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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산림 대법회 150강 – 1 – b
復次佛子야, 또 불자야,
譬如大梵天王이, 비유컨대 대범천왕이
住於梵宮하야, 대범천왕이 당연히 깨끗한 천궁에 계셔야 되겠지요.
속가의 그 누린내, 찌린내 나는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범천궁에 있으면서
出梵音聲에, 범천의 음성을 내면, 그 깨끗한 음성을 내면,
一切梵衆이, 모든 범천대중은
靡不皆聞호대, 듣지 못하는 이가 없다. 들을 만한 사람은 다 듣는다.
여기 욕계를 초월해서 색계의 경계에 들어왔는데요.
그 욕계의 중생들은 사실은 좀 잘 안 들리겠지요.
而彼音聲이 不出衆外어든 諸梵天衆이 咸生是念호대
大梵天王이 獨與我語(독여아어)ㄴ달하야,
而彼音聲이, 그러나 그 음성이
不出衆外어든, 대중 밖을 벗어난 것이 아니지만,
諸梵天衆이 咸生是念호대, 범천대중들은 모두 생각하기를,
大梵天王이 獨與我語ㄴ달하야,
‘대범천왕이(누구만을 위해서?) 오직 나만을 위해서 말씀한다.’고 하느니
라.
우리가 승수미산정품에 보면 청량국사가 해석하기를 三舟(3주) 해석을 해
놓은 것이 있습니다.
“강에는 三舟. 배가 세 척있다.
환하게 달 밝은 밤에 강에 배를 세 척 띄워놓고,
한 척은 강남으로 가고,
배한 척은 강북으로 가는데,
한 척은 定住(정주)라. 멈춰있는 배가 있다.
강남으로 가는 배는 달이 남쪽으로 따라가고,
강북으로 가는 배는 달이 북쪽으로 간다.”
그래 ‘사람이 1000명 있으면 전부 다 자기 집으로 가는데,
집집마다 달을 데리고, 머리에 이고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달은 한 발짝도 간 적이 없다.’ ←이런 뜻입니다. 지금 사실은...
부처님의 음성은 “한 말씀도 하시지 않았다.”
그럼 부처님의 말씀 49년 설법을 우리는 뭐라고 하느냐?
“자설”이라 합니다. 自說! 부처님이 그렇게 고백 해놨습니다.
어느 때 어른스님이 저한테,
“니는 말을 좀 천천히 하면 좋을텐데...”
이 정도면 천천히 하는 편이거든요. 좀 빨리하면 못 알아 들으니까요.
“말만 좀 천천히 하면 좋겠다.”
“예~~~.” 해놓고, 어른스님께 제가 말씀드립니다.
“그런데 스님! 제가요. 저는 말을 않는데 말이 지혼자 톡 튀어나와 버립
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저는 가만히 있는데, 말(言)이 지혼자 말(馬)이 되어서 톡 튀어나와 버
립니다. 그것은 제가 어쩔 수 없잖아요.”
종경록 책하고, 우리 부처님 어록에 보면 그런 것이 나옵니다.
“부처님께서 한 말씀도 안 하셨는데,
부처님은 無名無相絶一切라서 한 말씀 하신 것이 없는데,
말이 自說이라. 스스로 말을 해버렸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ㅎㅎㅎㅎㅎㅎㅎㅎ부처님 당신은 말씀을 의도적으로 하신 바가 없고,
뭐라고 했습니까?
스스로 自자. 말씀 說자. 自說이라. 자설.
그렇게 자연스럽게 그냥 할 자리에 하고, 안 할 자리에 안하고를 행해서,
부처님의 말씀을 뭘 의도적으로, 방편삼아서 하신 것이라서 의도적으로
그렇게 보는 것은 아니지요.
그래서 사람의 믿음과 이해 정도라든지,
그런 때(時)라든지, 좋아하는 정도라든지 ←이런 데 따라서 부처님의
음성이 있어지는 것이지, 부처님의 음성은 원래 크고 작은 것도 아니고요.
