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홍사를 아시나요
이 홍사
책과 포도?
포도와 책?
두 문장을 나란히 타이핑해놓고 들여다보았다. 소주의 위력은 실로 대단하다. 글씨가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겹쳐 보이기도 한다. 들여다보고 있으니 내 입이 아니라 노트북의 모니터에서 술 냄새가 풍겨오는 듯하다. 한참을 보다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문장, 포도와 책은 지우기를 했다.
일단 책과 포도라고 가제로 정하고 보니 책을 읽으면서 포도를 먹는, 여유로운 모습이 연상된다. 그렇게 책을 읽으면서 심심풀이로 포도를 먹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런 내용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대단히 아쉽다.
지난여름에 소설집이 나왔다.
나로서는 여섯 번째 문집이다. 첫 번째 문집을 낸 것이 거의 이십 년 전이다. 콩트와 소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냈으니 콩트집도 아니요 소설집도 아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창작집에 속할 게다. 그 때만 해도 출판문화에 관한한 구석기 시대다. 그 책을 낼 적에는 원고를 파일로 보내 주지를 못하고 여기저기 문학지와 잡지, 내 글이 실린 책과 컴퓨터에 든 글을 출력해서 한보따리를 들고 출판사를 물색하다가 자주 만나는 시인이 경영하는 대구의 기획사를 찾았다. 시집을 몇 권 출간한 기획사인데 창작집은 처음이었다. 당연히 자비출간이었다. 무명작가의 책을 출간해줄 출판사는 어디에도 없었다.
출판 기획사에서 디자인을 하는 아가씨가 일일이 다시 타이핑을 해서 교정을 보라며 던져주었는데, 세상에! 바르게 친 것 보다 오타가 더 많을 정도였다. 붉은 사인펜으로 이틀에 걸쳐 교정을 보니 교정지가 온통 붉은 색이 되어 버렸다. 그걸 다시 싸들고 기획사로 갔다.
너무 교정을 볼 부분이 많아 타이핑을 한 아가씨가 계면쩍게 웃을 정도였다. 다시 교정을 본 부분을 수정해서 며칠 후에 이 차 교정을 보라며 던져 주었는데 그래도 오타와 삭제된 부분이 엄청 많았다. 이 차 교정을 보며 글을 쓰는 것 보다 교정을 보는 것이 더 어렵다는 걸 느꼈다. 분명히 수정하라고 붉은색으로 정정을 해서 준 것에도 오타가 있을 지경이었다. 이 차 교정지에도 붉은 색 사인펜이 동원되어 교정지가 붉은 색이었다.
이 차 교정을 보고 손을 들었다. 내가 쓴 글을 몇 번이고 꼼꼼히 읽는 것이 고역이나 다름없었다. 창작집인 [잘난 배꼽]은 그렇게 출간되었다. 책이 나오고 보니 그래도 오타가 페이지마다 있어 두고두고 눈에 거슬렸다. 그 창작집이 나오고 다섯 권의 책이 더 나왔지만 그 이후에는 그 기획사를 찾지 않았다.
두 번째 낸 책은 단편소설만 수록한 소설집이었다.
높을 고高자를 쓴 소설을 표제로 삼았는데 어지간히 급하게 낸 책이었다. 책을 내야겠다고 마음먹고부터 겨우 보름 만에 나온 책이다. 그렇게 급하게 낸 이유는 다름 아니라 내가 중기임대 사무실을 이전 오픈하는 날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그 전에는 사무실을 형님과 같이 썼다. 당시에는 건설경기가 활발해서 한 사무실에 형님 소유의 중기와 내 중기가 스무 대가 넘게 있었다. 기사가 많아지자 희한하게도 기사들끼리 편이 갈리는 것이었다. 형님 중기기사는 그 기사들대로 편이 형성되고 내 중기 기사들은 따로 놀면서 같은 현장에서 일을 해도 밥도 같이 먹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문제는 심각한 것이다.
당시에는 중기 사무실이 어느 주유소 이 층을 임대로 쓰고 있었다. 그래서 형님과 궁리 끝에 회사를 키우는 차원에서 사무실을 따로 쓰기로 하고 내가 사놓은 구획정리지구 작은 땅에 조립식으로 사무실을 지었다. 그 사무실을 오픈하는 날 손님께 줄 선물이 마땅치 않았다. 수건이나 돌리자니 너무 식상하고, 특별한 선물이 없을까 궁리 끝에 책을 돌리기로 마음먹고 내가 그 동안 쓴 소설을 골라 괜찮은 작품을 CD에 담아 후배가 하는 기획사를 찾아갔다.
