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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과제]-25,26,27,28
(25) 농담 같은 진실(창19:14)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창19:14)
롯의 사위들은 장인의 말을 비웃고 농담으로 여긴 결과 소돔의 불벼락이 떨어져 다 멸망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동성애가 노아 홍수 때도 있었지만 동일하게 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처럼 여겼다. 왜 그랬을까? 나의 원함, 육신의 본성을 따라 살고 싶은 죄인의 본성 때문이고 지금 이 시대도 동일하다.
마지막 대환란 때 동성애와 우상숭배로(자기를 추구하는 삶) 멸망한다고 성경이 말하고 있다. 마지막 대환란이 일어나는 현상은 양식, 기근, 화산폭발, 전쟁 질병이 창궐할 때 사람들의 마음이 가난해져 하나님께 돌아올 것이고 한국 선교사들을 통해 인류를 깨우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추수 작업을 하시는 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성경은 계속해서 말하고 있다. 모세가 바로에게 찾아가 하나님의 백성을 내보내라 했지만 믿지 않아 애굽이 무너졌지만 반대로 그 경고를 듣고 준비한 한 사람이 있는데 애굽 때 바로왕은 요셉을 총리로 세우고 나라 전체를 맡기고 다스려 7년 흉년, 7년 풍년을 통해 자기 백성과 인근 백성까지 살리는 놀라운 역사가 이루어졌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대비한 사람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농담으로 여겼던 사람이 어떻게 다른가 성경을 통해 볼 수 있다.
바른 길이 굽은 길처럼 보이고 긴 것이 짧은 것처럼 보이고 이 세상 사람이 착각 속에서 산다. 착각 속에서 벗어나게 하시려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이고 네가 누구냐? 깨우쳐주신다. 예수님 만난 사람은 죄인임을 깨닫고 죄인이기 때문에 이제까지 잘못된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산 것에 대한 회개를 하고 욥처럼 참된 지혜는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자기를 낮추게 하신다. 자기의 연약함과 주인됨을 인정하시는 것이 참된 지혜다.
현재의 환란과 재앙의 징조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 처럼 여기고 무지한 말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분의 말씀을 우습게 여기고 예수님의 재림을 비웃은 세대들이 회개하며 주님께 돌아와야 한다.
기도하는 사람, 성령 충만한 사람, 말씀을 지켜 행할 때 하나님의 위로와 보호와 가르치심이 아름답게 임한다. 온 세계가 한국을 바라본다. 한국은 열방에 복음을 전하며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야 한다.
강의를 들으면서~~
나는 하나님 말씀을 어떻게 듣고 있는가? 듣기는 듣지만 믿음과 결부 시키지 못하고 있는 영역이 얼마나 있는가? 듣고 순종 할 수 있는 것에만 순종하고 있지는 않은지 나를 돌아보게 하시면서 욥처럼 나는 죄인임을 회개하고 주님의 사랑과 긍휼을 구한다. 노아처럼 내 힘이 아닌 주님의 말씀을 생명으로 잡고 순종하며 보이지 않지만 반드시 이 땅의 다음세대와 이 백성을 구원하실 주님의 열심과 열정을 바라보며 부르신 곳에서 기도와 말씀으로 살아야함을 다시 일깨워 주심에 감사하다. 귀한 강의 감사합니다.
(26) 여호와의 사자(창22: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여호와의 사자가 누구냐? 영어로 천사 히브리어로 말라크 성경에서 천사는 하나님의 사자 하나님의 심부름꾼 모리아 산에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서 재물을 받으시고 얍복강에서 축복할 때 사자로 나타나셨다.
신약 스데반의 설교 천사로 나타남. 바울에게도 천사들이 나타남.
구약은 천사의 무대로 신약은 예수의 무대로 구약은 율법으로 다스리고 신약은 예수님이 사람의 모양으로 오셔서 우리를 인도하고 대속하셨다.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여호와의 사자가 단순히 심부름꾼 천사인지 아니면 다른 존재인지에 대해 신학자 사이에서 논쟁이 있다고 말한다.
어린 아이의 천사는 예수님이 말씀하시되 어린아이를 보호하는 개념으로 말하고 있다. 우리를 위험해서 건지시고 보호하는 역할로 돕는 천사다.
