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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卦 觀卦(관괘, ䷓ ☴☷ 風地觀卦풍지관괘)7. 爻辭효사-三爻삼효, 小象소상
1. 탈레반, 첫 기자회견서 "여성 존중" 강조 女앵커와 마주앉아 인터뷰도... 2. 부르카 입은 여성: 말로만 여성 존중? 여직원 무기정직 여학생 쫓아내고 억압 조짐 |
3. '샤리아'에 적힌 자유 보장한다? ..실제론 탈레반 맘대로 해석 [지난 2017년 아프간 수도 카불의 1970년대 자유로운 시내 분위기를 보여주는 이 사진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프간 미군 증파 결정을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4. 17일(현지 시각)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첫 번째 기자회견을 열고 아프간 전쟁 종료를 선언하고 있다. |
7. 爻辭효사-三爻삼효
p.288 【經文】 =====
六三觀我生進退
六三, 觀我生, 進退.
六三은 觀我生하여 進退로다
六三육삼은 내가 내는 行動행동을 보아서 나아가고 물러가도다.
中國大全
5. 日, 韓 국회의원 독도 방문에 항의 외교부 "부당한 주장“ 일축 6.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대구 달서구갑): 제76주년 광복절 당일 대구사이버대학교가 독도·울릉도에서 진행한 라이브 방송에 참석하기 위해 독도를 방문했다. |
p.288 【傳】 =====
三居非其位處順之極能順時以進退者也若居當其位則无進退之義也觀我生我之所生謂動作施爲出於己者觀其所生而隨宜進退所以處雖非正而未至失道也隨時進退求不失道故无悔咎以能順也
三居非其位, 處順之極, 能順時以進退者也. 若居當其位, 則无進退之義也. 觀我生, 我之所生, 謂動作施爲出於己者. 觀其所生而隨宜進退, 所以處雖非正, 而未至失道也. 隨時進退, 求不失道. 故无悔咎, 以能順也.
三은 居非其位나 處順之極하니 能順時以進退者也라 若居當其位면 則无進退之義也라 觀我生은 我之所生은 謂動作施爲出於己者라 觀其所生而隨宜進退하니 所以處雖非正이나 而未至失道也라 隨時進退하여 求不失道라 故无悔咎[一作吝]하니 以能順也일새라
六三육삼은 제자리가 아닌 곳에 있으나 柔順유순한 坤卦곤괘(☷)의 끝에 處처하여 때에 順應순응하여 나아가고 물러나는 者자이다. 萬若만약 居處거처함이 제자리에 마땅하다면 나아가고 물러나는 뜻이 없을 것이다. “내가 내는 行動행동을 봄[觀我生관아생]”은 내가 낸 것이니, 動作동작과 베풀어 行행함이 自己자기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내가 낸 行動행동을 보아 마땅함에 따라 나아가고 물러가니, 이 때문에 居處거처함이 비록 바르지 않더라도 道도를 잃음에 이르지 않는다. 때에 따라 나아가고 물러나 求구함에 道도를 잃지 않으므로 後悔후회와 허물이 없으니, 順從순종하기 때문이다.
p.288 【本義】 =====
我生我之所行也六三居下之上可進可退故不觀九五而獨觀己所行之通塞以爲進退占者宜自審也
我生, 我之所行也. 六三, 居下之上, 可進可退. 故不觀九五, 而獨觀己所行之通塞, 以爲進退, 占者宜自審也.
我生은 我之所行也라 六三이 居下之上하여 可進可退라 故不觀九五而獨觀己所行之通塞하여 以爲進退하니 占者宜自審也라
”내가 내는 行動행동[我生아생]”은 내가 行행한 것이다. 六三육삼이 下卦하괘의 위에 居處거처하여 나아갈 수도 있고 물러날 수도 있다. 그러므로 九五구오를 보지 않고 홀로 自己자기가 行행하는 것의 通통하고 막힘을 보아 나아가고 물러가니, 占점치는 者자가 마땅히 스스로 살펴야 할 것이다.
p.288 【小註】 =====
朱子曰我者彼我對待之言是以彼觀此觀其生是以此自觀六三之觀我生進退者事君則觀其言聽計從治民則觀其政敎可行膏澤可下可以見自家所施之當否而爲進退
朱子曰, 我者, 彼我對待之言, 是以彼觀此. 觀其生, 是以此自觀. 六三之觀我生進退者, 事君則觀其言聽計從, 治民則觀其政敎可行, 膏澤可下, 可以見自家所施之當否而爲進退.
朱子주자가 말하였다. “ ‘나’는 다른 사람과 나를 相對상대하여 말한 것이니, 저것으로 이것을 보는 것이다. 내가 내는 것을 봄은 이것으로 스스로 보는 것이다. 六三육삼의 ‘내가 내는 行動행동을 보아서 나아가고 물러감’은 임금을 섬길 때는 그 말과 計策계책을 듣고 따를 수 있는지 보는 것이고, 百姓백성을 다스릴 때에는 그 政治정치와 敎化교화를 行행할 수 있는지 惠澤혜택을 아래에 施行시행할 수 있는지 보아서 스스로 施行시행할 수 있는지의 與否여부를 보고 나아가고 물러나는 것이다.”
○ 童溪王氏曰我生者吾身之動作施爲也六三處進退之間宜誰從曰進退者時也可以進可以退者我也觀我生以決其進退爾
○ 童溪王氏曰, 我生者, 吾身之動作施爲也. 六三處進退之間, 宜誰從. 曰, 進退者, 時也, 可以進可以退者, 我也, 觀我生, 以決其進退爾.
童溪王氏동계왕씨가 말하였다. “ ‘내가 내는 行動행동’은 내 自身자신이 動作동작하고 施行시행하는 것이다. 六三육삼이 나아가고 물러나는 사이에 處처하여 누구를 따를 것인가? 나아가고 물러가는 것은 때이며, 나아가고 물러갈 수 있는 者자는 나이다. ‘내가 내는 行動행동을 봄’은 나아가고 물러감을 決斷결단하는 것이다.”
○ 楊氏曰觀我生而進退所謂可以仕則仕可以止則止我无官守我无言責則進退之間豈不綽綽乎有餘裕哉者是也
○ 楊氏曰, 觀我生而進退, 所謂可以仕則仕, 可以止則止, 我无官守, 我无言責, 則進退之間, 豈不綽綽乎有餘裕哉者, 是也.
楊氏양씨가 말하였다. “ ‘내가 내는 行動행동을 보아서 나아가고 물러감’은 이른바 ‘벼슬할 만하면 벼슬하며 그만둘 만하면 그만두고’,[주 48] ‘나는 지켜야 할 벼슬도 없으며 나는 責任책임질 말도 없으니, 나아가고 물러감에 어찌 餘裕綽綽여유작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주 49]라는 것이 이것이다.”