그래도 크고 작은 중생이 마음이 옹졸하든지 넓든지, 못된 중생이든지,
잘난 중생이든지 희안하게도 부처님의 음성은 아주 귀먼 사람도 듣고, 눈먼
사람도 보고, 我今聞見得受持! 신심만 있으면 그렇게 되지요.
그 다음에 한 구절 또 넘어가겠습니다.
如來妙音도 亦復如是하사 道場衆會가 靡不皆聞호대
而其音聲이 不出衆外니 何以故오?
如來妙音. 묘음이라고 하는 이런 뜻에서 맛이 있습니다.
묘음이라고 하는 말씀이, 묘음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능엄경 배울 때,
“청정과 묘정”에 대해서 배우잖아요.
“묘한 깨끗함ㆍ맑은 깨끗함.” ←이렇게 청정과 묘정을 배울 때,
청정은 허공처럼 어떤 존재가 하나도 없어서 맑은 것을 청정이라고 하고요.
묘정이라고 하는 것은 아주 탁한 냄새나는 그런 뻘 밭의 진흙탕 물 같은 데
서 연꽃처럼 그 진흙탕에 훈습되지 아니하고,
如蓮華不着水 心淸淨超於彼處(여연화불착수심청정초어피처)라.
탁한 연못에 연꽃이 탁하게 되지 않고, 오히려 연못을 정화시키면서 자신도
당당하게 피는 것을 묘정! 그래서
관세음보살 님이 연꽃 밟고 사바세계 다니는 것은 조금 모자라는 관세음보
살이고, 진짜 관세음보살 님은 맨발로 저벅저벅 걸어다니셔야 됩니다.
맨발로 저벅저벅 걸어다녀도 똥물도, 어디 진흙탕도 아무것도 맨발에 안
묻는다. 이 겁니다. 발 수 코팅이 되어있기 때문에 묻지를 않는다. 이 말입
니다. 그런 것들을 묘음이라고 하는 것은 성음하고 똑 같아서 모든 사람들
에게 묘미가 있어서, 묘음이라 성음이라.
주가신 1번이 뭡니까? 柔軟勝味主稼神(유연승미주가신)이잖아요.
柔軟하다는 것은 선정을 뜻하지만,
유연하고 맛있다고 하는 것은 남녀노소나 동서고금을 떠나서 누가 먹어도
맛있는 맛이 勝味인 것이지요. 妙音도 누구 한테도 다 들린다. 이 겁니다.
밝은사람, 개미한테도 들리고, 코끼리 한테도 들린다. 이 말이지요.
如來妙音도 亦復如是하사, 여래의 한 음성도 그와 같아서
道場衆會가 靡不皆聞호대,
도량에 모인 대중들이 듣지 못하는 이가 없으며,
혹시 안 들린다면 그것은 인간이하 인간입니다.
而其音聲이 不出衆外니, 그 음성도 대중 밖을 벗어난 것이 아니니,
何以故오? 무슨 까닭이냐?
根未熟者(근미숙자)는 不應聞故로 其聞音者는 皆作是念호대
如來世尊이 獨爲我說(독위아설)이라하나니라.
根未熟者는, 근기가 미숙한 자는, 근기가 성숙되지 못한 자.
미숙이는 안 좋아요. 성숙이는 괜찮아도... 오늘 여기 미숙이 왔지요?
미숙이가 안 왔나 왔나 모르겠네...
不應聞故로, 익지 못한 사람들은 들리지 않는다.
화엄경이 안 보인다. 이겁니다. 안 보여요. 화엄경이 절대 들리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其聞音者는, 그 음성을 듣는 사람은, 성숙한 사람은 다 들린다. 그렇지요?
화엄에 인연이 있는 사람은 다 들린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부처님의 음성이 들리겠지요?
