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사후 순조 임금부터 심상치 않은 농민봉기들이 전국 곳곳에서 일어난다. 그 배경을 자연적 환경에서 찾아보자. 세계적으로 1815년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이 폭발한다. 이 기간에 유럽과 아메리카에서는 한여름에 눈과 서리가 내렸다. 조선에서도 기후변화가 일어났다. 한여름의 기온이 평년보다 훨씬 낮았다. 곡식이 제대로 익지 못했다. 결국 굶주리는 백성들이 늘아나고 탐관오리들의 부정부패로 농민봉기가 일어나게 된다.
순조의 장남 효명세자는 정조의 개혁정신을 이어받아 강력한 왕권을 세우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이른 나이에 숨을 거둔다. 효명세자의 아내 신정왕후는 남편의 뜻을 이어받아 흥선대원군을 통해 개혁정치를 실현해 간다. 경복궁 중건, 세도정치의 핵심기구인 비변사 혁파 등은 신정왕후와 흥선대원군의 합작품이었다.
반봉건 반외세를 목표로 삼남지방을 중심으로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다. 양반 유생들이 조직한 민보군, 보부상들이 중심이 된 단체들은 동학농민군의 이동 경로를 일본군에게 제공한다. 가슴 아픈 역사의 단면이다. 동학농민운동의 계기가 되었던 탐관오리 고부군수 조병갑은 나중에 재임용되어 고등법원 판사까지 출세한다. 1898년 동학 교주 최시형에게 사형 판결을 내린 사람도 조병갑이다. 친일파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친일파 이완용 외에 이하영이라는 사람이 있다. 알렌의 요리사였다가 통역사로 변신한다. 과거에 합격하지도 않았지만 고종의 주치의였던 알렌과 궁궐에 출입하면서 관직을 얻게 되었고 결국 나라를 팔아먹는 외무대신이 된다.
가쓰라-태프트 조약은 을사늑약의 단초가 되었다. 미국은 필리핀을, 일본은 한반도를 지배하겠다는 서로의 이익이 맞아 조선의 문제를 그들끼리 처리해 나갔다. 이해관계가 얽힌, 힘과 힘의 긴장감이 분명히 존재하는 외교 세계에서 조선은 이용만 당한 꼴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한반도 문제를 둘러싸고 중국과 미국, 일본은 나름대로 자신들의 손익관계를 계산하며 외교 전략을 세우고 있다. 정확한 역사인식과 현명한 외교 감각을 지닌 지도자가 필요한 시기이다.
대한제국 초대황제였던 고종의 평가를 새로운 차원에서 해 보자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자주 독립국가를 세우기 위해 헤이그특사파견, 독립자금조성, 국방력 강화 등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다가 강제퇴위 당한 고종 황제의 모습을 다각적인 측면에서 연구할 필요성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