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를 반으로 접고 아 소리를 내면 그게 진짜 목소리라고 한다 진짜 목소리로 말하면 신뢰와 호감을 얻을 수 있다고
그러자 방에 있던 열댓 명의 사람들이 제각기 허리를 숙인 채 아 아 아 소리를 낸다 복부에서 흘러나오는 진짜 목소리가 방 안을 채운다
이제 그 음역대로 말하는 겁니다 억지로 꾸며낸 목소리가 아닌 진짜 당신의 목소리로요
엉거주춤 허리를 편 사람들이 첫인사를 나눈다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저는 대전에서 왔고…… 멋쩍은 미소를 짓고 몇 번 더듬기도 하면서
말을 하다가 불쑥 허리를 접고 다시 아 아 거리는 이도 있다 나는 구석에 앉아 이 광경을 바라본다
선생님이 손짓한다 이리 와서 진짜 목소리를 찾아보세요
쭈뼛거리며 무리의 가장자리에 선다 허리를 숙인다 정강이가 보이고 뒤통수가 시원하다
아 아 아 낮지도 높지도 않은 미지근적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옆집 아이와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쳐 어색하게 안부를 물을 때 보다는 낮고 지저분한 소문을 전할 때 보다는 높다
언뜻 저 사람과 그 옆 사람의 목소리하고 똑같다
우리 셋이 동시에 얘기하면 참 재미있겠죠 진지한 모임에서 그런 말은 할 수 없어서 그저 소리만 낸다
아 아 교실은 소리를 머금은 상자가 되고
이가 나간 머그잔에 물을 담아 마시다가 바닥에 흘렸다 닦아내려고 허리를 숙인 찰나 물 위로 번지는 그림자가 보였다
진짜 같았다
고개를 들었다
진짜사람들이 진짜미소를 지으며 진짜 멋진 진짜옷을 입은 게 이제야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다 합격할 수 있을 거예요
진짜행복이 밀려왔다
시감상
허리를 반으로 접고 아 소리를 내면 그게 진짜 목소리라고 한다 진짜 목소리로 말하면 신뢰와 호감을 얻을 수 있다고
면접시험을 보러 가기 전에 미리 준비하는 과정을 거치죠. 그중에 자기소개입니다. "2번, 자기소개해 보세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이 회사에 들어오기 위해……" 긴장된 순간입니다. 허리를 반으로 접고(반드시 반 접고 들어가야 합니다.) 첫인상을 잘 남기기 위해 진짜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그러자 방에 있던 열댓 명의 사람들이 제각기 허리를 숙인 채 아 아 아 소리를 낸다 복부에서 흘러나오는 진짜 목소리가 방 안을 채운다
이제 그 음역대로 말하는 겁니다 억지로 꾸며낸 목소리가 아닌 진짜 당신의 목소리로요
면접 지도 강사의 지시에 따라 허리를 숙인 채 아 아 아 소리를 냅니다. 상황이 너무 슬프죠. 여러 명의 취준생들이 허리를 반으로 접고 "아 아 아" 절규하는 듯 자신의 진짜 소리를 찾고 있습니다. 복부에서 흘러나오는 절규가 방 안을 가득 채웁니다. 듣고 있나요? 높으신 분들, 이 소리를 들어야 할 텐데, 말이죠.
엉거주춤 허리를 편 사람들이 첫인사를 나눈다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저는 대전에서 왔고…… 멋쩍은 미소를 짓고 몇 번 더듬기도 하면서
말을 하다가 불쑥 허리를 접고 다시 아 아 거리는 이도 있다 나는 구석에 앉아 이 광경을 바라본다
어색하지만 서로 인사를 나눕니다. 이런 와중에 나는 거기에 끼지도 못하고 구석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실패자일까요? 그 모습이 어색합니다.
선생님이 손짓한다 이리 와서 진짜 목소리를 찾아보세요
쭈뼛거리며 무리의 가장자리에 선다 허리를 숙인다 정강이가 보이고 뒤통수가 시원하다
아 아 아 낮지도 높지도 않은 미지근적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선생님이 나를 부릅니다. 억지로 나는 허리를 접습니다. 허리를 숙이면 정강이가 보이고 뒤통수가 훤합니다. 나이 든 취준생인가 봐요. "아 아 아" 들리시나요 낮은 절규가.
옆집 아이와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쳐 어색하게 안부를 물을 때 보다는 낮고 지저분한 소문을 전할 때 보다는 높다 언뜻 저 사람과 그 옆 사람의 목소리하고 똑같다
그래요, 저는 옆집 사람이에요. 저 같은 사람 많이 보셨을 거예요. 흔한 사람이죠. 언제든 옆집 아이에게 낮은 목소리로 안부를 묻고 뉴스를 전할 땐 큰 소리로 떠들기도 하죠.
우리 셋이 동시에 얘기하면 참 재미있겠죠 진지한 모임에서 그런 말은 할 수 없어서 그저 소리만 낸다
아 아 교실은 소리를 머금은 상자가 되고
교실은 절규가 다시 흘러나옵니다. "아 아" 그 소리가 그저 교실에서만 머물러 있습니다. 이 소리를 누군가 들어야 할 텐데요. 듣는 이들은 저 높은 곳에만 머물죠. 도무지 관심이 없어요.
이가 나간 머그잔에 물을 담아 마시다가 바닥에 흘렸다 닦아내려고 허리를 숙인 찰나 물 위로 번지는 그림자가 보였다
진짜 같았다
고개를 들었다
바닥에 흐른 물에 비친 그림자야말로 우리의 본 모습이죠. 겉으로 보이는 허리를 반 접은 모습은 가식일 뿐이에요. 자 취준생 여러분 힘내세요. 우리도 취직할 수 있어요.
진짜사람들이 진짜미소를 지으며 진짜 멋진 진짜옷을 입은 게 이제야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다 합격할 수 있을 거예요
진짜행복이 밀려왔다
아시죠, 반어법. 꿈입니다. 다 합격할 수도 없고 행복도 갑자기 오지는 않잖아요. 그러나 열심히 살다 보면 그런 날이 올 거라고 믿는 거죠.
심사위원들은 첫 행 '허리를 반으로 접고 아 소리를 내면'에서 벌써 이 시를 신춘문예감으로 낙점했지 싶어요. 청년의 시대, 청년의 상황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니까요. 뭐랄까요? 외침일까요, 아니면 절규일까요? 지금 이들이 처한 진실을 외면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어떻게 허리를 반이나 접고 진짜 자신의 모습을 찾으라고 하는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 집에도 그런 친구가 하나 있습니다. 자신만만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걱정입니다. 아침저녁으로 알바를 하고 주인의 잔소리를 걱정하죠. 지금 직장은 가짜일 뿐입니다. 진짜 일자리를 찾아야 하죠. "아 아 아" 하는 소리가 저 위에까지 들릴까요? 듣는 척만 하지 말고 제발 좀 들어주세요.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