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병 환자'라고 비판받는 이들의 소식을 전하는 이유는 관심도 받아본 적 없는 한 무명 배우의 전락(轉落)과 대비하기 위해서다. 그는 추석 전에 댓글 하나 잘못 썼다가 자신의 꿈과 생업을 날렸다. 보증금 100만원, 월세 10만원의 반(半)지하 단칸방에 살면서도 배우가 되겠다는 소망 하나로 결혼도 안 하고 버텼다는 쉰두 살 정대용씨는 봉준호 감독이 제작을 맡고 배우 문성근이 주연한 영화 '해무'에 조선족 1로 출연했다. 다시 영화를 봐도 얼굴을 확인하기 쉽지 않은 미미한 역이다.
이번 사건에서도 그는 주역이 아니었다. 김영오씨에 대해 "단식하다 죽어라"며 막말을 한 뮤지컬 배우의 페이스북에 상대적으로 '소심한' 댓글을 달았다. '영양제 맞으며 황제 단식 중이라니…. 그러니 40일이 가까워지도록 살 수 있지.'
단식의 순수성에는 의심이 있다 하더라도 그래도 자식 잃은 부모다. 정씨의 댓글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 파장은 메가톤급이었다. 정씨 개인에 대한 욕설과 저주를 넘어 이 엑스트라급 배우가 출연한 '해무'를 보이콧하겠다는 협박이 SNS에 파도처럼 넘쳐났다. 대부분 자신의 계정 프로필에 '깨어 있는 시민' '행동하는 양심'이라고 쓴 사람들이었다.
웃지 못할 해프닝은 계속 이어졌다. 이번에는 '해무'를 지켜야 한다는 파도였다. 영화를 왜 배우의 정치적 잣대로 판단하느냐는 합리적 이유가 아니었다. 봉준호 감독과 배우 문성근은 세월호 동조 단식까지 한 '우리 편'인데 왜 '미꾸라지' 하나 때문에 영화를 보이콧하느냐는 거였다. 결국 이 무명 배우는 '30년 배우의 꿈'을 내려놓겠다는 장문의 사과문을 써야 했다.
평생의 무명 배우가 유일하게 주인공으로 출연한 프로그램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뒤늦게 찾아봤다. KBS 인간극장 '내 인생에 조연은 없다'(2009년)에서 이 평범한 사내는 "무대에 오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죽을 때까지 두근거릴 것 같다"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홍가혜' '일베'와 달리 '정대용'은 이미 검색 순위와 상관없는 잊힌 이름이 됐다. 하지만 이제 '광화문'은 세월호 유가족이나 합리적 국민의 소망과 달리 위험한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다는 우려를 떨치기 힘들다. 쩨쩨한 댓글이나 올리는 무명 배우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고 말하고 싶은가. 다음 과녁은 평범하고 소심한 당신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