○ 誠齋楊氏曰三五皆曰觀我生辭同而德異六三察己以從人九五察人以修己六三似漆雕開
○ 誠齋楊氏曰, 三五皆曰觀我生, 辭同而德異. 六三察己以從人, 九五察人以修己. 六三似漆雕開.
誠齋楊氏성재양씨가 말하였다. “六三육삼과 九五구오에 모두 ‘내가 내는 行動행동을 본다’라고 했으니, 말은 같지만 德덕은 다르다. 六三육삼은 나를 살펴 다른 사람을 따르는 것이고, 九五구오는 다른 사람을 살펴 自己자기를 닦는 것이다. 六三육삼은 漆雕開칠조개[주 50]와 같다.”
48) 『孟子맹자‧公孫丑공손추』:可以仕則仕, 可以止則止, 可以久則久, 可以速則速, 孔子也. |
49) 『孟子맹자‧公孫丑공손추』:曰, 吾聞之也, 有官守者, 不得其職則去, 有言責者, 不得其言則去. 我無官守, 我無言責也, 則吾進退, 豈不綽綽然有餘裕哉. |
50) 『論語논어‧公冶長공야장』:子使漆雕開仕, 對曰, 吾斯之未能信, 子說. |
○ 雲峰胡氏曰三處上下之間有進退之象他卦三不中多不吉二居中多善而觀以遠近取義故如此諸爻皆欲觀五惟近者得之六四最近故可決於進六三上下之間可以進退之地故不必觀五但觀我所爲而爲之進退本義謂占者宜自審蓋當進退之際惟當自審其所爲何如耳
○ 雲峰胡氏曰, 三處上下之間, 有進退之象. 他卦三不中多不吉, 二居中多善, 而觀以遠近取義, 故如此. 諸爻皆欲觀五, 惟近者得之. 六四最近, 故可決於進. 六三上下之間, 可以進退之地, 故不必觀五, 但觀我所爲而爲之進退, 本義謂占者宜自審, 蓋當進退之際, 惟當自審其所爲何如耳.
漆雕開운봉호씨가 말하였다. “六三육삼은 위와 아래의 사이에 處처하여 나아가고 물러나는 象상이 있다. 다른 卦괘에서 三爻삼효는 가운데가 아니어서 吉길하지 못함이 많다. 六二육이는 가운데 있어 善선함이 많고 멀고 가까이를 보는 것으로 뜻을 取취하기 때문에 이와 같다. 모든 爻효가 五爻오효를 보고자 하지만 가까이 있는 者자만이 얻게 된다. 六四육사가 가장 가까이 있기 때문에 나아감을 決斷결단할 수 있다. 六三육삼은 위와 아래의 사이에서 나아가고 물러나는 境遇경우이기 때문에 반드시 九五구오를 볼 必要필요는 없다. 내가 해야 할 일을 보고 나아가고 물러나야 한다. 『本義본의』에서 “占점치는 者자가 마땅히 스스로 살펴야 할 것”이라고 하였으니, 나아가고 물러나야 할 때에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마땅히 스스로 살펴야 할 것이다.”
韓國大全
【조호익(曺好益) 『역상설(易象說)』】 |
我指本爻, 生指出於己者, 言動事爲是也. 觀我生, 艮體篤實象, 互艮亦全體似艮. |
‘我아’는 本爻본효를 가리키고, ‘生생’은 自身자신에게서 나온 것을 가리키니, 말이나 움직임, 일이나 行爲행위가 그것이다. “내가 내는 行動행동을 본다”는 것은 艮體간체(䷳)의 篤實독실한 象상으로, 互卦호괘인 艮卦간괘(䷳) 또한 全體전체의 模樣모양이 艮卦간괘(䷳)와 비슷하다. |
進退, 三在上下之間, 有進退之象. 或曰, 觀我生進退, 艮象, 時行時止, 動靜不失時, 是也. |
‘나아가고 물러감’은 三爻삼효가 위와 아래의 사이에 있어 나아가고 물러가는 象상이 있다. 어떤 이가 말하였다. “ ‘내가 내는 行動행동을 보아서 나아가고 물러간다’는 것은 艮卦간괘(䷳)의 象상이다. 때에 맞게 行행하고 때에 맞게 그쳐서 움직임과 고요함이 때를 놓치지 않는 것이 그것이다. |
【송시열(宋時烈) 『역설(易說)』】 |
觀君上之所以生我者, 非謂我之動作也. 觀上之發政設敎, 果愛我而欲生之則進, 不然則退. |
임금이나 윗사람이 나를 살리는 方法방법을 보는 것이지 나의 動作동작을 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윗사람이 政治정치를 行행하고 가르침을 베푸는 것이 果然과연 나를 사랑해서 살리고자 하는 것이라면 나아가고 그렇지 않으면 물러간다. |
蓋三居下之上, 有或從王事之義, 可進則進, 可退則退, 巽爲進退故也. 然則不失我之道理也. |
三爻삼효는 아래 卦괘의 위에 있어서 或혹 王왕의 일에 從事종사하는 義理의리가 있어서, 나아갈 만하면 나아가고 물러갈 만하면 물러가니, 巽卦손괘(☴)가 나아감과 물러감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나의 道理도리를 잃지 않는다. |
【이현익(李顯益) 「주역설(周易說)」】 |
語類, 問, 六三觀我生進退, 不觀九五而觀己所行通塞以爲進退否. 曰, 看來合是觀九五. |
『朱子語類주자어류』에서 물었다. “ ‘내가 내는 行動행동을 보아서 나아가고 물러간다’는 것은 九五구오를 보지 않고 自己자기의 行動행동이 通통하는가 막히는가를 보아서 나아가거나 물러가는 것입니까?” 答답하였다. “살펴보건대, 마땅히 九五구오를 보는 것입니다.” |
觀我生進退者, 觀九五如何而爲進退也. 又曰, 六三處二四之間, 固當觀九五以爲進退. |
‘觀我生進退관아생진퇴’라고 한 것은 九五구오가 어떤지를 보아서 나아가거나 물러가는 것입니다.” 또 答답하였다. “六三육삼은 二爻이효와 四爻사효의 사이에 있으니, 本來본래 마땅히 九五구오를 보고 나아가거나 물러가는 것입니다.” |
問, 如此則我字乃是指九五而言, 易中亦有此例. 如頥之初九曰, 舍爾靈龜, 觀我朶頥, 是也. 曰, 此我乃是假外而言耳. |
물었다. “이와 같다면 ‘我아’라는 글자는 九五구오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니, 『周易주역』 가운데 또한 이러한 禮예가 있습니다. 禮예를 들어 頣卦이괘(䷚)의 初九초구에서 “너의 神靈신령스러운 거북을 버리고 나를 보고서 턱을 늘어뜨린다”고 말한 것이 그것입니다.” 答답하였다. “여기서의 ‘我아’는 밖의 것을 빌려서 말한 것일 뿐입니다.” |
