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9.20. 오전 9시 주일예배 설교문
신앙고백 (3)
찬송 36 주 예수 이름 높이어
대표기도 박이순 집사 (549)
성경 말씀 로마서 3:9~20
찬양 샤론 중창단
설교 모두가 죄인입니다.
찬송 463 험한 시험 물속에서
광고 추수감사절 예배 겸 박이순, 박영숙 권사 임직 예배
추석 연휴 가족 방문에 만전(인사하기)
가족 방문 김귀례 권사 큰딸(전주) 윤순희 권사 큰아들, 홍삼동 집사 자부 손녀들,
김귀례 권사 막내아들, 유순례 성도 가족, 유순례 성도 둘째 딸 부부(경기도)
찬송 464 곤한 내 영혼 편히 쉴 곳과
축도 아프니까 그만하세요. 주님도 아프잖아요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 밖에 / 호수, 정지용
9절입니다.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10절,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절,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절,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절,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절,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절,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16절,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절,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절,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의 의)
19절,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20절,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새색시 옷고름처럼
늙도록 수줍은 여인들을 만나면 아름답고 거룩합니다.
우리 박기순 성도님께 남편 어디 계시냐? 물으면
우리 신랑 집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늙도록 가슴에 살아계신 신랑님은 옛날에 옛적에 떠났습니다.
바로 이런 여인의 마음은 새색시 옷고름입니다.
지난 한주도 눈 깜짝하는 사이,
밥 먹을 뜸도 없이 훌쩍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러니 항상 새색시 같았던 양 선생도
어느새 칠십 줄인 듯 못다 한 일들이 있다며 서운하기만 합니다.
우리 고정순 권사님은 97세십니다.
서울서 새색시 시절 시댁 찾아, 동서랑 함께 하늘나라 가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런데 97세 권사께서 늘 가슴이 아파 죽겠다고 합니다.
그럴 만도 하겠습니다.
평생 남편 뒷바라지야 자식 뒷바라지야 얼마나 속을 태우셨겠습니까?
그래서 목사님이 만사 제쳐두고
고 권사님 모시고 전주 대자인 병원 심장내과에 갔습니다.
의사께서 말씀하기를 고령이신 데다 체력 저하로
CT, 초음파, MRI, 심전도, X-RAY 등 많은 검사를 해야 할 텐데
고령 체력으로 견디시겠습니까?
그래 한 마디도 못하고 뒤돌아 오는 목사님 차 안에서
우리 고 권사님 말씀하시기를,
목사님 저 때문에 이렇게 고생하셔서 식사 대접해 드려야 하는데요.
같은 말씀을 열 번 하셨습니다.
운전하고 있는 목사님 오른손으로 고 권사님 왼손을 꼭 잡고 오면서
권사님, 목사님은 권사님께서 건강하시기만 하면 그것이 최고입니다.
이렇게 열 번을 대꾸해 드렸습니다.
목사님도 이렇게 격조 있게 늙고 싶습니다.
엊그제는 아침 일찍 우리 배춘화 선생님을 돕고
아침 8시가 좀 지나서
불이 났게 우리 박문식 집사님을 모시고 예수병원 응급실로 달려갔습니다.
먼저 성형외과 진료를 마치니 혈관외과 진료로 오후 3시경이 지나고
순환기내과 진료 검사 등을 4시경에 마치고
정형외과 진료 등 이렇듯 종일 응급실에서 살았습니다.
우리 박문식 집사님은 목사님만 불러대고
거기에 똥까지 눕고, 뒷처리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박문식 집사님 말씀하시기를
목사님 없으면 난 죽은 목숨입니다.
목사님께 고마움을 모르면 난 사람이 아니지요.
MRI 검사는 취소하고도 요양원 도착하니 오후 5시 15분경.
도시적이고 아침 이슬만 먹고 사는
그리고 “예, 아이요” 만 하시는 우리 김정빈 간호사께서
환자보다 목사님부터 챙기시며 물 한 잔의 우대에 마음이 녹아내렸습니다.
이것이 우리네 인생입니다.
그리고 저녁이고 뭐고 샤워하고 그대로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어제 아침 일찍 항상 긍정적이고 낯꽃이 좋은 박미성 선생님을 도우러 갔습니다.
우리 박문식 집사님을 깨워 세수 면도해 드리고 아침 식사를 준비시키는데
97세 박문식 집사께서 목사님 손을 끌어 쓰다듬으며
목사님, 참말 고맙습니다.
이 한마디가 보름달처럼 고마웠습니다.
늙더라도
이렇게 품격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9절입니다.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우리는 모두가 죄인입니다.
해아래 새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헬라인들의 타락상은 소도모가 고모라였습니다.
지금 일본, 미국 등의 섹스문화뿐이겠습니까?
우리 대한민국 섹스문화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것입니다.
