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지왕/김태우
놀이터를 내주고 골목대장 칭호를 얻었다 동네 개미들이 신발 바닥으로 모였다 운동화 구멍에 발톱이 걸렸다 발가락이 개미를 보고 비명을 질렀다 발톱을 구하려 아이들이 개미를 밟았다 엄지발가락을 덮은 하늘이 붉었다
손에 든 딱지로 아이들을 물리쳤다 놀이터 모래가 흐늘거렸고, 마을 어귀에 부딪힌 비명은 방향을 잊었다 개미 무리를 밟고, 아이들을 뒤쫓는 목소리가 다가왔다 굵은 표정이 딱지를 뒤집었다 골목대장 호칭이 그네를 타고 하늘로 흩어졌다 젖은 운동화만 주인을 찾았다
아이들이 두꺼운 목소리로 딱지를 접었다 딱지왕은 옷장에 걸린 빨간 종이를 접었다 애송이가 개미를 넘겼다 빨간딱지가 뒤집은 어린비명이 놀이터와 멀어졌다 거친 그림자가 빨간딱지를 찢었다 신발에 붙은 개미가 사라졌다
빨간딱지가 앉은 장독대가 사라졌다 아이들 입에서 골목대장도 실종됐다 개미만 운동화 구멍에서 발견됐다 아이들이 놀이터를 멀리했다 빨간딱지는 홀로 떨었다 빨간딱지로 가득 한 운동화 주인집이 낯선 애송이의 놀이터가 됐다 더 이상 빨간딱지 주인은 딱지왕이 아니었다
- 2015년 <시인수첩> 신인상 당선작
《 심사평 》
* 새로 발음하고 새로 뜻을 새기며
- 심사위원: 문혜원, 최현식, 김병호
《시인수첩》은 시인들이 문예지별로 무리를 짓고 벽을 세우는 것을 경계하며, 오로지 다양한 개성을 지닌 시인들에게 폭넓은 발표 지면을 제공하는 것을 잡지의 역할이라 여기고 있다. 더불어 《시인수첩》이 시 전문 계간지로서 무엇보다 귀하게 생각하는 몫과 사명은, 개성적 미학과 참신한 가능성을 갖춘 능력 있는 신인을 발굴, 육성하여 우리 시문학의 뿌리를 튼실히 하고 그 열매를 풍요롭게 하는 데 있다고 믿고 있다.
종합 문예지였던 《문학수첩》부터 시 전문 계간지로 새롭게 출발한 《시인수첩》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인을 배출하였다.
소설가로는 이장욱, 조정현, 윤성호, 남한, 서유미, 주영선 등이 있으며, 시인으로는 신혜정, 안승범, 이진희, 이병일, 황수아, 박소란, 배수연, 오성인, 석미화, 이병철, 평론가는 강정구, 정주아 등이 있다.
우리는 이들이 우리 문학사의 한 자리에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며 제 몫을 해가는 모습을 보며 우리의 안목과 역할에 대한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절감한다.
지난해에 비해 올해는 응모자 수가 다소 줄었다. 사회·정치적으로 숨 가쁘게 보낸 한 해였기 때문에 격변의 이슈들 사이에서 시의 자리가 위축되었다는 안타까움도 있지만, 여전히 시가 우리 시대의 위로가 되고 깃발이 되고, 나침반이 될 수 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비록 응모자 수는 줄었으나 응모작의 질적 밀도나 수준이 예전에 비해 훨씬 높아졌음이 이에 대한 방증이 될 수 있겠다.
본심에 오른 이들은 김재희, 김태우, 신윤서, 신희진, 이교전, 조미희, 조긍, 한형석, 한휼 등 아홉 명이었고, 심사의 최종심에서 당선작과 함께 마지막까지 치열한 각축을 벌인 것은 김재희, 한휼 씨의 작품들이었다.
먼저 김재희 씨의 작품에 대해 심사위원들은 사물을 바라보는 예각의 시선과 그것을 안정적인 문장으로 잘 다듬어내는 솜씨에 동의를 모았다. 그러나 시 전반의 사유들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의견이 있었고, 과연 시인이 이러한 굴레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떨쳐낼 수가 없었다.