야곱으로 살 것인가? 이스라엘로 살 것인가? 야호와의 사자는 창세기 22장 32장은 그분이 하나님이었다. 어떤 하나님이냐?
예수님이었으며 예수님은 크리스마스때 오신 것이 아니고 예수님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오셔서 대화하고 복을 주셨다. 창세기 14장 멜기세덱은 하나님의 아들이었고 예수님이었다. 예수님이 하나님 사자의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하나님의 권세로 처리하셨다. 하나님의 사자가 하나님이었다.
예수님을 섬기되 입술로만 섬기는 자가 되지 말고 오늘도 우리를 직접 찾아오셔서 만나주시는 주님과 깊은 사귐을 갖어야 한다.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뿐 아니라 인격적으로 그분을 만나고 삶으로 증거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
행1:8절 처럼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 땅끝까지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고 전하는 게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
무엇을 전하느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우리의 사명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분의 부활, 십자가의 구원을 온전히 전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고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며 세상적 메시지에서 벗어나, “예수가 그리스도다”를 전해야 한다.(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
화려한 언어가 아닌 살아계신 예수님을 증거해야 한다. 임마누엘로 매 순간 그분을 만나야 그 분을 전할 수 있다.
엘리야 시대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천명을 남겨두신 것처럼 오늘도 무릎 꿇지 않는 사람, 비 진리에 무릎 꿇지 않는 사람, 거짓에게 협박 공갈에 굴하지 않고 말씀을 굳게 붙들고 타협하지 않는 한 ㅜ사람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일하신다.
강의들으면서~~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온전히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며 사신 것처럼 살고 있나 돌아보게 된다.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은 설교 기도를 했는지, 하나님만 인정해주는 설교와 기도였는지 생각하며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음을 회개한다.
복음의 증인 된 삶은 매일의 삶 속에서 크고 작든 주님께 묻고 코람데오의 삶이어야 하고 매순간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이어야 한다.
십자가의 대속과 부활과 사랑의 섬김으로 이 땅에서 살아야 함을 깨닫게 하시며 삶으로의 전도자가 되어야 겠다는 결심을 한다. 귀한 강의 감사합니다.
(27) 거룩한 그루터기 (사6:9-13)
하나님을 잘 섬기던 웃시야 왕이 죽자 이사야는 나라의 장래를 염려하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다. 기도 중 하나님의 영광을 목격한 이사야는 자신의 죄를 깨닫고 두려움에 떨지만 스랍천사 중 하나가 재단 숯불을 가져와 그의 입에 대며 죄가 사해졌음을 알려준다.
하나님께서 “누가 우리를 위해 갈 꼬?” 물으시자? 이사야는 “제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보내 주시옵소서”라고 대답을 한다.
이사야를 보내시면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백성들이 진리를 마주하고 고침을 받을까 봐 오히려 마음을 닫고 두려워하기 때문임을 강조한다. 하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은 마태복음13장의 씨뿌리는 비유와 연결되며 당시 백성들이 말씀을 듣고 변화되는 것을 거부하는 강팍한 현실을 드러낸다.
이사야는 왜 자신을 보내시는지 혹은 어떻게 하면 백성이 변화될 수 있는지 묻는 대신 ”주여 어느 때까지입니까?“라고 묻는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황폐한 곳이 많아질 때까지 그 심판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배임을 당해도 그루터기가 남아 있듯이 모든 것이 황폐해 보이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남겨두신 거룩한 씨가 있음을 말씀하시며 새로운 시작의 희망을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며 무엇보다 주님을 사랑하라고 가르쳤지만.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이 성도들의 귀를 솔깃하게 하려고 지옥이나, 심판, 죄에 대한 경고는 배제한 채 기복적인 신앙에 치우쳐 있어서 삶의 어려움이 닥치면 쉽게 하나님을 원망하고 교회를 떠나 버리고 진정한 믿음의 뿌리가 내리지 못한 채 겉모습만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이다. 급격한 성장과 맞물려 한국 교회가 기적과 부흥을 경험했으나 시련이나 고난이 찾아오면 축풍 낙엽처럼 신앙이 흔들리는 오늘날의 상황이다.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는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천명을 남겨두신 것처럼 하나님의 진실한 일꾼들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항상 존재하고 있다. 북한이나 중국과 같이 신앙을 핍박하는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지하 교회를 통해 진짜 믿음의 사람들이 있고,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보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하나님을 섬기는 진정한 신앙의 뿌리, 남은 자를 통해 일하고 계신다,
마지막 때에도 하나님은 세상의 유혹에 휩쓸리지 않는 ‘거룩한 그루터기’ ‘남은 자’를 남겨두시며 이들을 통해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것을 약속하신다. 이는 유대인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세상이 어두워질수록 더욱 새벽을 깨워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스스로를 무장하여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일꾼이 되어야 한다.
