 자리를 잡고 있으며,
그것들이 조화로운지 불협화음을 내고 있는 지를 파악하게 된다.
필자가 이 글을 쓰는 것은 무슨 철학적인 논문을 쓰기 위함이 아니며, 응연과 소연을 얘기하고 있지만 그 내용은
어려운 말을 쓰기 위함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감에 있어 먹고살아야 하는 생물체이기에 현실적인 감각도 중요하며, 또 공동체의 삶을 살고 있기에
가치관의 관념도 중요한 것이기에 하는 말이다.
그러나 정기신을 중요시하는 이유가 반드시 높은 정신세계만을 지향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현실의 삶이 척박하다 할지라도 환경을 개선하려는 의지, 환경이 왜 어려운 가를 이해하는 판단,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환경에 만족할 줄 하는 수용력이 바로 정기신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도가에서는 이를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소중한 세 가지 보물, 삼보(三寶)라고 일컫는 것이다.
이제 마칠 때가 되었으니 좀 더 편한 말로 얘기하고자 한다.
환경이 어렵다면 그것을 개선하려는 의지를 꺽지 말 것이며, 왜 어려운 가를 살피는 명석함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무턱대고 환경을 개선하려고 자신만의 고집을 부리기보다는 타인들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기에 같이 조화하고
순응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래서 공자는 세상에 가장 구제 불능인 사람을 자포자기(自暴自棄)하는 사람이라고 한 것이다. 우리의 삶은 자포자기
하지만 않으면 누구나 때가 되면 좋은 봄날을 맞이하여 자신만의 색깔과 향기를 지닌 꽃을 피워낼 수 있는 것이다.
점(占)이란 무엇인가?
점이란 점복(占卜)을 줄인 말이다. 오늘은 이 점복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흔히 점을 ‘친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친다’라는 말은 한자어 ‘打’를 우리말로 풀이하여 쓰고 있는 것이다.
현대 중국어에서도 여전히 ‘타점괘(打占卦)’, 소리로는 ‘따짠꾸아’라고 한다. 여기서 打는 ‘때리다, 치다’ 라는 뜻
보다는 ‘-하다’ 라는 의미이다.
점(占)은 복(卜)이란 글자에 ‘입’ 구(口)를 붙인 것이다. 그러면 복(卜)의 의미는 무엇일까? 혹시 중국 고대에 거북이
껍질을 구워 거기에 나타난 균열로서 점을 쳤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지. 卜이란 바로 그 껍질에 나타난
균열을 형상화한 것이다. 불로 적당히 잘 구우면 균열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그 문양을 보고 어떤 일의
길과 흉(吉凶)을 판단했던 것이다.
따라서 점(占)이란 卜, 즉 균열을 보고 그것의 의미를 말과 언사로서 풀어내고 해석하는 일이다.
인류는 오래 전부터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점을 쳐왔다.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알아보고픈 마음은 인간
으로서 당연한 것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지구상의 동물 중에서 인간만이 미래에 대해 관심이 있으며, 그 결과
점을 치는 것은 인간밖에 없다. 과거나 현재, 그리고 미래란 관념들은 우리가 시간 개념을 지녔기 때문이다.
우리가 저축을 하는 것 역시 미래란 것을 인지하고,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점을 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렇기에 점을 친다는 것은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인류 보편의 현상이다.
가령 고대 로마제국의 문명적 토대가 되었던 에트루리아 인들은 사제들이 미래를 예견하고, 천상에 있는 신들의
뜻을 알기 위해서 자연 현상을 연구하고 해석하는 일을 위해 디스키플리나(disciplina)라고 부르는 정교한 규율
체계를 만들었다. 오늘날 이 어휘는 규율이라는 의미의 영어 단어 discpline 에 그대로 전해지고 있는데,
이 디스키플리나는 고대 중국의 점치는 책인 역경(易經)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에트루리아 인들의 점(占)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제사를 위해 잡은 양과 짐승들의 창자를
조사하여 점을 치는 것이었다. 뒤에 로마인들은 동물의 내장 점 대신에 전쟁과 선거, 기타 국가의 중대사를 앞두고
새들의 비행 모습을 보고 길흉을 알아내는 새점(鳥占)을 주로 쳤다.
이처럼 점을 친다는 것은 고대 인류 세계에 있어 평범한 일이 아니라, 국가의 중대 행사였다는 점 역시 동일하다.