此說與本義不同. 然恐或是後來說耳, 當更詳之. |
이 說明설명은 『本義본의』와 같지 않다. 그러나 아마도 或혹 後후에 說明설명한 것일 수도 있으니, 마땅히 다시 詳細상세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
六三觀我生進退, 楊氏以可以仕則仕, 可以止則止, 我無官守, 無言責, 進退豈不綽綽乎有餘裕言. 是以聖賢事當之, 說得太過. |
六三육삼의 “내가 내는 行動행동을 보아서 나아가고 물러간다”는 것에 對대해서 楊氏양씨는 “벼슬할 만하면 벼슬하며 그만둘 만하면 그만두고”,[주 51] “나는 지켜야 할 벼슬도 없으며 나는 責任책임질 말도 없으니, 나아가고 물러감에 어찌 餘裕綽綽여유작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주 52]라는 것으로 말했다. 이는 聖賢성현의 일을 거기에 該當해당시킨 것으로 너무 지나치게 말한 것 같다. |
誠齋楊氏, 以六三爲㓒雕開. 朱子謂觀己所行之通塞, 又謂觀其言聽計從, 政敎可行, 膏澤可下. 以此論之, 則與㓒雕開有異. |
誠齋楊氏성재양씨는 “六三육삼은 漆雕開칠조개와 같다”고 말하였다. 朱子주자는 “自己자기의 行動행동이 通통하는가 막히는가를 보는 것”이라고 말하였고, 또한 말을 들어주고 計策계책을 따르는지, 政治정치와 敎育교육을 施行시행할 수 있는지, 恩澤은택이 百姓백성들에게 미칠 수 있는지 보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로써 論논한다면 漆雕開칠조개와는 다르다. |
51) 『孟子맹자‧公孫丑공손추』:可以仕則仕, 可以止則止, 可以久則久, 可以速則速, 孔子也. |
52) 『孟子맹자‧公孫丑공손추』:曰, 吾聞之也, 有官守者, 不得其職則去, 有言責者, 不得其言則去. 我無官守, 我無言責也, 則吾進退, 豈不綽綽然有餘裕哉. |
* 漆칠은 㓒칠의 本字본자임. |
【이익(李瀷) 『역경질서(易經疾書)』】 |
我者, 皆指九五而言也. 生, 如衆生蒼生之生, 聖人旣以民訓生, 此爲可信指在下之民也. |
‘我아’는 九五구오를 가리켜 말하였다. ‘生생’이란 ‘衆生중생’, ‘蒼生창생’이라고 할 때의 ‘生생’으로, 聖人성인이 이미 ‘民민’으로 ‘生생’을 풀이하였으니, 이는 아래의 百姓백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믿을 수 있다. |
變民言生者, 觀非徒觀, 欲其愛而生也. 三與五所觀, 卽初與二也. 五云觀民, 則三之爲觀民可證. |
‘民민’을 바꾸어 ‘生생’이라고 말한 것은 보는 것이 그저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랑해서 살리고자 하기 때문이다. 三爻삼효와 五爻오효가 보는 것은 初爻초효와 二爻이효이다. 五爻오효에서 百姓백성을 본다고 했으니, 三爻삼효가 百姓백성을 보는 것을 證明증명할 수 있다. |
三居下卦之上, 是郡邑之長而順於五應於上. 五與上同德而下觀, 則三亦可以下觀其民矣. 然言進退, 則不專於觀民也. |
三爻삼효는 下卦하괘의 위에 있어서 郡군과 邑읍의 長장으로서 五爻오효에 따르고 上爻상효에 呼應호응한다. 五爻오효와 上爻상효는 德덕을 같이 하여 아래로 보니, 三爻삼효 또한 아래로 百姓백성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나아가고 물러간다고 말했으니, 百姓백성을 보는 데에만 오로지 하지는 않는다. |
【유정원(柳正源) 『역해참고(易解參攷)』】 |
正義, 道得名生者, 道是開通生利萬物. 故繫辭云生生之謂易, 是道爲生也. |
『周易正義주역정의』에서 말하였다. “ ‘道도’가 ‘生생’이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는 것은, ‘道도’가 開通개통되어 萬物만물을 生생겨나고 利이롭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繫辭傳계사전」에서 “낳고 낳음을 易역이라 이른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道도’가 ‘生생’이 되는 것이다. |
○ 問, 六三觀我生進退, 不觀九五而觀己所行通塞, 以爲進退否. 朱子曰, 大率觀卦二陽在上, 四陰仰之, 九五爲主. |
물었다. “ ‘내가 내는 行動행동을 보아서 나아가고 물러간다’는 것은 九五구오를 보지 않고 自己자기의 行動행동이 通통하는가 막히는가를 보아서 나아가거나 물러가는 것입니까?” 朱子주자가 答답하였다. “大體대체로 觀卦관괘(䷓)는 두 陽양이 위에 있고 네 陰음이 우러러 보고 있으며, 九五구오가 主人주인이 됩니다. |
六三觀我生進退者, 觀九五如何而爲進退也. 初六六二, 以去五之遠, 所觀不明不大, 六四卻見得親切, 故有觀光利用之象. |
六三육삼의 ‘觀我生進退관아생진퇴’라고 한 것은 九五구오가 어떤지를 보아서 나아가거나 물러가는 것입니다. 初六초육과 六二육이는 五爻오효로부터 멀어서 보는 것이 分明분명하지 않고 크지 않으며, 六四육사는 도리어 가까이서 보기 때문에 빛남을 보고 쓰는 것이 利이로운 象상이 있습니다. |
六三處二四之間, 固當觀九五以爲進退也. 又問, 我字乃是指九五而言, 如頤之初九曰觀我朶頤是也. 曰, 此我乃是假外而言耳. |