皆作是念호대, 모두 생각하기를, 생생하게ㆍ역력하게 들리니까
如來世尊이, 여래 세존께서,
獨, 오직 爲我說이라. ‘오직 나만을 위해서 설하는구나!’
여러분께서 잘 아시는 월인천강지곡의 세종대왕께서는 얼마나 신심이 있
는지, “1000리 밖의 일이지만, 如對大賓(여대대빈)이라.
부처님을 눈 앞에 마주 본 듯이해서 부처님을 대하겠습니다.
巍巍釋迦佛(외외석가불)이여, 거룩하시고 존귀하신 석가모니부처님이시
여, 당신의 일이 1000년 전의 일이라 하더라도, 10000리 밖의 일이라도 눈
앞에 보는 듯이하고, 1000년 전의 음성이라 하더라도 귀에 속삭이는 듯이,
여기서 듣듯이 하겠습니다.” 이것이 월인천강지곡 첫 대목에 있는 것을 보
고 와~~~~~!!!
우리가 여래출현 품 지금하고 있지만, 여래출현 품 중에서 제가 좋았던
게송이,
無上甚深微妙法 百千萬劫難遭隅 我今聞見得受持 願解如來眞實意!
그런데 여래출현품에는 좀 달리 나오지요.
如是微密甚深法(여시미밀심심법)
百千萬劫難可聞(백천만겁난가문)
精進智慧調伏者(정진지혜조복자)
乃得聞此秘奧義(내득문차비오의)!
乃得聞此, 이 심오한 뜻을 아는 사람들! ←이렇게 나오잖아요.
그렇지요? 乃得聞此秘奧義! ←이렇게 나오는데요. 측천무후가 얼마나 감동
했으면 그 대목을 우리 오늘 상강례하듯이 無上甚深微妙法이라고 해놨는지요.
어느날 그것 7회차 열 한 품에서 게송을 한 게송만 딱~~ 뽑아서 약찬게
도표속에 넣어야 되는데, 새벽 예불 갔다와서 ‘아~~~어느 게송을 찾을까?’
하다가 ‘여래출현 품에서 찾아지겠지’ 하고, 착 넘기니까,
(교재 三권-p309.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52권-p186)
如是微密甚深法!
百千萬劫難可聞! 100ㆍ1000ㆍ10000년 토록 듣기 힘든다.
精進智慧調伏者! 정진하는 사람들! 정진하기 전에는 이미 인내가 있을 것이고, 인내하기 전에는 지계가 있을 것이고, 지계하기 전에는 보시가 있을 것
이고, 정진ㆍ지혜ㆍ조복자! 마음을 다 조복했다고 하는 사람은
精進智慧調伏者! 반야바라밀을 얻어서 조복한 사람은, 근기가 다 익은 사람
들아닙니까? 그렇지요?
그래서 바라밀의 행을, 대승의 길로 가는 사람들 눈에는 화엄경이 보이기도
하고 들리기도 하지만, 대승하고 아무 상관 없으면, 보이고 들리지가 않는다 이 겁니다. 여래 세존께서, 오직 나만을 위해서 설하신다고 하셨나니라.
佛子야 如來音聲이 無出無住로대 而能成就一切事業이니라.
불자야 여래음성은, 부처님의 음성은, 그대로 나왔습니다.
無出無住로대, ←이것은 화엄경얘기가 아니고 아마, 제가 써놓은 것 같
아요. 제 얘기 같습니다.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무출무주!
자기가 평소에 생각하고 있는 구절이 경전에 나오면 확인이 돼서 굉장히
기분이 좋잖아요. 우리가 확신이 서는 것 같고요.
경전에 안 나오면 남들한테 강의할 때도,
‘야~~ 내가 이렇게 무책임하게 말해도 되나? 저 사람들한테 쥐어뜯기면
어떻게?’ 이러다가 경전에 나와 버리면 “아휴~~” 한숨이 딱~~ 나오지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부처님의 음성이 나온 바도 없고 머무른 바도
없다.’ ←이렇게 평소에 생각하고 있는데요. 남한테 제가 얘기하는데 말이
먼저 재빠르게 톡 튀어 나와서 건방스럽게 얘기해 버렸잖아요.
