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 후율당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의병장인 조헌(1544~1592)이 보은 현감을 사임하고 옥천에 낙향하여 살 때 지은 조선시대 사당이다. 스승인 이이를 경모하여 그의 뒤를 잇는다는 뜻으로 자기 호를 이이의 호인 율곡에서 율자를 따서 후율이라고 지었다. 그리고 용촌 밤티〔栗峙〕에 당을 짓고 당의 이름을 후율당이라고 하였다. 조헌은 이이와 성혼에게서 수학하였으며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후율당에서 의병을 일으켜 1,700여 명을 규합하여 영규대사의 승병과 함께 청주를 수복하는 공을 세웠다. 그러나 그 후 금산싸움에서 700명의 의병과 함께 순국하였다. 후율당도 임진왜란 후 퇴락되어 가던 것을 1854년(철종 5)에 후손들이 옥천군 백양동에 이건하였고 1864년(고종 1)에 지금의 위치로 옮겼으며, 1977년 중건하였다. 후율당 내에는 1621년(광해군 13)에 판간한 항의신편 판목 125장과 유림시판 10장, 선조가 내렸다는 조서 1장이 보존되어 있다. 경내에는 금산에서 그를 대신하여 죽으려 했던 아들 완기의 효자각이 있다.
옥천군 안남면사무소에서 한반도지형전망대를 올랐다.
전망대로 오르는 산은 둔주봉이다. 둔주봉은 산세가 험하지 않고 온 산에 소나무 숲이 우거져서 산림욕 겸 산책하기에 좋은 산이라고 한다. 전망대로 오르는 길은 그리 높지 않은 산인데도 불구하고 가파르게 느껴졌다. 한반도 지형을 볼 수 있는 둔주봉은 해발 384m로 정상에서 보면 넓은 들판과 멀리 옥천 읍내까지 볼 수 있다고 한다. 둔주봉 주위로 금강 본류가 휘돌아 감싸며 흐르고 있으며 정상에 오르기 전인 전망대(275m)까지 올랐다.
둔주봉 정자에서 보이는 한반도 지형은 동서가 반전된 지형으로 색다르다. 이 지형의 길이는 실제 한반도를 축소하고 동, 서가 바뀐 모습이다. 한반도 좌우 반전 모습이 보이는 풍경으로 앞에 있는 반사경을 통하여 보면 온전히 한반도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오래전부터 지역 사진작가들에게만 알려져 있던 안남면의 숨은 명소라고 한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둔주봉 정자에 앉아 이야기하며 한반도 지형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한반도 지형을 사진에 담으며 강물을 바라보았다. 탁 트인 시야가 가슴에 후련하게 다가왔다.
돌아오는 길, 옥천의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한 안도현 시인의 시가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너에게 묻는다/안도현)
● 시인 안도현이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1994)’에 발표한 시로, 짧은 시행 속에서 인정이 메말라 버린 현대인들에게 반성과 각성을 촉구하는 작품이다. 시의 청자 ‘너’는 특정한 인물이 아닌,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