중국의 경우, 거북점이 성행하였던 은(殷)나라를 이어받은 주대(周代)의 기록을 보면 점복을 담당하는 정부 기구가
대단히 방대했음을 알 수 있다. 점복을 총괄하는 태복(太卜)을 두 사람 두어 상호 견제와 균형을 잡게 했고,
그 밑에 복사(卜師)라 부르는 네 명의 보좌관이 있었다.
그리고 문건을 기초하고 저장하며 정령을 위 아래로 전달하는 행정 관료인 복인(卜人) 24 명을 두었으며, 그 밑에
실제 잡아들인 거북의 껍질을 관리하고 책임지는 귀인(龜人) 54 명과 거북의 껍질을 굽고 처리하는데 필요한
공구를 담당하는 수인(菙人) 11 명, 구운 거북 껍질로부터 길흉을 해석해내는 전문가인 점인(占人) 19 명이 있었
으니 당시로서는 대단히 방대한 조직기구였음을 알 수 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왜 고대 사회에서 점치는 기구가 그토록 방대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실 수도 있을
것이다. 그에 대한 설명은 고대 사회가 정교일치(政敎一致)의 사회였다는 점만을 지적해두고자 한다.
고대 문명의 발전 단계에 있어 그것이 집권화되는 과정을 보면, 하늘의 뜻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데 있어 예외
없이 방대한 정부 기구를 두었던 것이다.
또 한 가지 재미난 점은 인류 문명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일의 하나가 공학 기술의 발달이다.
고대 중국을 보면 전설상의 요순에 이어 하(夏)나라를 세운 우 임금 역시 주된 공적이 치수였다.
치수를 비롯한 토목 공사는 방대한 인민의 노력과 기술적 토대를 필요로 하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왕이나
대사제에게 당연히 하늘의 권위가 필요했던 것이다.
뛰어난 기술로 피라미드를 쌓은 이집트나 수메르 문명만 그런 것이 아니라, 고대 로마 제국의 발전 과정을 봐도
그렇다. 고대 로마의 경우 가장 높은 지위는 Pontifex Maximus 라 했다. 우리말로는 그냥 대사제라 하지만,
원어의 뜻을 보면 대단히 재미있다.
Ponti란 말은 ‘강이나 연못, 물, 바다’를 뜻하는 말이고 fex는 ‘만들다’라는 뜻이다. Maximus 란 말은 maximum이란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최고최대’란 뜻이다. 고대 로마의 대사제 명칭이 ‘다리를 만드는 일에 있어 가장 높은 사람’
이란 뜻인데, 이는 도시국가 로마가 강에 다리를 놓아 물자를 소통시키는 일이 중대한 현안이었다는 것을 알게
해주며, 아울러 로마인들이 왜 토목 공사에 능했던 가를 설명해 주고 있다.
전 세계의 점복 방법을 간단히 알아보기로 하자. 앞서 로마인들에게 문명을 이어준 에트루리아 인들은 동물의
내장이나 간의 상태를 보아 점을 쳤던 내장점(內臟占)이 대표적인 점법이었다. 그 후 로마인들은 하늘을 나는
새를 신의 대리인(agent)라 보고 새의 행동을 보아 점을 치는 새점(鳥占)을 중시했으며, 조점관들은 국가의 높은
지위를 차지했었다.
그런가 하면, 중세 서구 사회에서는 무심히 성서를 펼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문귀로서 점을 치는 성서점이 민간
에서 대유행하였으며, 트럼프로서 점을 치는 가루다 점은 지금도 널리 유행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 화투 패를 떼어 그날의 신수를 알아보는 화투점도 그와 같은 것이다. 필자 역시 어릴 적에 화투점을
떼는 할머니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중국의 경우, 민족적 구성이 다양한 탓에 풀잎으로 점을 치는 초점(草占), 계란으로 점을 치는 계란점, 소의 간이나
닭의 뼈로 점을 치는 법, 대나무로 점을 치는 죽점(竹占), 조개로 점을 치는 패점(浿占), 양의 어깨뼈로 점을 치는 법,
양의 털 모양으로 점을 치는 양모점(羊毛占)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점치는 법은 다양하다. 하지만 가장 대표
적인 것은 국가의 기구에서 국가의 중대사를 알아보는데 사용한 점법이라 할 것이니 이에는 세 가지가 대표적이다.
