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츠 3회
“사장님. 전화로 대충 설명 드린 것처럼 여기 사장님은 207동에 사시는 분이신데 마침 방 세
개짜리 아파트가 필요하다고 하셨고, 더구나 애들 학교 때문에 멀리 갈 수는 없어서 이 근처
의 아파트를 알아보는 중에 사장님 아파트가 나온 겁니다.”
207동이라면 이제 그가 이사 가야 할 동이다. 20평짜리. 각 층에 8가구가 사는 복도 형 아
파트이다. 지금 그가 사는 30평 아파트는 계단 형 아파트라서 생활하기는 편했지만 혼자 사는
그에게는 너무 넓은 평수였고, 하지만 아내가 죽은 후 바로 이사할 수가 없어서 미루어 왔던 것
을 지난 번 산소에 다녀온 후 내 놓았던 것이다. 그가 그의 아파트를 내놓으면서 평수가 작은 아
파트도 함께 알아봐 달라고 했었는데, 마침 207동의 가족이 방 세 개짜리 아파트를 구하고 있던
중이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방 두개에서 아들하고 딸하고 생활하려니 너무 불편하기도 하고. 애들에게도
각자 방을 주어야 하겠기에…….”
앞에 앉은 사내가 변명처럼 그에게 하는 말이었다.
“잘 사시는 거예요. 마침 여기 사장님이 작은 평수의 아파트가 필요하기도 했고, 아주 기회가 좋
았지요. 가격도 현 시세보다는 조금 싸게 사시는 것이니 나중에 되팔아도 이익일 것입니다.”
부동산 사장이 그 부부에게 설명처럼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 말은 그에게 하는 말일 것이다. 그
부부에게는 이미 그 말을 했을 것이고 그래서 그들이 그의 아파트를 사게 된 것일 테니 말이다.
“그럼 두 분에게 말씀드린 것처럼 계약서를 쓰시고 잔액만 건네 드리는 것으로 하면 되겠지요?”
부동산 사장의 말에 양쪽 다 무언으로 승낙을 한다.
“그럼 이사는?”
“나는 아무 때고 좋습니다. 사장님이 편하신 대로 날을 잡으시면 그 날에”
그가 사내를 보고 말하는데
“그게 좋겠네요. 207동 사장님이 날짜를 잡으시면 같은 날 같이 이사를 하면 되겠네요. 서로가 짐
을 빼고 청소는 두어 시간 걸릴 테니 오전에 빼고 오후에 들어가시면 되겠네요.”
“그렇게 하지요.”
그와 사내가 동시에 같은 대답이 나온다.
“그럼 사모님이 날짜를 잡으셔서 제게 연락 주시면 제가 이쪽 사장님께 알려드리면 되겠지요?”
부동산 사장은 벌써 이런 일에 이력이 났음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결론을 짓고 있었다.
하얀 봉투에 들어있는 수표 한 장이 그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그것으로 그는 아내에게 최소한의
명분은 지켰다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3
“짐은 다 뺐지요?”
두 명의 여자를 뒤에 세운 사내가 이삿짐센터 직원에게 말을 건네자
“예! 이제 마지막 짐만 나오면 됩니다.”
그 말과 동시에 그의 아파트에서 마지막 짐이 사다리에 실려 내려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짐이 내려
오는 것을 본 사내와 여자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현관으로 들어간다. 아마 지금 이 시간이면
그가 이사 갈 207동에도 청소하는 사람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고 있을 것이다. 사다리에 실
린 짐이 내려와 차에 실릴 때 쯤 엘리베이터에서 두 남자와 한 여자가 나온다. 아파트 안에서 짐
을 싣던 사람들이다. 그는 주머니에서 오만 원 권을 한 장 꺼낸다. 아무래도 오후에 짐을 올려야 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점심 식사라도 하게 하려는 생각에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