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동전의 원본은 발견되지 않았고 후대의 여러 이본(異本)만 존재하며, 원본이 한문이나 한글로 쓰였다는 기
이 남아 있지 않은 관계로 최초의 한글 소설인가에 대한 의문은 남아 있다. 즉, 원본이 한문본일 가능성이 존재
하는 것이다.
비슷한 케이스로 소설 설공찬전의 경우, 원본은 왕명으로 모두 불태워져 전하지 않고 다른 책의 이면에 필사된 국문 번역본이 1997년에 발견된 바 있다[4].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에 '설공찬전이 언문(한글)으로 번역되어 전파되면서 민중을 미혹시킨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서 설공찬전의 원본은 한문본임이 명확하다. 허균은 엄처사전(嚴處士傳)·손곡산인전(蓀谷山人傳)·장산인
전(張山人傳)·남궁선생전(南宮先生傳)·장생전(蔣生傳)과 같은 한문 소설을 여러 편 지은 바 있고 또 당대의 사회
상으로 본다면 홍길동전도 이렇게 한문으로 지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참고로, 홍길동전의 한문본은 유일하게 '위도왕전(韋島王傳)'이 전하는데 이는 국문본을 번역한 것이다.
2019년 4월 24일, 이윤석 전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에 따르면 한문 홍길동전을 찾아냈으며, "한글 홍길동전
전 교수는 '홍길동전'의 작자는 허균이 아니다라는 책에서 이미 홍길동전을 허균작품이라고 보기 어려운 근거
이와 같은 이유로 허균이 시간여행자가 아닌 이상은 홍길동전의 저자로 보기 어렵다는 견해를 내놓았었다.
다만 홍길동전이 시간이 지나면서 민간에서 구전되어오는 과정에서 글이 추가되거나 소실되면서 다른 내용을
후대 사람이 넣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으므로 이윤석 교수의 의견만으로 허균이 홍길동전의 저자가 아니라고
단정하긴 어렵다. 애초에 허균의 주요 문집인 성소부부고도 허균 본인이 역모로 죽고 나서 외손 이필진(李必進)
이 편찬하는 과정에서 내용이 바뀌었을 가능성도 제시되는 상황에서 허균의 작품이라고 전해지는 홍길동전도
있는 그대로 전해졌을 가능성은 전무하다.
이밖에도 학계에서는 허균항목에도 보듯이 허균은 한문에 능한 문장가인 데다 홍길동전을 제외하면 한글로 남 긴 글이 없다. 다른 글들을 모두 한문으로 남겼는데 홍길동전만 한글로 남길 이유가 있냐는것과 허균 작가설의
근거가 뒷대의 사람인 이식(1584~1647)이 쓴 '택당집'에 등장하는 "허균은 '수호전'을 본떠서 홍길동전을 지었
다"라는 문장 하나뿐이라 근거가 빈약하다는 것이다.
다만 한문으로 쓴 홍길동전을 후대 사람들이 한글로 옮긴 것일수도 있으므로 허균이 한글로 썼다고 여길 필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