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자의 권력 외 1편
김사리
낡은 나무의자 넷, 길거리에 나왔다
공원 입구 벤치에 앉아
오가는 사람을 품평하는 노인들처럼
눈빛만은 끈적끈적 살아있다
깨진 화분처럼 버려진 의자들
주저앉기 전까진 다리가 유일한 버팀목이다
차지한 면적만큼의 힘
주차금지의 권력을 쥐고 임무 수행중이다
네 다리에 균등하게 힘을 주는 의자
작대기나 지팡이처럼 한 곳에만 집중되는 힘은
의자의 진정한 권력이 아니다
그들만의 폴리스라인
저지선을 피해 가는 주차는 큰소리가 나지 않는다
누군가를 받아 안던 의자들이
이제 밀어내는 일에 익숙해졌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에서 생긴 여유로움으로
이제 지나가는 구름이나 끌어 앉힌다
삐걱거리는 제 목소리를 감추고 태연히 서있는
의자의 새로운 습관이 자주 목격된다
독거노인의 하소연을 받아내기엔 이제 어림없다
누구도 앉지 못하는 의자
이것이 진정한 권력이라고
어떤 바퀴가 굴러 와도 꼼짝 않고 버틴다
낙과落果
당신은 해가 낳은 아이
공중의 매듭을 풀고 날아오르려 했죠
그러나 젖은 날개로는 날 수 없어
그만 공중을 바닥에 내려놓았어요
지상은 기어 다니는 낮은 자들의 것
벌레들 떼 지어 달려들었죠
일몰은 하루 한 차례
식어가는 체온을 재고 갔어요
장대비 퍼붓던 날,
야위어만 가던 당신은
뼈만 남은 자신의 한계와 맞닥뜨렸어요
호두알처럼 단단하고 주름진 뼈를 감추는 나라에서
뼈를 그대로 드러낸 당신,
과감하게 落을 선택하였죠
쪼글쪼글 늙어가는 시간은 치욕이 아닙니다
날마다 조금씩 낡아가는 마음으로
매듭을 풀고 높이 날아오를 거예요
해의 나라에서 달의 나라를 찾아가는 중입니다
달이 모양을 바꾸는 것처럼
조금씩 무른 살을 버리고
~2014년 시와사상으로 등단
카페 게시글
―···시산맥시회 회원시
나무의자의 권력 외 1편 ~김사리 (2015년 월간 <우리시>8월호 )
김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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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8.05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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