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의지할 것인가, 하나님을 신뢰할 것인가? (시118:1-18)
갈등
1. 한 여행 프로그램에서 깊은 계곡 위에 놓인 출렁다리로 사람들을 안내했습니다. 다리 아래로는 수십 미터 절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다리 입구에 서서 망설였습니다. 발을 올려놓는 순간 다리가 흔들리기 시작했어요. 어떤 사람은 난간을 붙들고 조심스럽게 걸어갔습니다. 어떤 이는 중간쯤 가다가 주저앉았습니다. 어떤 이는 출발점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자세히 보니 흔들리는 것은 다리였지만, 사실 더 크게 흔들리고 있던 것은 사람들의 마음이었습니다. "정말 이 다리가 나를 지탱해 줄 수 있을까?" 눈에 보이는 다리가 믿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다리를 건넙니다. 사업이라는 다리. 건강-가정-인맥-재산이라는 다리 등입니다. 그 다리들이 우리를 안전하게 건너게 해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붙듭니다. 어느 날 다리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믿었던 사람이 변합니다. 든든하던 건강이 무너져요. 평생 모은 재산이 흔들립니다. 잘 될 것 같던 계획이 어그러집니다. 그때 이렇게 질문합니다. "도대체 무엇을 믿고 살아야 하는가?" "나를 끝까지 붙들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오늘 시인도 그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시인은 1절,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노래합니다.
2. 이 노래는 평안한 날의 감사가 아닙니다. 모든 일이 잘 풀려서 부르는 노래도 아닙니다. 오히려 폭풍이 지나간 뒤에 부르는 노래입니다. 그는 먼저 자신의 과거를 노래합니다. 5절,“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에 세우셨도다.”고통은 사방이 막혀버린 좁은 골목 같은 것이에요. 앞으로 갈 수도 없고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시인은 그 자리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는 많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누가 나를 도와줄 수 있을까? 어디에 희망이 있을까? 누구를 붙들어야 살 수 있을까?”상황은 점점 더 심각해집니다.
시인은 10절,“뭇 나라가 나를 에워쌌으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을 끊으리로다.”사방에서 적들이 몰려옵니다. 하나가 아닙니다. 여럿입니다. 한쪽만 막힌 것이 아닙니다. 동서남북이 모두 막혀버렸습니다. 광야에서 늑대 떼에게 둘러싸인 한 마리 양과 같습니다. 도망갈 길도 없어요. 숨을 곳도 없습니다. 시인은 12절,“그들이 벌들처럼 나를 에워쌌으나 가시덤불의 불같이 타 없어졌나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을 끊으리로다.”수백 마리 벌 떼가 몸 주위를 맴돌며 달려드는 모습입니다. 앞을 막으면 뒤에서 공격합니다. 잠시도 쉴 수 없습니다.
3. 두려움과 불안-염려가 계속 밀려옵니다. 문제 하나만 해결되면 될 줄 알았는데 또 다른 문제가 찾아옵니다. 건강 문제-자녀-경제-관계 문제가 한꺼번에 밀려옵니다. 벌 떼처럼 몰려오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의 본능은 사람을 찾습니다. 힘 있는 사람-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내 편이 되어 줄 사람을 찾아요. 시인은 위기 속에서 중요한 질문 합니다.“사람이 나를 구원할 수 있는가? 내가 지금 붙들고 있는 것이 과연 나를 살릴 수 있는가?”사람을 의지할 것인가? 하나님을 신뢰할 것인가? 시인은 지금 그 갈림길 한가운데 서 있습니다.
갈등 심화
4. 사방에서 몰려오는 위기 속에서 시인은 깨닫기 시작합니다. 내가 붙들고 있는 것이 생각만큼 든든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넘어질 때면 엄마 손을 찾습니다.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붙잡습니다. 어둠 속에서는 벽이라도 더듬습니다. 사람은 의지할 대상을 본능적으로 찾아요. 문제는 무엇을 붙드느냐입니다. 시인도 처음에는 사람을 붙들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가 왕이었다면 군대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동맹국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사업가라면 자본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먼저 통장을 봅니다.
누구에게 전화를 해야 할지 생각합니다. 내 편이 되어 줄 사람이 있는지 찾습니다. 인맥과 경험과 능력을 계산해 봅니다. 위기가 깊어질수록 내가 믿던 것들이 하나씩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믿었던 사람이 떠납니다. 든든하던 사람이 힘을 잃습니다. 내가 가진 능력이 한계에 부딪혀요.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생깁니다. 시인은 8-9절,“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이 노래는 상처 입은 사람이 눈물로 얻어낸 결론입니다. 사람에게 기대를 걸어본 사람이 내린 결론입니다. 여기서 시인은“고관들”까지 언급합니다.
5. 당시 고관은 최고 권력자들입니다. 힘 있는 사람들-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그들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들의 전화 한 통이면 길이 열릴 것 같습니다. 그들의 결정 하나면 상황이 바뀔 것 같아요. 그러나 시인은 노래합니다.“그들조차도 나의 구원자가 될 수 없다.”그들도 결국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사람은 우리에게 거대한 성벽처럼 보입니다. 가까이 가 보면 그 성벽도 금이 가 있습니다. 사람은 강해 보여도 병들 수 있습니다. 부유해 보여도 내일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약속할 수 있지만, 미래를 보장하지는 못합니다. 사람은 위로할 수 있지만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붙들던 것들을 흔드십니다. 건강을 흔드시고, 재정-관계-계획을 흔드십니다. 우리의 삶을 무너뜨리시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잘못 붙들고 있는 손을 놓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만약 시인이 강한 군대를 의지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유력한 동맹국을 의지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자기 능력을 의지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아마 그는 하나님을 찾지 않았을 것입니다.
