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흘러간다. 잠시 머무는 듯 지나가며 흔적을 남긴다. 그러니까 모든 존재는 흔적일 뿐이다.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거짓말, 그래서 무상(無常)이 아닌가. 파도는 파도대로, 갈매기는 갈매기대로 저희들만의 자세로 허공에 흔적을 남긴다.
보길도와
제주도에 다녀왔다. 보길도 세연정의 동백꽃은 이미 피면서 지고 있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언제나 순차적으로만 진행되지 않고 피고 지는 것이
동시에 이뤄지는 일이 아닌가. 제주도 밤의 종려나무도, 구름도, 수선화도 거센 바람과의 정면대결이 아니라 더불어 살가운 통정을 하고
있었다.
2003년, 그러니까 어느새 13년 전에 생명평화 탁발순례를 할 때 총괄팀장을 맡아 제주도를 25일 동안 걸어서 한 바퀴
돈 적이 있다. 그때 ‘파풍’(破風)이란 말을 처음 들었다. 폭풍의 뜻이 아니라 바람을 깨뜨린다는 뜻이다. 현무암 돌담들이 태풍을 맞아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것은 단호한 벽이 아니라 숭숭 뚫린 구멍의 몸으로 바람의 길을 내주기 때문이다. 바람과 돌담의 깊은 통정으로 태풍은 좀더
유순해지고 돌담은 쓰러지지 않는다.
우리 집 북서향을 에워싸고 있는 방풍림인 대밭과 다르지 않다. 온몸에 바람을 품은 채 북풍을
맞아 휘청거리면서도 끝내 부러지지 않고 다시 꼿꼿해지는 것이다. 흔들리면서도 품을 줄 아는 사람들, 다시금 제주 돌담과 대숲에 경의를 표하는
날들이었다.
제주에 도착하자마자 조천 앞바다의 ‘시인의 집’으로 달려갔다. 지난해 이맘때 들르기로 했는데 풍랑주의보로 완도항에서
발이 묶이는 바람에 이틀을 기다리다 다시 모터사이클을 타고 지리산으로 돌아왔었다. 참 오랜만에 만난 손세실리아 시인은
여여했다.
페이스북에서 근황을 자주 엿볼 수 있으니 자주 만나온 것처럼 환했다. 하지만 ‘시인의 집’을 조촐하고도 오붓하게 간 것이
아니라 지리산행복학교의 대군을 이끌고 왁자지껄 쳐들어갔으니 서로 경황이 없는 바람에 많이 아쉬웠다.
집과 바로 맞닿은 조천 앞바다는
많이 흐렸으나 손 시인의 품성처럼 편안해 보였다. 어쩌면 저 바다의 쓸쓸함마저 편안함의 동의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마다
‘두근두근’, 그러나 ‘꿈결에 시를 베다’라는 그녀의 시처럼 말이다. 지난해 받은 그녀의 시집을 다시 펼쳐보았다. 시어(詩語)는 ‘조천 앞바다에
노니는 시의 물고기들(詩魚)’이었다.
제주도에서 몇 명의 그리운 벗들을 만났다. 손세실리아 시인과 더불어 화순바닷가 ‘마라도에서 온
짜장면’의 류외향 시인, 그리고 서울에서 낙향해 감귤농사를 지으며 글을 쓰는 김종민 형 등이었다. 특히 함께한 울산의 시노래패 ‘울림’과 밴드와
시인과 시낭송가들, 종강여행으로 함께한 지리산행복학교 아웃도어반과 갑장친구들, 이들이 있어 더불어 행복한 여행이었다. 보길도와 제주도에서의
3박4일은 내 몸에 스며든 몸살처럼 한동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순천만 솔섬 노을빛 언제 봐도 경이로워
오래전에 쓴 <지리산
편지>에 이런 구절이 있다.