처음에는 짐승의 뼈, 주로 어깨뼈로 점을 치는 갑골점(甲骨占)이며 이는 중국의 전설적인 왕조인 하(夏)대에 유행
했었다. (참고로 갑골문자라는 것은 바로 이 뼈들에 새겨져 있는 한자를 말한다.)
다음으로 중국의 해양 문화-발해만 일대-에 속하는 은(殷)나라에서 유행한 거북점, 즉 거북이 복부의 껍질로서 점을
치는 귀복(龜卜)이다. 다음으로 은을 멸한 주(周)대에 와서는 산목이나 서죽(筮竹)점이 유행했는데, 이에 대한 풀이를
전문적으로 모은 책이 바로 사서삼경 중의 하나인 역경(易經)이다.
점치는 방법의 변천을 보면 고대 사회의 성격을 엿볼 수 있다. 갑골점은 주로 사냥을 주로 하던 사회의 산물이고,
거북점은 해안 문화의 산물이며, 산목이나 서죽점은 농경 문화의 산물임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알아보면, 부여인들은 전쟁이 나면 먼저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소를 잡아 그 발톱을 보고
전쟁의 승패를 미리 점치는 방법이 있었다.
그런데 문명의 정도가 높은 지역에서 가장 중시했던 것은 역시 천체의 운행을 보고 길흉을 알아보았던 점법,
바로 점성술(占星術)이었다. 오늘날의 천문학은 사실 점성술의 후예이며, 역법(曆法)이나 천체의 운행에 관한 지식은
모두 점성술의 부산물이기도 하다.
천문을 관측한다는 것은 높은 지적 수준과 문서의 장기적인 기록과 보존이 필요한 탓에 국가적인 뒷받침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하기에 천문점은 언제나 통치자의 학문이며 권위 그 자체였다. 갈릴레이나 뉴턴, 케플러, 프톨레미
등의 위대한 천체학자들은 예외 없이 점성술사였으며, 민간에서 인기가 대단한 노스트라다무스 역시 점성술사였다.
반면, 가장 민간화된 점법은 역시 꿈풀이 점, 즉 몽점(夢占)이라 할 것이다. 꿈풀이는 우리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
으로 여전히 유행하는 점법이지만, 민간 차원인지라 해석 방법도 지극히 다양하고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
점치는 방법이 이토록 다양하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먼저 얘기해야 할 것은 미래를 알아보려는 사람의 마음은 본능이라 말할 정도로 강력하다는 사실이다.
미래가 궁금하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단연코 없을 것이다. 우리 인간은 생각하고 예측
하는 동물이며, 시간 개념을 지닌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점치는 방법이 무엇이든 간에, 미래를 그 것을 말해
주는 징조를 통해 알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내지는 희망이 강력하게 자리하고 있으며, 이는 만물이 서로 감응
한다는 설명할 수 없는 관념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한가지 얘기할 것은 점치는 방법은 결국 미래를 알아보기 위한 도구, 즉 미디어(media)라는 것이다. 점치는
방법의 다양성은 다시 말해 점이 멀티미디어(multi media)의 세계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제 마무리하면서 점복에 대한 결론으로 맺고자 하는 얘기는 이런 것이다.
오래 전부터 점을 쳐오던 인간들은 나중에 와서 도구나 미디어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는데,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바로 음양오행이다. 음양오행에 기초하여 사람의 생년월일시만 알면 운명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은 탈(脫) 미디어를 뜻하고 있다. 사주명리학은 육십갑자라는 대호(code)만으로 음양과 오행이 서로 갈등
하고 협력하는 관계를 파악함으로써 사물의 변화와 그 과정을 면밀하게 추론하는 학문인 것이다.
이런 면에서 사주 명리학은 인류의 점치는 방법과 해석의 정밀성에 있어 고대의 점치는 법이 따라오기 힘든
기술적 쇄신으로서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고 하겠다.
점의 세계도 이처럼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얼굴로 알 수 있는 신체 이상과 증세별 식이요법
얼굴색은 유심히 살펴보면 매일 변하고 있다. 매일 매일의 표정도 다르다. 나날이 정서가 다르고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우리 몸의 오장 육부도 당연히 영향을 받는다. 여기까지는 정상적인 것이지만, 몸에 병이
생겼거나 생기려 할 때에는 변해도 많이 변한다.
