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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컷본능 위협 받자 살인본능 고개 들어
1965년 5월 16일 오후 4시경. 강원도 춘성군(현 춘천시) 사북면에 소재한 춘천호 인근에서는 한 무리의 여인네들이 봄나물을 캐고 있었다. 화창한 봄날, 춘천호는 병풍처럼 둘러싸인 숲과 어우러져 그야말로 절경을 뽐내고 있었다. 춘천호 인근을 거닐던 아낙들은 잠시 후 뭔가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춰섰다.
저게 뭐지?
가까이 다가가서 의문의 물체를 살펴보던 몇몇 아낙들은 순간 소스라치게 놀랐다. 잔잔한 호수 위에 사람의 시체가 나체 상태로 둥둥 떠있는 것이 아닌가. 생전 처음 보는 사체에 아낙들은 혼비백산하고 말았다.
이번에 김원배 경찰청 수사연구관이 전하는 사건은 지난 65년 호반의 도시 춘천을 발칵 뒤집어놨던 일명 ‘춘천호 엽기살인사건’이다. 시체가 발견된 현장에 신고를 받은 춘천경찰서 형사대가 급히 출동했다. 사체를 인양한 경찰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 사체가 전라상태였던 데다 목이 없었던 것. 사체는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양손은 철사로, 다리는 칡넝쿨로 칭칭 묶여 있었다. 게다가 국부마저 예리한 물건으로 도려져 있었다. 한마디로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상태였다.
경찰은 곧바로 춘천경찰서에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수사에 나섰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사체의 신원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부패 상태로 보아 여성은 적어도 사망한 지 한 달 이상 된 것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사체의 머리 부분이 없어 신원을 확인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또 워낙 부패가 심하게 진행된 상태라 지문채취도 실패했다. 피살된 시기도 1개월 전쯤일 것이라고 막연한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수사는 이렇게 지지부진했다.
하지만 현장을 샅샅이 수색하던 수사팀은 마침내 사체발생 사흘 후부터 사건 단서들을 하나둘씩 찾아내기 시작했다. 여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메리야스와 노란색 스웨터, 흰색 머플러를 찾아낸 수사팀은 이후 도려내진 사체의 살점까지 현장에서 찾아냈다. 이는 사체가 발견된 곳이 살해 장소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따라서 다른 단서도 현장 주변에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수사팀은 잠수부를 동원해 물속을 수색, 사체발견 나흘 만에 머리 부분을 찾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얼굴 역시 코와 귀가 예리한 흉기로 도려져 있었고 또 물속에 너무 오랫동안 잠겨있었기 때문에 신원파악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 수사팀이 사체 주변에서 발견한 물품들 외에는 신원을 밝혀낼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골머리를 썩던 수사팀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춘천호에서 사체가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고는 가출한 동생을 찾던 이순례 씨(가명·34)가 수사팀을 찾아왔던 것. 이 씨는 “동생이 가출한 이후 찾아다니다가 혹시나 싶어 수사팀을 찾아왔다”고 밝혔다. 현장에서 발견된 유품들을 본 이 씨는 노란색 스웨터를 지목하며 “내가 동생에게 빌려줬던 옷”이라고 증언했다.
“동생의 왼쪽 손목에 문신이 있고 왼쪽 뺨에 검은 반점이 있다”는 이 씨의 진술을 확보한 수사팀은 곧 사체 확인 작업에 들어갔고 이 씨의 진술과 사체의 특징이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사체의 신원은 이 씨의 동생이자 강원도 춘성군 ○○면에 살던 이점순 씨(가명·32)였던 것이다. 실마리가 풀리자 수사는 급진전되기 시작했다.
수사팀은 이 사건을 원한에 의한 살인으로 판단하고 이 여인의 주변인물들을 상대로 탐문수사에 들어갔다.
