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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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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 성분이 들어 있어 마시면 사람을 취하게 하는 음료. [요약] 술은 알코올 성분이 들어 있어 마시면 사람을 취하게 하는 음료이다. 과일이나 곡류를 발효·증류하여 만든다. 주세법상 알코올 함량 1도 이상의 음료이다. 우리나라의 전통 술은 크게 탁주, 청주, 소주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탁주, 청주는 발효상태의 술이고 소주는 여기에 증류과정을 거쳐서 도수를 높인 술이다. 술은 모든 의례와 세시풍속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며 탁주는 농주(農酒)라 부를 정도로 힘든 노동과 함께 하기도 했다. 하지만 약도 되고 독도 되는 술이 가진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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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술은 알코올 성분이 들어 있어 마시면 사람을 취하게 하는 음료이다. 과일이나 곡류를 발효·증류하여 만든다. 주세법상 알코올 함량 1도 이상의 음료이다. 우리나라의 전통 술은 크게 탁주, 청주, 소주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탁주, 청주는 발효상태의 술이고 소주는 여기에 증류과정을 거쳐서 도수를 높인 술이다. 술은 모든 의례와 세시풍속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며 탁주는 농주(農酒)라 부를 정도로 힘든 노동과 함께 하기도 했다. 하지만 약도 되고 독도 되는 술이 가진 양면성 때문에 취하되 실례하지 않기 위한 고유의 음주 예절이 등장하기도 했다.
정의
알코올 성분이 들어 있어 마시면 사람을 취하게 하는 음료.
개설
「주세법(酒稅法)」에 의하면 알코올 함량 1도 이상의 음료를 말한다. 예로부터 알려진 과실주나 곡물주를 비롯, 근대의 증류주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주정음료는 모두 술이다. 술은 일부 민족을 제외한 거의 모든 민족이 지니고 있으며 그 용도도 다양하여 굿이나 관혼상제와 같은 의례적 행사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여러 경우에 두루 쓰이고 있다. 술에 대한 우리의 관념은 이를 긍정적으로 보는 견해와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가 공존하여왔다. 술은 사람에게 유익한 것으로 생각되어 ‘백약지장(百藥之長)’이라 불리는 반면에 부정적인 면에서 ‘광약(狂藥)’이라고도 불렸다.
술을 마시니 근력이 생기고 묵은 병이 낫는다고 하여 음주를 권장함은 옛 기록에서 흔히 보는 예이다. 『성호사설(星湖僿說)』에 주재(酒材)의 노인을 봉양하고 제사를 받드는 데에 술 이상 좋은 것이 없다고 하는 내용이나,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의 기혈(氣血)을 순환시키고 정을 펴며 예(禮)를 행하는 데에 필요한 것이라 하는 내용은 모두 술을 인간생활에 필요한 것으로 보는 긍정적인 견해이다. 설에 도소주(屠蘇酒: 설날 아침에 차례를 마치고 마시는 찬술로, 나쁜 기운을 물리친다고 한다.)를 들고, 이명주(耳明酒)를 마시며 또 어른께 만수무강을 빌며 술로 헌수(獻壽)하는 것도 모두 건강과 장수를 바라던 뜻에서 비롯된 것이다.
술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는 술이 사람을 취하게 하여 정신을 흐리게 하기 때문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주정이 심하여 몸을 해치고 가산을 탕진하기도 하고, 임금으로서 주색에 빠져 나라를 망치는 일도 있었기 때문에 ‘망신주(亡身酒)’ 또는 ‘망국주(亡國酒)’라는 말이 생기기도 하였다.
우리나라 전통적인 술은 크게 탁주 · 청주 · 소주의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탁주는 예로부터 주로 농군들이 마시던 술이라 하여 ‘농주(農酒)’라고도 하고, 즉석에서 걸러 마신다 하여 ‘막걸리’, 그 빛깔이 희다고 하여 ‘백주(白酒)’라고도 한다. 청주는 탁주에 비하여 더 정성을 들여 빚은 고급술로 ‘약주(藥酒)’라고도 한다. 소주는 고려 이후 우리나라에 널리 보급된 술로 재래주 가운데 가장 독한 술이다. 그밖에 이양주(異釀酒)나 향양주(香釀酒) 등
음주관
우리나라 사람은 생활의 예의를 중히 여기던 민족이다. 비록 취하고자 하여 마시는 술이라 하더라도 심신을 흐트러지게 하지 않고, 어른께 공경의 예를 갖추고 남에게 실례를 끼치지 않는 것이 음주의 예절이다. 음주 때의 이러한 예절이 주례(酒禮)이다. 우리는 이를 주도(酒道)로 지켜왔다. 주도는 특히 어른을 공경하는 데에 뜻이 있다. 온 고을사람들이 모여 향약(鄕約)을 읽고, 술을 마시며 잔치하는 예절로서 향음주례(鄕飮酒禮)를 행하던 때가 있었다. 이때 젊은이와 어른은 나이를 따져 차례를 정하고, 연장자에게 먼저 술잔을 올려 대접한다. 우리들의 주도는 어른을 받들며 순풍미속을 일으키던 이같은 향촌의 주례에서 민속례로 굳혀져왔다.