오늘은 얼굴의 혈색이나 이목구비에서 나타나는 증상을 보아 병을 미리 예방하거나 간단하게 완화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사람의 사주를 보면 체질적으로 약한 부위를 알 수 있다. 그런 분들은 아래 설명
중에서 자신에게 해당되는 증세가 있으면 기억했다가 활용하시면 도움이 제법 클 것이다.
먼저 눈에 대해 얘기한다.
살다보면 눈이 시릴 때가 있다. 눈이 시린 것은 간이나 쓸개에 이상이 있는 것이다. 눈은 간과 쓸개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경락을 타고 머리 위로 올라와서 눈 속에서 끝나 다시 돌아나가는 곳이므로 간과 쓸개의 종착역과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대개의 경우 푹 자거나 쉬고 나면 없어지는 것이 정상이지만, 며칠 이상 지속되면 간과 쓸개에 이상이 제법 있는
것이다. 눈은 오행상 나무(木)이고, 장기로는 간과 쓸개에 해당된다. 그렇기에 사주에서 목기가 약하거나 지나치게
강한 분들은 운의 영향으로 이상 증세가 자주 나타난다.
눈이 시다는 것은 신 음식을 먹으라는 뜻이다. 레몬차나 오렌지, 사과 쥬스나 포도 쥬스같은 음식을 먹으면 금방
호전된다. 반면, 단맛이 많은 사탕이나 초콜렛 등은 좋아질 때까지 피하는 것이 좋다.
또 눈꼽이 심하거나 눈이 침침하고 때로는 빠질 듯이 아플 때가 있다. 이는 신맛과 짠맛의 음식을 같이 먹으면
금방 좋아진다. 특히 짠 음식을 먹는 것이 좋다. 두부를 생으로 간장에 찍어먹거나 장아찌, 된장 등의 음식이 좋다.
눈이 충혈 되고 핏발이 선다면, 이는 심장의 열기가 나온 것이므로 매운 음식을 피하고 쓴맛의 음식을 먹으면 된다.
커피를 진하게 타서 마시는 것도 효과가 대단히 좋다.
또 눈두덩이 퉁퉁 붓거나 늘어지는 경우가 있다. 신맛의 음식을 너무 먹었다거나 과식했을 때의 증세이다.
자기 전에 라면에 밥을 말아서 실컷 먹고 자면 아침에 눈이 퉁퉁 부어있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일종의 위 무력 증세이다. 달고 매운 음식으로 속을 풀어주는 것이 특효다.
다음으로 귀에 대해 얘기하기로 한다.
귀는 신장과 방광과 연관된다. 신장이나 방광의 기 흐름에 문제가 있어 기운의 순환이 귓속까지 충분히 전달되지
않을 때 각종 증세가 나타난다.
먼저 귀속이 멍멍하고 소리가 잘 안 들릴 경우다.
흔한 경우로서, 사주에 수(水)기가 약하거나 지나치게 강하면 수시로 이런 증세가 나타난다. 짠 음식을 먹으면 좋다.
짜게 먹으면 건강에 해롭다는 설이 많지만,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 서양 음식은 우리보다 훨씬 짜다.
싱겁게 먹는 경향은 최근 우리와 일본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이지만 그저 유행일 뿐이다.
귀가 평소 문제가 있다 싶은 분들은 증세가 좋아질 때까지 좀 짜게 먹는 것이 좋다.
귓속에서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는 그저 짠 음식만으로는 안되고, 원기가 상한 것이므로 짠
음식과 함께 소고기, 돼지고기 등의 육류 섭취가 중요하다.
수시로 중이염 증세가 있을 경우, 기간을 정해 심하다 싶을 정도로 염분을 많이 섭취할 필요가 있다. 때로는
일시적으로 이물질이 빠져 나오느라 통증이 심해질 수도 있지만, 계속 짜게 먹으면 호전된다.
귀에 이상이 자주 있는 사람은 대개의 경우 치아도 부실하다. 오행상 같은 맥락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짠 음식을 충분히 섭취하는 것이 좋다.
이번에는 코에 대해 얘기한다.