첫 번째 용의자는 이 여인의 첫 남편이었던 김봉남 씨(가명). 수사팀의 조사결과 이 여인은 한 번의 이혼 경력이 있었다. 50년 초 결혼한 이 여인은 슬하에 3남매를 뒀지만 계속되는 가정불화로 결혼생활 10여 년 만에 이혼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이혼 후 이들이 이렇다 할 교류가 없다는 증언이 잇따라 김 씨는 곧 용의자에서 제외됐다.
이후 이 여인의 동거남이 유력한 용의자로 떠올랐다. 이 여인은 김 씨와 이혼한 후 술집에서 일을 하며 알게 된 안동식 씨(가명)와 사체로 발견되기 약 4개월 전까지 사북면에서 1년 넘게 동거를 해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여인의 가족들은 이들의 동거생활이 화목하지 못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이 여인의 이웃 주민들 역시 “이 여인이 동거 중 생활고 등으로 잦은 불화를 겪었으며 이 여인은 평소 ‘이렇게는 못 살겠다. 도망 가버리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수사팀은 주민들의 증언들 중 심상치 않은 말을 듣게 된다. 이 여인이 부부싸움을 하면서 “도망가버리겠다”고 말을 하면 동거남 안 씨가 “도망 가면 끝까지 쫓아가서 코와 귀를 도려내 죽여버리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는 것. 마치 발견된 사체의 상태를 묘사하는 듯한 증언이었다. 이에 수사팀은 안 씨를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탐문수사를 진행했다.
동거남 안 씨는 이 여인과 함께 살던 집을 떠난 이후 행적이 묘연했지만 얼마 안 가 행방이 드러났다. 수사팀은 안 씨가 고향인 남해로 내려갔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형사들을 급파, 안 씨를 긴급체포했다. 그러나 안 씨는 “1월 20일경 심하게 싸운 후 혼자 고향으로 내려왔고 그 후 그녀의 행방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다”며 범행을 완강히 부인했다.
안 씨의 이웃주민들 역시 안 씨의 알리바이를 확실히 증명해 줬다. 두 사람이 동거하던 집의 주인은 “안 씨가 고향으로 내려간 사이 이 여인이 야밤에 짐을 꾸리고 집을 나갔다”고 증언했다. 이 여인이 살해된 시점에 동거남 안 씨는 이미 고향인 남해에 내려가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수사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수사팀이 안 씨를 추궁하는 과정에서 또 한 사람의 인물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 여인이 야밤에 짐을 꾸려 집을 나갔을 때 그 짐을 옮겨준 짐꾼이 나타난 것. 이 짐꾼은 “이 여인이 사망한 시점에 이 여인의 옷가지들을 담은 궤짝 한 개를 한 남성의 집으로 날라줬다”고 증언했다. 짐꾼이 짐을 옮겼다고 지목한 곳은 춘성군 서면에 있는 한충열 씨(가명·45)가 운영하던 ‘주막’. 새로운 용의자가 드러난 순간이었다.
한 씨는 재혼한 부인과 열네 살 된 의붓딸을 두고 있는 가장이었다. 한 씨는 한국전쟁 때 수색중대 선임하사까지 지냈고 제대 후 목수와 뱃사공 등을 하다가 60년대 중반 춘성군에 정착했다.
탐문에 들어간 수사팀은 한 씨의 주변 인물들로부터 의심스러운 증언들을 듣게 된다. 특히 관심을 끈 부분은 한 씨가 평소 성격이 극히 포악해 주변에 그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대목이었다.
수사팀은 또 한 씨가 원래부터 이 여인과 잘 아는 사이였으며 같은 마을에 살다가 이사를 갔다는 점을 주목했다. 게다가 짐꾼의 말대로라면 이 여인은 한 씨의 집에 간 직후에 행적이 묘연했다. 이에 수사팀은 한 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판단하고 한 씨를 체포해 추궁했다.
한 씨는 한동안 묵비권을 행사하며 애를 먹였지만 경찰의 끈질긴 추궁에 마침내 5월 27일 오후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사체발견 4개월여 전에 이 여인을 살해했다는 내용이었다. 춘천호에서 목 없는 이 여인의 사체가 발견된 지 약 열흘 만의 일이었다. 한 씨의 자백에 따라 드러난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한 씨가 운영하는 주막으로 이 여인이 찾아온 것은 지난 1965년 1월 26일 자정경이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이 여인이 짐을 싸들고 한 씨의 주막에 찾아와 ‘하룻밤 재워달라’고 했던 것이었다. 마침 한 씨의 부인은 집에 없었다.
