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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어느날 사랑이여...
 
 
 
카페 게시글
이야기 숲속에서 스크랩 터키4(허물어진 성벽이 서러운 목면의 성)
창강 추천 0 조회 59 09.06.02 23:41 댓글 7
게시글 본문내용

 

  

가파도키아의 Merit 호텔은 밤새도록 떨게 만들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시치미를 떼는 고약한 취미를 갖고 있었다.

‘날씨도 요상하고, 손님대접마저 형편 없구먼....’

숙면을 취하지 못해 뻐근한 몸으로 ‘목면(목화)의 성’이라 불리는 파묵칼레로

향했다.

 

버스는 9시간 내내 원의 중심을 달렸다.

‘기차는 원의 중심을 달린다.’

어릴 적 초등학교 도덕책에서 읽은 끝없이 펼쳐진 평원의 중심에 우리가

놓여있었다.

이따금 키 큰 포플러 나무가 서있을 뿐 체리와 올리브 농장이 휙휙 뒤로 도망간다.

이스탄불에서 앙카라로 향하던 북부지역의 삭막한 풍광과 달리

지중해의 온화한 기후 덕분에 숲이 우거지고 과일 농사가 잘 된단다.

 

 

이 넓은 평원에 흘러 들어온 동방의 유목민족 투르크...

비잔틴 제국을 멸망시키고 유럽을 지배한 민족.

하지만 여인의 치마폭에서 달콤한 꿈에 빠졌던 술탄들...

남자는 세계를 움직이고 여자는 남자를 움직이니 곧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여자가 아닌가 싶다.

 

 

문득 워즈워드의 싯귀가 스친다.

‘한 때는 그리도 찬란했던 빛이었건만

이제는 눈앞에서 사라져가는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어제 잠을 설친 탓에 졸다 말다 눈을 뜨니 멀리 산 등허리가

마치 대리석을 채취하다 만 듯 눈앞에 다가온다.

‘이게 목면의 城이란 말인가?’

비몽사몽간에 마주친 탓인지 강렬한 인상을 주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거대한 성곽을 연상한 당초의 내 상상이 지나친 욕심이었다.

 

 

 

‘황성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무너진 성곽을 따라 개양귀비 꽃이 잡초 속에 홀로 붉다.

로마제국 시절 이탈리아 반도에서 이 곳 아나토리아 반도까지 목욕을 즐기기 위해

먼 길을 왔을 그들의 하얀 몸뚱이가 온천수따라 보이는 것만 같다.

어쩌면 로마는 목욕문화 때문에 멸망했다는 역사적인 험구가 사실일 듯싶다.

석회수가 오랜 세월 흘러내리며 굳어버린 노천을 보고 있노라니

우리의 고수동굴이 세계인의 가슴에 각인되지 못함이 한스럽다.

 

이른 저녁을 마치고 파묵칼레 주변 야경을 담아둘 욕심으로 카메라를 챙겨

호텔 방을 나오자 이번여행에서 만난 동년배 부부와 우리일행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여유를 부리며 걸어오다 말고 복도가 떠나갈 듯 웃어 제킨다.

 

“좀 조용히 하면 안돼?”

나의 핀잔에도 아랑곳 없이 가까이 다가온 아내는 좀처럼 웃음을 참지 못한다.

사연인즉 아내 일행을 뒤따르던 동년배 남편이 갑자기 방귀를 뀌었단다.

노루 제 방귀에 놀라 듯 아내는 뒤를 돌아보며 던진 한마디

“자기 머해?”

“댁의 신랑도 자주 그런 모양이죠?”

그 남편의 말이 더 걸작이라 웃음바다가 되고 말았단다.

 

파란 조명이 귀기스럽게 올려 비취는 목면의 성에 저녁이 찾아왔다.

듬성듬성 붉을 밝힌 어둑한 조명을 따라 석회수가 고인 연못을 따라 걸어가자

황소만한 개가 우리를 호위하듯 말없이 뒤를 따른다.

온천수의 미지근한 온도 때문인 듯 아직 차가운 봄인데 벌써 개구리가 철벅대며

울어대고 잠 없는 오리 떼가 소리 없이 물위를 미끄러져간다.

 

고개를 발딱 제키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이곳에도 북두칠성이 있었다.

우리 어머니들이 소원성취를 빌던 북두칠성이 이곳 아시아 끝자락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사바세계를 호령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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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06.03 03:21

    첫댓글 지난 주 시골 하늘을 쳐다보니 북두칠성이 있어서 소원을 빌었답니다..^^

  • 작성자 09.06.04 12:23

    소원! Vision! 그걸 위해 사는 한 삶은 가치 있겠지요? ㅎㅎ

  • 09.06.04 10:41

    모든 역사는 문을 닫고 바다도 묵언에 들겠지만..우리는 뒷걸음치듯 더러는 바닷가를 산책하며 그리 길지 않은 생을 몇걸음으로 요약하겠지만..한 때 영화로웠던 빛남과..쓸쓸했던 좌절의 풍경들이 또한 피안처럼 멀기만....

  • 09.06.04 16:37

    즐겁고 유쾌한 여행이네요^^

  • 09.06.05 18:10

    우와 야경사진 넘 멋지네요.. 전 경치를 좋아해서리 어디든 산과 물과 하늘이 어우러지는 곳이라면 다 아름다워요..~~

  • 작성자 09.06.05 18:34

    저도 유적지보다는 자연이 어우러지는 곳을 더 선호해요....

  • 09.06.06 15:44

    ㅎㅎㅎ 제가 개양귀비 가져갑니다. 터키 꽃이니 오래 두고 보려구요...건강 잘 챙기시며 여행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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