六三육삼은 二爻이효와 四爻사효의 사이에 있으니, 本來본래 마땅히 九五구오를 보고 나아가거나 물러가는 것입니다.” 또 물었다. “이와 같다면 ‘我아’라는 글자는 九五구오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니, 禮예를 들어 頣卦이괘(䷚)의 初九초구에서 “너의 神靈신령스러운 거북을 버리고 나를 보고서 턱을 늘어뜨린다”고 말한 것이 그것입니다. |
答답하였다. “여기서의 ‘我아’는 밖의 것을 빌려서 말한 것일 뿐입니다.” |
鄱陽董氏曰, 此說我字, 與本義不同. 鄱陽董氏파양동씨가 말하였다. “이 說明설명의 ‘我아’字자는 『本義본의』와 같지 않다.” |
【김상악(金相岳) 『산천역설(山天易說)』】 |
生者, 陰陽相生也. 當觀之時, 三居坤巽之交, 與上爲應, 上卽生我之陽也, 故有觀我生之象. 然應而不交, 故進退未定也. |
‘生생’이란 陰음과 陽양이 서로 낳는 것이다. 마땅히 보아야 하는 때에 三爻삼효는 坤卦곤괘(䷁)와 巽卦손괘(䷸)가 交叉교차하는 데에 있고, 上爻상효와 呼應호응하니, 上爻상효는 바로 나를 낳는 陽양이므로 ‘觀我生관아생’의 象상이 있다. 그러나 呼應호응하지만 사귀지 않기 때문에 나아가고 물러나는 것이 아직 定정해지지 않았다. |
○ 凡陰生於陽, 巽之陰生於乾, 而上二陽皆乾爻, 故曰觀我生. 說文㞢字象屮木生出於土, 上巽木居坤土之上, 故此取生象, 與升同. |
陰음은 陽양에서 生생겨나고 巽卦손괘(䷸)의 陰음은 乾卦건괘(䷀)에서 生생겨나며 威儀위의 두 陽양이 모두 乾卦건괘(䷀)의 爻효이기 때문에 ‘觀我生관아생’이라고 말하였다. 『說文설문』의 ‘㞢지’字자는 나무가 땅에서 生생겨나는 것을 象形상형한 것인데, 위 巽卦손괘(䷸)의 나무가 坤卦곤괘(䷁)인 땅의 위에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 生생겨나는 象상을 取취하였으니, 升卦승괘(䷭)와 같다. |
進退, 巽之象, 以陰居陽, 與上爲應, 正進退之機也. 大壯上六, 則陰之用壯者, 故不能退不能遂也. |
나아가고 물러가는 것은 巽卦손괘(䷸)의 象상인데, 陰음으로 陽양의 자리에 있어서 위와 呼應호응하니, 바로 나아가고 물러가는 기틀이다. 大壯卦대장괘(䷡)의 上六상육은 陰음이 壯大장대함을 쓰는 것이기 때문에 물러갈 수 없고 完遂완수할 수 없다. |
又此爻與重巽之初, 同進退之象, 而在觀者, 有君子之應, 故曰未失道也. 處巽者, 利武人之貞, 故曰志治也. 所以勉戒不同. |
또한 이 爻효는 六畫卦육획괘 巽卦손괘(䷸)의 初爻초효와 같이 나아가고 물러가는 象상인데, 觀卦관괘(䷓)에서는 君子군자의 呼應호응이 있기 때문에 “道도를 잃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巽卦손괘(䷸)에 處처한 사람은 武人무인의 곧음이 利이롭기 때문에 “뜻이 다스려졌다”고 말했다. 그래서 勸勉권면한 것과 警戒경계한 것이 다르다. |
又進則四變爲否, 否曰有命无咎, 退則二變爲渙, 渙二曰, 渙奔其机, 所以進退未失道也. 又三變則爲漸, 與歸妹爲反對. |
또한 나아가면 四爻사효가 變化변화하여 否卦비괘(䷋)가 되므로 否卦비괘(䷋)에서 “命명이 있으면 허물이 없다”고 말하였고, 물러가면 二爻이효가 變化변화하여 渙卦환괘(䷺)가 되므로 渙卦환괘(䷺)의 二爻이효에서 “흩어짐에 安席안석으로 달려간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아가고 물러가는데 道도를 잃지 않는다. 또한 三爻삼효가 變化변화하면 漸卦점괘(䷴)가 되는데 歸妹卦귀매괘(䷵)와는 거꾸로 된다. |
漸之三曰夫征不復, 歸妹曰反歸以娣. 俱失進退之義, 故小象於漸曰失其道也, 歸妹曰未當, 皆與未失道相反. |
漸卦점괘(䷴)의 三爻삼효에서는 “男便남편이 가면 돌아오지 않는다”고 말하였고, 歸妹卦귀매괘(䷵)에서는 “다시 돌아와 媵妾잉첩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이는 모두 나아가고 물러가는 뜻을 잃은 것이기 때문에 「小象傳소상전」에서, 漸卦점괘(䷴)에서는 “道도를 잃는다”고 말하였고, 歸妹卦귀매괘(䷵)에서는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였는데, 모두 ‘道도를 잃지 않는 것’과는 相反상반된다. |
或曰, 三五與上之觀生, 皆反身自觀之辭. 然觀爲陰盛之卦而其義或求, 故勸戒備, 至卦辭與六四爻辭可見也. |
어떤 이는 “三爻삼효, 五爻오효, 上爻상효의 ‘觀生관생’은 모두 自身자신을 돌이켜 스스로 본다는 말이다”라고 한다. 그러나 觀卦관괘(䷓)는 陰음이 盛성한 卦괘이고 그 뜻이 或혹은 求구하기 때문에 勸勉권면하고 警戒경계하는 것이 갖추어져 있으니, 卦辭괘사와 六四육사의 爻辭효사에서 볼 수 있다. |
【김규오(金奎五) 「독역기의(讀易記疑)」】 |
我生, 傳所主者, 吾之德學, 漆雕之證是也, 義所主者, 行之通塞, 仕止之證是也. 其意固可相通而所主者不同. |
‘我生아생’에 對대해서 『程傳정전』에서 重視중시한 것은 ‘나의 德덕과 學文학문’이니, 漆雕開칠조개로 證據증거한 것이 그것이고, 『本義본의』에서 重視중시한 것은 行動행동의 通통하고 막힘이니, 벼슬하거나 그만두는 것으로 證據증거한 것이 그것이다. 그 뜻은 本來본래 서로 通통할 수 있지만, 重視중시한 것은 같지 않다. |
○ 進退, 以居內外體之間, 位剛則可進, 質柔則可退, 如乾之九四矣, 亦以上承巽體而巽爲進退故也. |
나아가고 물러가는 것은 內卦내괘와 外卦외괘의 사이에 있어서 자리가 굳세면 나아갈 수 있고, 才質재질이 柔弱유약하면 물러갈 수 있으니, 乾卦건괘(䷀)의 九四구사와 같으며, 또한 위로 巽卦손괘(䷸)를 받들고 巽卦손괘(䷸)가 나아가고 물러감이 되기 때문이다. |
