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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피렌체의 산 마르코 수도원에는 15세기 전반, 초기 르네상스 시기의 화가인
프라 안젤리코(1395~1455)의 벽화가 많이 남아 있다. 그중에서 2층에 있는 수태고지와 수도하는 조그만
독방 안에 그려진 또 하나의 수태고지를 통해 프라 안젤리코 회화의 깊이와 매력을 느껴 보고자 한다.
프라 안젤리코는 도미니코 수도회의 수사로서 기도와 수도 생활에 힘썼고, 아울러 그림에도 뛰어나
화가로서 활동하며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의 이름은 축복받은 천사 수도사라는 의미로
베아토 프라 안젤리코라 부르는데, 본명은 귀도 디 피에트로다. 깊은 신앙심에서 우러난
그의 그림은 천사가 그린 듯하다고 평가받으며, 보는 이들로 하여금 경탄케 한다.
그는 금색을 이용한 중세적 세밀화에 능했지만, 이 수도원에는
수도사들의 경건한 분위기에 맞추어 그림을 간결하고 소박하게 그려 차이를 보인다.
안젤리코는 수태고지를 주제로 한 그림만 15번 정도 그렸는데, 이 수도원의 작품들이 특히 뛰어나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다가와서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하시도다 …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라고 하나님의 뜻을 전하며 수태고지를 하자
마리아가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순종으로 받으면서 이 땅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으로 성육신하신 것이다(눅 1:26~38).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낮추신 이 감동적이고 은혜로운 순간을 많은 화가가 그림의 주제로 삼았다.
프라 안젤리코는 이 순간을 왼쪽 그림에서 수도원과 같은 밀실에 가브리엘 천사가 찾아와 조용히
말씀을 전하는 모습으로 표현했다. 르네상스의 새로운 원근법에도 지식이 있었지만,
여기서 건축 배경을 중세적인 분위기로 그린 것은 좀 더 기품 있는 분위기를 내기 위해
안젤리코가 의도적으로 옛 방식을 채택했다고 여겨진다.
정교한 세필화에 뛰어났던 안젤리코의 솜씨는 두 여인의 우아한 의복의 선과 공작의 날개처럼 화려한
가브리엘 천사의 날개에서 일면을 엿볼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지극히 절제되고 있다.
정갈한 색채와 고즈넉한 분위기는 수도에 도움을 주는 그림을 그리고자 했던 작가의 의도를 느끼게 한다.
각 수사들이 들어가 수도하는 조그만 방들에도 벽면에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아치형으로 처리된
방의 윗부분에 맞추어 그림 위쪽이 아치형으로 되어 있다.
위 그림에서 보다시피 고딕 성당 내부에서 볼 수 있는 교차형 지붕선을 단순화시켜 처리했는데,
그 아래의 마리아는 더욱 겸손하고 진지하게 천사를 바라보는 모습이다.
뒤에는 도미니코 수사가 경배를 드리고 있다. 밝은 색조와 기품 있는 두 사람의
만남은 수사들에게 시각적 효과를 통해 영적 수준을 고양하는 데 크게 기여했을 것으로 보인다.
가브리엘 천사가 처녀 마리아에게 나타나 그녀가 그리스도를 낳을 것이라는 소식을 전하는 이 장면은,
도미니크 수도회에서 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으로 여겨졌다. 이 수도회 출신 최고의 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는 수태고지의 순간에 ‘말씀이 육신이 되었’고
이것이 구원의 역사에서 일어난 결정적인 사건이라고 보았다. 그에 의하면
성모는 신의 뜻에 순종함으로 인류를 구원에 이르게 했고, 반대로 이브는
하나님의 명령에 거역함으로써 인류에게 원죄를 가져왔다.
프라 안젤리코의 [코르토나 수태고지 Cortona Annunciation]의 왼쪽 위에 보이는 것처럼,
수태고지 장면에 낙원에서 추방되는 아담과 이브가 함께 등장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이다.
산 마르코에는 수도사의 방에 수태고지가 한 점 더 그려져 있다. 여기에는
수태고지의 뜻을 묵상하는 순교자 베드로가 함께 그려져 있다. 수도사의 방에 그려진 수태고지가
더 간단한 구성을 취하고 있지만, 어느 작품이든 프라 안젤리코의 작품은 다른 화가들의 그림과 다른
겸손함과 고요함, 신성한 단순함을 특징으로 한다.
그림의 배경은 새로 지은 산마르코 수도원 회랑과 같은 모습으로 그려져, 사건이
바로 그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현실감과 사실성을 높이는 데
원근법이 사용되긴 하였으나, 그의 작품이 만들어내는 환영은 마사치오의 그림처럼
벽이 실제로 뚫린 것 같은 느낌을 줄 정도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