향음례를 중히 하던 정도전(鄭道傳)은 『삼봉집(三峯集)』 향음주조에서 “이때의 술은 즐겁게 마시되 함부로 하지 않으며, 엄히 하되 어른과 소원해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잔치 때에 지체 있는 어른께는 의자에 모시고 식탁 위의 음식으로 술을 대접하지만, 지체가 낮은 이에게는 좌상에 마주앉아 마시도록 하였던 것이 『고려도경』 향음조에 전하는 옛 주석에서의 예법이다. 음주의 예로서 우리들에게 비교적 널리 알려진 주법은 『소학』에 나타난다. 이에 의하면 어른이 술을 권할 때 일어서서 나아가 절을 하고 술잔을 받고 어른이 이를 만류할 때야 제자리에 돌아가 술을 마실 수 있다. 그러나 어른이 들기 전에 먼저 마셔서는 아니 되고, 또한 어른이 주는 술은 감히 사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소학』을 생활의 규범으로 삼던 사회에서는 이러한 의식을 더욱 중히 하였다.
술상에 임하면 또 어른께 술잔을 먼저 권해야 한다. “찬물에도 위아래가 있다.”고 하여 음주에는 장유유서(長幼有序)를 반드시 지켰다. 어른이 술잔을 주면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아야 한다. 어른 앞에서 함부로 술 마시는 것을 삼가하여 윗몸을 뒤로 돌려 술잔을 가리고 마시기도 한다. 어른께 술을 권하는 데는 정중한 몸가짐을 하여 두 손으로 따라 올린다. 오른손으로 술병을 잡고, 왼손은 오른팔 밑에 대고, 옷소매 또는 옷자락이 음식에 닿지 않도록 조심하여 따른다. 도포를 입던 옛날 술병을 든 오른손의 긴 소맷자락이 음식에 묻지 않도록 왼손으로 지켜 올려 따르던 예가 양손으로 공손히 하는 주례가 된 것이다.
이덕무(李德懋)는 『사소절(士小節)』에서 받은 술이 아무리 독하더라도 못마땅한 기색을 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그렇다고 경한 모습으로 훌쩍 마시는 것도 예가 아니다. 박지원(朴趾源)이 「양반전(兩班傳)」에서 술을 마실 때에 수염을 빨지 말아야 한다고 한 것도 역시 주례의 하나다. 술을 못하는 사람은 권하는 술을 사양하다가 마지못하여 술잔을 받았을 때에는 싫증을 내고 내버릴 것이 아니라 점잖게 입술만을 술에 적시고 잔을 놓아야 한다. 동배간의 주석에서는 주법이 그처럼 세밀하지 않으나 서로 존경하는 자리에서는 주법에 세심함은 마찬가지다.
우리들의 음주관은 갖가지의 음주풍속에도 나타나 있다. 예를 들어, 손님을 맞이하면 정성을 다하여 그를 대접하는 습속이 있다. 이는 인정의 표시를 술로 대신하는 예절이다. 집에서 손님을 맞이하면 간직해 둔 가양주(家釀酒)를 내놓기도 하고, 그렇지 않으면 술을 사다가 손님대접을 한다. 애주가는 평소 반주(飯酒)를 한다. 끼니때에 손님에게 반주상을 올리는 것은 상례다. 반주상에 앉아 주주객반(主酒客飯: 주인은 손님에게 술을 권하고 손님은 주인에게 밥을 권하며 서로 다정하게 식사를 하는 일)의 다정한 식음(食飮)이 이루어진다. 이는 주인이 손님에게 술을 권하고, 손님은 주인에게 밥을 권하는 예절로 그만큼 손님에게의 대접은 술을 우선으로 한다.
술상에 앉으면 대작하여 술을 서로 주고받는 수작(酬酌)을 하고, 잔에 술을 부어 돌리는 행배(行杯)의 주례가 있다. 이때 권주잔은 반드시 비우고 되돌려주는 반배(返杯)를 한다. 반배는 가급적 빨리 이행하고 주불쌍배(酒不雙杯)라 하여 자기 앞에 술잔은 둘 이상 두지 않는 것이 주석에서의 예절이다. 지금에 와서는 수작이나 행배의 음주례를 꺼리는 사람이 적지 않으나, 정을 담은 술잔의 음주는 역시 이러한 권주에 있다. 술은 권하는 맛으로 마신다는 우리들의 정다운 주도가 여기에 나타난다. 손님이 떠날 때는 작별의 아쉬움을 술로 달래는 예절로서 이별의 술을 마신다.