‘아이고 큰 실수했다.’ 이렇게 생각했는데, 경전에 확인 돼 나와주면 굉장히
기쁘지요.
여래의 음성은 無出無住로대,
而, 그러나 能成就한다. 一切事業을...
無出無住라고 하는 것은 여러분이 환하게 보이시겠지만, 理判(이판)입니
다. 理라고 하는 것은, 마음의 심성이라고 하는 것은 보고 싶어도, 씻고 닦고 해봐도 보일 수가 없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헛 것이지요.
보였다하면 다 헛 것이고 꿈이고요. 如夢幻泡影(여몽환포영)입니다.
無出無住라고 하는 것은 無去無來라.
여래의 음성은 부동이라. 不動. 움직이는 무동이라. 無動.
그런데 一切事業이라고 하는 것은, 업이라고 하는 것은 뭡니까?
업이라고 하는 것은 동작한다는 말입니다. 業은 한문으로 해석하면 업은
뭐냐? 조작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기동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일어나고 움직이는 것을 업이라고 합니다. 業!
업이 다해버리면 뭐가 됩니까?
舊來不動名爲佛(구래부동명위불)로 업장 소멸이 되잖아요. 그렇지요?
업이 다 소멸되면 움직이는 것이, 분별사식이돼서 안 움직인다고요.
움직이는 것이 없는 것이 바로 無去無來가 되는데요.
여기 一切事業이라고 하는 것은 事判(사판)인 현실입니다.
無出無住라고 하는 것은 이치입니다. 여래의 음성은 진리의 입장에서 아무
흔적이 없지만, 그러나 ‘투명한 색깔속에서 84000가지 색깔이 다 튀어 나온다.’ ←이런 뜻입니다.
是爲如來音聲이 第五相이니 諸菩薩摩訶薩이 應如是知니라.
이것이 여래음성의 다섯 번째 모양이니 보살마하살들은 마땅히 이렇게 알
아야 하느니라.
좀 덥습니까? 신심이 나고 더워야 될텐데 안 더우니까... ㅎㅎㅎㅎㅎㅎㅎ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저 혼자만 좀 덥고 신심이 나는 것 같아요.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어른 스님 안 계시니까 자꾸 숫자도 줄어들고 이러니까 부품하게 있는 것
처럼 거품 물고 이렇게...
바. 衆水의 味와 器
復次佛子야 譬如衆水가 皆同一味니 隨器異故로
水有差別이나 水無念慮하며
亦無分別인달하야 如來言音도 亦復如是하야
唯是一味니 謂解脫味라
隨諸衆生의 心器異故로 無量差別이나 而無念慮하며
亦無分別이니라
佛子야 是爲如來音聲第六相이니 諸菩薩摩訶薩이
應如是知니라
衆水의 味와 器(중수미기)라.
復次佛子야 譬如衆水가 皆同一味니 隨器異故로
水有差別이나 水無念慮(수무념려)하며 亦無分別인달하야
또 다시 불자야, 마치 여러 물이 다 맛은 같지만, 그릇이 다르므로 물에 차
별이 있으니, 물은 생각도 없고 분별도 없다.
이런 것은 여러분께서 그냥 납득 하시기, 이해하시기 조금...
이해를 조금 더 돕자면 이런 것이 있습니다. 중생은 일반적으로 그릇을
“흙 그릇이라.” ←이렇게 얘기하지요. 土器(토기). 그렇지요?
“질그릇이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보살 수행자들은...
“제보살은 如銀器(여은기)라. 마치 은으로 만든 그릇과 같다.”
“제불은 如金器(여금기)라. 모든 부처님은, 일체 제불은 如金器라.
마치 금으로 만든 그릇과 같다.”
