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농구 8강전. 필리핀과 대한민국의 대결은 저에게 '휴가사유'가 될 정도로 기대되었던 경기였습니다. 지난 중국전 슛에 있어서는 실망스러웠지만 그래도 팀에 적응하지 못한 상태로 20점 이상의 득점력을 선보였기에 조던 클락슨이 대한민국 선수들을 상대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 지 정말 궁금했습니다.
1쿼터. 대한민국은 김선형-이정현-허일영-이승현-라틀리프의 라인업으로 나왔습니다. 現 대표팀 최고의 멤버인데, 경기 초반부터 3-2 지역방어가 필리핀 선수들을 당황시키며 9-2 Run을 기록하며 앞서나갔습니다. 조던 클락슨은 1쿼터 초반 3점슛 3개가 모두 림을 벗어났고 1쿼터 끝날때까지 FG 1/8, 3P 0/4의 모습을 보여주며 '몸이 덜 풀린?' 또는 '지역방어에 당황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1쿼터 좋았던 모습과 대조적으로 2쿼터에는 위기를 맞았습니다. 박찬희-이정현-허웅이 나선 앞선은 필리핀의 스탠리 프링글(Stanley Pringle)에게 돌파를 허용하며 지역방어가 무너졌고 필리핀의 3점슛은 계속 림을 통과했습니다. 라틀리프는 17점 8리바운드 FG 7/12로 필리핀 골밑을 무너뜨렸지만 3번째 파울을 범하면서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3쿼터. 김선형이 전면에 나섰습니다. 2쿼터에 필리핀선수와 충돌한 이정현 대신 김선형이 볼핸들러로 나섰고 김선형-허웅(전준범)-허일영의 앞선으로 필리핀에 맞섰습니다. 3쿼터 초반 허웅이 잠시 이정현 롤을 맡았는데 라틀리프에게 볼을 투입한 후 움직임이 없어서 팀 공격이 굉장히 뻑뻑하게 되었고 필리핀에게 46-54로 뒤지게 됩니다. 이때부터 김선형이 적극적으로 볼을 만지기 시작하는데 허일영이 5점, 김선형의 2점을 득점하면서 53-54, 1점차로 추격하면서 본격적으로 경기를 달아오르게 했습니다. 대한민국에 김선형이 있었다면 필리핀에는 조던 클락슨이 있었습니다. 클락슨은 3쿼터에만 15점 FG 6/7, 3P 3/4를 기록하면서 전반전 4점의 부진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모습이었습니다. 중국과의 경기에서도 3쿼터에 연속 3점슛으로 경기 분위기를 바꿔놓았는데 대한민국과의 경기에서도 동일한 모습이었습니다.
운명의 4쿼터. 김선형이 정신없이 필리핀 앞선을 뚫었고 이승현은 40분 내내 궂은 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허일영과 전준범은 중요할 때 3점이 터졌고 라틀리프는 파울 숫자를 3개에서 더 이상 늘리지 않는 영리함을 보였습니다. 3쿼터 '조던'같았던 클락슨은 4쿼터에 비교적 잠잠했고 결국 대한민국 대표팀이 난적 필리핀을 꺽고 4강전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리카르도 라틀리프 38분 30점 15리바운드(6공격), FG 13/22
이승현 40분 11점 11리바운드(7공격) 4어시스트, FG 5/11
허일영 28.5분 17점 6리바운드, FG 6/11, 3P 4/9
김선형 33분 17점 7리바운드 10어시스트 4스틸, FG 7/15, 3P 2/6
대회 내내 허일영의 3점슛은 식질 않는 것 같습니다. 앞선 3경기에서 11/20, 55%의 3점슛을 보여줬던 허일영은 필리핀을 상대로도 4/9 고감도 3점슛을 보여줬습니다. 특히 팀의 맞형으로서 필요할때마다 적극적으로 리바운드를 가담해주고 라틀리프에게 볼이 정체되어 있을 때 볼 없는 움직임으로 패스가 나갈곳을 만들어주는 모습은 일품이었습니다. 대표팀의 가장 믿음직한 슛터로서 부족함이 없는 4경기였습니다.
허일영과 함께 팀의 슛터를 맡고 있는 전준범도 직전 3경기 13/23, 56.5%의 3점슛을 이어서 필리핀 전에서도 3/7로 뛰어난 면모를 선보였습니다. 대표팀만 오면 더 정확한 슛을 보여주는 선수인데 허일영과 함께 정말 믿음직스럽네요. 허웅 역시 이정현의 빈자리를 메우진 못했지만 4경기동안 8/19의 3점슛을 보여주며 본인의 역할을 해내고 있는 모습입니다.