강의를 들으면서~~
마지막 때 일수록 더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여 이사야의 고백처럼 ”어느 때까지 입니까?“라는 질문으로 주님 앞에 서야 함을 깨닫게 하신다.
보여지는 상황 앞에서 내가 먼저 낙심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으로 나갔던 것을 회개하며 황폐한 이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디스카운트 하지 않고 말씀을 말씀대로 전할 것을 결정한다. 마지막 때 사람에게 칭찬 받기보다는 주님께만 귀하게 쓰임받기를 소망하며 시간을 쪼개 더 말씀을 읽고 기도로 이 곳에 남은자(그루터기)로 설 것을 결정하며 귀한 강의 감사합니다.
(28)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에 있니까?(창22:7)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 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이삭이 아브라함에게 번제 할 어린양이 어디 있냐고 묻는데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친히 어린 양을 예비할 것이라고 아들을 안심시킨다. 흥부 놀부전 제사를 비유하며 오늘날 형식적으로만 예배를 드리며 진정한 헌신을 드리지 않는 현대 신앙인의 모습과 똑같다.
예수님이 과부의 두 렙돈을 칭찬하신 것은 자신의 전부를 드렸기 때문이다.
이삭의 질문 아버지여, 번제 할 어린양은 어디에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아브라함도 어린양을 찾았을 것이다. 로마서 12장 말씀처럼 하나님 앞에 산 제사로 나를 얼마나 드리고 있나? 나는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내가 재물이 되어 있는가?이다.
첫째-지금도 하나님은 어린양을 찾고 계신다. 형식적인 예배가 아닌 하나님이 찾으시는 진정한 재물이 되어야 한다.
둘째-어린양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나 자신이 재물임을 깨닫지 못하면 신앙의 본질을 놓치고 하나님의 말씀에 끊임없이 의심하고 비판을 갖게 된다. 나 자신을 먼저 드려야 한다.
마지막때 어린양과 같은 영적 일꾼을 찾고 계신다. 사사기 11장 입다의 딸 이야기이다. 승리의 소식을 듣고 무남독녀 딸이 춤을 추며 나왔다. 입다의 딸이 아버지의 서원 소식을 듣고 자신의 목숨을 아까워 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이 베푸신 승리와 큰 구원에 대한 감사였다. 이삭도 자기의 생명에 대한 애착보다는 나의 삶의 주관자가 하나님임을 깨달았기에 드릴 수 있었다. 두 인물의 공통점은 내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를 말씀해 주고 있다.
하나님이 마지막 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재물이 되라고 하신다. 헛된 욕심이나 세상의 흐름에 끌려다니는 삶이 아닌 하나님이 받으시는 영광스러운 재물이 되라고 하신다. 하나님이 아벨처럼 순교자를 받으신 것처럼 순교자의 반열에 들어 갈 수 있도록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거룩한 재물로 살아가라고 하신다.
강의를 들으면서 ~`
어린양 되신 예수그리스도만을 생각했지 내가 어린양이 되어 삶 가운데 재물로 산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나에게 많은 울림과 주님 앞에 회개하며 내가 입다의 딸처럼 기쁨으로 매일의 삶 가운데 순교자의 삶을 살아가야 함을 알게 하심에 감사하다. 오합지졸 같은 나를 강의를 들으면서 다시 헌신에 대하여 깨닫게 하시고 나를 정검하며 마지막 때 주님의 부르심에 온전한 재물이 되어 살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결단한다. 귀한 강의 감사하며 계속해서 저를 깨워주심에 감사드립니다.
