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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이 많이 나 회사를 그만 두었습니다. 전업투자 하려구요.
당신도 주식고수들의 무료 추천주로 최대 투자수익을 원한다면 ‘부자아빠 주식학교’(http://cafe.daum.net/stockpapa)로 가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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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자아빠의 한국경제TV 강연회 (1000여명이 모인 부산 롯데 호텔 강연회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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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를 부자로 만들어주는 상한가 급등주의 달인
(사진 : 매주 목요일 오후 1시 팍스TV 마켓리더 시황 장면)
“에스엠 100%, 네오위즈 상한가! 망설이면 늦는다! 상상을 초월할 엄청난 장이 시작되는 지금 최고의 급등주를 양 것 담아라!”
급등주 발굴에 있어서 최고를 자랑하는 인기전문가 ‘부자아빠’는 주식투자 30년 경력의 베테랑이자, 역대 최고를 자랑하는 애널리스트로써, 팍스넷 및 한국경제TV에서 5년간 베스트전문가 상을 수상하였으며, MBC, SBS, KBS 방송에 출연해 재야의 고수로 집중 소개가 되어 화제가 되었다.
그는 ‘부자아빠 주식학교’에서 ‘기아차’를 바닥권인 8000원대에 추천했다. 그후 8만4천원대까지 950%의 놀라운 수익을 기록한 것이다. 또한 3300원대 추천한 ‘케이피케미칼’은 850% 수익, '모나리자', '성지건설’는 각각 310%, 275%의 수익을 주었다. 또한 2만원대 추천한 ‘에스엠’은 100% 상승, 네오위즈는 추천후 바로 상한가로 직행 개인투자자들의 원금회복을 돕고 있다.
그래서 ‘급등주의 달인’이라 불리우는 ‘부자아빠’는 그가 운영하는 ‘부자아빠 명품 VIP’(http://www.bujapapa.com)를 통해 전국 최고의 부자들에게 핵심 승부주를 족집게처럼 추천하여 최고의 수익을 드리고 있다.
하지만 투자금이 얼마 안 되는 소액주주들에게도 도움을 주기 위해 포털사이트 ‘Daum’과 ‘Naver’에 '부자아빠 주식학교 캠퍼스'를 개설해 바이오 최고 대장주를 추천 이번 환란에서도 개인투자자를 지켜주고, 오히려 신고가가 날 정도로 강력한 주도주를 발굴하여 진바닥에서 무료로 추천 드리고 있어 개인투자자들을 돕고 있다.
회원수만 무려 15만명 가까이 모일 정도로 개인투자자들의 발길이 끊임이 없는 이 주식학교에는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아 가입하고 있는데, 이렇게 많은 투자자들이 그를 찾는 이유는 무료추천주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정확한 매매타이밍으로 유명하다.
그가 주식학교에서 공개적으로 꾸준히 추천했던 기아차(950%), 케이피케미칼(850%), GS글로벌(590%), 엔씨소프트(490%), 현대차(450%), 현대모비스(420%), 모나리자(310%), 성지건설(275%), 현대엘리베이터(270%), 화신(240%), 동양물산(220%), 이수화학(200%), 동원수산(190%), 코스모화학(190%), 아시아나항공(180%), 대상(170%), 국보디자인(145%), 에스엠(100%), 네오위즈 등과 같은 종목들은 이미 바닥권부터 꾸준히 추천을 하여 지금도 최고의 수익을 안겨 주었다.
이번주에는 M&A 가능성, 턴어라운드, 사상최대의 실적 호재와 함께,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신기술에 글로벌 기업들의 주문이 동사에 집중되어 매출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신제품 하나로 증시를 초토화 시키는 사상 초유의 꿈의 종목 1선을 엄선하여 추천할 예정이다. 지난번 추천 드려 8상한가 포함 단숨에 310% 수익을 거둔 ‘모나리자’ 보다 더 큰 시세가 예상되는 종목이다.
그의 무료추천주는 '부자아빠 주식학교'(http://cafe.daum.net/stockpapa)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우리 시장에 필립모리스, 코카콜라, 애플과 같이 수십년간 상승할 좋은 주식들이 정말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걸 발견 못하고 부실한 기업의 주식들로 고통 받는 투자자들이 많아 안타깝다”고 말하는 그는 대한민국 개인투자자들에게 풍요를 보장해주는 기업의 주식을 발굴하는 일에 더욱 매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
질문자님, 스티브 잡스(Steve Jobs)는 1955년 2월 2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코크에서 태어나자마자 양부모 폴과 클라라에게 입양되었습니다.
양부모는 엄격한 기독교 신앙을 가진 미국서부의 농부였는데, 그의 양아버지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군인이 되었으며 캘리포니아 주 해안경비대에 들어가 경비정 기관사로 근무했고, 전역 후 클라라와 결혼하였고 자동차 정비, 할부금 수금원 등의 직업을 가졌고 아이가 없자 스티브잡스를 입양하였던 것입니다.
