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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장수를 영웅으로 키우지 못한 사람들
한국에서 한 20년 간을 산, 한 저명한 미국인이 교육자 모임에 초청되어 강연을 한 일이 있었다. 그는 이야기 첫머리에서, 한국 교과서와 미국 교과서의 차이점이 무엇이겠느냐고 하면서 운을 뗀 뒤에, 스스로 답하기를 ‘영웅의 차이’라고 간단히 말하였다. 미국 교과서에는 많은 영웅의 이야기가 살려 있는데, 한국 교과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 아이들에게 영웅의 이름을 열거해 보라고 하면, 단번에 20여 명의 영웅을 드는데 비해, 한국 학생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기껏해야 ‘이순신, 을지문덕……’하다 만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여 년 남짓한 역사를 가진 미국에는 그렇게 영웅이 많은데,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우리나라는 왜 그리 영웅이 적을까? 그것은 한말로 말하여 잘못된 교육이 빚어낸 결과다. 우리는 영웅을 만들어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고 연방이 해체되고, 분리된 나라끼리 전쟁이 일어났을 때 일이다. 여기에 참전한 미국의 조종사 한 사람이, 비행기가 격추됨으로써 실종되었는데, 한 달인가 후에 구출된 적이 있었다. 그가 미국으로 돌아오자, 그 날을 영웅의 날로 선포하고, 대통령은 그를 영웅으로 치켜 올렸다.
또 미국 금융을 대표하는 큰 건물이 테러로 인하여 폭파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때, 아프가니스탄 북부에서 적의 교란 활동을 벌리던 씨 아이 에이(CIA) 요원 한 사람이 최초로 전사하자, 그를 영웅으로 올려 세웠다.
이러한 사례는 유럽도 마찬가지여서, 프랑스에서는 2차 대전을 전후하여, 자기 나라를 위하여 희생한 레지스땅스들은, 그 공적이 아주 미미하더라도 그 곳에 기념비를 세우고, 그 공적을 높이 받들어 영웅시하고 있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는 이런 면에 너무나 인색한 것 같다. 우리에게도 어찌 이런 영웅이 없겠는가? 찾으면 수없이 많을 것이다. 다만 영웅을 만들려는 마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나라 설화 중에서 가장 안타까운 이야기를 고르라고 하면, ‘아기장수 이야기’를 든다. 장수를 만들지 못하고 죽여 버리는 우리들의 슬픈 이야기 말이다. 그 줄거리를 잠깐 보자.
옛날 어느 곳에 평민이 살았는데, 산의 정기를 받아서 겨드랑이에 날개가 있고, 태어나자마자 이내 날아다니고 힘도 센 장수 아들을 기적적으로 낳았다. 그런데 부모는 그 아기장수가 크면, 장차 역적이 되어서 집안을 망칠 것이라 해서, 아기장수를 돌로 눌러 죽였다. 아기장수가 죽을 때에 유언으로, 콩 닷 섬과 팥 닷 섬을 같이 묻어 달라고 하였다.
얼마 후, 관군이 와서 이 아기 장수를 내 놓으라고 하여, 이미 부모가 죽었다고 하니, 그들은 무덤을 가리켜 달라고 하였다. 부모는 무덤을 가리켜 주었다. 그들이 아기장수의 무덤에 가 서 파 보니, 콩은 말이 되고 팥은 군사가 되어, 아기장수가 막 일어나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관군은 아기장수를 다시 죽였다. 그런 후, 아기장수를 태울 용마가 용소(龍沼)에서 나와서, 주인을 찾아 울며 헤매다 용소에 빠져 죽었다.
기존의 썩은 질서를 뒤엎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구세주를 기다리는 민중들의 간절하고 안타까운 염원이 그 속에 배어 있다. 그러나 민중들의 간절한 소망은 관군으로 대변되는 기득권 세력의 무참한 살육으로 좌절되고 만다. 백성을 짓밟는 탐관오리들을 비롯한 지배계급을 고발하려는 의도가 이야기 전편에 깔려 있다.
아기장수와 같이 출중한 능력과 지혜를 갖고 있으면 그것을 키워 주기는커녕 후환을 두렵게 여겨 압살해 버리는 못난 세태를 고발하고 있다. 더구나 아기장수를 고발하는 주체가 그의 부모라는 데서 우리는 잘못된 시대상의 질곡상태가 얼마나 깊이 박혀 있는가를 엿볼 수가 있다. 아기장수 이야기는 영웅감을 키우기는 고사하고 싹을 잘라버리는 우리들의 못난 습성을 고발하는, 안타깝기 짝이 없는 이야기다.
이러한 아기장수 전설이 언제 생겨났는지는 알 수 없으나,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겨드랑이에 깃이 달린 장수에 대한 기록이 있고, 조선읍지(朝鮮邑誌) 강릉 고적 조에는 아기장수 전설과 흡사한 이야기가 나타난 것으로 보아 그 연원은 매우 오래임을 알 수 있다. 아기장수의 모티프가 조선시대의 반체제적 인물 전설과 결부되거나 조선 후기 정감록과 같은 진인(眞人) 출현설과도 닿아 있어서, 이 전설이 조선 중기와 후기에는 크게 유포되었음을 알 수 있다.
