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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이자성의 출현 위소보는 한참 동안 노랫소리를 들으며 그녀의 아름다운 미모에 마음이 흘려 찾아온 이유를 까맣게 잊고 있다가 그녀가 아가를 들먹이자 비로 소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아가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녀가 정말 평서왕을 찔렀습니까? 그녀는 그대의 딸이니 왕야의 딸도 되지 않습니까? 아이쿠, 야단났군! 야단났 어.] 진원원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야단났다니요?] 위소보는 얼버무렸다. [아....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는 아가가 평서왕의 딸이라면 기녀의 아들인 자기보다 훨씬 고귀한 신분이라는 사실을 떠올린 것이었다. 진원원은 말했다. [아가는 태어난 지 두 살 되던 해, 어느 날 밤에 갑자기 실종됐어요. 왕야는 사람을 보내 온 성 안을 뒤졌지만 종적을 찾지 못했어요. 저는 의심을 하게 되었는데.... 의심을 하게 되었는데....] 갑자기 그녀는 얼굴을 붉혔다. 위소보는 물었다. [무엇을 의심했다는 말입니까?] [저는 왕야의 원수가 딸을 훔쳐가서 위협을 하거나 돈이라도 긁어내기 위해서 농간을 부릴지도 모른다고 의심했어요.] [왕부에는 그토록 많은 위사와 가장(家將)들이 있는데 귀신도 모르게 아가 사저를 훔쳐가다니, 그 사람의 재간은 대단하군요.] [그렇지요. 당시 왕야께서는 크게 성질을 부려 위사의 우두머리 두 명 을 죽이고 곤명성의 제독과 지부를 파면시켰지요. 며칠 동안 조사를 했 으나 흔적을 찾지 못하자 왕야가 다시 사람을 죽이려고 할 때 제가 그 를 달랬지요. 이십여 년간 시종 아가의 소식이 없어서 나는 이미 그 애 가 죽은 줄로 알았어요.] [아가의 성이 진씨인 것도 무리가 아니군요. 그녀는 그대의 성을 따른 것이군요.] 진원원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그녀....그녀가 진가라고 말하던가요? 그녀가 어떻게 알았죠?] 위소보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늙은 매국노가 밤낮으로 누가 자기를 해칠까봐 엄하게 경계했을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왕부에서 갓난아기를 훔쳐간다는 것은 그를 찔러 죽이는 것보다 더 어려운 노릇이었을 것이다. 천하에 구난 사부를 제외 하고 그런 사람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는 말했다. [그녀를 훔쳐간 그 사람이 그녀에게 말해 주었겠지요.] 진원원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았어요. 하지만....하지만 어째서 그녀에게 성이....성이....] [성이 오씨라고 말하지 않았느냐구요? 흥, 평서왕의 성은 영광스럽다고 볼 수가 없지 않겠어요.] 진원원은 멍하니 넋을 잃고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의 말을 못 들 은 것 같았다. 위소보는 물었다. [그 후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나는 언제나 그녀를 그리워했으며 하늘이 불쌍히 여기시어 그녀가 죽 지 않고 언젠가 다시 그녀와 만나게 되기를 바랐어요. 그런데 어제 오 후 왕부에서 소문이 전해졌어요. 왕야가 자객을 만나 중상을 입었다구 요. 저는 재빨리 왕부로 가서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알아보았어요. 왕 야가 자객을 만나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상처는 입지 않았어요.] 위소보는 깜짝 놀라 외쳤다. [뭐라구요? 그는 중상을 입은 척 꾸몄나요?] [왕야는 자기가 중상을 입은 것처럼 꾸며서 상대방이 경거망동하도록 유인하여 일망타진할 계획이죠.] [저는....저는 너무나 멍청합니다. 진작 그와 같은 사실을 알아야 했는 데 미처 몰랐군요.]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매국노는 과연 나를 의심하고 있구나.) 