그 기획사는 작게는 명함부터 크게는 회사의 사보까지 찍어내는 기획사인데 당시에 있던 사무실에서 바로 길 건너에 있었다. 사장인 고등학교 후배에게 이 CD에 담긴 것을 책으로 내는데 얼마나 걸리느냐고 물으니 일주일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표지 디자인도 멋지게 한다고 운을 띄우고 활자크기, 줄 간격을 계산하더니 몇 페이지가 나온다고 했다. 일단 믿음이 갔다.
중간에 교정을 한 번 보기로 하고 책을 내기로 했다.
그 후배가 이틀 후에 교정을 봐 달라며 교정지를 들고 사무실로 왔다. 처음에 낸 창작집 [잘난 배꼽]과는 달리 교정은 내가 쓴 글을 다시 한 번 검토하는 수준이었다. 교정을 한 번 보고 원고를 넘겨준 뒤 일주일 후에 책이 나왔다. 삼천 부를 찍었는데 싣고 오는 걸 보니 소형 화물트럭에 한 차였다. 삼천 부가 그 정도로 많을 줄 몰랐다.
새로 급조한 사무실 안에 쌓아두고 미리 오는 손님들에게 한 권씩 나눠주었다. 사무실 개소식을 하는 날 돼지를 두 마리 잡아서 비교적 잔치를 거하게 했다. 조립식 사무실이지만 거창하게 현판식도 하고 축사도 했다. 건설 경기가 좋을 때라 손님들도 많았다. 잔치마당 한 쪽에 책을 쌓아두고 오는 손님들에게 마음껏 가져가도록 했다. 더러는 작가라는 호칭을 부르며 내 사인을 받아가고 두 권이나 세 권을 들고 가는 이도 있었다.
잔치를 치루고 보니 책을 삼분의 일도 소화시키지 못했다. 궁리 끝에 주소록을 구해 전국 각 대학의 도서관에 우편으로 발송하고 문단 주소록을 보고 기성작가들에게도 우편으로 보냈다. 두 번째 문집은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돌이키니 그게 십오 년 전의 일이다.
그래도 그 때는 책이 읽히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특정한 사람 외에는 책을 읽지 않는다. 그 특정한 사람들이란 문학과 관련된 사람들이다. 시를 쓰는 사람이 시집을 사고 소설을 쓰는 사람이 소설집을 사는 세상이다. 그 외에는 책을 읽지 않는다. 책을 읽는 것이 습관화 되어 있지 않다. 더구나 시집이나 소설집, 등 문학지는 그 정도가 더 심하다. 어떤 서점에 가보아도 문학 코너는 한산하다. 북적이는 쪽은 취업서적 코너다.
오늘은 책과 포도를 비교했다. 즉 읽을거리와 먹을거리에 대해서 면밀히 비교 관찰했다. 관찰 결과는 가슴 쓰린 비애다. 차라리 책을 그냥 줄 것을.
중학교 동기들 계모임이 있는 날이다. 면 단위에 하나 밖에 없는 중학교 동기들이니 도시가 팽창해서 내가 태어난 면은 지금 도시의 변두리가 되었고 따지면 고향에 터전을 잡은 동기들의 모임이다. 그 계원이 약 서른 명쯤 된다. 여태까지는 책이 나오면 그 계모임이 있는 날 한 보따리 싸들고 가서 나누어 주었다.
여섯 번째 문집을 낸 경험에 의하면 공짜로 받은 책은 절대 읽지 않는다. 그냥 주니 술상 밑에 넣어두고 그냥 돌아가는 작자들도 있어 꼭 읽을 사람만 가져가라고 오늘은 책을 팔기로 마음을 먹었다. 죽을힘을 다해 낸 책인데 받아서 표지와 타이틀만 훑어보고 술상 밑에 버려두고 가니 글을 쓴 사람으로선 말은 못하고 무척이나 약이 오르고 속이 상했다.
오늘은 그냥 주는 게 아니라 정가대로 팔기로 마음먹고 책 열두 권을 종이로 된 쇼핑백에 담았다. 책이라곤 관심이 없는 이도 있을 것이고 참석하지 못하는 친구도 있을 것 같아 열두 권을 담았다. 그 모임에 가면 아무래도 술을 마실 것 같아 아내에게 계모임 장소인, 같은 계원인 병수부부가 운영하는 한우센터까지 좀 태워달라고 했다. 올 적에는 택시를 이용할 요량이었다.
제 시간에 도착했는데 벌써 열댓 명의 친구들이 먼저 와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그 모임에는 거의 이 년 만에 참석을 한다. 희한하게도 그 계모임은 꼭 내가 외국에 있을 적에 때를 맞추어 날을 잡는 것이다. 참고로 나는 사업차 일 년에 반은 미얀마에 머문다. 한 달은 한국, 한 달은 미얀마에 체류하는 철새다.
