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남남
과신은 자만을 부추기고 과욕은 불만에 가득한 삶을 살게 한다. 허지만 과신이나 과욕이 너무 없어도 인생은 윤택하지 않다.
낚시에서 초보 때는 닥치는 대로 잡고 닥치는 대로 가져간다. 그러나 세월이 경륜으로 쌓이면 입질을 예견하거나 오는 입질을 피하고 꼭 필요한 입질만 받는다.
무슨 말이냐면, 대상어가 아니면 방류하듯 가장 행복한 삶은 한계필수만 지킬 때라는 뜻이다.
가질 만큼만 갖고 주어진 운에 맞게 살면 무탈한데, 한 개를 이루고 나면 두개 갖고 싶어지는 인간의 속성을 조절하지 못하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요소다.
도치씨도 승승乘勝하는 삶을 지금까지 살았다. 착각과 환상의 체면에 걸렸던 것이다.
허지만 오늘 그는 인생에서 가장 절박한 심정을 느끼고 깨닫는 체험을 했다. 다행이었다. 그의 인생에서는 참으로 값진 경험이었다.
도치씨는 깊은 숨을 들이 마신 후 혼란한 감정을 조절하려고 노력했다.
사랑은 오로라나 신기루 같은 것이 아니다. 보기는 아름답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허상이 아니라 사랑이란 겨울을 대비하기 위해 쌓아 놓은 산막의 장작더미 같은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로 서서히 감정의 수평을 맞추기 시작했다.
도치씨가 이렇게 빨리 감정을 조절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낚시로 쌓은 내공 때문이었지만, 때로는 낚시로 쌓은 내공 때문에 사랑의 시야가 넓고 깊지 못하기도 했다.
오로지 낚시뿐인 도치씨는 사랑의 모든 상황을 낚시기법정도로 여기는 자신의 최면에 빠져 있었다. 월등한 낚시기법으로 물고기 걸어 올리듯 이감독이나 우아영 오진숙 등은 쉽게 요리했지만 혜림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줄 듯 줄 듯. 말 듯 말 듯.
대나무 끝에 먹이를 매달아 유인해서 포획하는 밀렵꾼처럼 언제나 자신의 속마음은 완전히 들어내지 않는 혜림을 도치씨는 우리 안의 닭 알 정도로 생각했다, 오늘 오지게 태클 걸린 것이다.
아내의 불륜을 목격하고, 혜림을 벗기려던 욕망도 여지없이 깨지고. 난데없이 농어까지 생면부지의 모텔주인에게 준다는 말에 도치씨는 감정의 밑바닥까지 박박 긁히고, 오묘할 것 같던 사랑의 유희도 함몰되어 모든 감정을 탈진했다.
증오와 분노와 상실감에 빠진 도치씨는 눈을 감았다.
보지 않고 듣지 않고 말하지 않으면 자기성찰이라던 명작의 한 구절이 생각났던 것이다.
도치씨는 모텔주차장에서 보낸 아주 짧은 시간에 인과人課의 이치를 깨달았다.
득도는 무념에서 얻지만 인과는 과념過念에서 생기는 것이다.
모든 것을 포기한 도치씨는 농어도 포기했다. 힘없이 혜림에게 말했다.
“마음대로 해!”
“왜? 뿔났어?”
만사가 귀찮아진 도치씨는 고개를 저었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혜림의 행동에 실망감을 느낀 도치씨는 고속도로에 진입하자마자 주행속도를 준수하는 혜림의 운전 태도가 못마땅했다. 모텔에 들어가기 전까지 핑크빛 잇몸이 그렇게도 유혹적으로 보이던 혜림의 웃음도 싫증났다. 스피커 AR7 정도의 고음이 찰랑거리던 목소리도 사기그릇 깨지는 소리로 들렸다.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보였다.
당장 집으로 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도치씨는 집으로 가기 전 어떤 결론이든 내고 귀가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혜림을 이 참에 정리해야 하나? 말아야하나?
부정한 아내는 어떻게 처리할까? 이혼해? 말아? 집에 들어가며 마주치면 마주치는 순간 병신 안될 만큼 무자비하게 패 줘? 얻어맞으면서도 무릎 꿇고 죽자 살자 빌면 어떡하지?
아니야!
