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서예[3309]사가정28, 葵花(규화)
‘접시꽃’(葵花·규화)
서거정(徐居正·1420~1488)
붉은 꽃 한창일 때 흰 꽃 반 쯤 피고
(紅爛開時白半開·홍란개시백반개)
쟁반보다 크고 술잔보다 작기도 하네.
(大於盤面小於不·대어반면소어불)
시내에 뿌리 두고 해를 향해 기우는 모양 아름다우니
(憐渠本有傾陽懇·연거본유경양간)
일반 꽃들과는 그 자질이 다르다네.
(浪蘂浮花不是才·낭예부화불시재)
위 시는 서거정(徐居正·1420~1488)의 ‘접시꽃’(葵花·규화)으로
그의 문집인 ‘사가집(四佳集)’ 권28에 들어있다.
요즘 접시꽃이 한창 피어난다.
서거정이 접시꽃 모양과 특성 등을 잘 짚은 작품이다.
접시꽃은 붉은색·분홍색·흰색 등 색상이 다양하다.
첫 구를 보면 접시꽃 색에 대해 묘사한다.
붉은 꽃이 흰색보다 빨리 피는 것으로 읊었다.
관찰력이 예리하다. 둘째 구에서는 크기에 관해 읊었다
어떤 것은 쟁반보다 크고, 어떤 것은 술잔보다 작다.
접시꽃 종류나 햇볕을 받는 위치 등에 따라서도
꽃잎 크기가 다를 수 있다.
셋째 구에서는 접시꽃 속성을 읊는다.
해를 따라다니며 피는 특성을 그렸다.
이런 특성은 임금을 향한 충성심을 뜻한다.
그리하여 흔히 신하의 그런 마음을 ‘규심(葵心)’이라 한다.
결구인 넷째 구에서는 그 자질에 대해 읊었다.
사가시집 제28권 / 시류(詩類)
四佳詩集卷之二十八○第十六 / 詩類
葵花
紅爛開時白半開。大於盤面小於柸。
憐渠本有傾陽懇。浪蘂浮花不是才。
규화(葵花)
붉은 꽃 만발할 때 흰 꽃 또한 절반인데 / 紅爛開時白半開
쟁반보다 크기도 하고 술그릇보다 작구나 / 大於盤面小於杯
그에겐 경양의 충심 있는 게 어여뻐라 / 憐渠本有傾陽懇
평범한 화초들과는 자질이 다르고말고 / 浪蘂浮花不是才
[주-D001] 그에겐 …… 어여뻐라 :
경양(傾陽)은 해바라기가 항상 태양을 향하여 기우는 것을 가리키는데,
흔히 군왕에 대한 일편단심의 충성 또는
장상(長上)의 덕을 앙모(仰慕)하는 정성을 비유하므로 이른 말이다.
ⓒ 한국고전번역원 | 임정기 (역) | 2006
접시꽃
접시꽃은 아욱과에 속하는 두해살이풀로 중국 서부지역이 원산이기 때문에
지명을 따서 촉규(蜀葵)ㆍ융규(戎葵)ㆍ오규(吳葵)ㆍ호규(胡葵)라고 부르며
그 꽃의 색이 붉기 때문에 홍규(紅葵)라고 부른다.
조선 초기에는 이두로는 황촉화(黃蜀花), 일일화(一日花)라고 불렀으며,
동의보감에는 일일화(一日花)로 되어 있다.
이 외에도 덕두화(德頭花), 층층화(層層花), 접중화, 단오금 등으로 불린다.
뿌리는 촉기근(蜀其根), 촉규근(蜀葵根), 호규근(胡葵根), 씨는 촉규자(蜀葵子),
꽃은 촉규화(蜀葵花), 줄기와 잎을 촉규(蜀葵)라고 한다.
관상용과 약용으로 이용된다. 꽃은 그늘에 말려서 사용하고
잎과 뿌리는 햇볕에 말려서 쓴다. 약으로 쓸 때는 탕으로 하거나
환제 또는 산제로 하여 사용하며, 술을 담기도 한다.
높이는 약 1~3m까지 크게 자란다.
줄기는 곧추서며 가지가 갈라지지 않는다.
잎은 손바닥 모양으로 5~7갈래로 갈라지며 가장자리는 톱니 모양이다.
6~8월경 흰색에서 진한 빨간색까지 다양한 색의 꽃이 핀다.
가장 많은 색상은 흰색, 분홍색, 빨간색이다.
꽃은 줄기 윗부분 잎겨드랑이에서 1~2개씩 핀다. 크기는 지름 5~10cm 정도다.
꽃잎 5개가 나선형으로 붙으며 꽃잎 끝이 물결 모양인 경우가 많다.
꽃잎이 겹으로 풍성하게 피어나는 일부 품종은 ‘겹접시꽃(Double hollyhock)’이라
부르기도 한다. 꽃 중앙에 많은 수술이 모여 수술대를 이룬다.
암술대는 한 개로 끝이 갈라진다. 9월경 둥글고 편평한 분과가 달려 익는데
심피가 수레바퀴처럼 되어 있다.
