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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다송원(茶松園) 원문보기 글쓴이: 長樂山人 이종인
대한민국 좌파의 실체와 우리의 대응
대한민국 좌파의 실체와 우리의 대응
(21세기 국가발전위원회(NDI) 세미나 발표문)
강길모(주사파 전국조직 교육책 전향자)
프리존뉴스 대표 강연)
1. 들어가는 말
앞서 박관용 의장님께서 오늘 강연과 관련된 개요를 명쾌하게 정리를 해주셨습니다만 한때의 잘못된 판단으로 주체사상에 동조함으로서, 대한민국에 오늘날 이토록 심각한 화근을 키웠던 역사적 반역자, 전과자로서 이 자리에 계신 선배 어르신들께 먼저 진심으로 사죄부터 드리고 싶습니다.
특히 저는 주사파 출신으로서 사상이념 문제에 대해 커밍아웃하지 않고 제도 권력 내부에 위장취업한 초기 멤버였습니다. 그 당시 모셨던 어르신들이 이 자리에 주로 계시기 때문에 더욱 죄스러운 마음입니다.
그러나 저는 DJ와 노무현정부 시기에 물밀듯 진입했던 주사파 출신들처럼 조직적 연계나 동지적 연대 형식으로 제도권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개인적 차원이었습니다. 제도권 진입을 결정했던 시기는 이미 선배들과의 학습을 통해 사회주의 혁명의 꿈을 포기한 이후이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문민정부에서 말단으로 일했던 경험도 제가 근본적으로 주체사상의 흔적을 떨어버리는데 결정적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입으로는 국가와 민족을 먼저 떠들고, 자주를 얘기하고, 민중의 삶을 얘기하고 떠들었습니다만 막상 국가 운영의 최말단 자리에서 주로 아이디어를 내는 고민을 하면서 제 꼬라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거대담론에는 뭐 대단한 것이 있는 것처럼 떠들었지만 구체적이고 현실적 측면에서 국가와 국민공동체에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는 어떤 지식이나 프로그램도 제시할 수 없었습니다. “말 잘하면 공산당”이란 말이 이런 경우를 지칭하는 것이라 반성했었습니다.
좌파들의 일반적 속성이란 것이, 번지르르한 말로 ‘민중’을 팔아 소수의 권력을 탐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사회주의 혁명을 ‘정의’요 애국이라고 떠들면서 결국에는 김일성주의자까지 됐던 사람들이, 아직도 그러한 경력을 마치 무슨 자산이나 되는 것처럼 행세하고 있다는 것은 비극입니다.
2. 한국 좌파의 키워드는 ‘주사파’
한국좌파의 실체라고 했을 때 저는 뭐 길게 설명할 것도 없이 지금 현재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좌파의 실체 핵심 키워드는 ‘주사파’라고 규정합니다.
박정희 정부의 경제적 업적은 위대합니다. 아울러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적으로 눈부시게 이뤄낸 나라입니다. 따라서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은 국가발전에 균등한 기여를 해왔다고 봅니다.
따라서 과거 ‘민주화 운동’ 경력은 결코 흠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존경받아 마땅합니다. 과거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해서 정치적으로 진출을 하든 뭐하든 그런 것은 충분히 수용되어야 할 대목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민주화 운동’을 팔아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고, 북한권력과의 연북통일을 꿈꿨던 세력까지 ‘민주화 운동’ 경력으로 평가해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한국 좌파들은 ‘민주화’의 외피를 둘러쓰고 성장-발전해왔습니다. 대개 1980년대 이전의 ‘민주화 운동세력’은 말 그대로 민주적 권리의 신장을 목적으로 활동했던 순수파들이 주력군이었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그 시기에도 북한권력과 연계된 간첩들이나, 자생 사회주의 혁명세력이 존재했었지만 그들이 숫적으로는 주력군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국 좌파들은 1980년 광주를 계기로 질적 전환을 하게 됩니다. 이 시기를 경과하면서 이른바 ‘민주화 운동’은 반미투쟁을 전면에 내걸고 안으로는 사회주의 혁명을 추구하는 급진세력으로 주도권이 넘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보다 결정적인 것은, 1980년대 중반 이후 학생운동권에 ‘주사파 헤게모니’가 관철되면서 90년대 이후 한국좌파들은 사실상 ‘주사파 천하’로 변모하게 됩니다.
80년대 중반 학생운동권에 주체파의 광풍이 몰아치는데, 혁혁하게 기여했던 인물이 얼마 전 이 자리에서 강연했다는 김영환이란 인물입니다. 이 사람이 ‘강철서신’이라는 것을 뿌려서 학생운동 지도그룹을 주사파 단일 대오로 묶어 세우는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그 당시 ‘강철서신’은 한국적 사회주의 혁명노선을 고민하던 학생운동 지도부에 상당한 흡인력을 발휘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북한의 혁명노선을 거의 베낀 것에 불과했었지만, 혁명 노선을 놓고 좌충우돌하던 학생운동권은 빠르게 주사파 노선에 흡수되어갔고, 80년대 후반에는 학생운동권 전체를 완전 장악하는 수준으로 발전했습니다.
