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가까운 곳에 공원과 야트막한 동산이 있어 아주 다행이다. 우리 집 창문으로 바로 보일 만큼 가깝다.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그 전날 잠자리에 들기 전 현관문 앞에 챙겨둔 옷가지를 얼른 챙겨 입고 현관문을 나선다. 자기 전에 일기예보를 보고 보슬비라도 내릴 낌새가 있으면 미리 작은 우산도 챙겨둔다. 일어나면 바로 고양이 세수 정도 하고 바로 집을 나서야 직성이 풀린다. 꾸물거리다 보면 자꾸 지체하게 되고 귀찮아져 집을 나서는 것을 포기하게 될 수 있는걸 조금이라도 막아보려는 내 나름의 비법이라면 비법이랄까?
온통 콘크리트 아파트로 둘러싸인 이런 도심에서 약간의 땀을 흘리며 올라가야할 동산이 있어 아주 흡족하다. 산에 오르기 귀찮을 때면 산 밑 공원을 어슬렁어슬렁 거리며 산책하며 되니 자연과 이렇게 쉽게 친구가 될 좋은 공간이 있다는 것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내가 아는 한 대구는 이런 산과 공원이 다른 어느 도시보다 더 많은 것 같다. 아시다시피 도심 한복판에는 2·28공원과 국채보상공원이 있고, 또 다른 데서는 찾아보기 힘든 넓은 규모의 두류공원이 있다. 말이 공원이지 야외음악당과 야구장 등등을 포함하면 웬만한 마을 몇 개가 들어서도 될 규모다. 물론 근교로 차로 이동하게 되면 팔공산과 비슬산, 앞산도 자동차로 3,4십여분만 이동하면 제대로 된 자연을 느낄 수도 있지만, 그런 곳은 하루 날 잡아, 마음먹고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집 옆 이 공간은 이불 속에서 눈을 뜬지 10여분 만에 온전히 나무와 풀로 둘러싸인 숲속에 내 몸을 데려다 놓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가까운 곳에 숲이 있는지 가끔은 나도 놀랄 때가 있을 정도다.
새벽의 숲은 그야말로 축복받은 자연의 예술 그 자체다. 밤새 비라도 살짝 내린 날이면 나뭇잎에 송송히 맺힌 이슬이 아침 햇살에 반짝이고, 싱그런 숲 향기가 코를 찌른다. 머리는 점차 맑아지고 잠자리에 일어나 찌뿌듯했던 몸은 서서히 운동선수의 컨디션이 부럽지 않을 정도까지 올라간다. 이윽고 몇 십분 뒤에는 동쪽 하늘이 희뿌연 하게 밝아오면서 나무들도 햇살 속에서 드러 나고 온전한 제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그리고 산 밑 공원에서 체조하는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면 숲과 공원은 그 모습은 자못 일찍 일어나 부지런한 사람들이 벌이는 모양이 흡사 시골 동네 잔치 집 분위기와 진배 없다.
이즈음 바지 뒷 주머니에 챙겨 온 휴대폰은 또 다른 새벽의 즐거움을 준다. 공원을 걸으며 귀로는 외국어 교육방송도 듣고 가끔은 자연과 어울리는 아름다운 선율의 클래식 음악도 듣고, 그 전날 놓친 뉴스도 듣는다. 나의 가족도 아직 잠자리에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든 시간에 나는 깨어 있다는 사실에 하루가 24시간이 아니고 25시간을 사는 것 같이 느껴져 아주 기분이 좋다.
또 그 조그만 물건은 조용히 나의 발걸음 수를 차곡차곡 기록해뒀다가 집에 오면 오늘 아침엔 당신은 몇 걸음 걸었다고 알려주는 또 다른 친구이니 참으로 좋은 세상이다. 매일 매일 몇 걸음 걸었는지 기록을 해주니 날마다 들여다보고 그 전날과 비교 해보는 재미도 솔솔 하다.
이렇게 산책하다가 잠깐 공원벤치에 앉아서 다른 이들이 어떻게 운동하는지를 물끄러미 둘러 본다. 반 정도의 사람들은 매일 보는 분들이다. 그 모습은 하나같이 다르지만 모두 일찍 일어나는 새들이다. 아주 열심이다. 이내 나도 같이 열심히 해본다. 그저 나무와 꽃 내음에 섞여 날아오는 시원스런 바람과 주변 몇몇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 있지만, 나는 이 숲이 집보다 더 좋아지고 향기로운 느낌이라면 이상하게 들릴까? 그런 느낌이 새벽마다 이렇게 나를 이 공간 이 숲속으로 불러 들이는 것이다.
새벽 숲속을 걷다 보면 백여년 전 어느 호수 옆 숲에서 혼자 오두막을 짓고 숲속의 삶을 일궈 낸 철학자 소로우가 떠오른다. 그는 자연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홀연히 문명세계를 떠나 숲속에서 어느 누구도 해보지 않는 혼자 숲속 오두막을 짓고 살면서 자기만의 숲속 철학으로 사색도 한 사람이다. “내가 월든 호수에 사는 것보다 신과 천국에 더 가까이 갈수는 없다”고 숲속의 아름다운 삶을 깨우쳐주는 멋진 말을 남겼다.
이 새벽에 집 옆 숲속을 걸으며 나도 그런 철학자 소로우도 부럽지 않는 숲속의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면 너무 과장 된 말일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또 내일 아침 숲으로 갈 생각하며 잠자리에 든다.
첫댓글 도시의 숲, 새벽의 숲은 생각만 해도 상쾌하고 숨이 편안해 집니다.
빠지지 않고 나가는 비법까지 있으니 부럽습니다^^
정재용 선생님 방학동안 글이 엄청 늘었습니다. 더욱 정진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