식당에 들어서며 인사를 하는 친구의 아내에게 먼저 챙기라고 책을 한 권 빼서 주었다. 그 친구의 아내는 내 독자다. 가끔 그 쪽에 가서 술 마실 일이 있으면 친구의 식당을 이용하는데 친구 아내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내 책을 다 읽었음이 분명하다. 몇 마디만 해보아도 그런 건 글쓴이가 감을 잡게 마련이다.
-책 한 권에 되게 반가워하네? 신경질 나면 두 권 줘 버릴라.
책을 받고 황송해하는 친구의 아내에게 한 마디를 던지고 책이 든 쇼핑백은 총무에게 주고 술판에 끼어들었다. 총무 녀석은 뜬금없이 맡긴 책이 뭐냐고 내가 소주를 두어 잔 쯤 먹었을 때서야 물었다.
-새로 나온 책인데, 그냥 주면 안 읽으니까 팔려고 가져왔다. 총무가 책임지고 정가대로 팔아라.
총무인 상권이는 무슨 뜻인지 알고 정가를 찾는 건지 술을 마시며 보니 책을 펴서 훑어보고 있었다.
내가 도착하고도 친구 서너 명이 나보다 늦게 도착을 해서 합류했다. 올 사람은 거의 온 모양이다. 술을 마시는 동안 지방방송 중단이라고 말하고 총무가 일어서서 결산보고를 간략하게 했다. 나는 건성으로 들었다. 결산보고가 끝나고 갈비구이에 술이 어지간히 들어가고 나니 된장찌개에 밥이 나왔다.
밥을 먹는 동안 총무가 다시 일어나더니 내 책과 강수 처가에서 특별히 가져온 씨 없는 포도에 대해서 얘기를 했다. 책과 포도를 판다는 것이었다. 나는 총무가 말한 포도를 보았다. 들어올 땐 보지 못했지만 식당 입구에 포도가 열댓 박스 쌓여있었다. 그 댄 이미 숟가락을 놓은 친구들은 가게 밖으로 담배를 피우러 나가고 밀린 계금을 받는 파장 분위기였다. 어수선한 분위기에 포도 맛을 보라고 소리친 강수가 한 박스를 뜯어서 후식으로 술상 여기저기에 한 송이씩 올려놓았다. 개량종인 씨 없는 포도이고 거봉이었다. 소주를 한 잔 마시고 안주삼아 하나를 먹어보았다. 껍질이 얇고 맛이 그만이다. 포도 맛을 본 친구들은 한 박스씩 들고 나가 식당마당에 주차된 각자의 차에 실었다. 씨 없는 포도는 잘 팔리는데 씨가 있는 내 소설집은 서너 명이 술좌석에 앉아서 건성으로 훑어보고 있었다. 책값과 포도 값은 공교롭게도 같은 만 원이었다. 만 원짜리 포도와 만 원짜리 책이 극명하게 비교되는 순간이었다. 순간적으로 그냥 줄 걸!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늦었다. 그때 총무가 일어서서 다시 어수선한 분위기에 대고 외쳤다.
-책을 가져간 사람은 여기에 돈을 넣으시오.
내가 가져간 쇼핑백에 책값을 넣으라는 얘기였다.
그 말을 듣고 나도 가게 밖으로 나가 담배를 한 대 피우며 숨을 고르고 들어갔다.
들어가면서 보니 포도는 금세 동이 났다. 팔리지 않은 책은 절대로 누구에게 그냥 주지 말고 다시 가져가야지 생각하며 포도를 안주삼아 소주를 두어 잔 더 마셨다. 다른 사람은 계금을 다 냈지만 나는 그 때까지 계금을 내지 않고 있었다.
-책을 살 사람 더 없어요?
총무가 어수선한 분위기에 대고 소리쳤지만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고 지방방송만 왁자지껄 했다.
-야! 봐라. 주목! 우리 계원에서 이렇게 훌륭한 소설가가 있다는 건 우리 계의 영광이야. 책을 좀 사라. 씨부랄 놈들아!
총무란 자식이 안 해도 될 소리까지 해버렸다. 보다 못한 내가 나섰다.
-야! 그만해라. 내가 꼴사납게 책장사가 되는구나.
그때서야 총무가 책과 돈이 든 쇼핑백을 들고 내 옆으로 왔다. 들여다보니 책은 네 권이 남아 있었다. 얼른 계산하니 책이 일곱 권 팔린 셈이다. 쇼핑백에 든 돈을 빼서 나에게 주었다.
