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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K리그 정규리그 1위와 더불어 포스트시즌을 거치며 챔피언까지 등극한 수원삼성 차범근(55) 감독을 16일 인천국제공항에서 만났다. 6일간 독일 분데스리가 경기를 참관하고 아들 차두리(28·코블렌츠)와 함께 귀국한 자리에서 불쑥 돌발 인터뷰를 제안했다. 그는 입국장 한편에서 30여분간 마음 속에 담아둔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냈다.
-독일 방문은 어땠나. 독일에서 6일간 머물며 얻은 것은.
독일에서 분데스리가 2부 코블렌츠-인골스타트(12일)와 1부 레버쿠젠-코트부스(13일). 샬케04-호펜하임(14일)전을 보고 왔다. 아마추어부터 단계를 밟아 1부에 진입해 전반기를 1위로 마친 호펜하임의 축구는 신선한 아이디어를 줬다. 그들은 경기 내내 상당히 전술적으로 많은 변화를 주면서 달라졌다. 수비에서 공격. 공격에서 수비로 전환이 빠르고 다양한 공격변화가 인상적이었다. 우리 선수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춰 봤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2008년을 희·노·애·락이라는 개념으로 나눠 본다면 어떤가.
전반기는 잘 했으니까 좋았다. 중간에 어려울 때 많은 선수들이 다치고 마지막 챔피언 결정전을 준비하면서도 어려운 싸움을 했다. 올해는 오랫 동안 1위로 가다 챔피언에 올랐다. 예년에 비해 순탄하지 않았나 싶다.
-K리그 우승에 대한 독일 지인들의 반응은.
갔더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K리그 챔피언 소식을 알고 있었다. 레버쿠젠 홈구장에 갔을 때는 현지 방송에서 내 소식을 전해줬다고 들었다(구장 아나운서가 경기 중 소개했으나 추위 때문에 잠시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옛 팬에게 인사할 기회는 놓쳤다). 독일축구협회도 방문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챔피언에 오른 것을 축하해줬다.
-수원에서 2004년 우승 당시와 올 해 우승은 어떤 차이가 있나.
2004년에는 고생을 많이 안 하고 챔피언이 되다 보니 감격이 올해 같진 않았다. 당시엔 전·후기리그가 나뉘어 벌어졌고 올 해는 정규리그 우승에 이어 챔피언까지 올랐다. 1위를 하다가 시즌 막판에 어려움을 당했다. 또 올해처럼 제대로 돈을 보지 못하고 멤버를 꾸린 적이 없었다. 팀에는 스타선수가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는데 올해는 그런 관념을 깼다. 시즌 막판 후보 선수들을 많이 썼다. 마지막에는 모든 것을 허물었다. 그야말로 모험이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극적인 반전으로 1위까지 올랐다. 이런 과정 속에서 챔피언이 돼 더 감격적이었다. 2004년 챔피언에 오른 이후 3년째 우승을 못해 절박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아쉬움이 많았는데 이를 털어냈다.
-올해 우승에서 특별한 의미를 찾는다면.
수원에서 5년 동안 두번 정규리그를 제패했다. 이제 어느 정도 감독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커리어를 쌓았다고 생각한다. 주위에서도 그러는데. (우승 횟수로 봤을 때)두번과 한 번은 마음의 여유가 다르다. 혹시 능력이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면. 이를 차단할 수 있게 됐다. 뭔가를 끌어낼 수 있는 초석을 닦는 계기가 됐다.
-이후 목표를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과 국제축구연맹 클럽월드컵 정상에 오르는 것이라고 했다. 지도자로서 그 이상의 꿈은 있나.
월드컵도 우승하고 싶다. 물론 '언젠가 기회가 오면'이다. 언젠가 월드컵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있다. 한국이 아니어도 좋다. 아시아 챔피언에 오르면 유럽 쪽에서도 관심이 있지 않겠나. 이번에 프랑크푸르트에서 친구들을 만났는데. 진담반 농담반으로 독일에 와서 감독하라고 하더라(웃음).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를 놓고 보면 전혀 길이 막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독일에 가려면 말 공부도 더 해야 한다(웃음). 성격상 어떤 것을 제대로 안 하고 일을 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수원삼성과 올해를 끝으로 계약이 만료된다. 재계약 임기에 대해 얘기를 나눈게 있는가.
(웃으면서)본래 수원 들어올 때 10년 하라고 했다. 재계약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아직 구체적으로 얘기된 게 없다.
-지도자로서 현장에 남고 싶은 욕심이 강한 것 같다.
그냥 감독으로서 하루하루 연명하겠다는 마음은 없다. 자리에 대한 욕심보다는 타이틀을 갖고 싶은 욕심이 있다.
- 챔피언에 오른 후 일각에서 차범근 리더십에 대한 얘기가 많았다. 본인의 리더십을 설명한다면.
1998년 월드컵 때는 컴퓨터로 일을 보는 게 조명을 받았다. 나의 리더십은 신앙이다. 전능자에게 기도하고 영감을 얻는다. 이런 문제는 스스로에게는 중요하다.
감독으로서 팀을 맡는 상황에서 리더십이라면 좀 다르다. 올해는 선수가 많이 없었다. 지난 해도 부분적으로 그랬지만. 올해는 내가 직접 운동장에서 선수들과 같이 훈련한 적이 없다. 들어보니 선수들이 나를 지나치게 어려워한다는 것을 알았다. 선수와 거리감이 생기는 것을 없애기 위해 포용해 주고 또 많이 들었다. 주장이 얘기하는 게 내 생각과 반해도 억셉트(accept)하고. 다른 때 같으면 원칙적인 부분이어서 물러설 수 없는 것도 조금 더 양보하고 그랬다. 시간을 투자해 대화하고 전력에 보탬이 된다면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이전과는 상당히 달라진 부분이다.
감독으로서 운동장에서 풀어내는 것도 마찬가지다. 포메이션과 전술. 또 선수 기용에서도 올해는 상당히 유연해졌다. 우승을 떠나 올해는 개인적으로도 많은 것을 경험하고 많은 것을 얻었다.
-올해 챔피언이 됐지만 주전 선수들이 J리그 진출 등으로 이탈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책은.
팀이라는 것은 항상 변화가 있다. 올해 깨달은 것이 그것이다. 앞서 말했지만. 고정관념에서 벗어났다. 선수가 없다고 안 되는 게 아니더라. 이천수를 보라. 이천수가 없으면 안 될 줄 알았는데 챔피언에 올랐다. 특정선수가 있어서 우승하는 것은 아니다. 편견이었다. 중요한 선수가 있으면 분명 도움이 되겠지만 없으면 없는대로. 안 되는 것에 목메는 것보다 또 다른 선수를 찾으면 된다. 기둥이 빠져나가면 새 기둥을 끼우는게 맞다고 본다. 그런 것 때문에 예전에는 불안했는데. 이제는 두렵지 않다.
-오는 22일 큰 아들 두리가 결혼한다. 며느리 자랑 좀 해달라.
복덩이다. 착하고 굉장히 순박하다. 두리가 10년간 해외에 있었는데. 며느리도 비슷한 기간 캐나다에서 공부를 해 공감대가 있다. 솔직하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 너무 예쁘다. (며느리를 어떻게 부르냐고 묻자)이름을 부르기도 하지만 휴대폰 문자를 넣거나 할 때는 '아가야'라고 부른다.
오광춘기자 okc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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