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미기행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백파 홍성유

우리나라 곳곳에는 숨은 별미들이 많다. 전국 맛집을 찾아 별미기행을 다니며 비밀의 맛을 전해 주던 故 백파 홍성유 선생은 음식점을 하는 이들에게 더없이 반가운 손님이었다. 소설가로, 음식칼럼리스트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백파 홍성유 선생이 남긴 음식에 대한 사랑을 들여다봤다.
글 한상헌 기자 사진 조선일보 DB
● 故 백파 홍성유 선생은 영화 ‘장군의 아들’의 원작 소설가이자 식도락 기행을 즐기는 미식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소설을 쓰는 일 못지않게 별미를 찾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그가 맛본 음식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도 그의 즐거움 중 하나였다.
홍성유 선생이 음식 칼럼을 쓰게 된 계기는 소설가 故 김동리 선생의 권유 때문이었다고 한다. 호호백발이었던 머리를 비유해 ‘백파(伯坡)’라는 호를 직접 지어주었던 김동리 선생은 홍성유 선생에게 “당신이 알고 있는 음식 맛을 우리 문인들도 알자”고 권유해 문예지에 ‘별미기행’을 연재하게 된 것이 첫 시작이다. 그 후 국내 월간지와 일간지에 계속해서 연재를 하면서 무려 30년간 별미기행을 이어왔다. 이런 맛집들이 쌓이고 쌓여 <한국 맛있는 집 1234점>이라는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홍성유 선생은 ‘별미기행’ 취재가 있는 날이면 친구나 문인들을 대동해 아무런 사전 예고 없이 음식점을 찾는다. 음식이 나오고 식사가 어느 정도 진행되면 음식점 사장을 불러 설명을 듣는다. 주 메뉴에서부터 음식의 특징과 규모, 역사 등 세세한 부분까지 확인하고 메모한다. 초창기에는 이런 그의 모습을 보고 식당 비밀 정보를 캐는 이로 오인해 멱살잡이를 당하는 수모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백파 홍성유 선생이 발굴한 맛집 주인들이 백파의 정신을 이어받고자 만든 ‘다담회’의 추향초 부회장은 “돈에 대한 욕심이 없었고, 음식과 사람에 대한 고집이 있던 분이었다”고 백파를 기억했다.
백파 홍성유 선생은 행사나 모임에서 건배 제의를 할 때면 항상 외치는 말이 있다. “즐겁게!”라고 참석자들이 선창을 하면 홍 선생은 “맛있게!”라며 후창을 한다. 이런 건배구호는 아마도 식도락가로서 전국 음식점을 찾아다니며 별미들을 ‘맛있게’ 먹고자 하는 생각이 몸에 밴 자연스러운 습관일 테다.
맛있는 음식점을 소개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백파 홍성유 선생은 대가를 바라지 않고 사심 없이 자신의 소신대로 활동했기 때문에 그가 소개한 음식점들에 신뢰가 간다. 그의 이런 노력은 지금도 소신 있게 음식점을 운영하는 이들에게 자부심과 긍지를 심어주고 있다. 이제 더 이상 그가 추천하는 새로운 별미 음식점을 만날 수는 없지만 그가 남긴 음식에 대한 사랑은 후대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故 백파 홍성유는?
1928년 10월 4일 서울에서 태어나 경동고등학교를 거쳐 1952년 서울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1951년 헌병사령부 기관지 <사정보> 기자·편집장, 1953년 <명랑> 편집장을 거쳐 1957년 한국일보에 장편소설 <비극은 없다>가 당선되어 등단. 대표작으로는 김두한을 중심으로 한국 현대사의 이면을 그린 <장군의 아들>이 있다. 전국 각지의 맛있는 음식점을 소개한 <한국 맛있는 집 1234점>을 발간했다. 그 밖의 저서로 <수평선에 별 지다> <비극은 있다> <정복자> <홍건적> 등이 있다. 2002년 11월 24일 뇌출혈 후유증으로 영면. 대한민국예술원상, 한국문학평론가협회상 등을 받았고 한국펜클럽 이사, 문인협회 이사, 소설가협회장, 예술원회원 등을 지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