-밀린 계금이 얼마라고 했지?
쇼핑백의 돈에,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얼마를 보태서 계금이라며 총무 녀석에게 주었다. 쇼핑백을 돌려받으려는 찰라 총무가 쇼핑백을 가로챘다. 그리고 책을 헤아리더니 손에 쥐고 있던 계금에서 책 네 권 값을 나에게 주면서 말했다.
-나머지는 우리 계에서 사는 거야. 총무 직권으로.
-총무가 제 마음대로 공금을 써?
-술값에 같이 올려 장부정리를 하면 돼. 사람이 술만 먹고 사나? 책도 읽어야지. 절대 공금 유용이 아니야.
책을 다시 들고 가는 꼴사나운 풍경보다 손을 털고 가는 게 낳다 싶어 더는 딴소리를 하지 않고 내미는 돈을 받아 바지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술은 취하지 않고 기분이 좀 고약했다. 나는 파장이 된 어수선한 좌석을 피해 포도가 담긴 접시를 들고 다른 좌석으로 옮겨 앉았다.
-야! 총무 계금 다 받았으면 한잔 더 하자.
-그래. 그래, 이 차 갈 놈들은 가고 우리는 여기서 한잔 더 하자.
상권이가 따라와 자리를 잡고 술상을 정리하는 병수의 아내에게 술상을 다시 봐 달라고 했다. 자리를 잡자 가게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들어온 두 녀석이 자리를 같이 했다.
-저 자식들 또 현수 사무실에 간단다.
막 자리를 잡은 민교가 말을 했다.
-현수 사무실엔 왜?
이 밤중에 공인중개사 사무실에 뭘 하러 가는지 저어기 궁금했다.
-뻔하지. 뭐.
-뭐가 뻔해?
민교를 보고 물었으나 답은 총무 입에서 나왔다. 총무의 말에 의하면 현수 사무실에 딸린 골방에서 카드를 한다는 것이다. 지난번 어느 친구 어머니상 때에는 빈소에서 하다가 판이 커져서 현수 사무실로 갔는데 도저히 친구들의 심심풀이라고는 규정할 수 없을 정도로 판이 켜졌다는 것이다.
나도 그 친구의 문상을 갔었지만 문상을 마치고 술만 한잔하고 바로 나왔기에 뒤에 일어난 일은 모를뿐더러 카트놀이는 젬병이라 관심이 없다. 조금 따도 부담이 되어 돌려주기 바쁘고 조금 잃으면 약이 바짝 오른다. 아마도 내공이 부족해서 그런 모양이다.
-그건 그렇고 이 홍사가 무슨 뜻이야?
총무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민교가 책을 뒤적이다 표지를 보더니 내 필명을 물고 늘어졌다.
-필명이야. 이 종률이가 하도 많아서 필명을 쓴다. 이 홍사라는 이름을 쓰는 사람은 나 밖에 없어. 이 종률은 늘려있어. 신문기자, 변호사, 치과의사, 전직 장관, 너무 흔해서 이 홍사로 쓰고 있어. 인터넷에 이 홍사로 검색하면 나 밖에 없어.
-이름이 정겹다 이 홍사! 한 잔 하자. 이 홍사!
민교는 내 잔에 술을 채워주고 그 말을 들은 총무 녀석은 스마트 폰으로 바로 검색을 하고 있었다. 요즘은 어디를 가도 거짓말을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 어떤 이슈에 대해 논쟁이 붙으면 어디에서든 바로 스마트 폰으로 검색을 해서 진실을 밝혀내기 때문이다. 총무인 상권이는 금세 스마트폰의 인터넷으로 나를 찾아내고 거기에 박힌 사진을 커다랗게 확대시켜 술상 앞에 내밀며 한 마디 했다. 얼른 보니 신춘문예에 당선된 뒤 어느 여성지에 인터뷰를 하고 찍은 사진이었다.
-이게 우리 훌륭한 작가 이 홍사 선생님이야. 이 홍사 선생님 존경합니다.
그 말을 하고는 익살스럽게 거수경례를 척 붙였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술이나 마셔!
녀석의 마빡에 붙은 손을 끌어내리고 잔을 채워주고 건배를 하자는 듯이 잔을 들고 내밀었다. 총무 녀석은 냉큼 잔을 들고 살짝 부딪치며 한 마디를 더 했다.
-영광입니다. 이 홍사 작가님!
-장난 그만하라니까.
