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츠 2회
그러고 보니 유달리 올 들어서 장인이나 장모나 아니 처갓집 식구들은 그를 만나거나 전화라도
하게 되면 그 말을 잊지 않고 했다. 가족들이 회의라도 하고 결의한 것처럼 말이다.
그는 천천히 걸어 아내의 무덤 앞에 가서 섰다. 이미 제를 지낼 준비가 다 되어 있었다. 제를 지
낸다고 특별한 의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술 한 잔 올리고 절이나 하면 되는.
그는 문득 생각한다. 분명 여기서도 장인과 장모 그리고 처제는 자신에게 아내에 대한 기억을
접어두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럴 생각이 없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말이다.
“자식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말끝을 맺지 못하고 훌쩍이는 장모의 숙인 고개가 흔들리고 있다.
“자식! 없는 것이 다행이지. 자식 있으면 저 사람에게 큰 짐이 되었을 테고…….”
장인의 목소리가 무덤덤하게 들린다.
빈 잔이 그의 눈앞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 잔을 채우는 처제의 손이 조금은 흔들리고 있었다.
아마 오늘로서 그와의 모든 관계가 끝나는 것이라는 마음의 결정 탓일 것이다.
그는 아직도 처갓집과의 관계 단절을 생각하지 않고 있는데 그들은 이미 그들끼리 마음의 벽을
쌓은 것 같은 느낌이다. 작년과는 또 다른. 아니 지난 번 추석 때 찾아갔을 때. 아니 그 전 구정에
찾아 갔을 때부터 그들이 그에게 주는 느낌은 조금씩 그 온도가 내려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긴 그도 가끔은, 그리고 직원들과 회식이라도 하고 술이 어느 정도 취했을 때에는 여자를 그리
워했었다. 아니 적당히 취하면 그 밤은 그에게 지옥과 같은 밤이 되곤 했었다.
“이제 자네는 다시 여기 오지 말게, 아니! 여기도 그렇고 우리 집에도 오지 말게.”
단호한 음성으로 말하는 장인의 목소리는 조금 떨리고 있었다. 그것은 사위의 장래를 걱정하는,
사위도 자식이라고 생각하는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2
그가 부동산의 전화를 받고 아파트 현관을 나설 때 가을비가 후드득 쏟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우
산을 준비하지 않은 그는 그리 멀지 않은 아파트 입구의 상가 한 쪽에 있는 부동산 사무실까지 비
를 맞고 갔다. 그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부동산 사장이 그의 비 맞은 모습을 보고는 수건
을 건네준다. 아파트 상가의 부동산은 두 곳이었지만 그가 그의 아파트를 내 놓은 곳은 조금은
뚱뚱하다고 느껴지는, 여성스러움 보다는 호탕한 남성적인 성격이 더 드러나는 여사장의 부동산
이었다. 그가 수건을 받아들고 대충 머리를 닦으며 돌아보니 소파에 두 중년의 남녀가 앉아 있다
가 그가 바라보자 일어나 고개를 숙인다.
“이 분이예요. 사장님 아파트”
그는 여사장의 말을 들으면서 그들을 자세히 쳐다본다. 오십 중반이 넘어 보이는 남자는 머리가
반이나 빠져있었고 조금은 약해 보이는 몸이었으나 부인은 거의 같은 나이에 안경을 쓰고 날카
롭게 보이는 여자였다. 그도 그들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차는?”
“커피요.”
그는 쉽게 그의 입에서 나오는 대로 커피를 부탁한다. 하긴 요즈음에는 이온음료나 과일 음료를
많이 마신다고는 하지만 그는 늘 커피였다. 습관적인. 그가 커피를 부탁하자 상대 부부도 커피라
고 말한다. 사장은 곧 돌아서서 일회용 커피를 종이컵에 붓고 정수기의 온수를 받은 후 커피 봉지
로 휘 저어 그들 앞에 내려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