【서유신(徐有臣) 『역의의언(易義擬言)』】 |
三居坤衆之上, 爲家衆之長, 亦爲侯伯之君也. 衆觀我以爲範, 故曰觀我生. 德敎命令政事刑法, 皆自我而出者也. |
三爻삼효는 여러 사람을 象徵상징하는 坤卦곤괘(䷁)의 위에 있어서 집안 여러 사람들의 어른이 되고 또한 諸侯제후인 임금이 된다. 여러 사람이 나를 보고 模範모범으로 삼기 때문에 “내가 내는 行動행동을 본다”고 말하였다. 德敎덕교‧命令명령‧政事정사‧刑法형법은 모두 나로부터 나가는 것이다. |
在上下之間, 有進退象, 進爲觀於上, 退爲觀於下也. |
위와 아래의 사이에 있어서 나아가고 물러가는 象상이 있으니, 나아가는 것은 위에서 보는 것이 되고, 물러가는 것은 아래에서 보는 것이 된다. |
【박제가(朴齊家) 『주역(周易)』】 |
三, 才陰而位陽, 是君子小人分界處. 闚觀於二則小人而可退, 從上而吉則君子而可進矣. |
三爻삼효는 才質재질은 陰음인데 자리는 陽양이니, 君子군자와 小人소인이 나뉘는 곳이다. 二爻이효를 엿보면 小人소인으로서 물러갈 만하고, 上爻상효를 따라 吉길하면 君子군자로서 나아갈 만하다. |
此爻之辭, 使之自審, 非如傳所云順時進退者也. 象傳曰, 未失道者, 謂如此則未失道也, 非其進其退, 皆未失道也. |
이 爻효의 말은 스스로를 살피도록 한 것이지, 『程傳정전』에서 말한 것과 같이 때를 따라 나아가고 물러가는 것이 아니다. 「象傳상전」에서 “道도를 잃지 않는다”고 한 것은 이와 같으면 道도를 잃지 않는다고 한 것이지, 나아가고 물러가는 것이 모두 道도를 잃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
其進其退, 皆未失道, 則時中之聖人矣. 楊氏曰, 所謂可仕可止, 我旡官守, 我旡言責, 進退豈不綽綽者, 則直以孔孟當之者, 於六三太逕庭. |
나아가고 물러가는 것이 모두 道도를 잃지 않는다면 때에 알맞게 行행하는 聖人성인이다. 楊氏양씨가 “이른바 ‘벼슬할 만하면 벼슬하며 그만둘 만하면 그만두고’,[주 53] ‘나는 지켜야 할 벼슬도 없으며 나는 責任책임질 말도 없으니, 나아가고 물러감에 어찌 餘裕綽綽여유작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주 54]라는 것이 그것이다”라고 한 것은 바로 孔子공자와 孟子맹자를 該當해당시킨 것으로, 六三육삼의 뜻과는 크게 어긋난다. |
誠齋楊氏以漆雕開擬之者, 亦已指三爲君子矣. 誠齋楊氏성재양씨가 漆雕開칠조개로 비긴 것은 또한 이미 三삼을 가리켜 君子군자라고 한 것이다. |
53) 『孟子맹자‧公孫丑공손추』:可以仕則仕, 可以止則止, 可以久則久, 可以速則速, 孔子也. |
54) 『孟子맹자‧公孫丑공손추』:曰, 吾聞之也, 有官守者, 不得其職則去, 有言責者, 不得其言則去. 我無官守, 我無言責也, 則吾進退, 豈不綽綽然有餘裕哉. |
【윤행임(尹行恁) 『신호수필(薪湖隨筆)‧역(易)』】 |
觀我, 難於觀人, 在人則善惡易見, 在我則善惡難見. 許仲平之言曰, 責己者可以成人之善, 責人者適以長己之惡, 眞名論也. |
나를 보는 것은 남을 보는 것보다 어려우니, 남에 對대해서는 善惡선악을 쉽게 보지만, 나에 對대해서는 善惡선악을 보기 어렵다. 許仲平허중평의 말에 “自己자기를 責책하는 사람은 남의 善선을 이루고, 남을 責책하는 사람은 다만 自己자기의 惡악을 기른다”고 했는데, 참으로 훌륭한 論議논의이다. |
觀我生進退, 是君子之事, 可進可退自知也審, 然後可以進則進, 可以退則退, 故小象曰, 未失道也. |
‘내가 내는 行動행동을 보아서 나아가고 물러가는 것’은 君子군자의 일로 나아갈 수 있고 물러갈 수 있는 것을 스스로 分明분명하게 안 다음에 나아갈 수 있으면 나아가고 물러갈 수 있으면 물러가기 때문에 「小象傳소상전」에서 “道도를 잃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
進退大節也, 戒在失道, 道之不失, 由於責己, 九五所謂君子无咎, 蓋此意也. 惟君子可以善觀我之所行也. |
나아가고 물러가는 것은 큰 節介절개이므로 警戒경계할 것은 道도를 잃는데 있는데, 道도를 잃지 않는 것은 自己자기를 責책함으로 말미암으니, 九五구오에서 君子군자가 허물이 없다고 한 것이 이 뜻이다. 오직 君子군자라야 나의 所行소행을 잘 볼 수 있다. |
然而猶不能自信以觀民焉, 觀民所以反觀於我也. 及至上九自愼自省, 志意未平, 則是撿身如不及也, 觀之義大矣哉. |
그러나 오히려 百姓백성을 본다고 自身자신할 수 없으니, 百姓백성을 보는 것이 거꾸로 나를 보는 方法방법이다. 上九상구에 이르러 스스로 삼가고 스스로 살펴서 뜻이 和平화평하지 못하면 自身자신을 檢束검속하여 마치 미치지 못할 듯이 하니, 觀卦관괘(䷓)의 뜻이 크도다! |
【박문건(朴文健) 『주역연의(周易衍義)』】 |
欲進未能, 故有進退之象. 生, 民生也. 進退, 志疑也. 나아가고 물러가는 것은 뜻이 疑心의심스럽기 때문이다. |
〈問, 觀我生進退. 曰, 我生, 親之之辭也. 六三志在上九, 故有觀我生之象. 然彼剛我柔, 故進退而未能遂也. |
물었다. “ ‘내가 내는 行動행동을 보아서 나아가고 물러가는 것’에 對대해 묻습니다.” 答답하였다. “ ‘내가 내는 行動행동’은 親密친밀하게 여긴다는 말입니다. 六三육삼은 뜻이 上九상구에 있기 때문에 ‘내가 내는 行動행동을 보는’ 象상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굳세고 나는 柔弱유약하기 때문에 나아가고 물러가지만 아직 이룰 수 없습니다.”〉 |