술이 한 순배 돌자. 그때서야 새 안주가 나왔다. 한우 갈비 숯불구이다. 밖에서 담배를 피우며 웅성대던 친구들은 온다간다 소리도 없이 다 어디로 사라지고 왁작대던 식당에 평화가 깃들었다. 식당이 조용해지자 병수의 아내가 식탁 모서리에 앉아 직접 갈비를 구워주었다. 한잔을 마시고 친구의 아내 앞으로 잔을 내밀었다.
-우리는 이제 장사 시작인데, 작가 선생님께서 주시니 딱 한 잔만 마시지요.
-거 참! 그만하라니까
병수의 아내는 스스럼없이 한잔을 받아서 두꺼비 개구리 삼키듯 단숨에 털어 넣었다. 그리곤 김치 한 조각으로 안주를 하고 손등으로 입을 스윽 닦으며 잔을 다시 나에게 내밀고 소주를 채워 주었다. 그 때 다른 손님 한 팀이 식당으로 들어섰다. 병수 아내는 앉은 자리에서 손님들에게 인사를 하고 급하게 익은 고기를 가위로 잘라주고 자리를 떴다.
-이 홍사 선생님 아니십니까?
방금 들어온 팀이 옆 좌석에 자리를 잡으며 누군가가 나를 호명했다. 그때 소주를 막 들이키던 참이었다. 누구 목소리더라? 잔을 내려놓고 안주 집을 사이도 돌아다보았다.
-최 재근입니다.
-아, 최 선생! 몰라봐서 죄송합니다.
벌떡 일어서서 악수를 했다. 최 재근은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몸담고 있으면서 시를 쓰는 한참 연하의 젊은 시인이다. 같은 작가회의 회원이지만 얼굴을 본 게 몇 년 만이다.
-지난 번 특집에 실린 글을 잘 읽었습니다.
-어디 특집으로 나온 거?
-작가정신에 특집으로 실린 것 말입니다.
-아, 예 졸작입니다.
작가정신에 특집으로 실린 것은 작년이다. 중편 한 편과 단편 한편을 싣고 어느 비평가가 내 작품세계를 엄청나게 미화시켜 실었다. 우리가 인사하는 것을 보고 있던 상권이가 불쑥 끼어들었다.
-여기 이 작가님, 소설집이 새로 나왔어요.
-그래요? 축하드립니다. 인터넷으로 사서 읽겠습니다.
최 선생이 그 말을 하며 내 손을 다시 한 번 잡았다. 상권이가 또 그 말을 듣고 끼어들었다.
-인터넷으로 살 필요가 없어요. 여기 책이 있습니다. 제가 책을 왕창 떼어다 팔고 있습니다.
상권이가 내미는 책을 최 선생이 받아서 표지 앞뒤를 훑어보고는 겸손하게 말했다.
-책값을 어느 분께 드려야 하나?
-저에게 주세요. 책장사가 접니다. 이만 원!
-아하! 이 친구가 그 사이에 곱절 장사로 강매를 하고 있네.
내 말을 듣고 최 선생은 웃으면서 만 원을 꺼내서 상권에게 주고는 잘 읽겠다는 말과 훌륭한 친구를 두셔서 좋겠다는 소리를 상권에게 했다. 책과 포도를 견주면서 느꼈던 비애가 조금 상쇄되고 있었다. 최 선생은 표지가 참 잘나왔다고 했다.
-종종 봅시다.
책을 훑어보며 제 일행이 기다리고 있는 자리로 돌아가는 최 선생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불판 위에는 갈비가 노릇하게 굽혀 있었다. 마주 앉은 민교가 내 잔을 채워주고 들고 있던 책 표지를 살피며 물었다.
-이게 몇 번째 책인가?
들고 있던 소주를 마시고 안주를 집으며 대답했다.
-표지 안에 다 적혀 있어. 나로서는 여섯 번째 책이야.
-언제부터 글을 썼지?
-본격적으로 글을 쓴 건 이십대 후반부터야.
대답을 하고 안주를 먹으며 보니 민교는 저어기 놀라는 눈치였다. 민교는 수원 어딘가 살다가 삼 년 전에 도시의 변두리가 된 고향으로 내려와 그 동안 연락이 소원했었고 작년에 우리 동기모임에 신입으로 가입했다.
-끼가 있었구먼.
끼? 오랜만에 듣는 소리다. 그렇다. 끼가 있었다.
