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보편적 상징성은 중국 유학을 다녀온 한국의 유학자나 승려 혹은 구도자들의 문학에서 반복되어 나타난다. 고려 말의 보우국사(普愚國師, 1301~1382)는 소나무를 가리켜 초목 가운데 군자(君子)라고 했다. 그는 구름을 머리에 이고 있는 소나무가 휘늘어진 모습에서 자연의 조화와 피안의 세계를 본다고 했다. 내시가 고려 31대 공민왕(恭愍王, 재위 1351~1374)의 명을 받고 소설산으로 보우를 찾아가자 그의 호를 대송(對松)이라 지어 주며, 부처의 공덕을 찬미하는 노래, 즉 게송(偈頌)을 주었다.
산수는 겹겹이 둘렀고 / 구름 얽힌 소나무는 휘늘어져 있구나 / 이에 상대하여 군자가 있으니 / 농서 이씨 이름은 부로구나(重重山水落落雲松於斯相對有君子姓李名퉱쾱西公). 조선시대의 학자이며, 생육신의 한 사람인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은 참된 자아를 찾아 일생 동안 고뇌하고 방랑생활을 한 시인이자 사상가다. 그도 낙락장송에 얽힌 흰 구름을 자주 벗으로 삼았다. 〈고풍(古風)〉이란 제목의 19수 연작시에서 명리(名利)를 벗어난 세상 밖 마음을 이렇게 노래했다.
산중에 무엇이 있는가 / 흰 구름이 낙락장송에 얽혀 있지 / 그저 심상하게 친할 뿐 / 그 자취 따를 수 없다 / 물외의 교분을 맺으니 / 시종 거(ㅒ)와 공(㎎) 같은 관계 / 변하는 것 자못 한가하고 오묘해서 / 마음속을 기쁘게 한다(山中何所有白雲쳄長松只可尋常親不可追其?物外託交契始終如ㅒ㎎變化頗閑妙可以怡心胸). 이 시는 남조(南朝) 때 양(梁)나라의 도사(道士) 도홍경(陶弘景, 452~536)의 「산 속에 무엇이 있느냐고 물은 데 대하여 시를 지어 답하다(詔問山中何所有 賦詩以答)」에서 첫 구절을 따와 그것을 맨 앞에 두고 은둔의 뜻을 토로하는 방식을 취한 연작시 가운데 하나다. 자연에 동화되어 사는 혼자만의 즐거움을 말과 글로써 다 나타내기는 어렵다고 표현했다.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은 도산에 절우사(節友社)를 만들어 송(松)·죽(竹)·국(菊)·매(梅)·연(蓮)을 가꾸면서 이 오절군(五節君)의 고절(苦節)·청분(淸芬)·정결(淨潔)을 사랑했다. 언젠가 〈어린 솔을 심으며〔種松〕〉라는 시를 지어 풍상을 견딜 절조를 기대했다.
초동은 쑥대마냥 천하게 보지만 / 산 늙은이는 계수나무처럼 아낀다네 / 푸른 하늘로 치오르게 되기까지 / 풍상을 몇 번이나 극복할 건가(樵夫賤如蓬山翁惜如桂待得햜靑푑風霜幾나견). 또한 10경(十景) 시 가운데 <눈 오는 밤 솔바람 소리(雪夜松쿂)>를 통해 은둔자가 솔바람 소리로 우주의 영원한 사상을 체득할 때 느낄 잔잔한 기쁨을 상상했다.
흰 땅에 바람이 일어나 밤 기운 찰 때 / 빈 골짝 솔 숲에 송뢰 들리리니 / 주인은 바로 모산의 은사 / 문 닫고 홀로 누워 흔연히 듣겠지(地白風生夜色寒空山竿쿂萬松間主人定是茅山隱臥聽欣然獨掩關). 더구나 찬겨울 솔바람 소리는 자연의 조화음을 넘어 고차원의 세계로 이해되었음을 알 수 있다. 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6~1584)도 사물의 근본에 대해 통찰한 소회(素懷)를 소나무에 빗대어 시어(詩語)로써 표현했다.
찬바람 불어 산에 있는 집을 흔드누나 / 소리는 구름 밖 저 하늘 위에 퍼지고 / 창문을 열고 보니 별과 달이 밝구나 / 소나무를 덮은 눈은 일산같이 되었고 / 태허는 본래 소리가 없는데 / 신령스러운 저 소리는 어디서 나는고(寒濤憾山齋響在雲푑外開門星月明雪上松如蓋太虛本無聲何處生靈쿂). 소나무가 아닌 겨울 나무에 눈이 쌓인들 볼품이 있을 리가 없다. 또한 푸른 솔잎을 스치는 소리가 아니면 신령스러운 소리가 날 리 만무하다. 율곡은 창밖의 겨울 소나무를 보면서 우주〔太虛〕의 참모습을 깨달았고, 신령스러운 솔바람 소리에서 이(理)와 기(氣)의 작용이 하나인 것을 간파했다. 이처럼 한국의 구도적 지성인들에게 소나무의 모습은 절의의 군자로 형상화되었고, 절벽 위에서 사는 소나무의 늘어진 가지에서 피안의 세계를 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