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 신득구 선생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광주에서 고교 교사 퇴직 후 동네에 돌아와 농사를 짓고 계시는 이우 아재가
작년부터 남원의 농산 학술대회에 가자고 해도 예 대답만 하고 못 갔다.
일식 형님이 지금 자네 집 옆에서 나시어 30살 무렵까지 사시다가 남원으로 가셨다 하신다.
찾아보니 1850년에 나시어 1900년에 자진하신 분이다.
우리 한말 역사에서 1900년에 자진하신 분?
이우 아재는 덕촌부정공파의 대표로서 그 학술대회의 성원에 걱정이 많으시다.
병우 정우 아재한테 아짐들과 동네 부녀자들도 다 모시고 하라 하신 모양이다.
10시 쯤 정우 아재가 1시에 출발하자고 한다.
그러자고 했다가 두 아재한테 점심이나 사 드리려고 12시에 나가자 한다.
병우 아재를 태우고 정우 아재 트럭을 딸 과역에 멈춘다.
아짐의 일터에 트럭을 두고 정우 아재를 모시고 동방기사식당에 가 삼겹살 백반을 먹는다.
소주 한병을 두 분께 나눠 따룬다.
아직 1시도 되지 않았다.
기다리기 따분할 듯해 능가사로 들어간다.
두 분은 오래 전에 와 본 기억으로 변했다고 하신다.
뒷문으로 나오게 하고 차를 가지고 그리 올라간다.
문화예술회고ㅘㄴ 2층 송순섭실에는 사람이 많다.
화환이 여럿이고 여성들이 차와 과자를 대접한다.
송시종 문화원장 최영성 농산학회장 등이 인사르르 하고 군수와 의장의 축사가 이어진다.
정통부 장관이었다는 신윤식씨는 다리가 약간 불편하지만 건강하게 단상에 올라 감사 인사를 한다.
뒷쪽에서 세월이 무상하다고 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의 아들이 서울의 국힘의 국회의원이 되어 윤석렬의 내란 상황에 대해 당의 입장을 설명하는 모습을 떠 올린다.
송은일 전남대교수의 사회로 학술발표가 시작된다.
내가 기대했던 심경호 고려대 명예교수는 오지 못했다고 최회장이 원고를 요약해 강의하신다.
심교수의 한시 책을 몇 권 가지며 읽은 나로서는 직접 그 분의 애길 듣고 싶었는데 아쉽다.
안외순 한서대 교수는 유학과 순학(殉學)이라는 말을 쓰며, 그 분의 학문적 의의를 말하지만
정리가 안 된다. 정치철학을 한다는 말이 변명이 되기도 하지만 자신감이 없는 학자는 불편하다.
유영봉 교수 발표전에 잠깐 쉬는 시간을 갖는데 사회자가 옆에 앉은 신용수 교수한테 인사를 한다.
도덕 출신의 신교수는 외가가 대서 신흥이라고 하고 송은일은 대서 동편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초등 친구 송은일이다.
순천 공고를 나와 설계사무소를 했다더니 어느 새 전남대 인문학부 교수가 되어 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이따 더 애기하자고 한다.
팔영산의 첫봉우리 이름과 같다고 자신을 소개한 유교수는 농산의 '증혹인'이라는 한시를
사계절에 비추어 해설해 주신다.
신용수 교수가 좌장이 되어 종합토론을 하는 사이 일식 형한테 농산유고나 학술자료집의 위치를 묻는데
잘 모르신댄다.
은일이가 와 밖으로 끌고 나가 반갑다며 근황을 묻는다.
난 어떻게 지내고 있지?
마을학교나 월파? 마륜지? 등산과 술?
그냥 광주를 오가며 잘 지내고 있다며 그의 공부를 묻는다.
설계사무소하면서 돈을 벌었지만 만족치 못해 인문 공부를 했단다.
이순신 수군을 연구하며 고흥에도 몇 번 강의하러 왔다고 한다.
논문이나 저작을 보내달라고 하며, 고흥에 오면 연락하라고 하니
자기도 여수 오면 꼭 연락하라고 한다.
질문이 더러 나오나 신교수님은 시간이 넘었다며 정리를 하신다.
운동장 앞 한우 직판장에 저녁이 마련되어 있다.
두 아재를 모시고 이우아재 차를 타고 온 매재의 유식 형님까지 같이 앉는다.
소주 한병씩을 놓아주는데 옆자리도 안 마셔 두병을 세분께 따뤄 드린다.
건너편의 자리에 온전한 소주병도 양해를 구하고 가져와 따룬다.
술이 거나해진 세분을 모시고 원등에서 매재로 들어간다.
매재 골짜기의 적막을 깨며 유식 형님의 아래채로 들어간다.
나무를 지핀 방이 뜨끈뜨근하다.
맥주와 소주가 창고에서 나오고, 안채에서 형수가 가마과 과자를 내 온다.
나도 몇 잔 마시는데 형님이 길이 좁으니 마시지 말라고 한다.
기분이 좋아진 두 아재를 샘 앞에 내려드리고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