한휼 씨의 경우, 거침없이 뻗어가는 사고와 문장이 돋보였다. 그러나 안에 담긴 서사가 아버지와 어머니에 국한되어 있고, 그 내용도 통속적이라는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아버지에 대한 비유와 묘사는 상식적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응모한 몇몇 작품은 빼어난 수준이었으나 함께 응모한 작품을 전체적으로 볼 때 당선자로 선출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아직 《시인수첩》에서는 평론가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심사까지 몇몇의 응모자가 있긴 하였으나 심사위원들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우리의 시문학을 풍성하게 하는 것은 우수한 작품뿐만이 아니라 이를 텍스트 삼아 연구하고 비평하며 시의 가치를 부여하는 평론가의 몫이다. 이에 《시인수첩》은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역량 있는 신인 평론가를 기다리며, 적극 지원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 다음 기회에는 예비 평론가들의 더 많은 응원과 도전을 기대한다.
새로운 세상에 첫 발을 내딛게 된 두 시인에게 격려와 축하의 말을 전한다. 지금의 작은 성과에 안주하지 말고, 새로 발음하고 새로 뜻을 새겨 오로지 자신만의 시를 세워나가길 응원한다.
《 집중심사평 》
* 시의 ‘촉’과 사유의 노력
당선자 김태우 집중심사평 - 문혜원
‘미래파’라는 용어나 분류에 동의하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분명한 것은 ‘미래파’ 이후 ‘시’라는 것의 디폴트값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현대시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제 더 이상 ‘시’를 자연스러운 주관적 감정의 표현‘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미래파‘ 이후 현대시는 다변의 언어와 비상식적 상상력, 다중성, 분열성, 소통 불가능성 등을 기본적인 특징으로 한다. 덕분에 언어를 다루는 젊은 시인들의 테크닉은 확실히 진일보한 감이 있다. 이러한 변화는 젊은 예비시인들에게 과중한 억압으로 작용한다. 그들은 언어의 일탈과 중첩, 분열적인 자의식, 마이너리티, 비정치적인 정치성 등 새롭게 설정된 기준을 익혀야 하고 거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렇게 시작해서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를 닮아간다. 언젠가 어디선가 봤던 듯한 친숙한 시들. 그들에게 ’시인‘이라는 이름을 주었던 표지가 그들을 억압하는 족쇄가 되는 것이다.
김태우의 시에는 이러한 억압이 없었다. 수다한 언어와 과도한 수식, 분열적인 주체를 드러내는 시들과 상반되는 단순성과 비완결성이 오히려 돋보였다고 할까. 예컨대 「딱지왕」은 본인의 경험일까 싶을 만큼 고전적인 소재를 취하고 있다. 딱지치기, 놀이터, 골목대장 등의 소재들은 시 쓰기를 시작하는 누구나 한번씩은 거쳐 가는 메뉴가 아닌가.
김태우의 시는 그래서 오히려 호감이 갔다. 어깨너머로 익힌 테크닉을 사용하지 않고 대상에서 이야기를 스스로 끌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시의 서두, 즉 말문을 여는 데 강한 면모를 보여준다. “놀이터를 내주고 골목대장 칭호를 얻었다”(「딱지왕」), “슬픔의 농도는 달의 기울기를 결정하지”(「비극의 후예들」), “잉태한 시간이 아까워 살았어요”(「나쁜 위로」) 같은 표현들은, 일단 시를 읽고 싶게 하는 매력적인 구절들이다. 이것들은 자연스럽게 그 이면의 이미지 혹은 사건들의 연관성을 환기시킨다. 슬픔으로 눈물이 차오르는 것과 ‘달의 기울기’가 연결되거나(「비극의 후예들」) 생일과 장례식이 나란히 놓여 있는 장면(「나쁜 위로」) 같은 것이 그렇다. 이러한 배치들은 치밀하게 의도된 것이라기보다는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에 가깝다. 일단은 시에 대한 ‘촉’을 가지고 있음이 증명되는 것이다. 군데군데 발견되는 신선한 표현들이나 대상의 아이러니를 포착하는 능력도 있었다.
그러나 시의 앞부분이 주는 호감에 비해 뒤로 갈수록 치밀성이 떨어지는 것이 흠이다. 그 예로 「나쁜 위로」는 생일과 장례식, 웃음과 울음이 공존하는 아이러니를 포착하는 데는 성공하고 있으나 그것을 사유로 뒷받침하지 못함으로 인해 완결성이 떨어지고 있다. 대상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사유가 뒷받침하여야만 ‘촉’을 자신만의 개성으로 형상화할 수 있을 것이다. 미완의 부분은 앞으로 충분히 보완되고 개선될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