진원원은 말했다. [저는 자객이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더니 왕야는 아무 말도 하지않고 저 를 상방으로 데리고 갔어요. 침대 위에 한 소녀가 앉아 있었는데 손발 에 쇠고랑을 차고 있었어요. 저는 대번에 저의 딸이라는 것을 알았어 요. 그녀는 내가 젊었을 때와 똑같은 얼굴이었지요. 그녀는 나를 발견 하더니 물었어요. '그대가 나의 어머니인가요?' 저는 고개를 끄덕이며 왕야를 가리켰지요. '이 분은 아버님이시다.' 아가는 노해 말했죠. '그 는 대매국노이지 저의 아버지가 아니에요. 그는 저의 아버지를 죽였어 요. 저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을 거예요' 왕야는 그녀에게 물었죠. '너 의 아버지는 누구냐?' 아가는 말했어요. '나는 몰라요. 사부님께서는 내가 어머니를 만나보면 어머님은 자연히 나에게 알려줄 것이라고 했어 요.' 왕야는 그녀의 사부가 누구인지 물었는데 그녀는 말하지 않았어 요. 나중에 그녀는 사부의 명을 받고 왕야를 찔러 죽이려고 들어왔다고 했어요.] 위소보는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된 사연인지 헤아려 볼 수 있었다. 구 난 사부는 오삼계를 극도로 중오했다 그를 죽이는 것만으로는 분을 풀 길이 없어 그의 딸을 훔쳐가 무공을 가르쳐 그녀로 하여금 자기 부친을 찔러 죽이도록 한 것이다. 위소보는 몸을 일으켜 창가로 갔다. (그렇다. 사부님께서는 언제나 아가에게 차갑게 대했다. 그녀에게 무공 초식을 가르쳐 주면서도 내공을 전수하지 않았다. 아가는 초식은 고명 했으나 너무 잡다하여 제대로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징관 사질은 그 토록 무학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그녀의 문파를 알아내지 못했으니! 음, 사부는 그녀를 철검문의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 은 것이다. 이 위소보야말로 철검문의 직계 제자인 것이다.) 구난이 원수를 갚는 방법을 매우 악랄하게 꾸민 것을 상기하니 모골이 송연해졌다. 진원원은 말했다. [그녀의 사부는 먼 앞날을 내다보고 계책을 세웠어요. 왕야를 극도로 증오했기 때문에 그와 같은 계책을 안배한 것 같아요. 만약 아가가 왕 야를 찔러 죽인다면 큰 원한을 갚은 것이 되겠죠. 그러나 찔러 죽이는 데 실패하더라도 왕야는 자기를 찔러 죽이러 온 사람이 바로 친딸이라 는 것을 알게 되면 속으로 괴로워할 것입니다.] [그녀는 왕야를 찔러 상처를 입히지도 못하고 오히려 그대의 가족이 모 이지 않았습니까? 아가에게 이 사연을 설명하면 모두에게 기쁜 일이 되 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된다면 천지신명에게 감사를 드려야겠지요.] [아가가 그대의 친딸이라는 것은 누구나 한번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대와 같은 침어낙안(沈魚落雁)하신 어머니가 아니라면 그녀처럼 수화폐 월(羞花閉月)한 딸을 낳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여자의 아름다움을 형용할 때 되풀이해서 침어낙안과 수화폐월이 라는 여덟 글자를 써먹었다. 다른 문자는 말하지 못했다. 그는 다시 말 을 이었다. [왕야께서 아가를 놓아주지 않는다면 설마하니 그녀를 벌한다는 것인가 요? 그녀는 두 살 때 유괴되었으니 그녀가 어떻게 스스로의 신세를 알 수 있단 말입니까? 어찌 그녀를 탓한단 말입니까?] [왕야는 다음과 같이 말했어요. '네가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너는 나 의 딸이 아니다. 네가 나의 친딸이라 해도 이와 같이 윗사람을 범하며 무법천지로 날뛰는 사람을 이 세상에 남겨 둘 수 없다.'그 말을 하며 그는 자기 코를 어루만졌죠.] [그는 자기 코를 만지는 버릇이 있나요?] 진원원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그가 코를 만지면 반드시 사람을 죽였으며 한 번도 예외가 없었어요.] 위소보는 어이쿠, 하고 말했다.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죠? 그가 아가를...아가를 죽였나요?] [아직은 죽이지 않았어요. 왕야는.... 