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서에 나오는 남자는 자기 배필의 눈짓 한 번과 목걸이를 보고 마음을 빼앗겼다고 고백합니다(아가 4,9 참조), 사람의 신체 중 눈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묘한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가서의 이 구절 속에는 경건한 사람들이 행하는 일은 큰일뿐만 아니라 자고 보잘것없는 일이라도 우리 영혼의 배필이신 주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다는 뜻이 숨어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싶으면 큰일이든 비천하고 작은 일이든 정성을 다해 주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사랑과 성심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필로테아 님, 주님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어려움과 고통이라도 견디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순교할 각오까지 해야 합니다. 또한 주님의 뜻이라면 부모, 형제 친척은 물론, 그대가 가진 것 중 아무리 귀중한 것일지라도 주님께 바치며, 그대의 눈과 생명까지도 주님게 봉한하고 모든 것을 희행하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섭니가 큰 고통이나 희생을 요구하지 않을 때에는 일상생활에서 자주 일어나는 사소한 손실과 불편 등을 온유한 마음으로 인내하십시오. 그러면, 그대는 주님의 성심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매일 일어나는 불쾌하고 머리 아픈 일들, 부부간의 사소한 다툼, 아끼던 물건의 고장이나 분실로 말미암은 속상함, 타인으로부터의 조롱과 멸시 등을 견디십시오.
또한 미사에 참례하고 성체를 모시고자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는 것이나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신심을 수행할 때 느끼는 양간의 수줍음과 같은 사소한 고통을 기꺼이 감수한다면, 사마리아 여인에게 냉수 한 그릇을 받으시고 영원한 생명과 무한한 행복을 약속하신, 자애로우신 주님의 마음을 한없이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 이런 기회는 매우 흔합니다. 그대가 이를 적절하레 이용하면 많은 영적 보화를 얻을 것입니다.
시에나의 가타리나 성녀의 전기를 보면, 성녀는 가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고상하고 신비한 관상에 몰입하였으며, 황홀한 탈 상태에 빠져 신비로운 말을 하고 사람들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나는 하느님을 관상하는 성녀의 눈을 하느님께서 보시고 당신의 마음을 성녀에게 주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성녀의 행적에 감동하는 이유는 성녀의 관상 생활보다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의 기운으로 가득 차 불을 피우고, 빵을 만들고, 저녁을 준비하는 등 자질구레한 집안일을 기쁜 마음으로 도맡았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나는 성녀가 집안일을 하면서 틈틈이 했던 간단한 묵상이, 탈혼 상태에 빠졌던 관상에 비해 그 가치가 덜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성녀가 탈흔을 체험한 것은 겸손과 인내의 보상일지도 모릅니다.
성녀가 자주 묵상한 방법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요리를 할 때에는 아버지를 마르타에게서 봉사를 받으시는 주님으로, 어머니를 성모님으로, 형제들을 사도들로 생각했습니다. 성녀는 주니모가 모든 성인들에게 봉사하겠다는 사랑의 정신으로 집안의 궂은일을 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에 맞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필로테아 님, 나는 아무리 보잘것없는 일이라도 하느님께 봉사하겠다는 정신으로 정성을 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대에게 깨우쳐 주려 이러한 예를 듭니다.
그러므로 그대는 위대한 솔로몬 임금이 크게 칭송한 '훌륭한 아내'를 본받아야 합니다(잠언 31, 10-31 참조), 솔로몬 임금은 그녀가 고생스럽고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고 한 손으로는 물레질을 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실을 잣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대도 이 부인을 본받아 기도와 묵상을 하고 성사를 받으며,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가르치십시오. 또한 선한 마음과 생각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면서 그대에게 주어진 중요한 일들을 처리해 나가십시오. 그러면서도 그대는 물레를 돌리고 실을 잣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곧, 십자가 밑에 핀 작은 꽃과 같은 선행들, 예를 들면, 노인들을 위한 봉사 활동, 병문안, 집안 살림 등 사람들에게 유익한 일을 하면서 가타리나 성녀처럼 묵상하십시오.
비록 작은 일이라도 그것을 통해 하느님을 섬길 기회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성실하고, 아주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일에도 불의하다."(루카 16,1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일을 주님의 이름으로 하면 다 잘될 것입니다. 식사나 취침, 휴식, 집안일등 매사를 주님의 이름으로, 하느님의 거룩하신 뜻에 따라 행하면 하느님 나라에 많은 공로를 쌓을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