그 끼를 달래느라 새벽마다 한 시간씩 글을 쓴다. 남들은 한 편씩 쓰는데 반해 나는 항상 서너 편 타이틀을 걸어놓고 이글을 쓰다가 막히면 저글을 쓰고 저글을 쓰다가 막히면 또 다른 글을 쓴다. 나만의 독특한 글쓰기 방식이다. 그러니 매일 쓸 거리가 있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남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딱 한 시간씩 글을 쓰는 게 습관이 되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고 외국에 있을 때도 그 시간에 일어나 글을 쓴다. 심지어 추석이나 설날도 새벽에 한 시간 글을 쓰고 옷을 갈아입는다. 간혹 못 쓰는 날이 있다. 그 날은 바로 외국에서 밤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에 새벽에 도착하는 날이다. 외국 출장이 잦은 나는 그런 날은 쓰기보다는 프린트해서 온 작품을 인천공항에서 버스 시간을 기다리며 두세 번 읽으며 퇴고를 하는 게 고작이다.
십년 전쯤에는 신춘문예에 목숨을 걸었다. 세 번째 소설집이 나오고 나서였다. 각종 문학 공모제에 수상 경력이나 문예지에 신인상은 여러 번 받았지만 이렇다 하고 내놓을, 걸쭉한 등단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이다. 책을 세 권이나 내고 보니 그럴듯한 타이틀이 절실했다. 생각하니 문단의 사생아가 바로 나였다. 문단의 사생아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각종 신춘문예에 응모를 했다. 허나 번번이 고배를 마시며 몇 년 동안 최종심까지 올랐다. 그러니 독이 더 올랐다. 시를 쓰는 어느 후배 녀석은 나를 일컬어 최종심 형이라고 부를 정도가 되었다. 나만큼 최종심에 자주 오른 작가는 없을 것이다. 마지막 두 작품을 놓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심사평을 적고 떨어진 작품이 내 글일 적에는 정말이지 환장할 정도였다. 떨어질수록 독이 더 올랐다. 하여 문단의 인맥을 엮기 위해 서울의 대학원에 청강으로 이 년간 다녔다. 야간으로 등록을 해서 기차로 일주일에 두 번 다녔는데 고생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오전에 현장을 둘러보고 세 시간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서 지하철과 마을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학교에 도착해서 강의를 듣고 막차를 타고 내려오면 새벽 세 시였다. 저녁을 먹지 못하는 날이 태반이었다. 그 짓거리를 이 년이나 했다. 몸과 마음이 바빴다. 허나 바쁜 사람일수록 짬이 많은 법, 짬을 이용하여 글을 쓰서 소설집 [아버지는 맞아도 싸요]를 출간했다. 그 소설집을 출간하고 본격적으로 신춘문예를 준비했다. 대구의 잘 아는 선배 시인이 말했다.
-홍사는 책을 세 권이나 냈으니 그냥 있으면 중견인데 애를 써서 신인이 되려고 하는구먼. 무슨 작업을 그렇게 해?
-선배님! 저는 문단의 사생아입니다. 오명을 벗어야죠.
책으로 발표한 소설은 신춘문예에 내지 못한다. 새로운 글을 이를 악물고 썼다. 내가 당선되던 해는 일 년간 쓴 열여섯 편의 단편과 한 편의 중편을 쓰서 경향각지 아홉 개의 유명 신문사에 골고루 보냈다. 내 욕심으로는 두어 군데 동시 당선이 되어 문단의 주목을 끌고 싶었지만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겨우 한 군데 당선이 되고 세 개의 신문사에 최종심에 올랐다. 아니 중편까지 네 곳의 신문사에 최종심에 올랐다. 그 해 난리가 났다. 포클레인 기사 출신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으니 이목을 끌만한 사건이었다. 당선된 신문사에서 발표를 하기 전에 소문이 났다. 다른 신문사는 물론이고 이름 있는 여성지등 문학잡지에서 취재를 왔다. 심지어 내 작품을 최종심에서 떨어트린 신문사에서까지 나를 취재하러 왔었다. 나를 최종심 형이라고 부르던 시를 쓰는 후배가 연합통신 기자에게 말을 흘린 것이었다. 그 사실이 내가 당선된 신문사에 알려지자 그 신문사에서 나를 불렀다. 가서 인터뷰를 하고 카메라 기자와 포클레인이 있는 곳으로 가서 운전하는 모습을 여러 장 찍었다. 그리고 시상식 전에 그 신문의 문화면에 대서특필로 실었다. 신문을 본 여러 문인들로부터 축하 전언을 받았다. 당연히 그렇게 될 줄 알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렇게 등단의 절차를 밟고 나니 책을 내는데 자비출간이 아니었다. 등단 이후로 세 번째 책을 오늘 들고 나왔다. 등단할 즈음 쓴 글을 단편으로 묶어 [달빛 여인숙]을 내고 그 다음에 장편을 한 권 냈다. 장편은 순전히 팔기 위해서 문학성을 배제하고 대중성만 생각해서 썼는데 쓰는 과정에서 내가 도취되어 집필기간이 석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엄청 재미있게 썼지만 판매부수를 보면 그렇게 히트를 치지 못했다. 성性 에 호기심이 많은 유명대학 일 학년짜리를 주인공으로 삼아 수재들의 골 때리는 성을 주제로 삼은 [비타민 Q]다. 읽은 사람들 모두가 재미있다고 했지만 책이 팔리지 않고 e북으로 읽힌 모양이다. e북의 수익은 내 몫이 아니라 출판사의 몫이다. 그 다음에 나온 책이 [모나리자에게 보내는 편지], 오늘 들고 온 소설집이다.