배후에서 지시한 사람이 누구인 지 알아내고 또 아가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알아내려고 하는 거예요.] [왕야는 의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내가 그대를 만났을 때도 그대가 아 가의 어머니인 것을 알 수 있었는데 그는 어찌하여 못 알아 본다는 말 입니까? 아가가 그를 찔러 죽이려고 하자 매우 화가 난 모양이군요.] 그는 침중한 안색으로 말했다. [우리는 빨리 아가를 구출해야 합니다. 만약 왕야가 다시 몇 번 코를 만지면 큰일을 망치게 되죠.] [천첩이 대담하게 대인을 이곳으로 모신 것은 이 일을 상의하기 위해서 입니다. 대인은 황상이 보내신 흠차대신이니 왕야께서는 반드시 그대의 체면을 세워 주려고 할 것입니다. 아가가 공주의 궁녀로 가장했으니 오 로지 대인께서 나서서 공주가 사람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왕야는 거절하지 못할 것입니다.] 위소보는 오른손 식지로 끊임없이 자기 이마를 툉기며 말했다. [멍청이, 멍청이, 속임수에 완전히 당하고 말았어.] 그는 이어 말했다. [그대의 계책은 제가 이미 생각해 보았을 뿐만 아니라 이미 써먹었습니 다. 그런데 대....대왕께서 수단이 높아 이 멍청이는 그만 당하고 말았 습니다. 나는 이미 왕야에게 사람을 달라고 했고 왕야는 이미 내주었습 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아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 사연을 낱낱이 이야기했다. [하국상이라는 그 녀석은 미리 계책을 짜 놓고 있었습니다. 왕부 앞 수 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 앞에서 큰소리로 공주의 궁녀를 저에게 내주었 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다시 사람을 달라고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된다면 그 녀석은 틀림없이 벼슬아치가 흔히 써먹 는 말투로 다음과 같이 말하겠지요. '위 대인, 소장을 희롱하시는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공주의 그 궁녀가 왕야를 찔러 죽이려고 했지만 소장은 대인의 얼굴을 보아서 왕야께 곤장을 맞을 각오를 하고 이미 대 인에게 내주어 데려가게 하지 않았습니까? 왕부 앞의 수천 수백이나 되 는 사람들이 증인입니다. 왕야께서는 대인께서 그 궁녀를 엄히 처분하 여 지시한 사람을 알아내기를 바란다는 말씀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대 인께서는 다시 사람을 내놓으라고 하시니, 이건....이건 너무 지나친 농담이 아니겠습니까?'] 그는 하국상의 말투를 흉내내었는데 아주 그럴싸하게 흉내를 냈다. 진 원원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대인의 말씀이 옳습니다. 하 부마는 원래 그런 사람이죠. 원래....원 래 그들은 이미 함정을 파놓고서 대인의 입을 틀어막으려고 했군요.] 위소보는 발을 구르며 욕을 했다. [제기랄....] 그는 진원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들이 만약 아가의 털끝 하나라도 건드린다면 나는 목숨을 걸고 싸울 작정입니다.] 진원원은 절을 하고 말했다. [대인께서 이토록 천첩을 위해 주시니 천첩이 먼저 사의를 표합니다. 하지만....] [나는 곧 돌아가서 군사들을 이끌고 평서왕부로 달려들어가 쳐부수겠습 니다. 아가를 구해 내지 못한다면 나는 대매국노의 성을 따르겠습니다. 나의 성이 위씨가 아니고 오씨로 변할 것입니다. 제기랄! 그렇게 된다 면 나는 오소보가 되겠죠.] 진원원은 그가 격동하여 터무니없는 말을 지껄이는 것을 보고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대인께서 아가에 대해서....] [뭐가 대인이고 소인입니까? 그대가 만약 저를 한 집안 사람으로 여긴 다면 저를 소보라고 불러 주십시오. 저는 그대를 백모님이라고 불러야 겠습니다. 하지만 제기랄! 백부님을 생각하니 울화통이 터질 지경이군 요.] 진원원은 가까이 다가가 그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소보, 나를 이모라고 불러라.] 위소보는 크게 기뻐서 말했다. [좋아요. 저는 그대를 이모라고 부르겠습니다. 나는 양주의 여춘원에 서....] 그는 급히 입을 다물었다. 