코는 폐와 대장에서 나오는 기운이 돌아나가는 종착역이다. 폐와 대장의 기운에 문제가 있어 콧속까지 충분히
전달되지 못할 경우 코에 이상이 나타난다. 당연히 사주를 보아 금(金)기가 약하거나 너무 강하면 이런 증세가
빈발한다. 알레르기성 비염도 마찬가지이다.
콧물이나 재채기가 심하다. 이는 몸속이 냉하거나 세포에 긴장감이 없을 때의 증세이다. 가급적 맵게 먹고 몸을
따듯하게 유지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특히 생강차가 달고 맵게 타서 마시면 콧물이나 재채기가 즉각 멈춘다.
필자 역시 사주에 금기가 약하다 보니 콧물이 많은 편인데, 매운 음식을 자주 먹고 있다.
현미밥이나 찹쌀밥, 율무, 생선매운탕, 양파, 파, 마늘, 후추, 겨자, 와사비 중에서 자기 입맛에 특별히 맞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자주 먹는 것이 좋다. 찬 음료는 좋지 않다.
비염이나 축농증 증세가 있을 때는 전체적으로 몸이 차고 특히 콧속의 기혈이 막히면 심해진다. 매운 것을 집중적
으로 먹으면 가벼운 비염 증세는 당장 효과가 있고, 축농증도 좋아진다. 생강, 대추, 계피를 달인 물에 검은 설탕을
풀어 따뜻하게 해서 마시면 대단히 효험이 있다.
코피가 자주 흐르는 분도 매운 음식이 좋다.
이번에는 입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입은 비장과 위장에서 나오는 기운의 종착역이다. 비위에 기운이 부실해서 입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사주 상 토(土)기가 약하거나 너무 강하면 입에 이상 증세가 수시로 나타난다.
입안이 헐고 잇몸이 붓거나 피가 난다. 또 입술이 잘 트고 입 주위에 부스럼이나 종기가 잘 나는 분은 달고
매운 맛의 음식을 먹으면 바로 좋아진다. 꿀을 하루에 두 세 숟갈씩 떠서 먹으면 며칠 안에 좋아진다.
입안이 헐었을 경우, 매운 것을 먹으면 쓰리지만 결국 세포가 긴장하고 조직이 튼튼해져서 금방 낫게 된다.
문제는 입안에서 구취가 심한 분이다. 남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어렵기 때문에 사회생활에서 손해가 많다.
위가 무력한 것이 원인이다. 아울러 혀의 침샘에서 분비되는 소화액이 부족할 때도 원인이 된다. 과식하지 말고
단맛을 충분히 취하는 것이 좋다.
트림이 자주 나는 분도 달고 맵게 먹으면 효과가 좋다.
입과 관련하여 혀도 수시로 이상 증세가 나타나는 곳이다.
혀는 인체의 심장과 관련이 있다. 사주를 보아 화(火)기가 약하거나 지나치게 강하면 혀 부위에 문제가 자주 나타
난다. 뭐든지 지나치게 약하거나 강하면 다 문제가 되는 것이다.
특히 혀에 나타나는 증세는 우리 몸의 건강을 살펴보는 중요한 창구가 된다. 혀만 봐도 인체의 이상을 거의 다
알 수 있다. 병원에 가면 아-하고 혀를 내미세요 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혀를 보면 즉각적으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좀 자세히 알아보자.
먼저 혀에 백태가 끼고 입맛이 쓰거나 밥맛이 없을 경우다.
간과 쓸개에 이상이 있을 경우인데, 시고 고소한 음식을 먹으면 된다. 레몬차나 오렌지, 달지 않은 식빵도 좋다.
닭고기가 좋고, 계란찜이나 반숙도 좋다.
혀에 붉은 반점이 있고 혀에 바늘이 돋는 경우는 심장이나 소장에 이상이 있을 경우이다. 쓴맛을 취해야 한다.
커피나 영지 차, 치커리, 우롱차 등이 대단히 좋다.
혀끝이 자주 말리면서 발음이 잘 되지 않는 경우는 심장이 힘겨워하는 것이다. 심장의 에너지가 충분하지 못하다
보니 그런 것인데, 가령 사주 상 일간(태어난 날의 음양오행)이 불인 사람은 피곤하면 혀가 말리는 증세를 느끼
는데 이는 쉬라는 뜻이다.