접시꽃[蜀葵]은 한자문화권인 한국과 중국에서는 임금에 대한 충성의
대표적 상징으로 쓰인다. 중국의 삼국시대 위(魏)나라 조식(曹植)의 상소문인
「구통친친표(求通親親表)」에 “해바라기가 잎사귀를 기울이는 것과 같나니,
태양이 그쪽으로 방향을 돌려 비춰 주지 않더라도,
태양을 향하는 것은 해바라기의 정성이다.
[若葵藿之傾葉 太陽雖不爲之回光 然向之者誠也]”에서 유래한 것으로
일편단심의 충성을 비유한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충심으로 따르는 것을
규곽(葵藿)이라고 하며, 신하가 임금에 대해 자신의 정성과 마음을 낮추는 것을
경곽(傾藿), 경양(傾陽), 규경(葵傾)이라고 하며 이러한 마음을 임금을 향한
신하의 마음을 규심(葵心), 규화심(葵花心), 하찮은 신하의 정심을
규곽지성(葵藿之誠), 규성(葵誠), 규곽지침(葵藿之忱), 규침(葵忱)이라고 표현하였다.
해바라기처럼 임금을 바라보는 미천한 마음이라는 의미로 규곽미정(葵藿微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해바라기꽃이 태양을 쳐다보는 것처럼,
신하가 임금에게 충성하는 것을 말할 때 규화향양(葵花向陽) 또는
규곽향일(葵藿向日)이라고 표현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은 글에는
‘정성을 모두 쏟아 해바라기처럼 임금에게 충성하리’라는 느낌의 글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불충한 신하에 대해서는
‘해바라기만도 못한 사람’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한국문집총간에서 접시꽃에 대해 언급한 글이 300여 개이며,
제목에 접시꽃이 포함된 것은 10개로 모두 시(詩)이다.
정온(鄭蘊)의 동계집에는 「시든 해바라기를 읊다」, 「해바라기에게 묻다」,
서거정의 사가시집의 「붉은 해바라기」, 「하얀 해바라기」,
안정복의 순암선생문집「서리가 내려 나뭇잎이 다 지고 없는데
해바라기꽃 한 가지가 뜰가 국화 떨기 속에서 꽃을 피우고 있기에
그것을 보고 감회를 읊다[霜後木葉盡脫 庭畔葵花一枝在菊叢中放開一花 有感而吟] 병자년」, 권근의 양촌선생문집「해바라기를 사랑하여 읊다.」, 「해바라기를 슬퍼하여 읊다.」, 李荇의 용재집「율정거사(栗亭居士)에게 부쳐 벽도(碧桃)와 해바라기를 달라고 청하다.」, 김성일의 학봉속집「오산이 꺾인 해바라기를 읊은 시의 운을 차운하다.」, 권호문(權好文)의 송암집「뜰의 해바라기를 읊다〔詠庭葵〕」 등이 있는데, 제목은 다른지만 내용은 모두 임금에 대한 충성을 읊은 것으로 대동소이이다.
# 최치원의 고운집에는 접시꽃[蜀葵花]의 대한 특징을 잘 묘사되어 있다.
적막하여라 묵정밭 가까운 곳에 / 寂寞荒田側
여린 가지 무겁게 다닥다닥 핀 꽃 / 繁花壓柔枝
향기는 매우를 거쳐 시들해지고 / 香經梅雨歇
그림자는 맥풍을 띠고서 기우뚱 / 影帶麥風欹
거마를 타신 어느 분이 감상하리오 / 車馬誰見賞
그저 벌과 나비만 와서 엿볼 따름 / 蜂蝶徒相窺
출신이 천해서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터에 / 自慙生地賤
사람의 버림받는다고 원망을 또 하리오 / 堪恨人棄遺
최치원은 이 시를 통해 신라시대에 핀 접시꽃의 생태에 대해 상세하고 소개하고 있다. 접시꽃은 환경에 구애받지 않으며, 꽃이 마디마다 피기 때문에 층층화라는 이름이 생겼다는 사실과, 이 꽃의 개화기가 장마철인 양력 6월~7월이라는 점, 여름의 훈훈한 바람이 불면 줄기가 스러지는 것, 고운 색깔에 비해 지채 높은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잡초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도 엿볼 수 있다. 최치원은 접시꽃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자신과 같은 처지의 접시꽃을 위로하고 있다.
서거정의 사가시집「규화(葵花)」에는 쟁반 모양으로 붉게 핀 접시꽃과
하얗게 핀 접시꽃을 색채의 대비를 이루며 묘사하였다.
붉은 꽃 만발할 때 흰 꽃 또한 절반인데 / 紅爛開時白半開
쟁반보다 크기도 하고 술그릇보다 작구나 / 大於盤面小於杯
그에겐 경양의 충심 있는 게 어여뻐라 / 憐渠本有傾陽懇
평범한 화초들과는 자질이 다르고말고 / 浪蘂浮花不是才
이 시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시대 당시 접시꽃은 지금의 ‘해바라기 꽃’은 아니지만
임금에게 자진의 모든 것을 바쳐 충성하는 의미의 접시꽃[葵花]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접시꽃은 일반 꽃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