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보(果報) 이야기
1. 과보(果報) 이야기 하나
우리 속담에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이라는 말이 있다.
이 이야기는 천태 지자대사의 해원석결(解寃釋結)이라는 유명한 법문에서 유래한다.
중국 양무제 때 선지식으로 이름을 날리고 법력이 높았던
천태 지자대사가 어느 날 지관 삼매에 들어 계셨다.
멧돼지 한 마리가 몸에 화살이 꽂힌 채 피를 흘리며 지나간 후,
곧이어 사냥꾼이 뒤를 쫓아와
“멧돼지 한 마리가 이곳으로 지나가는 걸 보지 못했습니까?” 하고 묻는 것이었다.
이때 대사가 그를 보고 “엽사여! 그 활을 던져 버리시오.” 하며 다음과 같이 법문을 하셨다.
오비이락파사두(烏飛梨落破蛇頭) 사변저위석전치(蛇變猪爲石轉雉)
치작엽인욕사저(雉作獵人欲射猪) 도순위설해원결(導順爲說解怨結)
전생에 까마귀가 배나무에서 배를 쪼아 먹고 무심코 날아가자.
나무가 흔들리는 바람에 배가 떨어져, 그 아래서 빛을 쬐고 있던 뱀의 머리를 때려 죽고 말았다.
뱀은 “아니, 어떤 놈이 나를 죽이는 거야?” 하면 원한을 품고 죽었다.
이렇게 죽게 된 뱀은 돼지 몸으로 다시 태어나고, 까마귀는 생을 마치고 꿩으로 태어나게 되었는데
어느 날 그 꿩은 숲속에서 알을 품고 있었다.
이때 돼지가 칡뿌리를 캐 먹다가 돌이 굴러내려서 그만 꿩이 죽고 말았다.
꿩은 “아니, 어떤 놈이 나를 죽이는 거야?” 하면 원한을 품고 죽었다.
이렇게 죽임을 당한 꿩이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 사냥꾼이 되었는데
이상하게도 그는 유독 멧돼지만 보면 꼭 죽이고 싶었다.
자기도 모르게 왠지 멧돼지만 보면 열받는 것이었다.
그 돼지를 활로 쏘아서 죽이려는 순간, 지자대사가 이들의 지난 삼생사(三生事)를 보시고
더 큰 원결(怨結)과 악연으로 번져 가지 못하도록
사냥꾼에게 이 같은 해원(解怨)의 법문을 설해 주게 된 것이었다.
“원한은 원한을 낳는 법이다. 어떠한가?
엽사여. 계속 원한의 악연을 이어갈 것인가? 아니면 여기에서 악연의 고리를 끊을 것인가?”
지자대사로부터 삼생사(三生事)에 얽힌 이러한 법문을 듣게 된 사냥꾼은 크게 뉘우쳤다.
그 자리에서 활을 꺾어 던져 버리면서, 다시는 살생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오비이락파사두(烏飛梨落破蛇頭)
까마귀 날자. 배 떨어져, 아래 있던 뱀의 머리가 깨졌네.
사변저위석전치(蛇變猪爲石轉雉)
멧돼지로 환생한 뱀은 바위를 굴려 꿩을 죽였네.
치작엽인욕사저(雉作獵人欲射猪)
꿩이 사냥꾼 되어 멧돼지를 쏘려 하니
도순위설해원결(導順爲說解怨結)
도인이 삼생의 연을 설명하고 원한을 풀었네.
이와 같이 설사 나는 의도하지 않은 행위라 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고, 이것은 나의 업이 된다.
이것은 서산대사의 말씀과도 일맥상통한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적에, 모름지기 그 발걸음을 어지러이 말지어다.