진원원은 알아챘다. 그가 여춘원에 있을 때 모든 기녀들을 이모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그녀는 눈치가 빨라 즉시 말 했다. [나에게 너와 같이 훌륭한 조카가 있으니 나는 기뻐서 죽을 지경이야. 소보, 우리들은 왕야와 맞서면 안 돼. 곤명의 성 안에는 그의 군사들이 너무나 많아. 설사 네가 이긴다 해도, 그가 아가를 한 칼로 죽여 버린 다면 너와 나 두 사람은 한평생 슬퍼하게 될 것이 아니냐?] 그녀의 말흔 강남의 부드러운 억양이라 듣기가 좋았다. 거기다가 위소 보를 자기 식구처럼 여기고 있어서 위소보는 그런 말을 듣고 가슴 가득 히 끓어올랐던 노기가 대뜸 사그라지는 것을 느꼈다. [이모, 아가를 구할 방법이 있나요?] 진원원은 잠시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 [아가가 왕야를 아버지로 인정하도록 권고할 수밖에 없다. 그가 아무리 인정이 없기로 자기의 친딸을 죽이겠는가?] 갑자기 문 밖에서 한 사람이 호통을 내질렀다. [도적을 애비로 삼다니,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문 휘장이 들춰지며 성큼성큼 체구가 우람한 노승이 걸어들어왔다. 손 에는 한 자루의 커다란 강철 선장을 들고 힘껏 바닥을 쿵, 내리쳤다. 그러자 그 선장의 쇠고리들이 깽그랑, 쩽그랑, 하는 소리를 내었다. 노 승은 네모진 얼굴인데 턱 밑에는 검은 수염을 기르고 눈동자에서 형형 한 안광이 번개처럼 쏟아지고 있어 위맹해 보였다. 몸매도 매우 우람하 여 방안이 꽉 차는 느낌이었다. 그의 허리는 꼿꼿하고 등은 넓어 호랑 이나 사자를 연상시켰으며 그 기세가 사람을 압도하였다. 위소보는 깜짝 놀라 뒤로 세 걸음을 물러섰으며 하마터면 진원원의 등 뒤로 숨을 뻔했다. 진원원은 기쁜 표정을 지으며 노승 앞으로 다가가더 니 나직이 말했다. [그대가 오셨군요.] [내가 왔소.] 그 음성은 매우 나직했고 눈빛도 부드러웠다.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 았는데 그 네 개의 눈동자에는 사랑, 그리운 정, 기뻐하는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위소보는 의아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노화상은 누구란 말인가? 설마....설마 이모의 기둥서방이란 말인 가? 아니면 그녀가 옛날 기녀였을 때 종종 놀러 오던 손님인가? 중이 기녀를 데리고 놀다니, 말도 되지 않는다. 아니, 그것도 이상할 건 없 다. 나도 옛날에 중 노릇을 하게 되었을 때 기녀원에 놀러 간 적이 있 지 않은가?) 진원원은 말했다. [그대는 모두 들있나요?] [모두 들었소.] 진원원은 말했다. [그 애는 아직....아직도 살아 있어요. 저는....] 빌안간 그녀는 와락 울음을 터뜨렸으며 노승의 품속으로 뛰어들었다. 노승은 왼손으로 가볍게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위로의 말을 했 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그녀를 구해내야 할 것이오. 그대는 너무 서 두르지 마시오.] 그 우렁찬 목소리는 깊은 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진원원은 그의 품에 안겨 나직이 흐느끼고 있었다. 위소보는 한편으로 이상하고 또 한편으 로는 두려웠다. (그대들 두 사람이 나를 죽은 사람으로 알고 기분 내키는 대로 끌어안 고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고 있군. 그렇다면 내가 죽은 것처럼 하는 게 예의를 차리는 게 되겠군.] 진원원은 한동안 울더니 흐느끼는 음성으로 말했다. [그대는....그대는 정말 그 애를 구할 수 있나요?] 노승은 싸늘하게 말했다. [힘을 다할 뿐이오.] 진원원은 몸을 똑바로 세우고 눈물을 닦으며 물었다. [어떻게 하죠? 말씀해 보세요? 어떻게 하죠?] [그녀가 간악한 도적놈을 아비로 섬기도록 할 수는 없소.] [그래요, 그래요, 제가 잘못했어요. 저는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 그대의 입장을 생각하지 못했군요. 정말....정말 미안해요.] [알고 있소. 결코 그대를 탓하지 않소. 그러나 그녀의 아비라고 자처하 고 나설 수는 없구려.] 그 목소리는 크지 않았으나 늠름한 위엄이 서려 있었다. 눈앞에 천군만 마가 있다하더라도 일제히 고개를 숙이고 그 명을 받들 것 같았다. 