8월과제-29.30.31.32
(29)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마27:20-26)
예수님을 누가 죽였습니까?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떤가요? 본문에서 누구라고 말합니까?
내가 만약 사람을 죽였다 하면 잊어버릴 수 있을까요? 내가 정말 예수님을 죽였다면 우리의 삶은 달라질 것이다. 본문에선 유대인들, 장로들, 대제사장이 예수님을 죽였다라고 한다. 빌라도는 어떻게 하든지 살려주려고 애를 썼다. 진짜로 예수님을 죽이려 했고 했던 사람들은 따로 있다. 왜 빌라도는 예수님을 살려주려고 애를 쓴 그 사람에게 이 사람이 죽였다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사도신경을 하지 않으면 당신에게 다른 신앙고백이 있는가?
신앙고백은 하나나님께 나아가는 예배자가 자신이 무엇을 믿는지 명확히 고백하는 것이 예배의 본질이다,
병자를 고칠 때 믿음을 확인했던 예수님의 고백은 예배의 진정성을 확립하는 필수 전제 조건이다. 진정한 신앙고백은 지식에 머물지 않고 실제 삶의 변화로 이어진다.
예수님의 죽음을 나의 죄로 인해 발생한 사건으로 깊이 받아들이고 예수의 죽음을 내 몸에 짊어지고 사는 것이 올바른 고백의 실천이다.
신앙고백은 내가 누구를 믿고 기도하는지에 대한 방향의 키 역할을 하며 응답을 확신하는 믿음의 고백이 담긴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는 바른 기도이다.
레위기 제사법 중 속죄제를 통해 예수님의 죽음이 가지는 대속의 의미를 설명한다. 특히 온 회중이 죄를 지었을 때 장로가 재물을 죽이는 법을 언급하며 예수님께서 유대인뿐 아니라 온 인류 이방인을 포함해 죄를 대속하기 위해 이방인 통치자인 빌라도의 손을 거쳐 십자가에 달리셔야 했다.
유대인들에게는 예수님을 처형할 권한이 없으며 오직 로마 총독인 빌라도만이 사형을 집행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정치적 법적인 책임은 빌라도에게만 있었다.
만약 유대인 장로들만이 예수님을 죽였다면 예수님은 유대인만을 위한 제물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방인 통치자 정치적 지도자인 빌라도가 유대인 장로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사형을 집행하므로 예수님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모든 이방인을 포함한 온 인류의 죄를 담당하는 제물이 될 수 있었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는 고백을 통해 단순히 빌라도는 인물에 대한 역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고난이 나의 죄 때문에 발생했다는 사실을 깊이 묵상하게 한다. 이 고백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사는 삶으로 변화되어야 하고 예수님의 생명을 나타내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 신앙고백은 단순한 텍스트 암기가 아니라 나의 죄를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그 믿음을 바탕으로 삶의 변화로 나가야 한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자신의 삶이 살기 위해 타인의 희생을 요구하지만 예수님은 스스로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대신 죽음을 선택하셨다. 예수님의 희생적인 사랑을 기억하며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닌 주님을 향한 깊은 감사와 그분의 대속적 은혜를 깊이 새겨야 한다. 빌라도의 재판 과정에서 예수님은 억울한 상황과 사람들의 압박 속에서도 묵묵히 그 모든 죄의 무게를 짊어지셨다. 이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보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 주는 순종의 태도였다. 우리의 삶 속에서 겪는 고난을 주님의 뜻 안에서 받아들일 자세가 필요하다. 사도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우리는 예수의 죽음을 자신의 몸에 짊어지고 살아야 한다. 단순히 고난주간에 지식적으로 묵상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예수님의 죽음의 의미를 자신의 삶 속에서 실제적으로 구현해야 한다.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질 때 비로소 예수님의 생명 또한 우리에게 나타나게 된다. 고난주간이 단순히 슬퍼하는 기간이 아니라 옛사람을 버리고 예수님의 생명으로 변화되어 새 사람으로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삶을 살기로 결단하는 변화의 시간이 되어야 한다.