이미 엎질러 진 물이야. 쌍팔년도처럼 오염된 옷을 탈색해서 입는 세상이 아니잖아? 하물며 바람난 인간 용서한다고 될 일이야? 아무리 화가 나도 아내를 패면 안 되지. 바람난 여자가 무슨 짓을 할지 어떻게 알아? 역공당할 것이 뻔한데 폭행이라니? 누구 좋으라고? 위자료에 손해배상 합의금, 심하면 감옥살이 할지도 모른다. 폭행은 절대 아니야!
그래 깨끗이 이혼하고 새 출발하자. 어차피 부부란 처음부터 남남이었잖아? 남남으로 돌아가는 것이 제일 현명한 방법이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아내와 이혼하면 우아영이 보다 더 아름답고, 혜림이보다 더 섹시하고 야들야들한 진짜 환상적인 여자와 재혼해야지. 아니야. 아니야! 한평생 같이 살 여자라면 너무 쪽 빠지면 안 돼. 미색도 어느 정도, 스타일도 어느 정도면 좋을까? 그래 좋은 수가 있군. 재혼할 여자의 표본을 만들자. 그림으로 그려 벽에 붙여 놓고 한 치의 오차 없는 여자를 찾자. 그때부터 나의 진정한 행복은 시작되는 거야.
아 그런데 말이야.
애들은 어떻게 처리하나? 재혼하려면 애들이 문제가 될 텐데? 고아원에 보내? 아니야! 그건 너무 비정해. 아 맞다 맞아. 아내 성품에 분명히 애들은 키운다고 할 거야. 그러면 못이기는 체 주는 거지 뭐. 흐흐흐.
도치씨는 별별 생각으로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혜림은 눈을 감고 있지만 도치씨가 무슨 꿍꿍이속을 하는지 꿰뚫고 있었다. 혜림은 유혹적인 표정으로 나긋하게 도치씨를 불렀다.
“도치.”
첫댓글 도치 비장한 각오 잘했어요.
폭행도 하면 안되고 순리대로 풀어 봐야지
그까짓것 발로걸리는게 여잔데 전화위복이 될수도 있겠지
다좋은 여자와 만나길~~~
ㅎ
젠틀맨님 또 선물보내 주셨네요
너무 고맙습니다.
초야에 묻힌 듯 살다보니 찾는이도 없는 사람에게 뜻하지 않은 선물 받고보니 감개무량 감동입니다
고마움 글로나마 전할 수 밖에 없어 젠틀맨님의 풍부한 상상력에 제 표정관리는 맡깁니다.
제가 좋아 찾는 젠틀맨농장에서 선물까지 때마다 받으니 우연의 인연이란 참 기 막힌다는 생각입니다
우리 오래 오래 변치 않고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편한 밤 행복한 꿈꾸세요
남녀간에는 해여지면 남이 되겠슴니다.
아픈 상처를 치유 하기엔 여러가지 갈등도 있겠지만
차라리 해여지는것이 마땅할것같아요.
당연히 남이죠
잘못하면 남보다 못한 원수지간도 되구요...ㅋㅋ
편한 밤 고운 꿈꾸세요.김일수님.
낚시도 어렵겠지만 사랑도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여자들의 행태가 날이갈수록 심화되어 가는것 같아요.
난도질 안당하는 것만해도 다행입니다...ㅋㅋㅋ
특히 악동클럽님은 더 조심하셔야 할거 같구요...ㅋㅋㅋㅋ
도치의 승승 장구하고 잘나가더니 이제는 어느 한계선에 다달했나보군요.
그러했기에 오늘같은 날 아내의 불륜을 어떻게 보고있을까
그리고 믿었던 혜림마저 마음대로 안되고 동문 서답이니 죽을 맛이겠슴니다.
죽을 정도가 아닙니다..지금 도치씨요.
내일은 아마 사생결단 나겠지요?
허지만 도치씨 앞길이 걱정입니다...ㅋㅋㅋㅋ
과연 도치의 마음결정을 어떤 식으로 내릴것인가
기대가 주목 됩니다//``
천일염님 솔직히 도치씨 뭔가 잘못계산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말릴 수도 없고.
천일염님이 어떻게 좀 해보시지요....ㅋㅋㅋ
고운밤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