80년대 중후반 학생운동권을 장악한 주사파들은 90년대 이후 활발한 사회진출을 통해 노동운동을 비롯한 ‘운동권’ 전체의 헤게모니를 완전 장악하게 됩니다. ‘주사파’가 되지 않고는 ‘운동권’이 되지 못하는 상황이 됐고, 주사파가 아닌 비주사파 계열의 사회주의 혁명운동 세력은 급격히 위축되어갔습니다.
지금도 한국 좌파들은 스스로를 ‘민주화 세력’이라고 위장하거나 자기최면을 걸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좌파들을 ‘주사파 세력’이라고 단언해도 이제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주사파 출신’의 한국 좌파들은 90년대 이후 본격적 사회진출을 통해 대한민국의 주요 거점들을 장악해 들어갔고, 노무현 정권에 이르면 주사파 출신들이 아예 국가최고권력을 완전 장악하는 수준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노무현 정권은 그 주체들의 면면을 살펴볼 때 사실상 주사파 정권이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례없는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루어낸, 이런 놀라운 성취를 이뤄낸 단 하나의 성공사례인 대한민국의 역사를 노무현식으로 표현하면 ‘정의가 실패하고 기회주의자들이 득세한 역사’로 전락하게 됩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김정일식 역사관이고 김일성식 역사관에 다름 아닌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주사파들이 대한민국 역사를 규정하는 핵심 키워드입니다.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고 규정하는 자들이 바로 주사파 논리를 추종하는 자들입니다.
주사파들이 조직을 확대하면서, 처음에 가르치는 것이 바로 근대 역사입니다. 위대한 김일성정권은 끝까지 항일투쟁에 몸바쳤던 독립투사들이 세운 나라고, 남한은 빌빌 거리던 친일파들과 친미주의자들이 만든 그런 나라이기 때문에 한반도 한민족의 국가적 정통성은 남한이 아니라 북한에 있다는 식입니다.
그러한 역사관을 주사파들은 철저하게 신봉하고, 그런 식의 역사관들이 알게 모르게 대한민국 사회 전반에 퍼져가면서 급기야는 대통령까지도 그와 같은 기조의 역사관을 자신 있게 얘기하는 그런 나라가 됐던 것이 바로 노무현 정권이었습니다.
노무현 정권 시기에 김성욱이라고 하는 우파 열혈기자가 ‘대한민국 적화보고서’라는 책을 썼습니다. 김기자나 저나 당시 노무현 정권을 보는 관점은 이미 대한민국은 적화된 나라라는 관점이었습니다. 70년대식으로 보면 엄벌에 처했어야 될 간첩 수준의 인사들이 청와대에 우글거리고 집권여당에 우글거리고 있는 것이라면, 이것이 바로 ‘적화’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노무현정권의 주사파 출신 권력장악 실태>
노무현 정권의 주요 인맥을 살펴보면, 노대통령의 핵심 측근이라는 안희정씨부터 주사파 지도조직 반미청년회의 조직국장 출신입니다. 지금도 민주당 최고위원직에 당당히 자리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노무현정부 초기 청와대 대변인, 부대변인이 모두 주사파 조직 출신이었습니다. 청와대 1부속실장, 2부속실장을 비롯해 행정관 다수가 ‘반미청년회’ 소속이거나, 그 조직에서 지도받던 인사들이었습니다. 그 중에는 제가 직접 교육했던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반미청년회란 조직은 1990년 당시 안기부에 의해 일부가 적발된 바 있었던, 김일성주의 조직이었습니다. 매일 매일 북한의 한민전 방송을 녹취해, 전국 학생운동권에 뿌리면서 한민전의 지도지침에 따른 ‘투쟁 사업’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조직이었습니다. 자생적 주체사상파들이 주도해 만들어진 조직이었지만, 그 행태와 사업은 북한권력의 충실한 하수인이었던 셈이며, 한 마디로 100% 간첩조직이었습니다.
반미청년회가 안기부에 부분적으로 적발되었던 계기는, 조직에서 ‘폭탄’을 제조해 ‘구국결사대’라는 이름으로 미국 관련 시설과 당시 집권당사에 ‘사제 폭탄’을 던졌던 사건이었습니다. 폭탄 투척이 대중들에게 거부감을 줄 것으로 판단해, 실제로는 야쿠르트병에 폭약을 넣어 인명에 큰 해를 끼치지 않도록 사용했었지만, 무장봉기를 위해 폭탄까지 제조했던 조직이기도 했습니다.