또 밖에서 음주할 때는 흔히 주점을 찾는다. 길가에 있는 주점은 원래 길손을 위한 술집으로 이를 주막(酒幕)이라 한다. 글자 그대로 막을 쳐놓고 술을 팔 정도의 간단한 차림이 시골 길가의 주막이다. 그러나 술손님을 끌기 위하여 시장이나 큰길 등 사람의 내왕이 빈번한 곳에 주막이 성하였다. 『고려사』의 기록을 보면, 주막은 고려 성종 때부터 있었던 술집으로 사교장이었으며 주식을 팔던 곳이었다. 그러나 당시 술을 팔던 풍속은 자세히 전하고 있지 아니하여 구체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한말의 풍속에 의하면 탁주를 담은 술항아리와 항시 물이 끓고 있는 부뚜막의 검은 큰 가마솥, 그 곁에 앉아서 술을 떠주는 주파(酒婆) 등이 인상 깊은 우리네 주점의 모습이다. 특히 겨울철 추위에 거냉(냉기를 제거함)한 탁주는 요기와 어한(추위를 막음)으로 애용되어 우리의 주점은 따뜻한 정을 찾을 수 있는 곳으로도 인식되어 있다. 근년에 이르러 도시의 뒷골목이나 도로가 으슥한 곳에 노점처럼 나타난 포장마차의 술집에서도 겨울의 추위를 녹이는 정이 오고간다. 포장마차에서는 주로 참새구이, 또는 닭의 똥집 요리 등을 안주로 하여 소주를 판다.
근래의 술집에 또 목로주점(木櫨酒店)이 있다. 이 역시 도시의 뒷골목이나 으슥한 노변 집에서 많이 보는 주점이다. 기다랗고 좁은 널빤지로 만든 술상이 목로인데, 이곳에 큰 막걸리 사발을 놓고 의자도 없이 서서 술을 마시므로 이를 ‘선술집’이라 하고, 또 ‘사발막걸릿집’ 혹은 ‘대폿집’이라고도 하였다. 지금은 처음의 모습과 달리 의자를 두고 소주까지 팔기 시작하여 선술집이나 대폿집의 느낌은 찾기 어렵다. 고급요정에서는 기생이 술자리에 나오고 색주가(色酒家)에서는 그보다 격이 낮은 아가씨들이 술대접을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술의 이미지는 농가에서 마시는 푸짐한 막걸리, 즉 농주에 있다. 길손을 불러 술을 같이 하고, 이웃집 어른과 친구를 불러 나누어 마시는 것이 이 농주다. 근래에 양조업이 산업화된 이래 양조장의 탁주가 농주로 일반화되었다. 그러나 종전 농가에서는 가양주로 이를 마련하여 맛을 내는 주부의 술빚는 솜씨는 농군들의 주흥을 돋구는 농가의 자랑이었다. 우리네의 주도는 결국 인간질서를 존중하면서 인정과 즐거움을 바탕으로 한 푸짐하고 여유있는 음주관으로 이어져온 것이다.
음주문화
우리 사회에서 남녀가 대작하는 경우는 1960~70년대까지만 해도 흔치 않았다. 남성위주의 사회이다 보니 남성만의 음주자리였고, 여자는 접대부로 끼어있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러다 보니 여자가 술을 따른다는 것은 기생이나 하는 짓이었고 여염집 규수나 부인은 아버지나 남편 이외에는 술을 따르지 않는 것이 보통의 상식이었고 지금도 남녀를 불문하고 이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기생이 따라주던 술을 마시던 음주문화는 지금껏 우리 사회에 남아 있어 남성들에게는 '여성이 따라야 술맛이 난다는 식'의 사고가 팽배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우리의 음주문화는 술을 권하고 따라주는 문화이고, 자작하는 문화가 전혀 안돼 있기 때문에 남녀가 함께 하는 회식자리에서는 언제든지 이같은 문제가 일어날 우려가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직장내 회식은 남녀를 떠나 상사와 부하직원으로서 상호간 술을 권하면서 조직분위기를 일신하는 기회가 되는 자리다. 여기에는 '도가 지나치지 않는 범위내에서'라는 전제가 들어간다. 그러면 '그 도는 어디까지냐' 하는 것도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그것은 자리의 분위기, 참석자의 성격 등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자발적인 경우가 아니면 기본적으로는 이성간에는 회식자리에서도 술을 따르도록 요구하는 것은 삼가해야 한다. 이번 판결을 둘러싼 논란이 직장내 회식자리에서 음주문화, 나아가 우리 사회의 음주문화가 달라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