전업 작가는 아니지만 지금도 전업 작가 못지않게 열정적으로 쓴다고 자부한다. 노트북을 두 번이나 잃어버리고 나서 인터넷 카페를 만들었다. 노트북을 잃어버린 건 아깝지 않은데 발표하지 못하고 날아간 소설, 쓰다가 날아간 소설을 생각하면 손이 떨린다. 그래서 누구도 훔쳐가지 못하게 카페를 만들고 소설이 완성되면 카페에 먼저 저장을 한다. 카페회원들은 많지 않다. 누구 보라고 만든 카페가 아니라 내 소설의 창고라고 생각하고 만든 카페다. 저장하면 글을 올린 날자가 나타난다. 일삼아서 언젠가 헤어보니 작년에 열다섯 편의 소설을 올렸다. 한 달에 한 편 이상이다. 그렇다면 소설가치고는 다작하는 편이다.
일 년에 소설 한 편도 쓰지 못하고 소설가라는 호칭을 명함에 새겨서 온갖 문학 행사에 빠짐없이 다니는 작자들을 보면 경멸스럽기 보다는 저렇게 늙지는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소설가들과 엄격히 구분되기 위해 매일 쓴다. 이제는 쓰고 있지 않으면 불안한 정도다.
-우리 장조카가 자네하고 비슷한 시기에 등단했어.
마주앉아 술을 마시던 민교가 자기 조카이야기를 꺼냈다.
-소설을 쓰는 친구인가?
-아니, 시를 쓰고 있는데 시집을 두 권인가 냈어.
-어디로 등단을 했는데? 신춘문예인가?
-잘 모르겠어. 그런데 신춘문예는 뭐야?
기가 막혔다. 그 말을 들으니 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등단이라는 말은 아는데 신춘문예가 뭔지를 모른다? 그 상황에서 설명을 하거나 말을 더 하면 내가 이상한 놈이 된다.
-그런 건 자네 조카에게 물어보고 술이나 마시자.
앞에 놓인 잔을 들고 내밀었다. 탁자 옆에는 이미 빈 소주병이 일곱 개나 놓여있었다. 어지간히 취한다. 폭풍 흡입! 다른 술친구가 나를 가리켜 그렇게 말할 정도로 술을 급하게 마시는 편이다. 그렇다면 거의 반쯤은 내가 마신 것일 터이다. 나는 술 마시고 언쟁을 높이며 주정하는 법이 없다. 어느 정도 마시면 말없이 계산을 하고 사라지기 때문에 그런 광경을 보지 못 하는 것이다. 오늘도 취기로 미루어 어지간히 자리를 틀 때가 모양이라고 생각하는데 얘기의 주제가 바꾸어 공인중개사 사무실로 간 녀석들의 얘기다. 지난번에 누가 왕창 따고 누가 깡통을 찼다는 얘기로 이어지고 있었다. 관심 밖의 주제다. 분위기로 보니 또 아무것도 아닌, 남의 일에 언성이 높아질 것이다. 잽싸게 자리를 떠야지.
탁자 옆에 접어둔 재킷을 입었다.
-왜? 가려고?
총무인 상권이가 눈치 빠르게 물었다.
-어지간히 마셨고, 하다가 둔 일이 있어서......... 조용히 사라질 터이니까 얌전히 마셔!
오늘은 내가 계산을 하지 않아도 무방하다. 계모임의 연장으로 간주하고 술값은 총무가 계금으로 지불할 것이다. 옆 테이블에 앉아서 술을 마시는 최 선생에게 눈인사만 하고 식당을 빠져나왔다. 내가 빠져나오는 줄도 모르고 민교는 옆에 앉은 친구에게 카드 판에서 하이레벨을 쥔 두 사람이 돈질을 하던 얘기로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런 얘기는 들어도 이해가 되지 않을 뿐더러 실감이 나지 않는다.