쓴맛의 음식이나 차를 마시면 금방 혀가 풀리지만, 기본적으로 피로할 때는 쉬는 것이 최선이다. 팔굽혀펴기를
몇 번 정도 하면 심장강화 효능이 있다. 심한 말더듬이도 쓴 음식과 함께 이 운동을 자주 하면 반드시 효험이
있으니 말을 더듬는 분들은 한번 해 보시기 바란다.
그리고 비만형 체질이 이런 증세가 있으면 쓴맛과 함께 매운 맛도 함께 먹어야 비만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혈색에 따라 건강의 이상을 아는 것은 좀 숙달된 경험을 요하지만, 간략하게 얘기하기로 한다.
가령, 우리 몸의 간에 이상이 생겨 긴장하면 얼굴이 파랗게 변한다. 화가 났을 때도 얼굴은 푸른빛을 보인다.
간암 말기의 환자들도 푸른빛을 보인다. 간과 쓸개의 나쁜 상태가 그대로 얼굴에 나타나는 것이다.
얼굴빛이 푸르다 싶으면, 그리고 화가 몹시 났을 때는 부드럽게 옆구리를 펴주고 고개를 좌우로 돌리는 운동을
하면 간과 쓸개 부위의 경락이 편안해지면서 즉각 푸른빛이 없어지고 화가 가라앉는다.
얼굴빛이 거무스름한 경우는 신장과 방광에 이상이 있는 경우다.
짠 음식과 함께 허리와 발목 돌리기 운동이 좋다. 천천히 풀어주면 바로 효과를 본다. 검정콩밥이나 돼지고기,
된장, 청국장, 게장 등이 좋다.
얼굴빛이 하얗게 변할 경우는 폐와 대장의 이상 징후다. 피부가 뽀얗게 흰 것과 폐, 대장이 나빠서 허연 것과는 척
보아도 다르다. 윤기가 없기 때문이다. 얼굴이 허옇게 떴다는 말을 하는데, 이는 폐와 대장의 기혈이 막힌 것이다.
매운 맛의 음식을 집중 섭취하고, 가슴 운동과 숨쉬기 운동이 당연히 도움이 된다.
얼굴빛이 불그스름한 경우는 심장과 소장에 이상이 있는 것이다. 조금만 뜨겁고 맵게 먹어도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도 같은 증세이다. 쓴맛의 음식을 취해야 한다. 특히 쑥이나 영지, 더덕, 도라지 등은 약성이 강하기 때문에 효
과를 빨리 볼 수 있다.
평소에 얼굴이 붉은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매운 맛이나 짠맛을 싫어하는 경향을 보인다. 스스로 몸이 피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얼굴이 노랗게 뜬 경우다. 비위가 안 좋아서 그런 것이다. 일시적이라면, 흑설탕을 타서 마시면 바로
좋아진다. 하지만, 장기적인 경향이라면, 단맛의 음식을 늘 섭취해야 한다.
꿀이나 호박죽, 찹쌀밥 등이 좋으며, 신맛은 피해야 한다. 그리고 뱃속이 냉하면 모든 것이 효과가 없으니 운동을
해서 위장 부위를 따듯하게 해줘야 한다.
이상으로 얼굴의 혈색과 이목구비에 나타나는 증세에 따른 그 원인과 식이요법에 대해 알아보았다. 간단하지만
대단히 효과가 좋으니 기억하셨다가 꼭 실천해 보시기 바라는 마음이다.
들숨과 날숨, 행복한 삶의 비밀!
숨을 쉬지 못하면 죽게 된다. 물론 살아있는 모든 이는 숨을 쉬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숨도 잘 쉬어야 잘 살 수
있다는 것은 잘 모르고 산다. 숨이란 날숨과 들숨이고 줄여서 호흡(呼吸)이라 하는데 이 속에 행복한 삶의 비밀이
담겨져 있다. 이는 바로 이완(弛緩)과 수축(收縮)이며 나아가서 음양(陰陽)의 조화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놀라게 되면 절로 숨을 크게 들이마시게 되고 그로서 온몸의 근육과 뼈에 힘을 축적하게 된다.
이는 장차 있을지도 모르는 위기 상황에 대비하는 생리적인 긴장 반응이다. 그렇지만 긴장 상태가 오래가면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으므로 평상시에 우리는 이완과 수축을 되풀이하는 자연스런 리듬을 갖는다.