‘아무래도 나는 그대의 철새 도래지, 우리는 모두 철새처럼 한 철 머물다 떠나는 누군가의
여인숙입니다. 바람 부는 날이면, 바람 불어 내 마음도 마구 그대에게도 쏠리는 날이면 순천만 갈대밭으로 달려갑니다.’
그렇다.
순천만은 사계절 관계없이 언제 가 봐도 멋진 곳이다. 모처럼 몸살기도 잠재울 겸 모터사이클을 타고 순천만에 다녀왔다. 갈대밭을 둘러보고 와온
바닷가 솔섬 앞에서 잠시나마 황홀했다. 언제 봐도 순천만 솔섬의 노을빛은 경이로웠다. 해 질 무렵 그 짙던 구름들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석양이
철새처럼 내려앉았다. 막판에는 장노출로 사진을 찍기도 했지만 정신없이 정공법으로 찍었다. 천변만화, 빛의 향연이 따로
없었다.
그리고 채 두 시간도 지나지 않아 바다 너머로 별들이 빛나는 푸르디푸른 겨울 하늘이 펼쳐졌다. 노을빛만 담은 뒤 이내
어두워진다고 삼각대를 거두고 돌아서기엔 너무나 벅찬 시간들이다. 주황 혹은 주홍빛에서 쪽빛 하늘까지는 그야말로 순식간의 일이 아닌가. ‘이쯤
해서 길을 잃고’ 싶었지만 바닷가 그 나무를 찾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3년 동안 순천만을 새로운 기법으로 담아내고 있다.
아직 공개할 수는 없지만, 1년 정도 더 고생하면 얼추 마무리 될 듯도 하다. 하지만 의도가 앞서면 되던 일도 잘 안 되는 법. 자연의
순리대로, 순천(順天)이라는 지명의 뜻대로 짬날 때마다 가고 또 가보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제대로 된 신년구상도 없이
새해를 맞았다. 신년시 한 편 못 썼으니 마침내 새해를 텅텅 비워 놓은 셈이다. 이른 새벽 산에 올라 안개가 흐르는 섬진강을 내려다보았다.
강물을 따라 안개의 군단도 흐르고 있었다. 삶이란 이렇게 유유자적하게 흘러가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
어느새 지리산 입산 19년을 맞으며 잠시 길을 잃었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이다. 그렇지만 조급하지는 않다, 오히려 더 편해졌다. 입산 초심을
되새기며 아주 천천히 조금씩만 흘러가볼 생각이다. 용두사미의 계획일랑 던져버리고 조급한 욕망을 더 내려놓아야겠다. 길 위에서 길길이 날뛰며 길을
찾지 말고 잠시 길을 잃었다는 것을 인정하자. 당분간 안개 속으로 스며들어 돌처럼 가만히 앉아 있고 싶었다.
며칠 뒤 새벽 3시의
섬진강변에 나가봤다. 날마다 바라보는 강이지만 물안개 막 일어서는 새벽 섬진강이 또 새롭다. 매화 필 무렵이면 황어 떼가 올라오고 보리가 팰
무렵이면 은어 떼가 돌아오더니 몇 년 전부터는 가을 연어들도 동참했다. 강물은 아래로만 흐르는 게 아니라 이처럼 흐르면서 수많은 생명들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밤마다 별들도 화답을 하며 원무를 춘다. 그런데, 뉴스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섬진강이 포함된 ‘5대강 사업’을 비밀리에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친수구역’이라는 말로 섬진강까지 죽이려 드는 발상이 두려웠다.
어처구니없는 떼까마귀 저작권 논쟁
황지우 시인의 옛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가 자꾸 떠올랐다. 얼마 전에 울산의 강양항에 갔다가 마주친 수만 마리의 갈까마귀와 떼까마귀들의 군무가 엄습해 왔다. 지난해 이맘때도
보았던 풍경들이지만 모터사이클을 타고 이 까마귀 떼들을 따라다녔다. 이 까마귀 사진을 두고 지난해 초에 울산의 사진가 두 명이 언쟁을 벌인
적이 있다. 말하자면 이 떼까마귀들의 저작권(?) 논쟁이었다. 슬로셔터로 찍은 음울한 느낌의 사진, 그 원조논쟁이었던 것이다.
