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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大念處經(D22, Mahāsatipaṭṭhānasutta) 身隨看
봄봄 추천 0 조회 382 18.05.27 17:04 댓글 9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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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8.05.27 21:48

    첫댓글 어려운 경문 부분적이나마 감히 도전해 보았습니다.
    대부분의 내용은 지금까지 했던 그 의견이고 그 내용입니다.
    [부처님 오신 날] 절에 갔다가 <사띠 빳타나 수행- 우 냐나로까 사야도 법문>라는 책을 받았습니다.
    훌륭하신 스님의 글을 읽으면서 대념처경을 다시 보았습니다.
    참고만 하십시오. _()_

  • 18.12.07 05:30

    「상윳따 니까야」에서의 정신・물질[名色]의 일어남과 법의 일어남을 인용합니다.
    "육근의 안・이・비・설・신 5가지의 감각기능은 마노를 의지하며, 마노가 5가지 감각의 대상과 감각 영역을 경험한다고 본다. 마음은 정신‧물질[名色]의 일어남이고, 법은 마음의 작의(作意)으로부터 일어난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5가지의 감각의 대상과 감각 영역을 감수한 마노는 마음챙김[sati]을 의지한다고 설명하고 있네요.
    sati는 "알음알이를 가진 몸으로 확립하는 것"이고요
    즉,
    "전면에 마음챙김"으로를 의미합니다. 그러면 과거의 기억도, 각성의 새김도, 마음을 다잡는 챙김 도 포함하니까요!

  • 18.05.27 21:33

    경문을 칸에 넣어서 색깔도 입히셨네요^^

    대부분의 내용에 동감합니다......

    "경험"이라는 것을 사띠와 많이 연결지으셨네요...... 환영합니다.

    밖으로 타인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을 타인으로 관찰한다고 해석하셔ㅆ네요....... 환영합니다.

    전면에 사띠... 이 해석만은 아직 ... 환영하지 못하ㅂ니다.......ㅎㅎㅎ
    여러 부류의 정통수행자들이... 몸을 곧추세우는 자세를 공통으로 사용하듯이.......
    전면의 사띠를 공통으로 사용한다고 볼 때... 밖으로 향했던 감각기관들을 안으로 돌이키는 과정이... 전면의 사띠와 연관이 될 듯합니다.
    수행주제를 정리하는 듯한 뉘앙스로 해석하시니... 생각적인 부분을 너무 강조하신듯.

  • 18.05.28 00:14

    저는 요즈음............ 사념처가 <왜? 中道인가?>에 대하여 궁금합니다.
    혹시 견해가 있으신 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 18.06.09 19:15

    AN6.61 majjhesutta에서의 6가지 중간과 알음알이를 신.수.심.법에 마음챙겨 sati하면 두극단을 따라가지않게하고
    중간을 힘차게 드러내는 majjhena 지혜의 중도를 체득하게됩니다.^^
    이것이 [숫타니파타]의 최초 경집 피안도품 [학인 티샤 메떼이야 경]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 18.05.30 21:05

    이번 6월 9일 majjha 닦음의 논문을 발표합니다. 주제는
    "니까야 majjha 닦음으로 구현한 중도와 유식에 관한 고찰" 입니다.
    인도철학회가 주최하고 부산 동명대학교 입니다. 1시-6시 일정중에서 4시 이후 발표 예정입니다. 발제자 저는 우법 김근중 입니다.
    majjha닦음이 중론의 '팔불게(중송)'으로 오는 과정과 중간으로서의 알음알이를 갖추는 '유식' 내용입니다. Be happy!

  • 18.05.30 20:21

    내용이 좋겠네요......... 발표하신 후에 ....... 본 카페에도 논문을 소개해 주십시오.
    중론과 유식의 회통은 ...... 드믄 내용인데요..........

  • 18.05.31 11:46

    사념처는 오온이 둑카라는 것을 한시도 잊지 않게 하는 되새김작용이기 때문에 열반에 이르도록 돕는 방도일 수 밖에 없습니다.
    고락중도인 중도는 완전한 버림(renunciation)을 통해 열반에 이르는 과정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쾌락행이나 고행은 완전한 버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고행은 일종의 위선인데 고행자들은 나중에 더 큰 쾌락을 누리기 위해 현재의 고통을 감내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중도는 지금이건(쾌락주의) 나중이건(고행주의) 모든 쾌락의 추구를 버리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도 낙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둑카일체! 일체둑카!

  • 18.05.31 12:02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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