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호전서 제33권 / 잡저(雜著) / 신사년 초겨울에 쓰다[辛巳孟冬書]
추탄(楸灘) 오 상국(吳相國)의 가장(家狀)은 바로 내 큰 외삼촌인 현풍공(玄風公)이 지은 것인데, 내가 소싯적인데도 그 가장 속에 추탄공이 폐세자(廢世子) 사건에 관해 말해놓은 것이 있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당시 폐세자를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논의가 일어났을 때 조정 공론이 흉흉하여 모두가 극률(極律)로 처치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들을 했는데, 그때 정동계(鄭桐溪)가 논사관(論事官)으로서 처음에는 공론에 따라 그대로 논했다가 얼마 후 그것이 잘못이었음을 후회하고 드디어 인피(引避)하면서 말하기를, “신이 처음에는 죽여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와서 크게 깨닫고 보니 그때 했던 일이 너무 부끄러워 군부(君父) 앞에 감히 자신을 속일 수가 없었습니다.” 하여, 조정이 크게 떠들썩했다는 것이다. 그때 추탄은 대사헌으로서 그 일을 처리하고 다음에 다시 자백하기를, “정온(鄭蘊)은 자기 잘못을 알고 고쳤는데 신은 그렇게 못했으니, 신은 정온에 대한 죄인입니다.” 하고, 또 아뢰기를, “어제 아뢰었던 일은 하마터면 성상의 덕화를 그르칠 뻔하였습니다.” 하고, 드디어 인피했다가 체직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거기에서 옛분들은 덕을 숭상하고 잘못이 있으면 고치려고 했던 마음이 그렇게도 성대하고 광명하여 그처럼 숨김이 없었다는 것을 볼 수 있고, 또 추탄공의 말에서도 군자가 선과 의리에 승복하고 남의 좋은 점이면 즐겨 취하는 성의가 그러했다는 것을 볼 수가 있으니, 그 모두가 후인들로서는 따라갈 수 없는 일들인 것이다.
그때 그 말을 듣고 오래도록 잊지 못하고 있다가 그 후에 다시 추탄공 가장을 보면서 그 사실을 상고하려 했더니, 그 사실은 기록이 되어 있지 않고 계해년 4월 일처리를 옳게 못했던 탓으로 인피했다가 체직을 당했다고만 기록되어 있는데, 아마 이 일을 가리키는 듯하다. 그 가장이 우리 외삼촌이 쓴 것이기는 하나 사실은 구봉서(具鳳瑞)가 윤색을 맡아 버리고 취하고 했었는데, 아마 거기에 무슨 혐의가 있어서 그 사실을 뺐는지 모를 일이다. 아무튼 거기에서 우리는 군자가 하는 일은 그렇게 일반 사람들이 모를 것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몇 해 전에 권사성(權思誠)에게 들었더니 역시 이와 같았기에 우선 여기에 써두었다가 다시 질정을 받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