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칼럼
[에스프레소] 극단 정치에 ‘방류된 민생’
조선일보
봉달호 편의점주
입력 2023.06.24. 03:00
https://www.chosun.com/opinion/column/2023/06/24/VOFOXKIT4BC2XBJGTWO73OR4R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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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은 괴담 말고 이성을
여당은 과학 넘어 중재를
오염수 문제, 마지막엔 경제
자영업자로서 민생 방류 분노
6월 18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 소금매대에 소금 품절 관련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최근 일본의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 방류가 임박함에 따라 사재기 우려가 현실화하면서 대형마트·슈퍼 등에서 소금 품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뉴스1
자영업을 해보면 ‘입으로 들어가는’ 문제에 서민들이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알게 된다. 구제역이 퍼지면 삼겹살집 주인이 한숨을 쉬고, 조류독감이 유행하면 치킨집 주문이 뚝 끊긴다. 검역에 통과했다느니 가열해 조리하면 문제없다고 아무리 설명해봤자 소용없다. 그럴 때 삼겹살이나 치킨을 멀리하는 사람을 향해 “과학적 상식도 없다”고 손가락질해봤자 부질없는 일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정국의 핵이 될 전망이다. 혹자는 지구 해류의 순환 경로나 태평양 크기 등을 거론하며 “커다란 물탱크에 잉크 한 방울 떨어지는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맞는 말이다. 과학적으로 이해가 된다. 하지만 물탱크의 존재와 ‘그 물을 마시는 일’은 다르다. 이성적으로는 이해해도 “그걸 나더러 마시라고?”라는 반문 앞엔 할 말을 잃는다. 안 마시겠다는 사람을 두고 미련한 사람이라 욕해봤자 덧없는 일이다.
사실 그런 건 과학이 아니라 정치의 숙제다. 믿음이 있으면 양잿물이라도 들이켤 테지만 믿음이 없으면 1등급 천연수라도 손도 대지 않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한쪽은 “핵 폐수”라면서 공포를 조장하기에만 바쁘고, 다른 한쪽은 그저 “괜찮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우리가 과학이 없어 문제를 풀지 못할까? 정치의 구조적 문제 때문에 상식으로 동의할 수 있는 사안마저 늘 극단으로 흐르는 현상을 목격하곤 한다.
야당이 되면 정부가 하는 일에 사사건건 반대하고 공격해야 다음에 정권을 잡을 수 있다. 대통령을 배출한 집권당은 임기 5년은 무조건 보장받으니 무슨 일이든 독불장군처럼 밀어붙인다. 그러니 이제는 당선증의 잉크도 마르지 않았는데 탄핵하겠다는 피켓을 들고 거리에 나서는 세력마저 등장했다. 정부로서는 ‘밀리면 끝장’이라는 생각으로 독해질 수밖에 없다. 윤회의 지옥 가운데 정치는 갈수록 자리를 잃는다. 오직 투쟁만 남은 국가가 되었다. 국민 모두에게 어느 한쪽의 투사가 되라고 권유하는 나라가 되었다.
균형추가 사라졌다. 이런 상황이라면 괴담에 골몰하는 야당 내부에서도 이성을 말하는 정치인이 나타나야 정상이고, 정부·여당에서도 정치적 해법을 강조하는 중재인이 나타나야 마땅한데 양쪽 다 ‘최고지도자’ 한 명만 바라보는 정치가 되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으니 더더욱 그렇다. 이럴 때 합리적으로 무게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제3 정당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 양태나 선거법으로는 요원한 일이다.
일본은 어쨌든 오염수를 방류할 계획인가 보다. 우리나라 거대 양당은 양쪽 다 일본이 얼른 방류하기만 기다리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다. 한쪽은 정권 타도의 호기로 삼을 것이고, 다른 한쪽은 어차피 저쪽은 그럴 것이니 정공법으로 싸우겠다는 결전의 의지를 벼린다. 광화문, 용산, 강남, 대구, 부산, 광주, 대전, 춘천의 큰 도로와 광장이 한동안 그렇게 들썩일 것이다. 한쪽은 퇴진과 탄핵을 외칠 것이고, 다른 한쪽은 “과학적 상식도 없는 세력”이라는 공격의 기회로 맞설 것이다. 시위대의 선두에서 누군가는 다음의 금배지를 노릴 것이다. 국민은 어느 한쪽의 집회에 합류하기를 요구받을 것이고, 정치 문제로 다투는 가족이 또 생겨날 것이다.
오염수 방류는 과학도 정치도 아니고, 결국 경제 문제에 닿는다. 어민은 물론 유통업자,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의 피해가 상당할 것이다. “우리 바다는 안전하다”고 아무리 설명해봤자 소용없을 것이다. 한쪽은 괴담을 책임지라며 윽박지를 것이고, 다른 한쪽은 미연에 막지 못한 책임을 지라고 외쳐댈 것이다. 물론 어느 쪽도 책임은 지지 않을 것이다. 정해진 계산에 따라 정치는 흘러갈 뿐. 그런 가운데 민생만 방류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