갑 자기 문 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나며 한 사람이 길게 웃음을 터뜨렸다. 곧이어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옛 친구가 곤명에 왕림했으니 본 왕은 크게 영광으로 여기는 바이오!] 바로 오삼계의 음성이었다. 위소보와 진원원은 즉시 안색이 변했다. 노 승의 눈에서 별안간 형형한 안광이 쏟아졌다. 하얀 광채가 번득이는 가 운데 찌익, 하는 소리가 났다. 방문의 휘장이 칼날에 잘려나가고 오삼 계의 싱글벙글 웃는 모습이 드러났다. 곧이어 쾅, 쾅, 하는 소리가 크게 일며 흙먼지와 나뭇조각들이 나는 가 운데 사면의 담과 창문이 커다란 쇠망치에 맞아 깨져 나갔다. 뻥 뚫린 구멍에 여러 명의 위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떤 사람은 화살을 시윗 줄에 먹이고 어떤 사람은 손에 커다란 창을 들고 있었다. 화살과 창은 모두 방 안을 겨누고 있었다. 오삼계가 한마디의 명령만 내리면 방 안 의 세 사람은 삽시간에 고슴도치로 변하고 말 것이다. 오삼계는 호통을 내질렀다. [원원, 이리 나오시오!] 진원원은 잠시 망설이며 한 걸음 내딛다가 우뚝 멈추며 고개를 가로저 었다. [나는 나가지 않겠어요.]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위소보의 어깨를 가볍게 밀며 말했다. [소보, 이번 일은 그대와 아무 상관이 없으니 나가거라.] 위소보는 그녀가 자기를 감싸고 돌자 크게 감동하여 큰소리로 말했다. [나는 나가지 않겠습니다. 제기랄! 오삼계, 그대가 사내라면 나를 죽이 도록 하시오.] 노승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대 두 사람은 나가도록 하시오. 노승은 이십여 년 전 이미 죽었어야 했을 몸이오.] 진원원은 다가가서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 [나는 그대와 함께 죽겠어요.] 위소보는 큰소랴로 말했다. [이모가 의리를 지키는데 이 위소보가 삶을 탐하고 죽음을 두려워할 것 같소? 이모, 나 역시 그대와 함께 죽도록 하겠소.] 오삼계는 오른손을 쳐들며 노갈을 터뜨렸다. [위소보, 너는 반역도와 행동을 함께했다. 내 그대를 죽이고 황상에게 상주한다면 공이 있을 뿐이지 허물은 없을 것이다.] 그는 진원원에게 말했다. [원원, 어째서 이토록 멍청하오? 빨리 나오지 못하겠소?] 진원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위소보가 말했다. [누가 반역도란 말이오? 나는 그대가 좋은 사람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 우는 것임을 알고 있소.] 오삼계는 도리어 웃으며 말했다. [꼬마야, 너는 아직도 이 노화상이 누구인 줄을 모르는구나.] 노승은 날카롭게 외쳤다. [나는 숨기지 않겠다. 나는 바로 성은 이(李), 이름은 자성(自戒) 이라는 사람이다.] 위소보는 깜짝 놀라 말했다. [그대....그대가 바로 이자성?] 노승은 말했다. [그렇다. 소형제, 그대는 나가게. 사내대장부는 자기가 저지른 일에 대 해서는 혼자 책임을 질 뿐일세. 나는 수많은 싸움을 하면서도 칠십 세 넘게 살았네. 나는 그대와 같은 오랑캐의 벼슬아치와 함께 목숨을 잃는 것을 원하지 않네.] 별안간 하얀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가운데 천장 위에서 누군가 뛰어내리 더니 오삼계의 머리 위를 덮쳤다. 오삼계는 한소리 노갈을 터뜨렸다. 그의 등 뒤에 서 있던 네 명의 위사가 장검을 일제히 뻗쳐 하얀 그림자 를 찔러 갔으나 그 사람이 소맷자락을 한번 떨쳐 한 줄기의 세찬 바람 을 몰아내자 네 명의 위사는 층격을 받고 뒤로 밀려났다. 곧이어 그 사 람은 단칼로 오삼계의 등을 내리쳤다. 오삼계는 제대로 서 있지를 못하 고 엎어지고 말았다. 그 사람은 곧이어서 오른손으로 일장을 내리쳤다. 그 일장은 오삼계의 어깻죽지에 적중되었다. 오삼계는 음, 하더니 바닥 에 주저앉았다. 그 사람은 손을 오삼계의 정수리에 갖다대고 사방의 위 사들에게 호통을 내질렀다. [빨리 화살을 쏘아라!] 갑작스럽게 일어난 변고에 위사들은 놀라고 말았다. 왕야가 이미 적의 수중에 들어가 있으니 그 누가 감히 움직일 수 있겠는가? 위소보는 크 게 기뻐서 부르짖었다. [사부님, 사부님!] 지붕 위에서 뛰어내려 오삼계를 제압한 사람은 바로 구난이었다. 