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유적
차낙칼레에서 약 30Km 정도 떨어져 있는 트로이 유적은 일반적으로
트로이 전쟁과 트로이 목마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트로이 목마
우리에게 트로이 전쟁과 목마로 널리 알려진 고대 도시 트로이 입구에 들어서면
먼저 목마를 볼 수 있다.
좌측에 있는 목마는 관광객들을 위해 트로이 입구에 세워져 있는 목마이고
우측에 있는 목마는 트로이 유적 인근 도시, 차낙칼레 시의 해안 공원있는 목마이다.
트로이 영화촬영을 위해 소품으로 제작한 목마이며 영화촬영이 끝난뒤
차낙칼레 시에 기증한 것이다.
에구~ 그런데 영화소품으로 쓰였던 목마가 옛날 전설속의 목마같이 보이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 일행이 트로이에 도착했을때 에는 목마를 수리중 이어서
목마를 가리고 펜스를 쳐놓은 상황만 볼수 있어서 조금은 아쉬었다.
트로이 목마를 지나 성벽아레를 한바뀌 돌아보면서 유적들을 감상할 수있다.
트로이 입구 한쪽에 트로이의 전설을 설명해 주는 발굴당시의 사진의 포스터.
트로이 입구 정원
트로이 목마입구, 전시관에는 발굴당시 사진들이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전시장 내부
트로이 유적 포스터
트로이가 전설속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가, 독일의 고고학자 "슐리만" 이 그 실체를 발견했다.
슐리만은 어렸을때 들었던 일리아츠가 전설이 아닌 사실이라고 믿고
트로이 유적읗 찾기위해 온갖 노력 끝에 1873년 이곳을 발견했다.
그는 발굴작업을 통해 발견한 유물들을 독일로 반출하여
베르린 박물관에 공개하면서 트로이는 전설이 아닌 실존 도시로 알려졌다.
1996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트로이 최하층은 무려 기원전 4000년대의 유적으로 알려졌다.
이외에도 2층에는 메가론의 왕국으로 짐작되는 건물과 많은 금은 보화가 발견되었다.
7층 에는 호메로스 시대와 초기 청기시대, 8층에는 아르카이크시대,
맨위 9층에는 헬레니즘시대 및 로마시대의 유적이 있다.
한국민화국제교류협회 회원들과 함께 유적지를 돌아보며...
첫 발굴당시에는 2층을 트로이시대 유적이라고 발표하였지만
1930년대 미국의 학자들이 재 조사 결과 7층이 트로이 유적으로 판명되었으며, 현재에도 계속 발굴 중이다.
당시에는 이곳에서 부터 바다가 되었을 것 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또 다른 설에 의하면 지진으로 인해 이 성벽과 도시가 무너지면서
트로이 전쟁이 끝났다는 설도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지진을 관장하는 신이 포세이돈을 상징하는 동물이므로
이를 은유적으로 표현해 목마가 탄생되었을 것 이라고 추정하는 설도 있다.
종로 운봉화실 박복자 샘과 윤일수 샘 그리고 전 서울대 교수 이셨던 성굉모 박사님.
충주 운봉화실 박현수 샘, 종로 운봉화실 박복자 샘.
아직도 계속 발굴중 입니다.
성벽이 무너진 잔해들...
유적을 돌아보며,
그리스, 로마시대, 중세기의 트로이의 전설을 살펴보는 시간이 되었다.
지진으로 인해 무너진 성벽 잔해들을 보면서 조금은 서글픈 심정으로 당시의 문화를 보는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