〈○ 問, 三謂上爲生, 上謂三亦爲生, 其義何. 曰二剛在上, 四柔在下, 君民之相觀也, 故互取民生之義, 如蠱之初四互稱父之義也. |
물었다. “三爻삼효는 上爻상효가 ‘生생’이 된다고 하고, 上爻상효는 三爻삼효 또한 ‘生생’이 된다고 하니, 그 뜻이 어떻습니까?” 答답하였다. “두 굳센 陽양이 위에 있고, 네 부드러운 陰음이 아래에 있어서, 임금과 百姓백성이 서로 보기 때문에 民生민생의 뜻을 서로 取취하였으니, 蠱卦고괘(䷑)에서 初爻초효와 四爻사효가 서로 아버지라고 稱칭한 뜻과 같습니다.”〉 |
【이지연(李止淵) 『주역차의(周易箚疑)』】 |
吾斯之未能信也者, 㓒雕開之觀我而退也. 非予覺之而誰也, 如欲平治天下, 舍我其誰也者, 伊尹孟子之觀我而進也. 三爲進退之位, 巽有進退之象也. |
”제가 이것을 아직 믿을 수 없습니다”[주 55]라고 한 것은 漆雕開칠조개가 ‘나를 보아서 물러난 것’이고, “내가 깨우치지 않으면 누구이겠는가?”,[주 56] “天下천하를 平和평화롭게 다스리고자 한다면, 나를 버리고 누구이겠는가?”[주 57]라고 한 것은 伊尹이윤과 孟子맹자가 ‘나를 보아서 나아간 것’이다. 三爻삼효는 나아거나 물러가는 자리이고, 巽卦손괘(䷸)에는 나아거나 물러가는 象상이 있다. |
55) 『論語논어‧公冶長공야장』:子使漆雕開仕, 對曰, 吾斯之未能信, 子說. |
56) 『孟子맹자‧萬章만장』:予天民之先覺者也, 予將以斯道覺斯民也, 非予覺之而誰也. |
57) 『孟子맹자‧公孫丑공손추』:夫天未欲平治天下也. 如欲平治天下, 當今之世, 舍我其誰也. 吾何爲不豫哉. |
【김기례(金箕澧) 「역요선의강목(易要選義綱目)」】 |
易中以陰居陽位, 多謂進退者, 以其未決也. |
『周易주역』 가운에 陰음으로서 陽양의 자리에 있는 境遇경우에는 나아가거나 물러나는 것을 많이 말했는데, 아직 決定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
○ 三居上下之間, 可進可退, 大觀在上, 非不可進之時也. 自審其可進之行, 而進退唯宜, 故象曰未失道. |
三爻삼효는 上卦상괘와 下卦하괘의 사이에 있어서 나아갈 수도 있고 물러갈 수도 있지만, 크게 보는 것이 위에 있으므로 나아갈 만한 때가 아니다. 스스로 나아갈 만한 行動행동을 살펴서 나아가고 물러가는 것을 알맞게 해야 하기 때문에, 「象傳상전」에서 “道도를 잃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
○ 觀以遠近取義, 六三稍近五, 故已觀大觀之德, 則不必觀五, 自觀其行之如何. |
觀卦관괘(䷓)는 멀고 가까움으로 뜻을 取취하였는데, 六三육삼은 五爻오효에 조금 가깝기 때문에 이미 크게 보는 德덕을 보았으니, 五爻오효를 볼 必要필요 없이 스스로 그 行動행동이 어떠한지 보아야 한다. |
【윤종섭(尹鍾燮) 『경(經)‧역(易)』】 |
三之進退, 在互巽之下, 四在坤之上, 有觀國之象. |
三爻삼효가 나아가거나 물러가는 것은 互卦호괘인 巽卦손괘(䷸)의 아래에 있기 때문이고, 四爻사효는 坤卦곤괘(䷁)의 위에 있어서 나라를 보는 象상이 있다. |
【박종영(朴宗永) 「경지몽해(經旨蒙解)‧주역(周易)」】 |
傳曰, 觀我生, 謂動作施爲出於己者, 觀其所生而隨時進退, 求不失道也. |
『程傳정전』에서 말하였다. “ ‘내가 내는 行動행동을 봄’은 動作동작과 베풀어 行행함이 自己자기에게서 나오는 것이니, 내가 낸 行動행동을 보아 때에 따라 나아가고 물러가 道도를 잃지 않기를 求구하는 것이다.” |
【심대윤(沈大允) 『주역상의점법(周易象義占法)』】 |
觀之漸(䷴), 漸進也. 六三居剛而處下卦之上, 位德漸高, 觀仰者漸專而感化者漸衆. 觀我生者, 言觀自我生也. |
觀卦관괘(䷓)가 漸卦점괘(䷴)로 바뀌었으니, 漸進的점진적이다. 六三육삼은 굳센 陽양의 자리에 있고 下卦하괘의 위에 있어서 地位지위와 德덕이 漸次점차 높아지니, 우러러보는 사람도 漸次점차 專一전일하게 되고 感化감화되는 사람도 漸次점차 많아진다. ‘觀我生관아생’이란 내가 내는 行動행동으로부터 본다는 말이다. |
我言專仰也. 震爲生, 下艮變爲兌, 則三居震體. 諸侯自專其國之敎化曰進, 其敎化之美惡係乎天子之仁暴曰退. |
‘我아’는 專的전적으로 우러러 보는 것을 말한다. 震卦진괘(䷲)가 ‘生생’이 되니, 아래 艮卦간괘(䷳)가 變변하여 兌卦태괘(䷹)가 되면 三爻삼효가 震卦진괘(䷲)에 居거하게 된다. 諸侯제후가 스스로 그 나라의 敎化교화를 오로지 하는 것을 ‘나아간다’고 하고, 敎化교화의 아름답고 나쁨은 天子천자의 仁慈인자함과 暴惡포악함에 달려 있는 것을 ‘물러간다’고 한다. |
六三柔而應上, 爲係而退, 有剛隔而不專係, 爲自專而進. 离上坎下, 爲進退, 又巽爲進退, 言係乎上也. |
六三육삼이 柔弱유약하면서 上爻상효에 呼應호응하는 것이 얽매여 물러가는 것이 되고, 굳센 陽양에 막혀서 오로지 얽매이지 않는 것이 스스로 專一전일하게 하여 나아가는 것이 된다. 離卦리괘(䷝)가 위에 있고 坎卦감괘(䷜)가 아래에 있는 것이 나아가거나 물러가는 것이 되고, 또한 巽卦손괘(䷸)가 나아가거나 물러가는 것이 되니, 위에 얽매이는 것을 말한다. |
【오치기(吳致箕) 「주역경전증해(周易經傳增解)」】 |
六三以柔居剛, 而在下之上, 當觀之時, 稍過於六二之闚觀, 不及於六四之觀光. |
六三육삼은 부드러운 陰음으로 굳센 陽양의 자리에 있고 下卦하괘의 위에 있으므로, 마땅히 보아야 하는 때에 六二육이의 엿보는 것을 조금 지나고, 六四육사의 ‘나라의 빛남을 보는’ 데는 미치지 못한다. |
