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보는 식물이었다. “너 집에서 기른다는 식물 보여줘.” 나의 부탁을 듣고 “그럴까?” 말하며 바짝 깎은 손톱이 인상적인 하얀 손으로 핸드폰 액정을 연신 문댔다. 원예학과 3학년인 그는 본인이 식물을 좋아해서 원예학과 진학을 선택했음을 힘주어 여러번 얘기한 바가 있다. 그렇기에 나는 그가 집에서 식물등까지 켜가며 돌보고 있다는 반려식물이 궁금했다. 사진첩을 뒤적이는 그의 손놀림에 호기심과 기대가 쌓여 몸이 점점 앞으로 기울었다. 손가락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움직일 때마다 사진이 바뀌었다. 각도와 줌 인, 줌 아웃의 미세한 차이만 있을 뿐 같은 식물을 연달아 찍은 것에 불과했지만, 애정 어린 사진임이 분명했다.
그 식물을 보고 내가 처음 뱉은 말은 “포켓몬 같아.” 였다. 친숙한 동식물을 모티브로 만든 포켓몬스터들 중 내가 떠올린 포켓몬은 ‘우츠동’이었다. 우츠동은 아래를 향해 열린 노란 종 모양 끝에 “부-.” 소리낼 것 같은 통통한 입술을 가지고 있다. 순진해 보이는 둥근 눈은 노란 얼굴과 잘 어울린다. 날개처럼 양 옆으로 펼쳐진 잎사귀를 흔들며 둥둥 떠다니는 풀 타입의 파리잡이 포켓몬이다. 집으로 돌아와 검색을 통해 알아본 결과, 그 애가 애지중지 기르는 식물은 이 ’우츠동‘의 진화 포켓몬인 ‘우츠보트’와 훨씬 닮아 있었다. (* 각주 : 포켓몬은 전투에서 승리하거나 파트너와 깊은 교감을 나눈 경우 등과 같은 여러 계기를 통해 ’진화‘라는 과정을 거친다. 진화는 일종의 성장이다. 진화한 포켓몬은 진화 이전의 포켓몬과 다른 포켓몬으로 변화한다.)
우츠동은 방심하고 다가오는 천적(혹은 전투 상대에게) 독가루와 용해액을 뿌려 공격하는 만화적인 방식으로 그려진다. 이와 달리 우츠보트는 좀더 현실의 ‘벌레잡이통풀과‘가 생태계에서 살아가는 모습과 유사한 방식으로 그려진다. 포켓몬 공식 사이트에 적힌 우츠보트 설명 글은 <꿀 같은 향기에 이끌려 입안에 들어가면 끝장이다. 용해액에 녹아 버리게 된다. 많은 먹이를 녹인 용해액은 단맛이 더해져서 더욱 먹이를 모으기 쉽게 된다.> 이렇게 적혀 있다. 우츠보트는 꿀 향기로 상대를 입-으로 묘사되는 포충낭-으로 꾀어내서 천천히 잡아 먹는다. 상대가 제아무리 단단한 성질을 가졌더라도 우츠보트의 용해액은 ‘모든 걸 녹일 수 있다’고 하니, 꽤나 강하고 무시무시한 포켓몬임이 틀림 없다. 그래서인지 우츠보트는 진화 전 단계인 우츠동의 순진한 눈망울은 찾아볼 수 없고, 작아진 동공과 찢어진 눈매가 도드라지는 매서운 얼굴을 하고 있다.
그 애가 기르는 식물이 바로 이런 모습이었다. 화질이 좋은 핸드폰 카메라 덕분에 나는 그 식물의 생김새 면면을 자세히 확대해서 볼 수 있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물이 담겨 축 늘어진 긴 주머니 같은 포충낭이었다. 포충낭의 입구는 붉은 빛이었고, 섬세한 줄무늬가 그어져, 움츠러든 지렁이 같기도 했다. 빛이 반사되어 윤기가 돋보이는 그 붉은 매끄러움과 섬세한 주름에 매료된 나는, 그 애가 쥐고 있던 핸드폰을 살짝 내 쪽으로 끌어당겨 사진을 확대했다. 당장이라도 나의 입술처럼 달싹일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여기에 벌레가 빠지면 얘가 천천히 녹여서 잡아 먹는다는 거지?”
“응. 물이랑 빛으로도 사는데, 벌레 잡아주면 좋아해. 그래서 간식처럼 주려고 집에서 벌레 잡으면 모아뒀다가 하나씩 주고 있어.”
연신 사진을 넘기던 그 애가 내게 물었다.
”내가 여름에 울주에 다녀왔는데, 그 이유가 뭔지 알아?“
올해 8월이면 나는 그 애가 이 세상에 살아 숨쉬며 움직이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로 땀에 푹 젖어 있을 때였으니, 그 이유를 내가 알리가 없었다.
”나는 모르지…“
”한국에 람사르 습지로 지정된 곳이 세 군데 있는데, 그 중 한 곳이 거기 있거든. 거기 가려고 아침 일찍 나와서 기차 타고 당일치기로 다녀왔어. 거기에 자생하는 ’끈끈이주걱‘이 있다고 해서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어.“
식충식물은 습지에 산다. 습지에는 식물에게 필요한 질소와 인이 부족하기 때문에, 식충식물은 이 영양분을 벌레 사냥으로 보충하하며 생존한다. 이런 특별한 조건 탓에, 나는 식충식물이 외국에서 들여 와야만 하는 특수한 수입 식물인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도 자생하는 식충식물이 있다니 놀라웠다. 그 애는 이런 식이었다. 나 스스로도 반응하리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지점의 호기심을 건들여서 자꾸만 질문하게 만들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을 창구로 내 호기심을 자꾸만 건드는 그 애는 그래서 재밌었고 자극적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흥미를 잃어가고 있었다. 자꾸만 나만 허접한 떡밥을 무는 실내낚시터의 물고기마냥 연거푸 질문을 하게 되는 대화 방식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상대가 나를 더 궁금해해주기를 원했다. 그게 내가 원하는 대로 채워지지 않자, 나는 호기심에 이끌리는 동시에 지쳐가는 어중간한 상태가 됐다. 어쨌든, 울주 산속 오래된 습지에 끈끈이주걱이 자생하고 있다는 정보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 애가 습지로 가는 길을 찾느라 산속을 헤맸던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놓는 동안, 나는 그저 그 애가 만나고 왔을 개화시기의 끈끈이주걱의 모습이 궁금했다.
“겨우 도착했는데, 끈끈이주걱이 안 보이더라고. 그래서 결국 못보고 돌아왔어.”
이야기의 끝은 이러했다. 축축한 흙에서 떳떳하고 고고하게 살고 있기를 바랐던 끈끈이주걱은 결국 보지 못했다. 기대했던 끈끈이 주걱 사진은 없었고, 다만 습지 앞에 말뚝 박힌 표지판에 적혀 있는 “자생하는 식물 : 끈끈이 주걱” 글자만 헛헛하게 찍어온 게 전부였다. 그 사진을 보여주며 아쉬워하는 그 애의 모습에 ‘진심’이 담겨 있는 거 같아, 한순간 걔가 좋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식충 식물이 뭐가 그렇게 좋아?”
“반항하는 거 같잖아. 식물이면 가만히 있을 거 같은데 막 곤충도 잡아 먹고…“
그 답을 듣고 나는 소리내서 웃었던 것 같다. 아, 그러고보니 우츠보트를 닮은 그 반려식물의 이름을 안 물어봤구나. 이번이 진짜 마지막 통화다, 이렇게 마음 먹고 주소록에서 그 애의 이름을 검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