김선형, 라틀리프는 말할 것이 없는 MVP급 활약이었고, '개인적으로' 40분 내내 코트에서 뛰어다닌 이승현을 오늘 경기 최고의 수훈선수라고 칭하고 싶습니다. 7개의 공격리바운드 뿐만 아니라 수비에서 영향력도 라틀리프 못지 않았고 공격이 잘 안풀릴때는 '마치 오세근처럼' 순간적으로 엘보우 지역으로 빠져나와서 미드레인지 점퍼를 주기적으로 던져주면서 팀의 공격에 윤활유를 뿌려주는 역할을 잘 해냈습니다. 문제는 백업 선수인데, 예선에서 좋은 모습 보인 강상재와 김준일에게 토너먼트에서 출전시간을 부여하기가 허재감독 입장에서는 여의치 않은 것 같습니다. 4강전도 이란전이 예상되는데 과연 또 이승현-라틀리프가 40분씩 뛰면서 안 퍼질수 있을지 걱정스럽네요.
조던 클락슨 35분 25점 8리바운드 3어시스트, FG 10/25, 3P 4/13
스탠리 프링글 27분 14점 4리바운드 2어시스트, FG 6/8
스탠드하딩거 28.3분 16점 9리바운드 3스틸, FG 7/14
3쿼터 원맨쇼를 제외하면 클락슨은 기대만큼은 아니었습니다. 몸상태가 올라오지 않아서 그런지 3-2지역방어를 뚫어낼 스피드나 개인기량을 보여주지 못했고 타점 높은 3점슛만 반복했습니다. 다만 그 슛이 4/13의 확률밖에 보여주지 못했으니 우려했던 것보단 덜 위협적이었다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단면 스탠리 프링글은 개인기량으로 3-2지역방어를 뚫어버리는 괴력을 선보였습니다. 국내 선수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몸 탄탄하고 개인기량 좋은 선수인데 2쿼터에는 아주 앞선은 농락해 버렸습니다. 필리핀 입장에서는 대회 시작 전 기대치에 비하면 선전을 했다고 보여지는데, 그래도 현역 NBA 선수가 뛴 상황에서 8강 탈락은 아쉬운 결과일 듯 합니다.
첫댓글 네.좋은 분석 잘 읽었고 경기후 글을 통해서 경기내용을 머리속으로 복기해 보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혹시 오늘 활약한 필리핀 주요선수들 벡넘버와 이름,신장을 알수 있을까요?
아~~ 후반전 못 봤는데 ~~ 찾아봐야 겠네요
좋은분석글입니다
만약 프링글에게 계속 뚫려서 졌다면 07년 아시아선수권의 아픈 기억이 떠오를 뻔 했네요 엘 카티브.......
네.생각하기도 싫은 경기였죠.
경기 못봤는데 감사합니다... 이승현 40분??
이승현 40분 실화임? 넘 고생했네요. 허일영은 제가 본 게임 중에 오늘이 젤 잘한 것 같습니다. 포물선이 상당히 높던데 제가 볼 땐 맨날 빗나갔는데 그래서 전 슈터로서의 허일영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거든요. 근데 오늘은 쏙 들어가더라고요. 큰 경기에서 슈터로서의 존재감을 보여주네요.
2쿼터 부터 봤는데 이승현이 풀로 뛰었군요 ㅠㅠ 묵묵히 굳은일 잘해줬네요... 3쿼터 김선형으로부터 펼쳐지는 공격은 정말 아름답더군요 ㅎㅎ
돌파 슛 패스 3박자 다 거의 완벽해보였네요 ㅎ
저랑 같네요 이승현은 보배입니다^^ 예전에 유재학감독이 슛이 짧다고 국대탈락한 이후 무섭게 연습했다고하죠. 이승현돌아오고 오세근 라건아면 든든합니다^^
이승현-라건아 체력 지적은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강상재, 김준일이 허수아비 수준이라도 5분이라도 뛰게 해줘야 합니다. 이승현-라건아한테는 그 5분이 경기 내내 같은 힘을 내게 해줄 수 있어요. 오세근-김종규-이종현 중 한명만 왔었더라고 하는 아쉬운 생각이 계속 듭니다.
준결승 상대는 아마 이란이겠죠.... 클락슨을 이기니 하다디네... 하아...
그 독일출신 센터? 그 선수도 속공이랑 슛이 좋아서 고전했었네요..ㅋㅋ
ㅎㅎ 하이라이트만 본 게 너무 아쉽네요 ㅜㅜ 아 이런 경기를 치맥하면서 봐야하는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