노인 일자리 오시는 장로님도 콜라텍 마니아입니다.
그래서 옛날에 이러한 노래방 등
변태적 성문화 때문에 에이즈가 만연했드랬습니다.
그리고 마약이 지천이라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누군들 자유롭겠습니까?
우리 목사, 스님, 신부들까지도 지저분한 세상 문화에서 얼마나 자유롭겠습니까?
모두가 죄 아래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All have sinned.
그래서 목사님은 해가 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옵니다.
밤 문화를 전혀 모릅니다.
그러고도 아예 특별함이 아니라면 낮, 밤이고 간에 외출을 절제합니다.
10절입니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절,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절,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본질이겠습니까?
이것이 우리 인간의 조건 human bondage이겠습니까?
서두에 그리움에 대한 시를 읽어 드렸습니다.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 밖에 / 호수, 정지용
이제 다음 주면 추석입니다.
밤하늘에 둥근달만 보아도 그리움이 사무칩니다.
그 그리움 때문에
때론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랑은 그리움입니다.
전도서 7장 20절입니다.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
우리에겐 죄로 인해 주저앉아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넘어지지 않아야 의인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어차피 우리는 넘어질 수밖에 없는 나약한 죄인들입니다.
우리가 의로워지고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는 것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움처럼 강렬한 사랑이 어디 있겠습니까?
길가에 꽃 한 송이만 보아도 눈물이 나지 않습니까?
갈잎이 하나둘씩 붉게 물들어가는 모습만 보아도 경의롭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랑하는 이유도,
그래서 우리가 신실해지려는 이유도,
그래서 우리가 참고 참는 이유도 그리움이 깊어지기 때문입니다.
그 그리움은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13절입니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절,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이것이 우리 인간의 조건이고
이것이 우리 인간의 본질이라면
너무나 슬프지 않겠습니까?
하루를 살더라도 꽃처럼 살고 싶지 않습니까?
그런데 입만 열면 썩어빠진 악취뿐이라면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그래서 목사님은 차라리 사람을 만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곤 합니다.
사람을 만나서
입만 열면
탐욕과 음란과 시기와 다툼이라면
차라리 만나지 않는 것이 옳을 듯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 요양원 성도님들과 우리 선생님들은 품격이 있어 참 좋습니다.
그러나 한둘이서 미꾸라지처럼 휘저어 구정물을 끼얹을 때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품격 있는 우리 선생님들 수준이 반으로 줄어듭니다.
우리 97세 고정순 권사님처럼 고령임에도
대접받기보다는 먼저 대접하기를 원하지 않습니까?
97세 우리 박문식 집사님 말씀처럼
고마움을 모르면 어찌 사람이겠습니까?
낼모레가 100세임에도 이런 말씀을 할 수 있다는 품격에 감동합니다.
입이 천근처럼 묵묵한 우리 배금배 권사님처럼
박문식 집사님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는 사랑.
아침 이슬만 먹고사는 김정빈 선생님처럼
부족한 목사님이지만 안타까워서 물 한 모금이라도 대접해 드리고픈 마음은
우리 모두가 죄로부터의 자유함을 얻기 위한 아름다운 몸짓들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그래서 우리의 사랑은
It ain't over till it's over.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닙니다.
15절입니다.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16절,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절,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절,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입술로 죄를 짓고
생각으로 죄를 짓고
그러면 이제 곧 발로, 행함으로 죄를 짓습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빗나간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36편 1,2절입니다.
악인의 죄가 그의 마음속에 이르기를
그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 하니
그가 스스로 자랑하기를
자기의 죄악은 드러나지 아니하고
미워함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함이로다
자기 아첨 Self-flattery에 익숙함입니다.
자기 아첨은 자기 잘못 자체에 스스로 눈을 가립니다.
자기기만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망각해 버립니다.
이렇게 자기변명을 반복하다 보면 스스로 그 거짓이 진실처럼 착각해 버립니다.
이렇듯 자기 아첨이 습관이 되면
내 눈의 들보를 보지 못하는 영적 시각장애에 빠져버립니다.
그래서 은밀한 죄까지 덮어버립니다.
그래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죄가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더 이상, 자기 죄를 볼 수 없는 사람입니다.
20절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가 죄인입니다.
엊그제 예수병원 응급실에서 곁에 장수 사시는 목사님과 지인을 만났습니다.
빨강 모자에 태극기가 붙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태극기 부대입니까?
그러나 너무나 당당했습니다.
이재명 정부를 한없이 비판했습니다.
극보수 우물에 아주 빠져버린 것입니다.
한동훈 씨를 보아도 전광훈 씨를 보아도 국민의 힘 장동혁이를 보아도
얼마나 꼴뚜기처럼 날뛰고 있습니까?
정말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우리 국민인가 싶습니다.
내가 미천하고
모든 일이 내 탓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자는
오늘 죽어도 아름답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