울산 사진계의 이 논쟁은 법정에까지 간 운여해변 솔섬의 표절논쟁(?)처럼 웃지 못할 해프닝으로 끝났다. 사실 까마귀의 저작권은
까마귀에게 있지 않겠는가. 문제는 소재가 아니라 작가의 시선과 주제가 관건일 뿐이다.
풍경사진의 표절문제는 두 명의 고수인
배병우와 마이클 케냐의 ‘흔해빠진 풍경사진’전의 방점으로 일단락된 셈이다. 어찌됐든 시절이 하수상하다 보니 황지우 시인의 시가 자꾸 되새김질되는
날들이다.
경남 하동의 신노량항에 다녀왔다. 흐린 날의 겨울 오후, 혹시나 하고 가봤더니 역시 노을빛은 좀 어두웠다. 그래도 조금
더 때를 기다리니 짙은 구름 아래에서 석양이 불콰한 얼굴을 내밀었다. 만조의 바닷물은 자꾸 차오르고, 코뿔소바위 다리 사이 돌개구멍의 석양을
잡으려다 한쪽 발이 빠지고 말았다. 이미 젖은 발을 어찌할 것인가.
그대로 더 자세를 낮춰 애를 쓰는데 왜가리 한 마리가 날아와
코뿔소 엉덩이에 앉는 것이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런데 바닷물 가까이 머리를 처박고 낑낑거리는 나를 보자마자 왜가리 이 녀석이 후다닥
날아오르는 것이었다. 왜 가니? 왜, 왜, 왜? 왜가리야! 셔터 스피드를 낮춰놓았지만, 그래도 대여섯 장 연사로 갈겼다. 이것도 동행이라면 저
따로 나 따로 노는 동행이 아니겠는가.
신노량항의 코뿔소 바위를 뒤로하고 어느새 19년 된 모터사이클을 타고 임도를 따라 구재봉에
올랐다. 붉은빛이 감도는 매직아워, 앉았다 누웠다 하면서 오래도록 섬진강을 내려다보았다. 매직아워에서 별비가 쏟아질 때까지 겨울바람에 맞서며
텐트를 쳤다. 별들도 흐르고 섬진강변 19번국도를 따라 자동차 불빛도 흐르고 있었다. 삼각대를 세우고 장노출의 광각렌즈로 사진을 찍으니 희미한
불빛의 텐트와 모터사클을 배경으로 섬진강 별비가 내리고 있었다.
섬진강변 소학정 매화가 벌써 개화
새해 들어 당분간 특별한 일정을 잡지
않았다. 지리산과 섬진강만 어슬렁거리다가 문득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어 벌떡 일어났다. 모처럼 모터사이클로 경남북 일원을 둘러보며 2박3일
동안 겨울 야영을 했다. 경남 창녕의 우포늪과 밀양의 세량지, 그리고 청도의 혼신지에 다녀왔다. 춥고 배고프고 외롭지 않은 노숙이 어디 있으랴.
하지만 혼미해지던 날들이 조금은 더 분명해졌다.
어느새 19년 된 모터사이클 ‘아프리카 트윈 750’은 실로 대단했다.
포장도로에서는 BMW GS 1200에 좀 못 미치지만 진흙탕 비포장길에서는 마구 내달리는 명마였다. 우포늪에 베이스캠프를 차렸지만 어찌된
일인지, 아무리 기다려도 새벽안개는 오르지 않고 어부마저 보이지 않았다. 한밤중에 들른 밀양 부북면의 세량지에서는 주변 가로등 때문에 별궤적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아주 가까이 다가온 수달과 눈빛만 맞추다 돌아섰다. 너무 늦은 밤이어서 그 근처에 사는 갑장친구 이응인 시인에게
전화조차 못 하고 그의 집을 지나쳤다.