그런데 지난 20세기부터 그런 리듬이 깨어지기 시작했다. 스피드 중독증에 빠져들기 시작한 것이다.
좀 더 자세히 얘기하면 속도와 높이, 힘에 대한 선망 증후군에 빠져든 것이다. 뭐든지 더 빠르게, 더 높게,
더 강하게, 이런 것들이 가치이자 덕목이 되어버린 것이다.
빠른 자동차, 높이 나는 비행기, 더 강한 엔진, 이런 것들과 함께 원래는 그저 인간의 체력과 덕성 함양을 주장하던
올림픽 경기들도 동일한 기준이 적용되었다. 거기다가 최근 수십 년간은 반도체 집적 소자의 밀도가 4년마다
두 배씩 증가한다는 것이 널리 언론에 보도되면서 이제는 강하고 빠르며 더 높은 것에 대한 열망이 아예 현대인의
체질 속에 용해되어 생활의 기본이 되어버린 것이다. 가히 지난 20세기는 변화와 속도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물론 외부로부터의 자극이 너무 오랫동안 없으면 우리의 몸과 마음은 다 풀어져서 근육과 뼈마디에 힘이 빠지고
정신도 나태하게 된다. 하지만 지금 사람들의 권태나 나태는 자극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극 과잉의 결과로 웬만한
자극은 자극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사물을 넓고 보다 긴 호흡에서 바라보는 유장(悠長)한 사고는 실종되어 버리고, 순간의 집중적인
자극만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도록 우리의 의식이 변해버린 것이다. 이런 변화는 당연히 우리의 호흡도 가쁘게
몰아쉬도록 만들고 있다.
몸속에 기가 충만한 사람은 호흡도 유연하고 길다. 특히 내쉬는 숨의 길이가 급하지 않고 오래간다. 등산을 하면
금방 알 수 있다. 산을 많이 오르내린 사람은 산길을 갈 때 숨이 급하지 않지만, 모처럼 산을 오르는 사람은 금방
가쁜 숨을 몰아쉬게 된다. 간단히 말해서 체력이 약하면 조금만 힘을 써도 심장의 박동이 빨라지고 이에 따라
호흡의 사이클도 짧아지기 마련인 것이다. 심하면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그만 주저앉아 버린다.
물론 심폐 운동을 자주 그리고 꾸준하게 하는 것이 해답이지만, 그에 앞서 우리의 정신부터 긴 호흡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언제나 긴장과 수축 상태에 있는 사람보다 평상시에 이완과 수축을 리드미컬하게 지니고 있는 사람이 힘을 쓰고
집중할 때는 더욱 강하고 부드러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법이다. 여기서 부드럽다는 것은 힘의 사용이 원만 자재
하여 거칠 지가 않다는 말이다. 사실 이 말은 무술인들이 늘 염두에 달고 다니는 관념이며 목표이기도 하다.
강하게 더욱 강하게만 밀고 나가면 얼마 안 가서 더 강해질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지만, 강약을 배합하면 그리
강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강할 수 있는 것이다. 음악에서 급하게 강한 박자로 나가다가도 어느 순간 더 없이 조용
하고 느긋하며 느린 음조로 바뀌는 것도 강약의 배합이다. 마땅히 우리의 삶도 그러해야 하는 것이다. 강한 힘을
속에 숨기고 있으면서도 힘의 운용을 연하게 할 때 우리는 절제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여지가 남아있는 강함이 더욱 강한 것이다.
호흡, 즉 날숨과 들숨을 고르게 하고 더욱 길게 가져가는 것이 그 출발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몸과 정신
부터가 그렇게 되어야 한다. 구태여 기공이나 명상을 익히지 않아도 좋다, 숨 길이를 고르고 길게 가져가려는
마음가짐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날숨과 들숨, 이는 이완과 수축의 기본이며 바로 음양이다. 수천가지의 기공이나 토납법이 그 기본은 여기서 벗어
나지 않는다.
문명이 사계절이 뚜렷한 온대 지방에서 현저한 발전을 보인 것도 따지고 보면 기후의 변화에 따라 저절로 이완과
수축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계절이 변할 수 있는 기본 이치는 지구가 자전축에서 23.5도 기울어져 있기 때문
이다.