한 씨는 이 여인을 들어오게 한 뒤 함께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새벽 1시경까지 막걸리 서너 되를 나눠 마신 두 사람은 술에 취해 한방에서 곯아떨어졌다. 문제는 그 이후 발생했다. 자다 깬 한 씨가 몹쓸 생각을 품고 이 여인을 성폭행하려 한 것. 이 여인은 심하게 반항을 했고 부엌으로 뛰어가 식칼까지 집어 한 씨에게 겨눴다.
당황한 한 씨는 이 여인을 이불로 덮어씌우며 제압한 뒤 “신고만은 하지 말아달라”며 이 여인에게 통사정했다. 그리고 “이대로 여기서 잠을 잘 수 없다”는 이 여인에게 한 씨는 “내가 그렇게 못 미더우면 잠을 잘 만한 다른 곳을 가르쳐주겠다”며 함께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한 씨가 이 여인을 데리고 향한 곳은 집에서 600m가량 떨어진 얼어붙은 춘천호.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이 여인은 한 씨에게 “아까 칼을 들이댄 것은 잘못한 것 같다”고 통사정을 했지만 한 씨는 인정사정이 없었다. 이미 살의를 품은 한 씨의 마음속에는 온통 “이 여인을 죽여야 후환이 안 생긴다”는 생각뿐이었다.
한 씨는 품에 숨겨온 낫을 들이대며 이 여인에게 강을 건너라고 협박했다. 강을 건너 반대편 강기슭에 도착한 한 씨는 이 여인을 살해하고 만다.
완전범죄를 꿈꿨던 한 씨는 이 여인의 옷을 모두 벗기고 낫으로 목을 자른 뒤 코와 귀, 음부까지 도려내는 잔혹함을 보였다. 그리고 주변에서 주워온 칡넝쿨과 새끼줄, 철사 등으로 손발을 묶었다. 사체처리를 위해 고심하던 한 씨는 꽁꽁 언 강의 얼음을 깨 구덩이를 만든 뒤 물 속에 이 여인의 사체와 잘린 머리, 옷가지 등을 집어넣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후 날이 풀리고 얼음이 녹자 이 여인의 사체는 춘천호 기슭으로 떠올랐고 나물 캐는 여인들에게 발견된 것이다.
수사팀이 무엇보다 놀랐던 점은 한 씨가 그토록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너무나도 태연하게 생활했다는 점. 한 씨는 범행 후 2개월여 동안이나 같은 곳에서 살며 평소와 다름없이 술집을 운영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한 씨도 날이 풀리기 시작하자 겁이 나기 시작했다. 시체가 떠오를 것을 우려한 한 씨는 이후 3월 중순경 춘성군 서면에 있는 집을 팔고는 마을 사람들에게 ‘서울로 올라간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한 씨는 수사팀에 체포되기 전까지 춘성군 사북면에 있는 지인의 집에 방을 하나 빌려 생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간간이 목수생활을 하며 생계를 유지해왔다는 것.
한편 범행을 자백한 한 씨는 범행에 사용한 낫은 아궁이에 넣어 태우고 쇠망치는 다음날 엿과 바꿔 먹었다고 하는 등 증거물의 행방을 묻는 수사팀을 헷갈리게 했다는 후문. 수사팀의 재조사 결과 낫은 이웃집 헛간에서, 이 여인의 옷을 담았던 궤짝은 강원도 화천에서 발견됐다.
당시 수사기록에 따르면 현장검증에서 한 씨는 범행에 대해 일말의 뉘우침도 보이지 않았다. 특히 한 씨는 “현재 심경이 어떠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해 수사팀들을 분노케 했다고 전해진다.
달려드는 호랑이를 사자가 물어치운 것뿐이다.”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