강의를 들으면서~
”예수님을 누가 죽였습니까? “저요“라고 대답을 했지만 뒤에 따라오는 질문 앞에 나를 돌아보게 하신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이유를 물을 때 살인현장에서 범인에게 경찰이 묻는 것처럼 나에게 물을 때 나는 또박또박 대답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정말 내 죄 때문에 죽으셨고 부활하시고 나에게 예수생명으로 살게 하신 것이 나에게 지식이 아닌 내 깊은 내면에서 전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면 지금의 나의 삶은 어떻게 변화되어 있어야 하고 매일의 삶에 감사가 흘러야 한다. 얼마나 부분적이고 일시적인 삶의 모습들이 있는지 돌아보게 하신다. 나와 함께 죽고 나와 함께 산 예수의 생명으로 날마다 변화되어 주님 한 분 만을 더 섬기며 살길 소망하며 귀한 강의를 통해 계속해서 나를 돌아 볼 수 있는 은혜에 감사합니다.
(30) 너는 천만인의 어머니가 되어라(창24:60)
리브가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머니가 될지어다 네 씨로 그 원수의 성 문을 얻게 할지어다
오빠인 라반이 리브가를 시집보내면서 그에게 축복해 주시는 말씀이다.
성경에서는 어른들이 다음 세대를 축복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다룬다. 축복의 특징은 윗사람이 축복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히브리서 7장에 보면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축복해 주었다. 남에게 축복해 주는 사람은 높은 사람이 되는 거고 남에게 축복해 줄지 모르는 사람은 낮은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늘 겸손한 마음으로 은혜를 사모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의 놀라우신 구원과 생명의 역사가 우리의 가운데 일어나게 될 것이다.
”너는 천만인의 어머니가 될 찌어다“. 많은 자손들을 낳으라고 얘기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시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에게 하시는 말씀이 너의 자손이 저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아지게 될 것이다. 너는 열국의 아버지가 될 것이고 아브라함으로부터 많은 민족들이 갈라져 나왔다.
여자에 대해서도 많은 민족의 어머니가 되어라. 하나님의 약속은 처음 천천히 이루어져서 처음에는 안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는데 오랜 시간을 거쳐서 엄청나게 나타나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약속을 우리가 확실하게 믿고 말씀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계시록 2장, 3장 보면 각 교회에 끝에 하나님께서 이기는 자에게는 내가 상을 주겠다고 말씀하셨고 우리는 반드시 이기는 사람이 돼야 한다. 마귀의 유혹을 이기고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살아가는 거룩하고 복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잠언 31:10-31절까지 말씀은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서 얻겠느냐. 그 값은 진주보다 귀하니라 설명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랑이고 우리는 신부된 교회다. 우리가 교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것은 신부의 지체가 되어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께서 신부에게 요구하는 것은 정결하고 순수해야 되고 신랑만 뜨겁게 사랑해야 하며 이 세상 헛된 걸 사랑하고 거기에 속아 넘어가면 안 된다. 우리 신랑 예수님만 진심으로 사랑하고 주님 말씀 안에서 승리하는 삶이어야 한다.
리브가의 일생을 보면 천만인의 어머니라고 하는 것은 처음부터 자손을 많이 낳아서 된 것이 아니고 진실한 한 사람을 낳은 것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고 은혜로 살고 예수님을 마음으로 섬기고 살아갈 때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을 다 받게 되고 그 복이 우리를 통해서 우리 모든 믿는 사람들과 모든 후손들에게 전파 되어 아름다운 역사를 바라보면서 우리 남은 삶은 새롭게 할 수 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주님을 사랑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살고 성령 충만함을 받아 진리로 주님과 동행하는 기쁨과 감사를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뤄나가야 한다
강의를 들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은 변개함이 없으시고 보여지는 열매에 연연하기 보다는 그 말씀을 하나님의 때에 이루시는 그 분을 믿고 의지하며 부르신 자리에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말씀과 기도로 서 있어야 겠다. 순간순간 사단에게 속아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 사람들을 축복하며 다시 오시겠다 약속하신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거룩하고 정결한 신부로 날마다 영적 선순환을 이루며 천만인의 어머니로 살아야 겠다. 말씀을 들으며 힘을 얻게 됨에 감사하고 귀한 강의 감사드립니다.~~
(31) 더 좋은 부활을 받고자(히브리서 11:35-37)
예수님은 부활하셨다. 죽지 않으면 부활은 없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우리 앞에 남아 있는 것은 죽음이고 그 다음에는 부활이 찾아오는 것이다. 더 좋은 부활을 받아야 한다. 전도서7:4절 말씀을 보면 지혜로운 자의 마음은 어느 집에 가 있는가?를 설명한다. 어리석은 자의 마음은 혼인 집에 가 있고 지혜로운 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가 있다. 내가 남은 날이 얼마인지 생각해보고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아가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씀하신다.
