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주교단이 10일 오전 서울 외환은행 앞 장악원터 표석 앞에서 김범우의 집터에 대한 염수정(서울대교구장) 대주교의 설명을 듣고 있다.
김범우(토마스)는 이승훈(베드로)이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돌아오자 명례방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신앙 집회를 갖도록 했고, 이로 인해 밀양으로 귀양갔다. 오세택 기자
| '뼈가 드러나고' '살이 헤지는' 순교의 길을 따라 걷는다. 한국 주교단이 '신앙의 해'를 맞아 10일 '신앙 따라 강물 따라 순교자와 함께'라는 제목으로 서울대교구 성지순례에 나섰다. 2일 선포식을 갖고 공식 개설된 '서울대교구 성지순례길' 일부 구간인 가톨릭대 성신교정→좌포도청 터→수표교→명동대성당→서소문순교성지→당고개순교성지→새남터성당→절두산순교성지까지 17㎞를 순례하는 여정으로, 주교단이 두세 달에 한 차례씩 갖고 있는 주교영성모임 프로그램의 하나였다. 순례에는 주교회의 의장이자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 청주교구장 장봉훈 주교 등 주교단 21명과 서울 대신학교 부제반 42명, 성지 관할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 봉사자 등이 함께했다. 순례에 앞서 9일 가톨릭대 성신교정 내 사제평생교육원에서 1박을 한 주교단은 이튿날 아침 성신교정 성당 김대건 신부 유해 앞에서 주모경과 사제를 위한 기도, 행복한 여정을 위한 기도를 바치고 순례에 들어갔다. 이어 차량으로 서울 좌포도청터에 도착한 주교단은 포도청순례지본당인 종로본당 주임 홍근표 신부에게 좌포도청의 역사적, 교회사적 의미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주교단은 현재 신축이 추진되는 종로119안전센터 및 복합청사 건립과 관련해 소방서 기능을 유지하면서도 역사문화사적지로서 포도청 순교지의 의미를 어떻게 살릴 수 있을지에 깊은 관심을 드러냈다. 주교단은 지난 3월 조선왕조 치하 순교자 가운데 제2차 시복 추진 대상자로 선정해 시복작업에 들어간 이벽(요한 세례자)의 집터에도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지난 2011년 9월 서울 청계천로 105 건물 앞 수표교 옆 도로변에 세운 표석이 잘못 세워졌다는 지적에 따라 청계천 남쪽 수표동에 새로 조성되는 역사문화공원에 한국천주교회 창립터 기념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라는 중구 측의 간추린 설명에 안도하는 표정을 보였다.
▲ 서울대교구 성지순례길 순례에 나선 주교들과 사제단 등 순례단이 명동대성당 순례를 마치고 서소문순교성지를 향해 출발하고 있다. 이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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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성당에 다다른 주교단은 본당 신자들의 열렬한 환영 속에 성당에 들어가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과 민족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를 바치고 다시 순례를 떠났다.
강 주교는 특히 명동성당에서의 기도에 앞서 "많이 부족하지만 신앙선조들께서 겪으신 수난과 순교의 아픔에 동참하기 위해 걷고 있다"면서 "순교자들의 증거의 삶에 동화되도록 은총을 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교단은 이어 서소문순교성지와 당고개순교성지, 새남터순교성지, 절두산순교성지를 잇따라 방문해 '하느님의 종' 125위 시복시성 기도와 한국순교자들에게 바치는 기도, 나 자신을 내맡기는 기도, 성 암브로시오의 사은찬미가를 바치고 순례를 마무리했다.
순례 중 특히 서소문 밖 역사유적지 개발계획도 공개돼 눈길을 끌었다. 중구 측은 향후 총 518억 원의 예산을 들여 서소문공원 지상공간은 역사문화공원화하고 지하1ㆍ2층은 전시기념관과 추모공간, 광장 등이 들어서는 개발 계획을 추진하겠다고 공개했다. 2014년 2월 설계 공모에 들어가 2015년 5월 공모를 완료하고 그해 9월 공사를 시행, 2017년 8월 공사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또 새남터에서 절두산으로 이어지는 순례길에는 관할 구청들이 '한강성지순례길' 표식을 설치, 순례자들의 길 안내를 도왔다.
염수정 대주교는 "신앙의 해에 주교단이 함께 순례하는 것은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라며 "모든 신자들이 예수님 안에서 함께 걷는 순례를 통해 순교자들을 기억하고 천상은총도 나눠 가졌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는 "요즘처럼 하느님을 배제하는 문화 속에서 순교자들의 믿음은 우리 삶에 빛과 소금 역할을 한다"며 "순교자들을 본받는 삶을 통해 순교자라는 복된 보물을 더욱 빛내도록 하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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