그런데 흙 그릇에, 흙을 구운 도자기 같은 그릇에 담긴 공기나, 또
은그릇에 담긴 공기나, 금 그릇에 담긴 공기나, 흙이나 은이나 금에 세속
적으로 따지는 비중의 업의 가치는 다르기 때문에, 비중이 설사 다르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담겨진 공기가 무슨 차별이 있겠는가?
살아갈 때, 우리가 一心이라고 하는 이 마음 하나를 쓰는데 있어서 부처님
이나 우리나, 없는 것은 부처님이나 내나 동등한 입장인데요.
一心을 생각으로 뽑아내서 쓸 때, “얼마나 자비롭게 쓰느냐?
무자비하게 쓰느냐? 탐진치로 쓰느냐? 지저분하게 쓰느냐?
깨끗하게 쓰느냐? 순수하냐? 잡념이잡되냐? ←이 정도 차이가 그릇의 인
연에 있는 것이지, 본래 공기에 있는 것은 아니다.” 대충 이해되셨습니까?
그러나 흙 그릇이나ㆍ질그릇이나ㆍ은그릇이나ㆍ금 그릇이라고 하는 것은,
서로가 인연을 서로 제도하기 위한 방편일 뿐이지, 공기에 있어서는 방편
하고는 아무 상관없잖아요. 그렇잖아요. 그것은 경전에는 그렇게 얘기를
하지요.
一心의 자리하고 똑같은 마음인데 부처님은 100%쓴다면,
중생들은 그것이 그렇게 못한다 이 말이지요.
똑같은 물인데도 그릇에 따라서 물맛의 차이가 나는지는 모르지만,
‘원래 물 맛은 一味(일미)다.’ 이 것이지요. 一味라서 삿되거나 왜곡된 것이
절대 없습니다.
여기 시계가 있습니다. 이 시계는 디지털이라서 터치할 때마다 화면이 바
뀝니다. 초침도 나왔다가 분침도 나왔다가...
모래 시계가 됐든지ㆍ물 시계가 됐든지ㆍ디지털이 됐든지ㆍ아날로그가
됐든지ㆍ태엽시계가 됐든지 상관없습니다.
시계에는 시간이 없습니다. 그렇지요? 시계는 시간을 나타내는 기능일 뿐
이지, 시계는 시간이 아니라 이겁니다.
어떤 음성을 크게 했든지, 작게 했든지, 그것은 음성이 아니다 이겁니다.
음성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을 물고있는 것인데요.
마음은 크거나 작은 것이 아니고, 듣는 사람에 따라 크게 할 때도 있어야
되고, 때로 약하게 할 때도 있어야 됩니다.
그런 뜻으로 부처님의 음성은 본래 없지만, 중생의 수준에 따라서 이렇게
있다고 다양하게 지금 설명한다고 이렇게 나오는 것 아닙니까?
모나미 볼펜 잉크 담는 것에, 그것은 빨간 데 빨간 것을 담는 것이 아니고,
파란 데 파란 것을 담는 것이 아니고, 잉크 색을...
프라스틱은 빨갛고 파란 것이 아니다 이 말이지요. 그렇지요?
그런데 우리는 신호등은 이렇게 보면, 빨간 전기오면 불이 빨갛게 오잖아
요. 그렇지요? 파란 전기오면 그것은 전기가 파랗겠지요?
그렇게 좀 속아주세요.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전기는 색깔이 없는데, ‘겉에 덮어 씌웠구나.’ 이것 이런 것 아닙니까?
여기 그런 뜻으로... 넘어갑시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그것 다 아는 얘기를 왜 하느냐?’ 이러는데요. 다 아는 것 계~~~속 숨 쉬
었던 것 또 숨쉽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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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워라♬♪♩ 환희로워라♬♪♩ 감사하여라!!! 대♩ 방♩ 광♩ 불♩ 화♩~~ 엄♩~~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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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 라든지 > 정도라든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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