다음날 온몸으로, 혼신(渾身)의 힘을 다해 혼신지(魂神池)에 달려갔다. 영혼과 정신을 부르는
겨울 저수지의 허위허위 애타는 손짓들을 보았다. 이미 연꽃은 져버린 지 오래됐으나 연밥과 연대와 연잎들이 물속에 잠기며, 거꾸러지면서도 저녁
노을빛을 받아 도저히 풀 수 없는 암호 같은 표정을 보여 주었다. 환장할 노을빛에 물들며 영혼을 부르고, 정신을 부르고 있었다. 겨울 저수지
연밭에서 사라지는 것들의 미학, 소멸의 아름다움을 보았다. 다시 간다면 좀더 다르게 찍을 수 있을까. 일명 ‘피카소의 그림’이라는 혼신지의
손짓들을 보며 나희덕 시인의 시 ‘사라진 손바닥’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올해는 너무 빨리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아무리 엘니뇨현상이라 하지만 1월 1일에 섬진강변 소학정 매화가
활짝 꽃을 피우는가 하면 여수를 비롯한 남도 몇 곳에는 복수초가 꽃잎을 열었다. 최소한 열흘 이상은 빠른 것 같다. 아직은 한겨울인데 우리 집
마당에도 큰개불알풀(봄까치) 꽃이 화답한다. 햇살 내리는 오후엔 꿀벌들도 날아든다. 지난해 늦가을엔 붉은 사과 옆에 사과꽃들이 피더니 두서없는
세상사가 철없는 꽃들을 부른다.
그래도 햇꽃이니 기록해 두고 싶었다. 복수초는 오전 11시부터 맨 처음 꽃잎을 펴느라 애를 쓰다가
오후 3시가 되자 슬그머니 입술을 닫았다. 복수초(福壽草) 첫 개화장면을 타임랩스로 3시간30분 동안 700여 장 찍어 동영상으로 만들어봤다.
이를 페이스북에 공개했더니 4,500명 이상의 ‘페친들’이 환호를 보내 주었다.
며칠 동안 칩거에 들어갔다가 화엄사 앞 ‘시의
동산’에 슬그머니 다녀왔다. 나의 졸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시비를 보고 왔다. 이미 작년에 세워놓았다는데 쑥스러워 한참을 미루다 몰래
가봤다. 구례 사도리가 고향인 이시영 선생의 시비를 비롯해 도종환 시인과 나의 야생화 사부인 김인호 시인 등의 시비들이 곳곳에 서있었는데,
생각보다 시비의 디자인들이 참 좋았다.
사실, 지리산 마니아 산꾼들이 좋아하는 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은 구례의 어른들- 고 함태식, 우종수 선생
등이 만든 ‘연하반’이라는 지리산 최초의 산악회원들이 선정한 ‘지리산 10경’을 요즘말로 덧칠해서 쓴 것이다. 지리산의 아름다운 곳은 너무나
많지만, 특히 10경은 아름답다 못해 죽기에도 딱 좋은 곳이다. 가수 안치환이 노래를 만들어 부른 이 시는 이미 정령치와 산동 산수유마을에도
시비로 세워져 있다. 한 편의 시가 곳곳에 서 있다니!
그런데 이 세 곳의 시비 모두 나의 허락을 구하지도 않고 돌에 새긴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뒤에 다시 철거하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내심 좋기는 하지만, 아직 젊은 나이에 쑥스럽기도 하고, 빨리 죽을 수도
없으니 참으로 난감할 때가 많다. 어느새 지리산 입산 19년차라니! 더 천천히 가자.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이원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면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유장한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굳이 지리산에 오려거든 불일폭포의 물 방망이를 맞으러 벌 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의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려거든 세석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고 최후의 처녀림 칠선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진실로 진실로 지리산에
오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 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겸허하게 오고
연하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첫댓글 지리산 시인 이원규의 山房閑談.
어느새 지리산 입산 19년차라니!
더 천천히 가자. 대단하십니다.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詩를
잘 감상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