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아닙니다
원성은
사람들이 내가 아니라
내 그림자를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다가왔다
축제가 한창이었고
식칼이 석류 하나를 둘로 갈라놓은 자리는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잔을 들어라 축하해 축하하자
나는 파티장 한가운데 서 있었다
붉은 와인이 가득찬 잔을 들고
그런데 내 그림자만 화려했다
그림자가 화려해질 수 있는 방법은
구멍이 많아지는 것이었다
빛이 새는 구멍, 비밀을 함구하지 못하는 구멍,
침묵을 능숙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구멍
검은 드레스를 입은 나는 그림자의 연장선
부속품, 꼬리, 그런 것 같았다
그림자를 밟지 마세요 민감한 피부 같습니다
저보다 어둡고 무겁고 아픈 친구입니다
나는 나의 죄를 친구라는 단어로 교묘히
갈아치워버렸다 그럼에도
죄의식은 없었다
뱀인지 뱀이 벗어놓은 허물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내 그림자는 바닥에 길게 질질 끌리면서
파티장에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들은 나와 내 그림자 사이에 빼곡히 자리를 잡았다
본격적으로 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남의 그림자를
누군가 내 그림자를 밟으면서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림자 위로 산사태처럼 사람 한 명이 쏟아졌다
가득찬 와인이 검정 위에 붉은 얼룩들을 남겼다
그림자 위에 압정 여러 개를 올려놓기도 했다
밟으라고, 사람들이 아팠으면 좋겠어서
내 그림자는 내 친구고
지금은 많이 아프다
나는 이것을 검은 고양이처럼 나를 초대한
나만의 불운으로 대한다
불운을 쓰다듬고 그루밍해준다 길들여준다
내 그림자는 아파하면서 구멍으로 숨을 쉰다
압정들이 내 발바닥을 찾아와서 박힌다
방금 완벽한 전이가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