두 개의 부활에서 중요한 세 가지를 소개한다.
첫째:요한복음 5장:25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말씀하신다. 두 가지 부활로 어떤 사람은 심판의 부활로 어떤 사람은 생명의 부활로 나온다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 부활을 받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고 깨닫는 사람이 복된 사람이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5장의 비유로 열처녀, 달란트, 양과 염소의 비유를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세 가지 비유는 주님이 오실 때 둘로 나눠지되는데 지혜로운 처녀냐? 미련한 처녀냐? 한 달란트 받은 종이냐? 두 달란트, 5달란트 받은 종이냐? 어떤 종이냐에 따라서 달라지며,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달란트를 받은 사람으로 그 달란트 받은 대로 어떻게 하나님 앞에 충성하고 있느냐? 이것이 중요하다. 남은 인생을 하나님 앞에 충성하며 기쁨으로 갈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한다. 셋째 양과 염소의 비유로 마지막 때 심판 날에 양과 염소를 다 불러놓고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고 말씀하신다.
오른편에 있는 양은 주님이 배고프고 목마르고 병들었을 때 돌봐주었고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라고 칭찬하지만, 정 반대 왼편 염소 편에 서 있는 사람에게는 책망하신다. 그 이유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나에게 하지 않은 것인데 악한 짓을 해서가 아니고 마땅히 해야 될 선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예수님을 믿는다면서 마땅히 내가 해야 될 일이 있는데 그것을 제대로 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하나님 보실 때 악하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는 고난 가운데 있는 사람이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 그것을 외면한다면 심판의 부활로 간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어떻게 하면 선한 일에 힘쓰고, 하나님의 복음 전하는 일에 힘쓰며, 내 주변에 어려운 사람이 있다면 도와주라고 말씀하시는데 물질로 도와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어여 한다.
하나님께서 만나를 내려주셨던 것은 배부르고 건강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만나를 통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깨우쳐 주기 위한 것인데 광야의 백성들은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불평 원망 자기 욕심대로 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사람이 하나님의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다운 땅에 들어 갈 수 있다.
둘째-계시록 20장에서 예수님의 재림과 천년왕국과 성도들이 누릴 첫째 부활에 대해 설명한다. 마귀를 잡아가고 무정갱에 가둔다. 무전갱이라는 말은 밑바닥이 없는 구덩이다. 이 땅에서 거룩하게 살고 하나님 잘 섬기고 예수님을 기쁘게 하며 살던 성도들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가장 먼저 참여하게 되는 첫째 부활을 의미한다. 공중에서 들림 받아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과 함께 이 땅에 내려와 천 년 동안 왕노릇하며 다스리는 권세를 얻게 된다.
첫째 부활이 거룩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영광스러운 부활이며 우리가 남은 생을 거룩하고 충성되게 살아가야 할 목표이다.
대 환란 때에는 기근, 물 부족, 전쟁, 자연재해, 질병, 영적미혹으로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나타나는 현상으로 주님의 재림이 가까워 짐을 말하고 있다.
셋째-죽은 나사로의 집에 찾아가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하시면서 예수님 자신이 곧 부활이고 생명의 근원이라고 말씀하신다. 마르다는 마지막 날에 모든 인류가 다 부활 할 것을 믿는다고 고백했다.
부활의 생명을 가진 자는 세상의 질병, 의식주 문제, 가난 환란 속에서도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으며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담대한 마음으로 주님이 약속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나아가야 한다.
부활의 생명이 무엇인가를 마음에 깊이 새기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하며,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이런 사람이 되라고 성령을 부어 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내려주시고 날마다 믿음으로 새롭게 하고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셔서 악한 길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진리와 생명의 길로 달려갈 수 있도록 역사하고 계신다.