在乎過不及之間, 而以其志剛, 故欲進, 以其質柔, 故欲退, 未能定其進退者也. |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하는 사이에 있고 뜻이 굳세기 때문에 나아가고자 하고, 才質재질이 柔弱유약하기 때문에 나아갈지 물러갈지를 決定결정할 수 없다. |
故戒言當觀其動作施爲之自已出者, 而隨宜進退, 則未失其道也. |
그러므로 마땅히 動作동작과 行爲행위가 自己자기로부터 나가는 것을 보고 마땅함을 따라 나아가거나 물러가면 道도를 잃지 않는다고 警戒경계하여 말하였다. |
○ 我者, 指六三也. 生, 猶言出也. 對體應震爲動生之象. 進退, 取於應體之巽也. 此爻陰柔不中不正而漸近九五, 故有此戒也. |
‘我아’란 六三육삼을 가리킨다. ‘生생’은 ‘나온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上卦상괘(☴)의 陰陽음양이 바뀐 震卦진괘(☳)가 움직여 生생겨나는 象상이다. 나아가고 물러가는 것은 上卦상괘인 巽卦손괘(☴)에서 取취하였다. 이 爻효는 부드러운 陰음의 爻효로서 가운데 있지도 않고 바른 자리도 아니며, 九五구오에 漸次점차 가까워지기 때문에 이러한 警戒경계가 있다. |
【이진상(李震相) 『역학관규(易學管窺)』】 |
六三, 觀我生. 六三육삼은 내가 내는 行動행동을 보아서. |
卦惟二陽爲下所觀. 六三非能自觀者也. 語類, 觀我生進退, 觀九五如何而爲進退也, 我字乃指九五而言耳. |
卦괘에서 오직 두 陽양이 아랫사람들이 보는 바가 된다. 六三육삼은 스스로 볼 수 있는 者자가 아니다. 『朱子語類주자어류』에서 “ ‘觀我生進退관아생진퇴’는 九五구오가 어떠한지를 보고서 나아가거나 물러가는 것이다”,[주 58] “ ‘我아’라는 글자는 九五구오를 가리켜 말한 것일 뿐이다”[주 59]라고 하였다. |
蓋六三之體本陰柔, 故不能頓進, 處順之極, 故不必倒退. 惟觀九五之所行, 量宜而進退耳. 傳義, 恐皆未安. |
六三육삼의 몸-體체는 本來본래 부드러운 陰음이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나아갈 수 없고, 至極지극히 順순한 坤卦곤괘(䷁)의 끝에 있기 때문에 뒤로 물러갈 必要필요는 없다. 오직 九五구오의 所行소행을 보아 마땅함을 헤아려 나아가거나 물러갈 뿐이다. 『程傳정전』과 『本義본의』는 아마도 모두 妥當타당하지 않은 듯하다. |
58) 『朱子語類주자어류‧易五역오』:六三觀我生進退者, 觀九五如何而爲進退也. |
59) 『朱子語類주자어류‧易五역오』:如此, 則我字, 乃是指九五而言. |
【박문호(朴文鎬) 「경설(經說)‧주역(周易)」】 |
三之於五, 無賓主難辨之嫌, 故皆稱觀我生. 上之於五, 則雖不當位, 乃居尊位之上, 有難辨之嫌, 故以其字爲辨. |
三爻삼효는 五爻오효에 對대해서 손님과 主人주인을 區分구분하기 어렵다는 嫌疑혐의가 없기 때문에 모두 ‘觀我生관아생’이라고 稱칭하였다. 上爻상효는 五爻오효에 對대해서 비록 자리가 마땅하지 않지만, 높은 자리의 위에 있어서 區分구분하기 어렵다는 嫌疑혐의가 있기 때문에 ‘其기’라는 글자를 가지고 區分구분하였다. [주 60] |
60) ‘觀其生관기생’이라고 했다는 말이다. |
7. 爻辭효사-三爻삼효, 小象소상
7. "청소년 성폭행 장소에 하이힐 쩍벌?..도를 넘었다” 글래스고 고반 ‘축제 공원’ 정문에 설치된 라켈 맥마흔의 작품.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청소년이 성폭행 당했던 공원에 ‘쩍벌’(다리를 벌림) 자세의 하이힐 구조물이 설치되며 논란이 일었다. “예술품일 뿐”이라는 설치 측의 해명에도 지역 주민들의 반발 끝에 결국 해당 구조물은 철거됐다.] |
p.289 【經文】 =====
象曰觀我生進退未失道也
象曰, 觀我生進退, 未失道也.
象曰 觀我生進退하니 未失道也라
「象傳상전」에 말하였다. “ ‘내가 내는 行動행동을 보아서 나아가고 물러나니’는 道도를 잃지 않는 것이다.”
中國大全
8. 돈 싣고 도망간 아프간 대통령: 그 딸은 뉴욕서 예술가로 생활 [아슈라프 가니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의 딸 마리암 가니.] |
- 국민 놔두고 먼저 도망간 아프간 대통령, 최종 행선지는 미국?/ 연합뉴스 (Yonhapnews) https://www.youtube.com/watch?v=c3uAFQQJUeo&t=4s |
- 美군용기 매달려 탈출했지만 주검으로…랜딩기어서 시신 발견 / 연합뉴스 (Yonhapnews) https://www.youtube.com/watch?v=60irCeM2Jf4 |
p.290 【傳】 =====
觀己之生而進退以順乎宜故未至於失道也
觀己之生而進退, 以順乎宜, 故未至於失道也.
觀己之生而進退하여 以順乎宜라 故未至於失道也라
自身자신이 내는 것을 보아 나아가고 물러나서 마땅함을 따르기 때문에 道도를 잃는 데 이르지 않는다.
p.290 【小註】 =====
中溪張氏曰五爲觀之主近五者宜進遠五者宜退若初二去五遠則无可進之理四去五近則用賓于王矣可進可退唯三之時[주 61]爲然道觀之道也觀四陰爻惟四得觀之道初二則失觀之道三之進退在我故曰未失道也
中溪張氏曰, 五爲觀之主, 近五者宜進, 遠五者宜退. 若初二去五遠, 則无可進之理, 四去五近, 則用賓于王矣. 可進可退, 唯三之時[주 61]爲然. 道觀之道也. 觀四陰爻, 惟四得觀之道, 初二則失觀之道, 三之進退在我, 故曰未失道也.
