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링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49260
(전달: 천주교 인권위, 강정평화네트워크)
정부정책 반대의견 선별 삭제 문제없다는 대법원 판결이야말로 삭제되어야한다
[제주해군기지 반대게시물 삭제 국가배상청구소송 대법원 파기환송 결정에 대한 논평]
지난 6월 4일 대법원은 해군 홈페이지에 제주해군기지 반대게시물을 올렸다가 삭제당한 원고들의 국가배상청구소송에 대해 파기환송을 선고하였다. 국가기관 홈페이지 게시판에 정부 정책에 대한 반대의견을 담은 항의 글을 올렸다가 삭제한 것은 부당하다는 항소심 판결을 5년 동안 묵혀두더니, 대법원은 국가기관 홈페이지 게시판에 정부 정책에 대한 반대 의견을 해당 기관이 마음대로 삭제해도 문제없다고 파기환송 했다. 대법원은 국가정책에 대한 반대의견은 삭제해도 좋은 것이라고 본 것인데, 이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이고, 표현의 자유를 전면 부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대법원 판결에 반대하고, 대법원이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위에 군림하는 태도를 보인 것에 경악한다.
2011년 6월 9일 원고 박아무개씨 등 3명은 해군이 제주도 강정포구 연산호 군락지 인근에서 해군기지 공사를 강행하자 해군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항의 게시물을 올렸다. 그러나 해군은 “제주기지 건설에 관한 막연하고 일방적인 주장 글들은 삭제 조치”한다고 밝히고 항의글 100여 건을 일시에 삭제하였다. 피해자들은 2013년 8월 해군의 불법 행위로 의사표현의 자유와 행복추구권이 침해되었다며 국가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지난 2심에서 “게시글은 해군의 정책에 대하여 국민으로서 의견을 표현한 것으로 공적 관심사에 대한 표현의 자유는 권력기관으로부터 더욱 보호되어야 할 것”이라며 국가가 피해자 3명에게 각각 위자료 3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하였지만 대법원은 이를 뒤집고 국가는 책임이 없다고 한 것이다.
국가기관 홈페이지에 글을 쓰는 것은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또 그 반대의견을 여러 명이 쓰는 것 역시 당연히 허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해군은 ‘자유’ 게시판에서 자기 정책에 찬성하는 의견만을 남겨두고 반대하는 게시물만을 선택적으로 삭제하였다.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게시물을 그 기관의 선택에 따라 임의로 선별 삭제하는 것은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과 반대의견을 제한하는 것이다. “다른 의견”이라는 이유로 삭제당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정부 정책의 적법성, 적정성, 적시성, 적합성 등에 대한 토론은 불가능해지고 정부 정책을 결정하고 지지하는 이들의 의견만 통용되게 된다. 이런 상태를 우리는 ‘독재’라 부른다.
대법원은 ‘독재’, ‘반민주’, ‘표현내용에 의한 제한’이 합법적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다. 해군 게시판에서 게시글을 삭제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규정은 ‘해군 홈페이지 운영규정’뿐인데 그 규정을 뛰어넘은 해석론을 전개한 것이다. 법을 뛰어넘는 해석론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발상이 대법원 판결에서 등장한 것은 법치주의의 후퇴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일반적으로 국가기관이 자신이 관리‧운영하는 홈페이지에 게시된 글에 대하여 정부의 정책에 찬성하는 내용인지, 반대하는 내용인지에 따라 선별적으로 삭제 여부를 결정하는 것”, 즉 관점에 근거하여 차별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해군게시판에서 제주해군기지에 반대하는 의견을 선별 삭제한 조치는 위법하지 않다고 본 것인데, 그 이유로 6가지를 들고 있다. ① 제주해군기지 건설사업에는 아무런 하자가 없으며 ② 국군의 정치적 중립성에 비추어 해군 홈페이지가 반대 논쟁의 장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③ 제주해군기지 건설사업의 결정권자는 국방부장관이므로 결정권이 없는 해군본부에 항의를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며 ④ 해군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의 성격에 맞지 않고 ⑤ 항의글 100여건을 영구히 또는 일정기간 보존하여야 할 법령상 의무가 없으며, 또 삭제는 반대 의견을 금지하거나 제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 침해가 크지 않으며 ⑥ 해군이 삭제 공지를 통하여 떳떳하게 취한 조치로서 국가기관이 인터넷 공간에서 반대의견 표명을 억압하는 조치에 해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대법원이 제시한 이유 어느 하나도 납득하기 어렵다. 정부와 법원이 제주해군기지 건설사업이 정당하다고 보아도 국민에게는 이를 반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또한, 정부와 법원의 판단에 반대하는 견해라고 해서 삭제되는 것이 정당하다고 볼 수 없으며 이를 삭제사유로 규정하고 있지도 않다. 국군을 비롯한 모든 공무원이 정치적 중립의무가 있는데 특정 부처의 ‘자유’게시판에 정부정책에 대한 반대 의견을 게시하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해치는 일이 된다는 것인가. 오히려 대법원이 판단한 기준에 따르면 해군이 제주해군기지 반대의견만 선별해서 삭제한 것이 바로 정치적 중립에 반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모순이다.
해군기지 건설과 관련한 정부정책이 해군과 무관한가. 해군 홈페이지 게시판에 해군기지 건설에 대한 반대의견을 게시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는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가. 특히, 게시 글을 삭제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 억압이 아니라는 이유에서 이 대법원 판결이 민주주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근본적인 반감에서 시작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해군이 반대게시물을 선택적으로 삭제한 행위는 본질적으로 “관점에 근거하여 표현을 차별”한 행위로서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그 스스로 표명한 원칙에 위배되는 자가당착이 아니라 할 수 없다. 정부 정책에 대한 반대 의견표시는 정부가 허용할 때에 정부가 허용하는 방식으로만 하라는 것인가.
수많은 정부기관이 해군처럼 ‘정치적 목적이나 성향이 있는 경우’ 홈페이지 게시물을 삭제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가지고 있다. 정부의 각 기관은 국민의 반대 의견에 열려 있어야 한다. 반대의견을 임의로, 선별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대법원 판결이야 말로 “선별적 삭제”되어야 한다.
2020년 6월 5일
강정마을해군기지반대주민회, 강정평화네트워크, 제주군사기지저지와평화의섬실현범도민대책위, 제주해군기지전국대책회의, 진보네트워크센터, 천주교인권위원회
보다 자세한 내용은
http://www.cathrights.or.kr/news/articleView.html?idxno=59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