그녀 는 위소보의 뒤를 몰래 뒤따라와 지붕 위에서 몸을 숨기고 있었다. 평 서왕부의 수천이나 되는 위사들이 암자를 겹겹이 에워싸자 암자 밖을 지키고 있던 고언초 등은 경솔하게 손을 쓸 수가 없었다. 구난은 처마 아래에 몸을 숨기고 있었기 때문에 위사들이 발견하지못했다. 구난은 차가운 눈초리로 이자성을 노려보며 물었다. [그대가 정말 이자성인가?] [그렇소.] [소문에 들으니까 그대는 구궁산(九宮山)에서 사람들에게 맞아 죽었다 고 하던데 오늘까지 살아 있었군.] 이자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구난이 물었다. [아가는 그대의 딸인가?] 이자성은 한숨을 쉬고 진원원을 한 번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오 삼계는 노해 말했다. [내 이미 알고 있었다. 오직 너 같은 역적만이 그런 딸을 낳을 수....] 구난은 그의 등에 발길질을 하며 욕을 했다. [너희 두 역적은 막상막하, 어느 누가 더 간악한지 모르겠구나.] 이자성은 선장을 들고 한번 꽝! 하니 땅을 굴렀다. 그 바람에 푸른 벽 들이 대뜸 몇 조각으로 쪼개졌다. 그는 호통을 내질렀다. [천한 여승, 감히 나에게 그토록 터무니없는 말을 지껄이다니!] 위소보는 사부가 나타나자 크게 자신이 생겼다. 이자성이 유명하기는 했으나 그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호통을 내질렀다. [그대가 감히 우리 사부님께 무례히 굴어? 살기 싫어졌소? 그대는 본디 역적이 아니오? 우리 사부 어르신은 한번도 잘못 말한 적이 없소....] 별안간 획휙! 하는 소리가 나면서 창밖에서 세 자루의 기다란 창이 날 아들어와 곧장 구난에게로 날아갔다. 구난은 약간 고개를 돌리더니 왼 손의 소멧자락을 한번 떨쳐 이미 두 자루의 기다란 창을 휘말아 바깥 쪽으로 내던지고 오른손으로는 세 번째의 기다란 창을 잡았다. 창밖에서 악, 악, 하는 두 마디의 처참한 비명소리와 함께 두 명의 위 사가 가슴팍을 창날에 꿰뚫려 즉사하고 말았다. 세 번째 긴 창의 날은 어느새 오삼계의 등을 겨누었다. 오삼계는 부르짖었다. [경거망동하지 말아라! 모두 열 걸음 물러서도록 해라!] 위사들은 일제히 대답하고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구난은 냉소했다. [오늘은 정말 재미있군. 이 조그만 방에 천고에 으뜸가는 대역적과 천 고에 으뜸가는 대매국노가 모였으니 말이다.] 와소보는 말했다. [또 있습니다. 천고에 보기 드문 미녀와 천고 제일의 고수가 모여 있지 요.] 구난은 참지 못하고 차갑고 엄숙하던 얼굴에 한줄기 미소를 지으며 말 했다. [무공이 천고 제일이라니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느냐? 너야말로 천고 제일의 꼬마 망나니다.] 위소보는 껄껄 웃었고 진원원 역시 나직이 웃었다. 오삼계와 이자성은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며 이곳에서 빠져나갈 궁리를 했다. 이 두 사람은 모두 한평생 대군을 거느리고 천하를 놓고 싸움을 벌였던 대영웅들이었 다. 한평생 얼마나 어렵고 험난한 일을 겪어 왔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 러나 지금 이 처지에 놓이니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뇌리에 각기 수많은 생각이 떠올랐으나 한 가지도 제대로 써먹을 것이 없었다. 이자 성은 구난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오?] [내가 어떻게 하느냐구? 물론 그대를 친히 죽여야지.] 진원원은 말했다. [이 분 사태께서는 우리 딸 아가의 사부인가요?] 구난은 냉소했다. [그대의 딸은 내가 안아 갔소. 나는 그녀에게 무공을 가르쳤으나 좋은 마음은 품지 않았소. 나는 그녀가 친히 대매국노를 찔러 죽이기를 바랐 소.] 그녀는 왼손에 약간 힘을 주었다. 기다란 창끝이 아래로 떨어지면서 창 끝이 오삼계의 살 속으로 반 치 정도 파고들었다. 오삼계는 참을 수 없 다는 듯 비명소리를 냈다. 진원원은 말했다. [스님, 그는....그는 그대와 평소 안면이 없고 아무런 원한도 없는 사 이가 아니겠습니까?] 구난은 깔깔 웃으며 말했다. [그가....그가 나와 아무런 원한이 없다구? 소보, 너는 그녀에게 내가 누구인지 말해 주어라. 대매국노와 대반적 두 사람이 죽어도 눈을 감을 수 있게 말이다.] 