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천 군남면 옥계리에 있는 장 공장
메주를 띄우면서 첼리스트를 켜는 여자
"메주와 첼리스트"
남편은 스님 부인은 유명한 첼리스트
강원도 정선에 장 공장이 있었는데 장이 유산균에 의해 숙성될때
장독대에서 도완녀씨가 첼리스트를 연주해서 유명해졌다.
대가리도 생각도 없는미생물이 뭔 베에토벤 다장조를 알겠냐마는
첼리스트로 곡을 연주해서 장이 숙성되었다고 tv를 타면서 일약 유명해졌다.
도완녀씨와 돈연스님
이들은 독일어를 공부하면서 알게되었고 하나는 첼리스트로, 스님으로 다른길을 걷게된다.
도완녀씨는 1954년 서울 출생으로 서울 음대을 졸업하고 85년 독일 뤼벡음대 수료한후
독일 브람스음악원 강사를 거처 귀국 후 충남대·전북대 강사을 역임했다.
돈연스님은 독일에서 귀국하여 스님으로 시인으로 살면서 강의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다시 깊은 절간에서 만난것이다.
연천 옥계리 장공장인 메주와 첼리스트 (메첼)
장독이 늘어서 있다
도완녀씨의 쓴 글을 잠깐 옮기겠다.
프로포즈
나는 왔다. 이곳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가목리로..
93년 2월 4일 스님이 계시던 절에 불이 났다.
완전 전소.
스님은 강의를 위해 출타중이었는데
다 말린 메주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그 해 3월. 프로포즈를 받았고 2개월 후에 이 산골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둘이 만난 것은 16년전, 독일어를 함께 공부한 인연
서로 다른 길을 열심히 걷다가 다시 만난 것이다.
1993년 돈연 스님과 결혼하면서 강원도 정선 된장마을에 정착하게 된다.
강원도 정선 골짜기에서
간장, 된장, 고추장을 담가서 이들은 크게 성공한다.
높은 가격대임에도 불구하고 백화점으로 납품해 고급장류로서 자리메김 되었다.
이들이 정선에 가만 있었으면 되었는데
연천군에서는 공무원을 파견하여 이들을 불러 들였다.
연천지역에서 재배된 콩을 상품화 하려고 하다가
정선에 있는 메주와 첼리스트를 접하게 되고
2007년경 이들과 합작으로 연천 옥계리에 건물을 세우고 가동준비를 했다.
2.21일 옥계리에 있는 메주와 첼리스트 공장에 가 보았다.
야외에는 많은 장독이 있었으나 공장안에 들어가 보니 아무것도 없다.
지금쯤이면 한창 된장을 포함한 장류가 생산되야 하는데 내부는 텅 비어있다.
이후 들리는 말에 의하면
메주와 첼리스트에서는 당초 투자하겠다는 금액을 대지 못해서 이들은
연천 메첼(메주와 첼리스트 공장)에서 도망치듯 나갔다고 한다.
메첼은 떠나고 여기에 우리나라 최대의 장공장인 풀무원과 합작 운영하겠다는 소리도 들린다.
메주와 첼리스트의 도완녀씨는 연천을 떠나서 무당이 되어 서울 둔촌동에
‘도완녀 신당’ 을 차렸으며 남편인 돈연 스님은
정선에서 48권짜리 어린이대장경을 번역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의 인생역전이 파란만장하다.
메첼 야외 장독대
전 연천조합장 말에 의하면 이 곳에 300억의 돈이 투자 되었으며
농협에서도 10억을 투자했다고 한다.
돈을 댄 연천군이나 기술을 대겠다던 메첼이나
지금은 벌개 벗은채로 나가 자빠져 있다.
스님과 서울대를 졸업한 첼리스트 女
이들이 생산하는 장류에는 특별한 무엇이 있을것 같다.
장사치도 아닌 연천의 지자제가 공적돈을 투자하여 공장을 운영하겠다고
나섰으니 이 장류에는 쪽박날것 같은 특별함이 있을것 같다.
봄 햇살을 받아 빛나는 빈 항아리
된장 냄새도 나니 어느독에는 장류가 들어있을것도 같다.
첫댓글 콩자갈위에 늘어선 항아리들 폼나보이지만 뚜겅열어보니 여기저기 잔균열에 허접하기만합니다..언제 술래잡기나 한바탕하며 뒤풀이놀이를 했으면 좋겠네요...ㅎㅎㅎ
메첼에서 술래잡기하면 술레가 한시간 이전에는 절대 못 잦겟지요.
300억은 어디로 갔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