잡스는 성인이 되어서 자신이 입양된 사실을 알고 작가로 활동하는 모나 심프슨이라는 여동생과 대화 치료사였던 어머니와 정치학 교수였던 아버지의 존재도 알게되었지만 그는 언제나 양부모를 친부모로 여겼다고 합니다.
스티브 잡스가 3살 되던해 그의 가족은 양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사우스 샌프란시스코의 산업단지에 들어선 주택가로 이주하였고 주변 전자회사에 다니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성장하였습니다.
이때 전자 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동년배 빌 페르난데스와 5살이 많았던 스티븐 워즈니악을 만나 교류했으며 스티브 잡스에게는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모두 학교에서는 낙제생이자 독선적인 외톨이였지만 전자적인 지식과 집념 그리고 유쾌한 성격은 비슷했답니다.
이당시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고 당시 미국 히피문화에 흠뻑 젖어있었다고 회고합니다.
홈스테드고등학교를 마친 뒤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 있는 리드대학교에 입학하여 그는 마약을 중단하고 새로운 이상을 찾아 동양철학을 공부했지만 1년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캘리포니아로 돌아가 아타리(Atari)라는 전자게임 회사에 취업하였습니다.
하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회사를 그만두고 스티브 잡스는 히피차림으로 인도로 여행을 떠나서 수개월간 인도 북부 히말라야 일대를 여행하였지만 그가 기대했던 내면의 정신적인 만족감을 얻지못한 채 미국으로 돌아가 아타리사에 복직하였습니다.
그는 컴퓨터 게임을 만들었으며 이때 다시 워즈니악과 친분을 쌓았고 전자분야의 지식이 해박했던 그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사업적인 수완과 마케팅 감각이 뛰어난 스티브 잡스는 천부적인 전자 엔지니어였던 워즈니악의 도움이 있어야만 그의 아이디어가 실현 가능했고 각각의 장점을 합쳐 두사람은 1976년 컴퓨터 회로기판을 제조하는 회사를 공동창업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회사이름은 스티브 잡스가 오리건 주의 선불교 수행을 하던 장소였던 사과농장을 연상하여 '애플(Apple)'이라고 지었다고 합니다.
회로기판만 있는 퍼스널컴퓨터 '애플Ⅰ'을 만들어 발표했으며, 당시 퍼스널컴퓨터 시장이 주목받게 되자 곧 새로운 컴퓨터 플랫폼인 애플Ⅱ를 만들어 냈습니다.
확장슬롯으로 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었고 획기적인 운영체계를 적용하여 컴퓨터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들도 불편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영세한 업체로서는 사업여건이 불리했지만 스티브는 이런 환경에 굴하지 않고 자신 믿는 비전을 열정적으로 설득해나갔습니다.
마침내 그들이 만든 퍼스널컴퓨터는 시장에서 큰 반응을 보이며 판매에 성공했고 그에 힘입어 1980년에는 주식을 공개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억만장자가 되었으며 미국에서 최고 부자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오랜동안 연인관계였던 크리스 앤과 사이에서 리사(Lisa)라는 딸을 두었지만 그는 자신이 친부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고 친자확인 소송에서 패소한 이후 리사가 친자라는 것을 받아들였던 인물입니다.
또한 그는 모순된 성격과 인색함으로 어려운 시기에 힘이 되었던 친구들에게서 외면받게 되었지만 그는 자신의 태도와 생각을 바꾸지 않았고 이상적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더욱 집중했습니다.
회사내에서는 매킨토시와 리사 컴퓨터를 개발하면서 애플사의 핵심 엔지니어와 경영진 사이에 반목이 심해졌고, 스티브 잡스는 이런 불화를 조화롭게 리드하지 못했습니다.
스티브 잡스 자신이 주도했던 리사 프로젝트에서 밀려나자 새로운 컴퓨터를 개발하는 매킨토시 프로젝트를 추진하였지만 그를 믿고 따랐던 매킨토시 프로젝트 담당 엔지니어들은 노력에 비해 형편없는 연봉을 받고 있다는 불만이 고조되었고 스티브 잡스에 대한 배신감으로 표출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1984년에는 IBM에 대항하여 매킨토시 컴퓨터를 선보이고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었지만 회사 내부에서는 실패한 리사 프로젝트팀과 파워게임이 벌어지고 있었고, 메킨토시 발표 후 얼마 동안의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은 맥(Mac)에서 사용할 수 있는 소트웨어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았고 판매는 급속하게 줄었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독특한 스타일과 분위기와 함께 매킨토시에 매료되었던 사람들은 이제 불편함을 호소하기에 이르렀습니다.
1985년 1월 19일 워즈니악과 함께 백악관에 초빙되어 레이건 대통령이 수여하는 국가기술훈장을 받았지만 워즈니악은 회사를 떠나고 말았고, 스티브는 현실성없는 망상가이자 회사를 도탄에 빠뜨린 인사로 지목되어 1985년 5월 경영 일선에서 쫓겨났습니다.