강의를 들으면서!~~
나는 어떤 부활에 참여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양과 염소의 비유처럼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한 일에 참여하고 있는지 아니면 내가 원하는 사역을 하며 하나님을 이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며 주님이 원하시는 선한 일이 무엇인지 매 순간 주님께 물으며 이 땅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보여지는 환경에 침몰되지 않도록 늘 깨어서 말씀과 기도로 겸비해야 겠다. 깨어있지 않으면 거짓 선지자로 설 수 있음을 마음에 새기며 더 좋은 부활을 꿈꾸며 날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며 부활의 생명을 가진 자 답게 살아가야 하겠다. 오늘도 주님을 향한 더 절박한 마음으로 설 수 있는 은혜를 구하며 나아간다.
귀한 강의 듣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32) 야곱의 꿈 (창세기28:12-15)
12:꿈에 본 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13: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니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잇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우리 성경을 보면 꿈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요셉이 꿈을 꾸고 바로의 꿈을 해석해 주고 감옥에 갇혀 있던 사형수 갑자기 그 나라에 총리가 되었고, 바벨론으로 잡혀 갔던 다니엘이 왕의 꿈을 해석해서 그 나라의 높은 지위에 올라 가는 절대 권력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또 신약에서는 요셉이 예수님 낳기 전에 꿈꾼 이야기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빌라도의 아내가 꿈을 꾼 이야기들이 있다.
오순절 날 성령이 강림하실 때도 마찬가지였다. 성령 충만함을 받고 사람들이 방언을 하기 시작하고 거기에 모였던 무리들이 베드로의 환상을 통하여 요엘 선지자을 통해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질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하나님은 노인에게는 꿈을, 젊은이에게는 환상을 주시며 우리가 내일을 향한 비전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품고 성경에 나타난 요셉과 다니엘처럼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아름다운 축복을 주신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가리켜서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고 족장이라고 말씀하신다. 족장들이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우리에게 아주 귀한 교훈과 양식이 된다.
예수님을 믿을 때에 반드시 꿈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꿈을 잃어버린 사람은 소망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고 꿈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고 영광스러운 사람이 된다. 우리가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성경은 노인들이 꿈을 꾼다고 한다. 아름다운 꿈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며 아름다운 꿈을 주세요라고 하나님 앞에 구하며 나가야 한다.
꿈을 꾼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과 교통하는 꿈을 꾸어야 하고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인물들이 살아간 것처럼 우리의 삶이 새롭게 변화 받아 은혜의 역사가 일어나야 하겠다.
형 에서를 피해 도망간 야곱은 외갓집으로 가면서 광야에서 돌을 베개 삼아 잠을 자던 중 하늘에 닿은 사닥다리와 그 곳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천사들 그리고 그 꼭대기에 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꿈을 꾼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그가 누운 땅을 자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신다.
야곱이 성경에서 보면 본즉, 또 본즉 또 본즉 세 번이 나오고 있다. 사닥다리의 꿈을 꾼 건데 첫째:처음 보았을 때는 사닥다리만 보았다. 사닥다리가 땅에서부터 저 하늘 꼭대기까지 닿는 긴 사닥다리를 보았고 그다음 또 본즉 그곳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모습이었다. 세번째로 또 본즉 그때는 그 꼭대기 하나님이 계시더라. 그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너의 아비 이삭의 하나님, 내가 네가 누워 있는 그 땅을 너와 너의 조상들에게 줄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엄청난 약속을 주시고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하신 말씀을 야곱이 받은 것이다. 우리에게도 이런 꿈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민이라면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그리고 야곱에게한 약속을 동일하게 받아야 한다. 받지도 않고 받았다고 믿는 사람이 아니고 실제로 이런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고 이 약속 위에 서서 살아가야 한다.
지금은 나그네로 고향을 떠나서 살아가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너를 다시 고향에 돌아오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시며 야곱도 하나님의 말씀에 응답해서 세 가지를 약속한다
야곱은 이 약속을 할 뿐 아니라 그 약속을 그대로 지켰던 사람이다. 우리는 이것을 기억해야 한다.
