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동생과 함께한 홍콩 여행
소정 하선옥
엄마와 여동생을 떠나보낸 지 얼마 되지 않은 2016년 3월,
나는 막내 동생과 함께 홍콩으로 향했다.
김해 공항을 오후 9시 35분에 출발한 비행기는 난기류를 만나 크게 흔들렸고,
나는 본능적으로 막내의 손을 꼭 잡았다.
“왜? 무섭나?” 하고 웃으며 묻는 동생에게
“아니. 혹시 비행기가 떨어지면 너랑 손 잡은 채로 가려고”
라고 말하자, 동생은 말없이 내 손을 더 꼭 잡아주었다.
그 순간, 말로 꺼내지 못한 슬픔이 서로의 손끝에서 조용히 전해지는 듯했다.
홍콩 첵랍콕 공항에 도착해 현지 가이드를 만나니
우리 일행은 모두 여덟 명.
단출한 여행이 오히려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밤 한 시가 넘어 호텔로 향하는 버스 창밖으로는
도시의 불빛이 화려하게 흘러갔다.
‘과연 낮에도 이 화려함이 이어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간단히 조식을 마친 뒤
막내와 함께 거리를 걸었다.
밤의 화려함은 온데간데없고,
낮의 홍콩은 후줄근한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길가 상점에서 망고스틴을 사 먹으며
우리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처럼
편안하게 거리를 걸었다.
홍콩의 빽빽한 빌딩 숲은 좁은 땅 때문이라 했다.
15평 남짓한 아파트가 삼억,
시내 중심은 스무억을 훌쩍 넘는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윙타이 사원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산통을 흔들고 향을 피우며
저마다의 소원을 올리고 있었다.
그들의 간절함 속에서
우리 역시 마음속 깊은 곳의 바람을
조용히 떠올렸다.
점심을 먹고 2층 버스를 타고 시내를 둘러본 뒤
트램을 타고 빅토리아 파크 정상에 올랐다.
수없이 솟아오른 빌딩들이
저녁이면 불을 밝히며
홍콩의 야경을 만든다는 사실이
그제야 실감 났다.
리펄스 베이에서는
영국 식민지 시절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고즈넉한 풍경이 펼쳐졌다.
남중국해를 바라보며 서 있는 아파트들 중
몇 층을 통째로 비워둔 건물이 있었는데,
용이 승천하는 길을 막지 않기 위한
풍수 때문이라고 했다.
막내가 “언니야, 오래 살아라” 하고 말하자
가슴이 뭉클해져 눈물이 핑 돌았다.
소호 거리에서는 과일을 잔뜩 샀다.
미니망고, 스위트 키위, 롱간, 배 두 개.
과일 하나에도 웃음이 나는 여행이었다.
저녁에는 페리를 타고 홍콩 섬으로 건너갔다.
어둠이 내리자 도시의 불빛은
바다 위에 쏟아져 내리듯 반짝였고,
사람들의 환호성과 음악, 조명이 뒤섞여
홍콩의 밤은 말 그대로 불야성이었다.
야시장 골목에서는
호떡집 위 선풍기에 매달린 먼지를 보고
도망치듯 빠져나오기도 했다.
그마저도 여행의 한 장면이 되어
둘이서 실없이 웃었다.
다음 날 마카오로 향했다.
파스텔 톤 건물들이 늘어선 거리,
화재로 타다 남은 성 바울 성당,
그리고 그 아래로 이어진 육포와 초콜릿 가게들.
시식 한 번에 홀딱 넘어가
선물용으로 몇 개를 샀다.
성 도미니크 광장에서
둘이서만 찍은 사진을 보니
왠지 모를 서글픔이 스며들었다.
저녁에는 베네시안 카지노에 들렀다.
베네치아를 본뜬 실내는
낮과 밤의 경계가 사라진 듯
시간의 흐름을 잊게 했다.
심천에서는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리어카에서 파는
망고와 파파야를 사 들고 왔다.
그런데 그만 다른 층에서 내려
엉뚱한 방 앞에서 키를 대고
문이 열리지 않는다며 한참을 씨름했다.
층수를 확인하고는
둘이 동시에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사람을 웃게 하는 일은
대개 이렇게 사소한 데서 시작된다는 걸
그날 새삼 깨달았다.
막내와 함께한 홍콩·마카오·심천 여행은
그렇게 웃음과 눈물,
그리고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마음으로
조용히 채워져 갔다.
잃어버린 가족의 빈자리를
둘이서 나란히 걸으며
조금씩 덜어내고
조금씩 채워 넣는 시간이었다.
2025년 12월 16일
첫댓글 감사합니다
따뜻하게 보내세요
본향인 어머님을 영원히 떠나 보내고 공허함을 여행 힐링으로 채우셨군요.
참 현명한 최선의 판단이라고 생각 됩니다.
필자도 홍콩은 지나치는 발걸음이 몇번 있었지만 세세하게 관광한 것은 짧아서 아쉽고
마카오나 심천은 가보지 못해서 구경 잘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