애플을 떠난 뒤 넥스트(NeXT)社를 세워 세계최초의 객체지향 운영체제인 넥스트스텝(NeXTStep)을 개발하였고 1986년에는 조지 루카스 감독으로 부터 픽사(Pixar)를 1000만 달러에 인수하였습니다.
차세대 운영체제를 갖춘 그래픽 전용 컴퓨터를 개발하여 의료업계에 판매하려고 시도했으나 두 회사 모두 수익을 내지 못하고 스티브 잡스를 위기로 몰았습니다.
그러나 픽사는 하드웨어 사업을 포기하고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면서 회생의 기미를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1991년 3월 18일 로렌 파월이라는 여성과 결혼했으며 2명의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는 결혼과 자녀를 양육하는 문제를 두고서는 스스로에 대한 자신과 확신을 가지지 못했지만 예전의 모습과는 확연하게 변해있었습니다.
가정은 행복했지만 그의 사업은 점점 벼랑끝으로 내몰리고 있었다. 미국의 거부 로스 페로와 일본 캐논사를 통해 투자를 받으며 겨우 버텨나가고 있었고 회생의 기회를 잡지 못했습니다.
픽사의 존 레스터가 감독한 토이스토리(Toy story)의 원형이 되는 '틴토이(Tin Toy)'를 만들어 아카데미상 단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하며 세간의 관심을 받았지만 회사 매출에는 기여하지 못했습니다.
이때까지 잡스는 픽사를 인수한 것에 후회하고 있었습니다.
1996년 적자에 허덕이며 새로운 운영체계를 원했던 애플이 넥스트 사를 인수하면서 스티브 잡스는 13년만에 다시 애플로 복귀하여 경영 컨설런트로 역할하며 4억달러 흑자를 내는 데 공을 세웠습니다.
또한 픽사는 존 래스터가 제작한 제작한 토이스토리의 대대적인 성공에 맞추어 상장하여 거의 빈털털이에 내몰렸던 스티브 잡스를 단번에 억만장자에 올려놓았습니다.
2006년에 월트 디즈니가 픽사를 인수하면서 잡스는 월트 디즈니의 이사회 임원이 되었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CEO로 복귀한 2년 동안 애플은 자본이 20억 달러에서 160억 달러로 증가했으며 픽사는 연이은 흥행 성공으로 애니메이션 역사상 가장 성공한 영화사로 기록되고 있었습니다.
한층 여유로워진 스티브 잡스는 새로운 미디어인 인터넷과 접목한 새로운 제품개발에 눈을 돌렸으며 그 대상은 음악이었습니다.
그는 항상 제품의 모양과 색깔을 결정하는 디자인에 매우 중시했습니다.
아이튠즈 개발에 이어 아이포드라는 MP3플레이어를 개발하여 세계적인 히트상품 반열에 올려놓았고, 그는 이제 사업가에서 세상을 바꾸는 인물로 인지되고 있었습니다.
많은 청중들 앞에서 청바지에 검은색 셔츠로 연설하는 그의 모습은 바뀌어가는 세상의 서막을 알리는 행사로 각인되었고 사람들은 그가 만든 제품에 열광했습니다.
2007년 맥월드에서 아이폰이 발표되고 전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애플은 약 500억달러의 수익을 올렸습니다.
특히 아이폰은 통신업계 전반을 뒤흔들어 놓았고 문화적인 파급효과도 지대했습니다.
또한 2010년 발표된 아이패드라는 태블릿 컴퓨터를 발표하면서 스티브 잡스가 주도하는 변화는 가속화 되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IT업계에 큰 획을 그은 인물로 평가되며 성공가도를 달렸으나, 개인적으로는 희귀암 발병 등 건강 문제에 시달렸고, 2004년 췌장암 수술을 받고, 2009년 간 이식 치료를 받았습니다.
2011년 8월 24일 병세 악화로 애플 CEO직을 사임했고, 사임 후 2달이 채 지나지 않은 지난 10월 5일에 향년 56세로 사망했습니다.
<출처> http://100.naver.com/100.nhn?docid=777359
질문자님은 아래 인용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세요.^ㅎ^
1976.4.1 외톨이 몽상가와 천재 기술자가 만나 애플 컴퓨터를 공동 설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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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우절에 설립한 히피들의 회사, 애플 컴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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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톨이 몽상가와 천재 기술자의 만남, 그리고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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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왼쪽)와 워즈니악이 애플 컴퓨터 설립 후 '애플Ⅱ'를 선보일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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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다툼에 의한 잡스의 몰락, 픽사를 통한 화려한 재기와 애플 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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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로 백만장자가 된 워즈, 일선에서 물러나 자원봉사에 전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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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가 워즈를 '이용한' 것일까, 워즈가 잡스 덕분에 '뜬'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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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추천하는 덧붙여 읽으면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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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