첫째- 하나님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우리 조부 아브라함이 섬기던 그 하나님이 나의 아비 이삭이 섬기던 그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셔서 나도 그 하나님을 정성껏 진심으로 섬기겠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무조건 순종해서 떠나라고 하면 떠나고, 내쫓으라 했을 때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았고, 받치라 했을 때 자기의 독생자 이삭을 하나님께 드렸고, 절대 순종의 사람으로서 살았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말로만 섬기고 입술로만 섬기고 실제 행위에 있어서는 순종하지 않고 다 내 마음대로, 내 생각대로 하나님을 섬기는게 아니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잘 섬기는 아름다운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
이삭을 드리라고 명령한 것은 아버지한테 했는데 그 말을 듣고 거절하지 않고 그 말씀에 순종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나는 순종하겠습니다. 나를 한 마리 어린 양이 되겠습니다. 내 생명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하나님 나를 받아 주시옵소서. 라는 고백으로 헌신의 삶으로 나갔다.
전도서 12장 1절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해라. 하나님의 말씀하시다.
그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나는 너의 조부 하나님이고 이삭 아비의 하나님 이제 내가 너의 하나님이 되기 위해서 너를 찾아왔다고 말씀하신다. 너는 나를 하나님으로 잘 섬기겠느냐고 물으신다. 야곱은 즉각적으로 대답한다. 하나님만이 나의 하나님 되겠습니다. 나는 다른 우상을 섬기지 않고 거짓된 신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내 할아버지 내 아버지가 섬겼던 그 하나님을 나도 잘 섬기는 사람이 되겠다고 하나님께 약속한 것이다.
둘째- 자신의 모든 소득에 십일조를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약속한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물질의 십일조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십일조를 하나님 앞에 잘 드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하나님 앞에 드릴 줄 아는 사람이 의와 인과 신도 함께 드릴 수 있으며 물질의 십일조를 드리지 못하는 사람은 더 중요한 것도 드릴 수 없다. 마지막 날 심판 때 주님 앞에 설 때 나는 그거 몰라서 드리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다. 성경에 분명히 기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십일조는 단순히 물질을 드리는 행위를 넘어 자신의 모든 소득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신앙의 표현이다. 하나님께 약속한 것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 신앙의 기본이고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마음과 헌신의 구체적인 행동으로 증명하는 신앙의 결단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야곱은 베개로 삼고 잠을 잤던 돌을 세우고 거기다 기름을 붓고 이것이 하나님의 전이 되겠습니다하며 자신이 잠자던 곳을 하나님의 전으로 삼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야곱은 그 장소가 단순히 머물던 ‘루스’라는 곳을 넘어 하나님이 계시는 거룩한 곳이며 하나님과 하늘이 연결되어 있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며 그 곳을 ‘하나님의 집(하나님의 전)‘이자 ‘하늘의 문‘이라고 고백하며 그곳의 이름을 ‘베델’이라고 지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전에 있는 사람이고 하늘의 문에 이르는 사람이다. 하나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진리 가운데 살아가게 될 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모든 약속을 다 이루어 주셨고, 야곱도 하나님과 약속한 것을 철저하게 지켰고 많은 어려움 가운데도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세상을 승리했다.
인생의 어려움 속에서도 야곱처럼 하나님을 신뢰하고 약속을 지키며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고 승리하시겠다는 것이다.
강의를 들으면서~~
하나님이 주신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나의 노력과 최선, 열심이 아닌 약속하신 분이 살아게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이 땅의 영혼을 사랑하시며 구원하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열심히 이 일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기 때문이다. 꿈을 잃어 버린자가 아닌 꿈을 실현하는자로 살아가야 겠다. 그렇기 위해서는 야곱이 하나님께 약속한 3가지를 나도 철처하게 지킬 수 있도록 날마다 주님의 은혜를 구하며 말씀과 기도로 서야겠다.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다~~’.찬양의 고백이 나의 고백되어 아브라함처럼 절대순종으로 ”떠나라“, ”쫒아내라” ”받쳐라(드려라)”하실 때 즉각적인 순종으로 나아갈 것을 결정한다.
“네 마음이 있는 곳에 네 보물이 있다”하신 말씀처럼 내 마음이 항상 주님을 향해 있기를 소망하며 나의 최고의 보물이 예수님이여서 감사하다. 귀한 강의를 통해 나를 돌아보게 하시고 다시 주님 앞에 겸비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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