필자는 음양오행을 장기간 동안 연구해 왔지만, 그 자체가 전 우주에 적용되는 변화의 기본원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현 상태에서 그것은 검증 범위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다만, 음양은 해의 길어짐과 짧아짐, 그를 통한
계절과 기후의 변화, 지구 자전에 따른 낮과 밤의 변화가 음양오행의 기본 이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겨울에도 춥지 않은 난방 시설을 가졌고, 여름에도 덥지 않은 냉방 시설을 가지게 되었다.
이는 수축과 이완의 폭을 좁힌 것이다. 거기에 너무나 많은 자극들이 수축 상태를 가져왔고, 거기에 속도와 높이,
강도에 대한 선망증이 우리를 한없는 긴장 일변도로 몰아가고 있다.
필요할 때 빠르고 강하고 더 높아지기 위해서는 평상시 느리고 연하고 낮은 곳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최근 느리게 살자는 사조가 등장하고 있다. 느긋한 생활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일러 ‘슬로비(Slobbie) 족'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슬로비족은 천천히 그러나 더 훌륭한 삶을 기치로 내걸고 명상이나 요가, 시골 취향과 가족
중심의 편안하고 느긋한 생활을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피에르 상소라는 사람이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란 책을 내면서 힘을 받고 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느림의
철학은 민첩성이 결여된 정신이나 둔감한 기질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들의 모든 행동 하나 하나가 다
중요하며, 어떤 행동이든 단지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서 급하게 해치워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고 한다.
이 사람이 권하는 느림 실천법은 이런 것들이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 발걸음이 닿는 대로 한가로이 거닐기,
사람의 말을 끝까지 집중해서 들어주기, 반복적이고 사소한 일들을 오히려 소중하게 받아들이기, 우리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거나 자유롭고 무한히 넓은 미래의 지평선을 향해 마음을 열어보기, 우리 안에서 조금씩 진실이 자라
날 수 있도록 마음의 소리를 옮겨보기, 지혜를 가르치는 순수한 액체인 포도주에 빠져보기 등이다.
또 슬로 푸드 운동이라는 것도 있다. 패스트푸드의 반대말이다. 그 기본은 시간을 아끼기 위해 먹는 즐거움을 포기
하는 우를 범하지 말자는 것이고, 나아가서 음식을 기다리면서 여유를 되찾자는 것이다.
이 모두 현대 사회가 수축만 강요할 뿐, 이완을 잊어버렸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다. 몇 년 전 ‘시(時)테크’라는 말이
나왔을 때, 필자는 세상에서 가장 유해한 사조가 등장했구나 싶었다. 월급이 얼마이므로 이를 시간당 나누면 얼마
이고, 초당 얼마가 되니 일초라도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것, 이 얼마나 지독한 강박증인가!
이는 인체의 리듬이란 것, 나아가서 만물의 리듬과 주기라는 완전 무시라고 도외시한 비인간적 발상이다.
이는 생산성 신화와도 같은 맥락이다. 생산성이란 기업이 만들어내는 물건이 팔린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사조이다.
그 밑바탕에는 ‘그래 제품은 기업주인 내가 유능한 마케터들을 고용해서 팔아치울 수 있으니 너희들 컨베이어
벨트에 부착된 일 벌레들은 촌음을 아껴서 열심히 제품이나 만들면 되는 거야’ 하는 비인간적인 발상이 깔려있다.
일이란 그저 열심히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면에서 창의성이 더 중요한 것인데, 이는 단순하게 소요된
시간에 비례하지 않는 것이다.
여유롭고 부드럽게, 그리고 충분히 이완될 수 있어야만 수축할 때 제대로 수축하고 목표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이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사랑을 나누던가 아니면 잠과 휴식을 통해 풀어주는 것이 삶이다. 이것이 이완과 수축이고,
음양이며, 그 기본은 날숨과 들숨을 고르고 길게 가져가는 데에서부터 시작한다.
사주를 본다는 것 역시 그 사람의 여덟 글자가 어떤 식으로 이완과 수축을 되풀이하면서 기의 흐름이 원활하게
유통되는 가를 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기의 유통이 부드러우면서도 쉼이 없으며 끊임없이 면면하게 이어지면 바로
그것이 좋은 사주인 것이다.
아프면 쉬어야 한다는 것, 때로는 게을러야 집중할 때 집중의 강도가 나온다는 것을 얘기해 보았다.
(희정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