가난하고 비천한 집안에서 비범한 능력을 지니고 태어난 탓에 그 부모 또는 관군에 의해 비극적 죽음을 당한 이 아기장수에 관한 설화는 여러 지방에 퍼져 있는데, 그 형태는 조금씩 다르다. 그 중 몇 가지를 더 살펴보기로 하자.
철마산의 원래 이름은 천마산이었다. 옛날 이 산 속에는 양 어깨에 날개가 달린 천마가 살았다. 그러나 그 모습을 사람들에게 가깝게 내 보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산 아랫마을에는 이야기가 돌았다.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근처에 영웅이 태어나고 그 말을 타고 출정할 것이라는 신령스러운 이야기였다.
조선 중기 산 아랫마을에 선량한 부부가 살았다. 남편은 건강하고 착했으며 아내도 부지런하고 얌전하여 사람들의 칭송을 받는 부부였으나, 결혼 10년이 넘도록 아기가 없었다. 어느 날 밤 아내는 말이 힘차게 달려오는 꿈을 꾸고 아기를 갖게 되었다.
“새벽에 길몽을 꿨어요. 아기를 가지려나 봐요.”
꿈 내용을 들은 남편은 얼굴에 기쁨이 가득했다.
“태몽이면 얼마나 좋겠소?”
열 달이 지난 뒤 남자 아기를 낳았다. 아기는 눈이 부리부리하고 총명해 보였으며 어깨도 넓었다. 그리고 열흘 만에 걸었으며 한 달 만에 뛰어다녔다. 백일이 되자 맷돌을 번쩍번쩍 들어올렸다. 몸도 민첩해서 방바닥에서 벽을 타고 달려 올라가 천장을 타고 뛰다가 반대편 벽을 타고 뛰어내려 왔다. 초가지붕 위로 휙휙 날아올랐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천마산 꼭대기로 달려 올라가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은 경탄하여 말했다.
“아. 우리 마을에서 전설처럼 정말 아기장수가 태어났구나.”
아기장수가 태어났다는 소식은 관아에까지 전해졌다. 고을 사또는 몸소 마을로 와서 아기를 보고 얼굴이 험하게 일그러졌다. 아기장수가 나오면 역적이 되어 나라를 해친다는 속설 때문이었다. 그는 아기의 친척 중 나이가 든 어른에게 말하였다.
“아기를 광에 가두어라. 애를 조정에 보고하면 명령이 내려올 것이다.”
사또가 돌아간 뒤 아기장수의 부모는 아기를 광에 가두고 눈물로 시간을 보냈다. 며칠 뒤 아기장수를 죽이기 위해 서울에서 관군이 내려온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아기의 부모와 아기, 그리고 친척까지 모두 죽일 것이라는 소문도 들려왔다. 아기장수의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아기야, 나를 용서해라. 네가 관군에게 잡혀 죽고 일가가 몰살당하느니 너의 한 목숨을 내가 끊는 게 낫다.”
아기장수는 눈물로 애원했다.
“저를 묻을 때 콩 다섯 섬과 팥 다섯 섬을 같이 묻어 주세요.”
아버지는 아기장수를 다듬잇돌로 눌러 죽이고 땅에 묻으며 콩과 팥을 함께 묻었다. 다음 날 관군이 도착했다. 관군 장수는 그간의 사정을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라의 후환을 없애고 우리 관군의 수고를 덜어 주었으니 잘한 일이로다. 무덤으로 나를 안내하라.”
관군이 무덤에 이르렀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아기장수가 살아 있고 아기와 함께 묻은 콩은 군사가 되고, 팥은 군마가 되어 막 아기장수를 호위하여 일어나려는 것이었다. 관군 장수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엇 진압하라. 어서 저 역절들을 죽여라.”
아기장수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왜 나를 역적이라 하십니까? 머지않아 조국에 쳐들어올 적군을 맞아 싸우다 죽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관군은 칼을 내리쳐 아기장수를 죽였다. 마을 사람들은 아기장수 부모를 붙잡고 눈물을 흘렸다.
“아기장수를 죽이다니 나라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거예요.”
“그래요 하늘이 벌을 내릴 거예요.”
그때 천마산 골짜기에서 천마의 울음소리가 하늘을 흔들며 들려왔다. 천마가 힘차게 날개를 휘저으며 날아와 아기장수의 무덤 위를 선회했다. 천마는 한나절 동안 그렇게 하늘을 날며 슬피 울다가 땅으로 떨어져 죽었다. 마을 사람들은 아기장수의 무덤 옆에 천마를 묻어 주었다.
몇 해 뒤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왜군이 쳐들어왔다. 조선의 군대는 왜군을 당하지 못해 수많은 목숨과 조선의 강토가 그들의 발굽에 짓밟혔다. 사람들은 탄식했다. 아기장수가 살아 있었다면 천마를 타고 날아다니며 왜적으로부터 나라를 지켰을 것이라고.