中溪張氏중계장씨가 말하였다. “九五구오는 보는 主體주체이니, 九五구오에서 가까운 것은 마땅히 나아가고, 九五구오에서 먼 것은 마땅히 물러난다. 初六초육과 六二육이는 九五구오와 멀어서 나아갈 수 있는 理致이치가 없고, 六四육사는 九五구오와 가까워서 王왕에게 손님이 된다. 나아갈 수도 있고 물러날 수도 있는 때는 六三육삼만이 그러하다. 道도는 보는 道도이다. 觀卦관괘(䷓)의 네 陰爻음효 中중에서 四爻사효만이 보는 道도를 얻었고, 初爻초효와 二爻이효는 보는 道도를 잃었으며, 三爻삼효는 나아가고 물러남이 나에게 있기 때문에 ’道도를 잃지 않는다‘고 하였다.“
61) 時시:경학자료집성DB와 影印本영인본에는 모두 ‘特특’으로 되어 있으나, 『周易주역』 原文원문에 따라 ‘時시’로 바로잡았다. |
韓國大全
【김상악(金相岳) 『산천역설(山天易說)』】 |
道者, 陰陽相生之道也. 道도란 陰음과 陽양이 서로 낳는 道도이다. |
孔疏, 道得名生者, 道是開通生利萬物. 故繫辭云, 生生之謂易, 是道爲生也. |
孔穎達공영달의 疏소에서 말하였다. “ ‘道도’가 ‘生생’이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는 것은, ‘道도’가 開通개통되어 萬物만물을 生생겨나고 利이롭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繫辭傳계사전」에서 ‘낳고 낳음을 易역이라 이른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道도’가 ‘生생’이 되는 것이다. |
進則與五相比, 退則與五爲應, 是未失道也. 剝之三曰, 失上下也, 謂失同類之陰也. 復之四曰, 以從道也, 謂從初復之陽也. |
나아가면 五爻오효와 서로 나란히 하고, 물러나면 五爻오효와 呼應호응이 되니, 이것이 道도를 잃지 않는 것이다. 剝卦박괘(䷖)의 三爻삼효에서는 ‘위아래를 잃는다’고 말하였으니, 同類동류인 陰음을 잃는 것을 말한다. 復卦복괘(䷗)의 四爻사효에서는 ‘道도를 따랐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였으니, 처음 回復회복된 陽양을 따르는 것을 말한다.” |
【서유신(徐有臣) 『역의의언(易義擬言)』】 |
應於上九之君子, 故未失道也, 如復四曰從道也. |
上九상구의 君子군자에게 呼應호응하기 때문에 道도를 잃지 않으니, 復卦복괘(䷗) 四爻사효에서 “道도를 따른다”고 말한 것과 같다. |
【박문건(朴文健) 『주역연의(周易衍義)』】 |
我求觀, 則彼必與觀. 然恐有害己之患, 故進退而未能遂也. 此乃不失觀民之道也. |
내가 보기를 求구하면 저도 반드시 더불어 본다. 그러나 自己자기를 害해치는 근심이 있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에 나아가고 물러나지만 아직 이룰 수 없다. 이것이 百姓백성을 보는 道도를 잃지 않는 것이다. |
〈問, 何謂不失觀民之道. 曰, 可安者雖民也, 可危者亦民也. 觀我生而進退, 不失觀民之道也. |
물었다. “무엇을 百姓백성을 보는 道도를 잃지 않는다고 합니까?” 答답하였다. “安定안정시킬 수 있는 것이 비록 百姓백성이지만, 危殆위태로울 수 있는 것 또한 百姓백성입니다. ‘내가 내는 行動행동을 보아서 나아가고 물러난다면’, 百姓백성을 보는 道도를 잃지 않을 것입니다.”〉 |
【오치기(吳致箕) 「주역경전증해(周易經傳增解)」】 |
觀己之動作施爲, 而隨宜進退, 則未失於道也. |
自己자기의 動作동작과 行爲행위를 보고 마땅함을 따라 나아가거나 물러가기 때문에 道도를 잃지 않는다. |
【이병헌(李炳憲) 『역경금문고통론(易經今文考通論)』】 |
荀曰, 我謂五也. 生者, 敎化生也. |
『荀九家易순구가역』에서 말하였다. “ ‘我아’는 五爻오효를 말한다. ‘生생’은 敎化교화가 生생기는 것이다.” |
按, 敎化生卽五也. 三欲進觀于五, 而四旣在前三, 故退未失道也. |
내가 살펴보았다. 敎化교화가 生생긴다는 것은 五爻오효이다. 三爻삼효가 나아가 五爻오효를 보고자 하지만, 四爻사효가 이미 三爻삼효의 앞에 있기 때문에 물러나 道도를 잃지 않는다. |
按, 我生之生, 當作性字看. 國語注, 生與性同. 生生之謂易, 生之義, 微矣. |
내가 살펴보았다. ‘我生아생’의 ‘生생’은 마땅히 ‘性성’字자의 뜻으로 보아야 한다. 『國語국어』의 註釋주석에 ‘生생’은 ‘性성’과 같다고 하였다. “낳고 낳음을 易역이라 이른다”고 하였으니, ‘生생’의 뜻이 隱微은미하다. |
9. 북아일랜드 자이언츠 코즈웨이: 북부 해안 지대의 앤트림 주에 위치, 바다 속에서 솟아오른 4만여 개의 현무암 기둥으로 이루어짐. 10. 호주 웨이브 록: 30억 년 전에 형성된 웨이브 록은 부서지기 직전의 파도와 묘하게 닮아 그렇게 이름이 지어졌다. |
- 出處: daum, Naver, Google, 周易大全(주역대전), 동양고전종합DB, 바이두 |
- 한국주역대전(韓國周易大全) DB |
http://waks.aks.ac.kr/rsh/?rshID=AKS-2012-EAZ-2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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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18. DAUM 뉴스 실시간 국제 뉴스 https://news.daum.net/foreign/#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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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멕시코 산타 마리아 레글라의 현무암 협곡: 산안토니오 댐의 물이 기둥 사이로 흘러가면서 더욱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한다. 12. 노르웨이 쉐락볼튼: 쉐락 산의 두 절벽 사이에 거대한 바위가 끼어 있는 모습, 바위는 자그마치 1,000미터 높이에 걸려 있으며 웅장한 주변 경관을 선사한다. |
*****(2021.08.18.)
첫댓글 * 옛 聖賢성현의 글인 周易주역을 지루하지 않게 소개.
現현 事件사건들도 登場등장시킴으로서
새로운 組合物조합물이 誕生탄생되었죠.
* 나름 創意的창의적인 생각으로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