위소보는 말했다. [우리 사부 어르신께서는 바로 대명나라 숭정 황제의 큰공주이신 장평 공주이시오.] 오삼계, 이자성, 진원원 세 사람은 모두 아, 하는 소리를 내고 놀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자성은 껄껄 웃더니 말했다. [하하하, 매우 좋소. 매우 좋아. 내가 과거 그대의 아버님을 핍박해서 죽도록 만들었으니 오늘 그대의 손에 죽는 것은 그야말로 이 대매국노 의 손에 죽는 것보다 백 배 나은 일이외다.] 그는 두 걸음 앞으로 나오더니 선장을 바닥에 푹 꽂았다. 선장의 끝이 바닥으로 한 자 정도 들어갔다. 그는 두 손으로 가슴팍의 옷을 잡고 곽, 찢었다. 옷자락이 찢어지면서 털이 숭숭 난 가슴팍이 드러났다. 그 는 웃으면서 말했다. [공주, 손을 쓰시오. 내가 매국노의 손에 죽지 않고 오히려 대명나라 공주의 손에 목숨을 잃게 되다니, 정말 영광이외다.] 구난은 한평생 이자성을 뼈에 사무치도록 증오했다. 그러나 그가 이미 호북성 구궁산(九宮山) 위에서 죽은 줄 알았고 친히 원수를 갚지 못하 게 되었다고 여기고 있던 참인데 오늘 그가 이 세상에 살아 있다는 사 실을 알게 되니 뜻밖의 기쁨이었다. 그러나 그가 호방하고 시원시원하 게 태연히 죽음을 받아들이려 하고 전혀 두려워하는 빛이 없는 것을 보 니 마음속으로 탄복하지 않을 수 없어 말했다. [귀하는 뛰어난 호걸이군. 나는 먼저 그대의 원수를 죽이고 다시 그대 의 목숨을 빼앗도록 하지. 그대의 원수의 목이 잘리는 것을 보여주면 죽어도 통쾌할 것이 아니겠소?] 이자성은 크게 기뻐서 두 손을 합장하며 말했다. [공주께 감사드립니다. 불초는 정말 고맙게 생각합니다. 내 한평생 커 다란 소원은 바로 친히 이 대매국노가 비명에 죽는 것을 보는 것이었습 니다.] 구난은 오삼계가 창날 아래서 신음소리를 내고 있고 전혀 항거할 힘이 없는 것을 보자 이대로 찔러 죽이고 싶지 않아 이자성에게 말했다. [아예 그대의 소원풀이를 해 드리지. 그대가 직접 죽이시오.] 이자성은 무척 기뻐하였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는 오삼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간적아, 과거 산해관에서 큰 싸움이 벌어졌을 때 네가 오랑캐 군사의 도움을 받았기에 나는 패하였다. 너는 공주에게 사로잡혔는데 내가 이 대로 너를 죽이면 너는 너무 쉽게 죽는 것이다.] 그는 고개를 들고 구난에게 말했다. [공주 전하, 아무쪼록 그를 놓아 주십시오. 나는 이 간적과 목숨을 걸 고 한번 싸워 보겠습니다.] 구난은 기다란 창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누가 누구를 죽이는지 어디 두고 봅시다.] 오삼계는 땅바닥에 웅크려서 신음하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나면서 선장 을 거머쥐고 맹렬히 구난의 허리를 후려쳤다. 구난은 호통을 쳤다. [죽고 사는 것을 모르는 녀석이구나!] 왼손의 기다란 창을 돌려 선장을 내리누르고 내공을 쏟아냈다. 오삼계 는 손과 팔이 시큰거리는 것을 느끼고 선장을 땅바닥에 떨어뜨렸다. 그 순간 기다란 창날 끝은 어느덧 그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오삼계의 무 예가 탁월하지만 구난같이 내공이 심오한 대고수 앞에서는 어린애처럼 일초도 감당할 수 없었다. 오삼계는 안색이 잿빛이 되어 끊임없이 뒤로 물러섰으나 창날 끝은 시종 그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이자성은 몸을 굽혀 선장을 집어들었다. 구난은 창을 오삼계의 손에 쥐 어 주며 말했다. [두 사람이 공평하게 한번 싸워 보시지.] 오삼계는 호통을 내질렀다. [좋소.] 그는 창을 번쩍 치켜들어 이자성을 찔러갔다. 이자성은 선장을 휘둘러 막고 일장을 내리쳤다. 두 사람은 조그만 선방에서 결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구난은 위소보의 옷자락을 잡아당겨 그를 자기 등 뒤에 숨겼다. 기다란 무기에 그가 다 칠까 염려해서였다. 진원원은 선방 한모퉁이로 물러갔다. 얼굴이 창백 해지면서 두 눈을 감았다. 그녀의 뇌리에 과거의 정경이 주마등처럼 스 쳐지나갔다. (내가 명나라의 황궁에 있을 때 숭정 황제는 황혼 무렵에 찾아오셔서 나의 아름다움에 찬탄을 했지. 이튿날까지 황제는 조정으로 나아가 정 사를 돌보지 않고 침실에서 나와 함께 즐기며 나에게 노래를 부르도록 시켰고 황제는 나에게 연지를 발라 주고 눈썹을 그리는 붓으로 나의 눈 썹을 그려 주기도 했다. 