6. 하나님은 시인을 사람이 더 이상 답이 될 수 없는 자리까지 데려가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이제 누구를 붙들겠느냐? 누구를 신뢰하겠느냐?”이것이 지금 우리에게도 던지는 질문입니다. 건강이 흔들릴 때-사업-가정-교회가 흔들릴 때 하나님은 묻습니다.“너는 지금 누구를 의지하고 있느냐?”우리는 결단해야 합니다.“사람을 의지할 것인가? 하나님을 신뢰할 것인가?”두려움을 따라 사람을 붙들 것인가, 아니면 믿음으로 하나님께 피할 것인가.
실마리
7. 거센 태풍이 지나간 바닷가, 검은 먹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습니다. 파도는 집채만 한 높이로 일어납니다. 바람은 나무를 뽑아버릴 듯 몰아칩니다. 작은 배 한 척이 그 바다 위에 떠 있습니다. 파도는 배를 집어삼킬 듯 덮쳐 옵니다. 배는 이리저리 흔들립니다. 금방이라도 뒤집힐 것 같습니다. 멀리 항구 쪽을 보니 굵은 밧줄 하나가 보여요. 배는 흔들리지만 밧줄은 끊어지지 않습니다. 파도는 배를 때리지만, 밧줄은 튼튼합니다. 배가 안전한 이유는 배가 크기 때문이 아닙니다. 파도가 약하기 때문도 아닙니다. 배가 든든한 항구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시인이 이제 깨달았습니다.“내가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붙드시는구나.”
시인은 6절,“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상황이 해결된 것처럼 들립니다. 아직 아닙니다. 적들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벌 떼도 아직 날아다닙니다. 사방을 둘러싼 나라들도 그대로 있습니다. 시인의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적들의 숫자를 세는 것을 멈추고 하나님을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두려움은 문제의 크기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구를 바라보느냐에서 옵니다. 베드로가 물 위에서 예수님을 바라볼 때는 걸었습니다. 파도를 바라보는 순간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파도가 갑자기 커진 것이 아닙니다.
8. 시선이 바뀐 것입니다. 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적들을 보았습니다. 문제를-위기를 보았습니다. 어느 순간 하나님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이런 노래를 부릅니다.“여호와는 내 편이시라.”“내가 하나님 편이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어린아이가 아버지의 손을 붙드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어린아이의 손을 붙드는 것입니다. 아이는 넘어질 수 있습니다. 손에 힘이 빠질 수도 있어요. 아버지는 아이의 손을 놓지 않습니다. 시인은 그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시 노래합니다.“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7절)
시인은 이후 사람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사람이 없어도 하나님이 계십니다. 사람이 떠나도 하나님은 떠나지 않습니다. 사람의 손은 놓아도 하나님의 손은 놓지 않습니다. 시인의 마음에 빛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폭풍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폭풍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보기 시작합니다. 시인은,“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단순히 비교가 아닙니다.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고백입니다.“이제 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가겠다. 세상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품으로 피하겠다.”
9. 시인은 깨달았습니다. 사람은 다리가 될 수는 있어도 목적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지팡이가 될 수는 있어도 구원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잠시 도움을 줄 수는 있어도 영원한 피난처는 될 수 없습니다. 폭풍우가 몰아칠 때 새들은 어디로 갈까요? 들판 한가운데 서 있지 않습니다. 바위틈을 찾습니다. 절벽 아래 움푹 파인 틈으로 몸을 숨깁니다. 독수리도 폭풍을 만나면 바위 절벽을 찾습니다. 바위는 흔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바로 그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지금까지는 흔들리는 것을 붙들고 있었어요. 흔들리는 사람, 흔들리는 재산-권력-능력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을 발견했습니다.
복음 제시
10. 우리는 시인의 노래처럼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사람을 붙듭니다. 기도한다고 말하면서도 계산기를 두드립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말하면서도 통장 잔고를 확인해야 안심이 됩니다. 베드로처럼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다고 말하지만, 위기가 오면 도망칩니다. 제자들도 그랬어요.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홀로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잠들었습니다. 그들이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군중들도 등을 돌렸습니다. 십자가 아래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습니다.
가장 외로운 자리였습니다.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끝까지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도“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음 가운데 버려두지 않으셨어요.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시인은 17절,“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을 선포하리로다.”죽음을 이기고 살아나신 주님 이야기를 시인이 노래했습니다.(예언)
기대
11. 사람들은 세상이 우리를 끝까지 지켜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시인은 놀라운 도전을 주었습니다.“세상 모든 것은 구원자가 아니다.”사람은 도울 수 있습니다-위로할 수 있습니다-함께 걸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나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반석-구원이 되십니다. 시인은 14절,“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요 또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노래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때는 문제가 다 사라지는 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의 구원이심을 발견하는 순간입니다. 폭풍이 끝나는 날보다 더 놀라운 날은, 폭풍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는 날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너는 지금 무엇을 붙들고 있느냐? 너는 지금 누구를 의지하고 있느냐?”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흔들리는 것에서 떼어 내어 흔들리지 않는 자신에게로 초대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해서 당장 모든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이제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 되십니다. 우리가 넘어질 때 붙들어 주십니다-길을 잃을 때 인도해 주십니다-눈물 흘릴 때 함께하십니다-죽음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도 버리지 않으십니다. 이 복음을 누리며 살도록 함께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