오늘 내가 걷는 이 발자국이, 뒤에 오는 이의 이정표가 되리니.’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부수호란행(不須胡亂行)
금일아행적(今日我行蹟)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
나는 무심코 하는 행위라 하더라도 그것은 마치 아무런 생각 없이 걸어가는 발자국과 같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크나큰 영향을 주게 되고, 이것은 결국 나의 업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업(業)이라는 말은 업보(業報 행위의 결과)와 같은 의미로 사용]
모르고 짓는 업도 이렇게 크거늘, 하물며 의도적으로 짓는 업은 어떠하겠는가?
정신 차려야 할 일이다.
2. 과보(果報) 이야기 둘
어느 때에 부처님께서 법문을 마치시자. 대중 가운데서 목동이 인사를 드리고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오늘 살생의 업을 지었나이다.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그러면서 들어 보이는 그의 지팡이 끝에는 두꺼비 한 마리 찔려 죽어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잠시 생각하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목동이여, 이것은 그대의 업이 아니니라.”
그러면서 두꺼비의 전생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 두꺼비는 전생에 조용히 명상을 좋아하는 수행자였다.
그러다가 어느 때에 다른 절에서 하룻밤 유숙하게 되는데
그는 평소처럼 조용히 명상하며 수행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그 절에 있는 스님은 공교롭게도 명상이 아닌 염불 수행을 하는 스님이었는데
그 염불 소리가 어찌나 크고 요란한지 도저히 조용히 앉아 명상할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그 스님은 방으로 돌아와 잠을 청하면서 투덜거렸다.
“아이고, 되게 시끄럽네. 꼭 개구리가 떠들어대는 것처럼 시끄럽군.” 하면서
원망의 말을 했는데, 그 업으로 그는 그 후로 500 생 동안 개구리 몸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500 생의 개구리 몸 다음으로 500 생의 두꺼비 몸을 받아야 할 처지였는데
두꺼비 몸을 받은 첫 생에서, 마침 그 동네에 부처님께서 오신다는 걸 알고
부처님 법문을 들으려고 그 자리에 와-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목동도 역시 그날 부처님께서 법문을 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부처님 법문을 듣기 위해 서둘러 왔는데, 그만 지각해서 제일 뒤에서 듣게 되었다.
제일 뒤라서 앉지도 못하고 계속 서서 법문을 듣던 목동은 다리가 아파서
습관적으로 자기가 들고 다니던 지팡이를 엉덩이에 대고 거기에 기대어 서 있었다.
그런데 마침 그때 목동 뒤에 있던 두꺼비 등에 그 지팡이가 닿아 누르기 시작했고,
두꺼비는 너무나 아파서 죽을 지경이었다.
아파 죽겠다고… 지팡이를 치워 달라고… 꽥~ 하고 소리를 지르려고 하던 두꺼비는 생각했다.
‘나는 입 한 번 잘못 놀려 그동안 그토록 괴로운 과보(果報)를 받아야 했다.
그런데 내가 지금 소리를 지르면 목동은 눈치를 채고
지팡이를 거두어 내가 목숨을 부지할 수는 있겠지만
내 비명-소리에 대중들이 놀라고 부처님 법문에 방해가 된다면 그 업은 또 어찌할 것인가?’
두꺼비는 그런 생각으로 소리를 지르지 않고 고통을 참기로 하였고,
지팡이는 계속 파고들어 두꺼비는 결국 죽고 말았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그대의 업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비록 두꺼비가 목동의 지팡이에 죽기는 했지만,
아무런 원망이나 원한 없이 죽었기 때문에 목동의 업으로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두꺼비 스스로 악연의 소지를 없애 버린 것인데,
두꺼비는 그 공덕으로 500 생의 두꺼비 과보(果報)라는 업장이 일시에 소멸하고,
바로 선처(천상계)에 태어났다고 한다.
이와 같이, 나에게 고통이 닥쳤을 때 악연의 고리를 끊는 것은 매우 고통스럽지만,
고통을 참고 이겨낸 그 공덕은 지금 당장(當場)의 고통보다 수백 배 훨씬 더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경혜 스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