식당을 나오니 바로 길 건너 전봇대 위에 초승달이 떠 있었다. 상대의 카드를 살피며 돈을 거는 애기를 듣는 것보다는 한결 눈이 즐거운 풍광이다. 달을 보고 담배를 한 대 피고 있으니 취기가 더 올랐다. 지나다니는 택시가 보이질 않았다. 그곳에서는 택시 잡기가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며 항상 택시가 대기하고 있는 기업은행 사거리까지 술 취한 초승달을 데리고 천천히 걸었다. 어지간히 취한 모양이었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역류성 식도염 때문인지 자꾸 헛구역질이 났다. 내가 마신 술을 속으로 헤어보니 계모임과 뒤풀이에서 마신 것을 합하면 얼추 다섯 병을 될 것이다. 두 병이 정량인데 곱절 이상을 마신 셈이다.
화끈거리는 얼굴을 쓰다듬고 딸꾹질을 달래며 천천히 걸어 기업은행 사거리에 내려오니 택시 세 대가 줄지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맨 앞의 택시 뒷좌석에 탔다.
-봉곡동 등기소 쪽으로 갑시다.
택시가 출발하자 취기가 더 올랐다. 그럴 땐 무슨 말인가 자꾸 해서 취기를 달래야하는데 할 말이 궁하다.
-혹시 이 홍사를 아시나요?
신호대기를 하고 있는 택시 기사의 늙은 뒤통수에 뜬금없이 말을 던졌다.
-다음에 국회의원 출마할 분이신가요?
기사는 돌아보지 않고 라디오 볼륨을 줄이며 되물었다.
-아니요. 봉곡동 등기소 맞은편에 택시미터기 수리하는 집 아시죠?
-예!
-그 옆집, 마당 너른, 붉은 벽돌 삼 층 건물 대한중기라고 있죠?
-아! 예. 압니다.
-그 집에 사는 사람인데 유명 소설가죠. 신춘문예로 당선되어 소설을 쓰는 사람은 이 도시에서 그 사람뿐입니다. 혹시 아십니까?
-집은 알아도 그 분은 잘 모르겠는데요.
예상했던 당연한 대답이 나왔다. 취기는 점점 오르고 있었다.
-그럼 신춘문예는 무엇인지 아십니까?
-예! 압니다.
-아시면 됐어요. 제가 바로 그 이 홍사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 말을 듣고 의자에 등을 묻었다. 술이 어지간히 취한 모양이다. 눈을 감으니 택시가 역주행하는 기분이 아득히 들었다.
수십 마리의 커고 작은 코끼리가 천천히 이동을 하고 있다. 코기리가 엄청 많은 밀림의 풀밭에 앉아 있었다. 왜 풀밭에 앉아서 코끼리를 보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헌데 코끼리 한 마리가 다가와 기다란 코로 내 어깨를 흡입 압착하여 당기고 있었다. 눈망울이 순해 보이는 커다란 코끼리였다. 이 코끼리가 왜 이 지랄이야! 코끼리의 코를 뿌리쳤다. 그래도 녀석은 악착같이 코로 내 어깨를 흔들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왜 이래?
-이 홍사 선생님 집에 다 왔습니다.
코끼리가 하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눈을 떠보니 풀밭이 아니라 택시 뒷좌석이었고 기사가 문을 열고 내 어깨를 흔들고 있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택시는 우리 집 마당에 서 있었다. 순간적으로 정신이 초롱같이 맑았다. 택시비를 계산하고 마당에 서서 택시가 나가는 것을 보고 담배를 한 대 물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내가 버리고 왔는데 초승달은 언제 따라 왔는지 옥상 위에 떠 있었다.
담배를 꽁초를 화단에 버리고 삼 층 집으로 올라가지 않고 이 층 사무실로 들어왔다. 노트북을 켜고 앉아 책과 포도라는 가제를 정하고 오늘 저녁에 일어난 일들을 정리하는데 눈이 가물거리고 자꾸 오타가 난다. 아직도 술기운이 남아있다. 노트북이 취한 건지 내가 취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택시기사에게 굉장히 부끄럽다. 우리 집을 알았으니 지나칠 때마다 술주정꾼이 사는 집이라고 생각하겠지. 이 홍사를 아시나요? 그 말이 왜 불쑥 나왔는지 모르겠다. 마우스로 여태까지 쓴 글을 쭉 내려서 다시 훑어본다. 책과 포도, 가제가 나온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 저녁은 책과 포도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 홍사를 아시나요? 가 주축을 이룬다. 제목을 지우고 다시 이 홍사를 아시나요라고 처넣고 문장을 본다. 여전히 술기운이 남아있다. 집으로 올라가면 아내의 잔소리가 기다리고 있겠지. 다시 담배를 물고 이 홍사를 아시나요? 라는 제목을 본다. 활자가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하는 게 술기운에 겹쳐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