이와는 좀 다르게 아기장수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적시되어 있는 이야기도 있다. 우투리 설화가 그 하나다. 이 우투리 설화에는 지배계층이 이성계로 되어 있다. 이는 아마도 이성계의 쿠데타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당시 민중들의 생각이 담겨 있는 듯하다.
가난하게 사는 집안에 지리산 산신이 점지한 아기가 억새로 탯줄을 자르고 태어났다. 아기는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려서 천장으로 날아오르는 등 비범한 능력을 보여서, 이름을 우투리라고 불렀다. 우투리는 콩․팥 등의 곡식을 가지고 바위 속에 들어가 새 나라를 세우고자 수련을 하였다.
이때 이성계가 왕이 되기 위하여 산신들에게 제사를 지내려고 팔도를 돌아다녔다. 한 소금 장수가 이성계가 지낸 제사가 부정하여 산신들이 받지 않았다는 나무들의 대화를 듣고, 이성계에게 이를 알려 제사를 다시 지내게 하였다.
다른 산신들은 이성계가 왕이 되는 것을 찬성하였는데, 지리산 산신은 우투리가 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를 알게 된 이성계는 우투리 어머니를 찾아가 거짓 혼인을 하였다.
우투리 어머니는, 남편이 된 이성계가 끈질기게 우투리의 종적을 캐묻자, 그를 믿고 우투리가 있는 곳을 일러 주었다. 이성계는 이제 때가 되어 용마를 타고 막 일어나려는 우투리와 그의 군사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그 뒤 왕이 된 이성계는 지리산 산신을 귀양 보냈다.
설화와 전설은 우리들의 마음을 실어 놓은 이야기다.
그러면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 설화를 만들어 가고 있을까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현대의 아기장수를 죽이고 있지는 않은가? 오늘날의 관군과 이성계는 과연 없을까?
현대의 관군은 국민의 삶을 억누르는 독재자만을 가리키는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선량한 일반 서민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뜨리는 일부 상류층의 몰지각한 무리들이 더 큰 관군이라 할 수 있다. 병역 기피자. 비리 축재자, 세금 탈루자, 서민을 딛고 특권을 구가하는 권력자, 국민의 뜻이라며 거짓말하는 정치꾼,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으려고 갖은 기교를 부리는 모리배 등이 바로 백성을 죽이는 현대판 관군이 아니겠는가.
이제 아기장수를 죽이는 일은 없어야겠다. 아니 아기장수를 많이 찾아 큰 장수로 키워 나가야 한다. 그러면 우리 주위에 흩어져 있는 아기장수를 한 번 살펴보자.
1995년 6월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당시, 매몰 11일 만에 구조됐던 최명석이라는 대학생이 있었다. 그는 당시 백화점 1층 수입 아동 신발 코너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매몰되었는데, 무너진 건물 더미 속에서 종이 상자를 뜯어먹으며 230여 시간을 버티다, 극적으로 구조된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였다. 그는 구조된 후에도, 정신적 후유증을 전혀 보이지 않았음은 물론, 끝까지 밝은 표정을 잃지 않는 강건함을 보여 주었다.
그 후, 그는 모 회사가 병역 혜택을 주는 특례 보충역으로 편입되는 산업 기능 요원으로 선발하겠다고 제의했으나, 그 제의를 마다하고 해병대에 입대했었다. 고생을 사서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삼풍 사고가 내게 또 다른 생명을 주었다.’면서,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극기심과 용기를 더 배우기 위해 해병대를 지원하겠다.’고 말하였다.
영웅이 따로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이 영웅이 아니고 무엇인가?
2016년 9월 9일 새벽 4시경에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있는 5층짜리 건물에 큰 불이 났다. 여자 친구의 이별 통보에 분노한 20대 남성이 홧김에 지른 불이었다.
불이 나자 이 건물 4층에 살던 안치범(28세) 씨는 탈출한 뒤 119에 신고하고 다시 연기로 가득 찬 건물로 뛰어들었다. 불이 난 사실을 모른 채 잠든 다른 주민들을 깨우기 위해서였다. 그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문을 두드려 사람들을 깨웠다.
안 씨의 이웃들은 경찰에서 “새벽에 자고 있는데 초인종 소리가 들려 잠에서 깼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며 ‘나오세요’라고 외쳐 탈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안 씨 덕분에 원룸 21개가 있는 이 건물에서 사망자는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안 씨는 건물 5층 옥상 입구 부근에서 유독 가스에 질식해 쓰러진 채 발견됐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열흘 뒤에 사망했다.
이런 사람이 바로 영웅이다. 찾고 받들지 않아서 그렇지 우리 주위에는 지금도 수많은 아기장수가 태어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일회성으로 흘려버리고 잊어버린다면, 그것이 바로 아기장수를 죽이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작은 듯하지만, 너무나 큰 이런 영웅들의 이야기를 교과서에 실어서 그에게 날개를 달아 준다면, 그 날갯짓에 힘입어 제2, 제3의 새로운 많은 영웅들이 줄줄이 생겨날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되뇌고 싶다. 인제 우리 다시는 아기장수를 죽이지 말자.
첫댓글 잘 알겠습니다. 절대로 죽이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