그는 나를 귀비로 봉하고 장래 나를 황후로 봉 하겠다고 했지. 그리고 이제부터는 황궁에서 비빈이나 귀인들 가운데 한 사람도 그의 눈에 차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고 했다. 황제는 나이가 매우 젊었으며 나를 보자 매우 흐믓해했다. 그는 황제였지만 나의 마음 속에는 옛날 기녀원으로 놀러 왔던 왕손 공자들과 다를 바 없었지. 사 흘 밤낮으로 나와 함께 있었으며 한 걸음도 떠나려고 하지 않았지. 나 흘째 되는 아침 내가 먼저 깨어났었지. 나는 그때 옆자리 베개 위에 핏 기라고는 한 점도 없는 얼굴이 누워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두 뺨은 움푹 들어가고 잔뜩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는데 잠결에도 그는 무슨 걱 정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지. '이것이 황제인가? 그는 황제가 되었는데도 어찌하여 이토록 즐겁지 못할까?' 이 날 그는 조정으로 정사를 돌보러 나갔다가 정오 무렵에 돌아왔는데 안색은 더욱 더 창백해졌고 더욱 더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나에게 신경질을 부리며 나 때문에 나라 일을 망치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자 기가 여색에 빠진 못난이가 될 수 없다고 했다. 정치를 새롭게 해야겠 다고 하며 황후에게 명하여 즉시 나를 궁에서 내보내도록 했지. 그는 내가 나라를 그르치는 요녀라고 했으며 내가 궁 안에서 사흘을 머무는 동안 역적 이자성이 세 채의 성을 함락했다고 했다. 나는 슬퍼하지도 않았다. 남자들은 모두 똑같은 게지. 어떤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을 때는 여인들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황제는 온종일 근심에 휩싸 여 죽게 될까봐 속으로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그가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자성이라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때 속으로 생각했었지. '이자성은 대 단하구나. 그는 황제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했는데 도대체 그는 어떤 사 람일까?') 진원원은 두 눈을 떴다. 이자성은 선장을 휘두르며 오삼계에게 공격을 가하고 있었다. 오삼계는 재빨리 피하는데 그 몸놀림이 신속했으며 선 장은 시종 그의 몸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진원원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의 솜씨는 여전히 재빠르구나. 이 몇 년 동안 그는 매일 무예를 연 마하고 있었다. 왜냐하면....왜냐하면 그는 군사를 거느리고 북경으로 쳐들어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황궁에서 나온 후 주국장(周國丈) 저택으로 돌아가게 된 일을 생각했다. 어느 날 주국장은 잔치를 크게 열고 손님을 청했다. 그는 그 녀에게 나가서 노래하고 춤을 추며 손님들을 즐겁게 하라고 했다. 그날 밤 오삼계는 처음 그녀를 만났다. 지금도 똑똑히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촛불 아래 정욕으로 이글이글 타는 듯한 오삼계의 눈동자가 술자 리를 사이에 두고 시선을 보내오던 광경이었다. 그와 같은 눈초리는 그 동안 많이 보아왔다. 그와 같은 눈빛을 가진 야수와 같은 남자들은 종 종 그녀에게 달려들어 꼭 끌어안고 그녀의 옷자락을 찢어내곤 했다. 하 지만 그때는 여러 사람들이 주시하고 있는 연회석상이었다. 갑자기 그 녀는 생각했다. (조금 전에 저 꼬마도 나를 보고 그와 같은 눈빛을 드러냈으니 정말 우 스꽝스럽다. 저토록 나이 어린 꼬마도 나를 색기 어린 눈동자로 바라보 았으니, 남자는 모두 다 마찬가지이다. 늙은이도 그렇고 어린애도 그 모양이다.) 그녀는 고개를 들고 위소보를 바라보았다. |
첫댓글 잼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