과거 반미청년회 조직원이었다는 것은, 더구나 간부직을 갖고 있었다는 것은 명백하게 간첩에 준하는 반국가 사범이었다는 뜻입니다. 간첩에 준하는 반국가사범으로서 이적행위에 몰입했던 자들이 ‘민주화 경력’으로 위장하거나, 과거 범죄행위에 대한 ‘커밍아웃’ 과정도 없이 대한민국의 제도권력에 아무 거리낌 없이 진입할 수 있었다는 것이 일단 문제의 핵심입니다.
노무현 권력내 반미청년회 출신이거나 다른 주사파 조직원 출신들은 비단 청와대만을 장악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반미청년회가 주도적으로 만들었던 조직이 ‘전대협’이었습니다. 이것이 나중에 ‘한총련’으로 발전했습니다만, 그 뿌리는 반미청년회가 만든 것이었습니다.
노무현 정권 당시 집권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에는 전대협 출신 국회의원만 12명이었습니다. ‘전대협 출신’이란 곧 ‘주사파 조직원’이거나 그에 준하는 인사를 의미합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을 외치던 조직원 출신들이 자신들의 경력을 자랑스럽게 내걸고 국회의원을 할 수 있었던 셈입니다.
국회의원 뿐만 아니라 당시 여당엔 의원보좌관이나 당직자로 진출했던 ‘주사파 출신’들이 수를 헤아리기조차 어려운 지경이었습니다. 정부에도 여러가지 방식으로 주사파 출신들이 진출했습니다. 그 중에는 사법고시 행정고시 외무고시를 통해 정상적으로 진출한 인사들도 많았습니다.
시민단체 권력은 더욱 심각했습니다. 오늘날 제일 잘 나가는 시민단체 중 하나인 ‘참여연대’는 주사파 활동가들이 처음 시작했었습니다. 미군기지 이전반대 투쟁 등을 이유로 반미깃발을 내걸면 무슨 놈의 시민단체가 그렇게 많은지, 500개 1000개 순식간에 모입니다. 이런 종류의 시민단체들은 거의 주사파 활동가들이 시작했거나 아니면 주사파 활동가들이 노선을 좌지우지하고 있습니다. 어느 단체든 적어도 지도성을 발휘할 수 있는 정도의 언변과 내용을 가진 친구들은 대개 보면 주사파 출신들이고, 혹은 주사파들에 의해서 양육되어진 활동가들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습니다.
청와대 국회 시민단체 권력뿐만 아니라, 신문과 방송을 아우른 언론권력, 전교조로 대표되는 교육권력, 친북 주사파들을 적극 옹호하는 법조권력, 반미를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문화예술권력에 이르기까지 주사파 출신들의 대한민국 권력장악 실태는 놀라운 수준이었습니다.
주사파들이 대한민국 제도권력을 장악할 수준에 이른 이유는 과거의 운동권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사회 진출 방식을 채택한 것이 큰 동력이었습니다. 주사파 조직이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이전에 한국사회의 좌파들, 순진한 민주화운동 세대들은 대학에 다닐 때까지는 열심히 싸웠습니다. 돌 던지고 민주적 권리의 신장을 위해서, 이것이 애국적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싸웠습니다.
그렇지만 대학을 졸업할 때쯤이면 시골에서 뼈 빠지게 일해서 뒷바라지 해주는 부모님 생각도 하게 되고, 향후 자신의 진로도 고민이 되고 하니까 극렬 운동권에서 자연스럽게 이탈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1학년 때에는 돌 던질 때 참여한 숫자가 100명이었으면 아무래도 4학년 때는 좀 줄고, 또 사회진출할 시기가 되면은 정말 골수 사회주의 혁명론자인 경우는 몇 사람만 남고 대개는 다 정상인으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젊어서 좌파가 아니면 바보고 나이 먹어서도 여전히 좌파면 등신이다’는 말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른바 ‘정의감’이라고 하는 것은 좌파들이 주장하는 이상론에 훨씬 더 매력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주사파 헤게모니가 관철되기 이전의 운동권은 학생운동을 마치고 사회에 진출해서도 계속 운동권에 머무르는 것을 ‘이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쁘띠브르조아지 지식인 학생, 지식인 계층에서 ML주의에 입각해 혁명의 주력군인 노동자 농민계층으로 자신들의 존재를 이전해야 지속적으로 ‘운동권’이 되기 때문에 계층이전이라는 의미로 ‘이전’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그 ‘이전’이라고 하는 개념 속에서는 뭐랄까, 운동권 인자들의 대량 배출이 어려웠습니다. 현실적으로 1학년 학생 100명을 운동권으로 꼬셨으면 대학을 졸업하는 시기에서도 끝까지 운동권에 머물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2-3명에 불과할 정도로 격감하는 것이 상례였습니다.
그러나 주사파들이 운동권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이후로는 그 양상이 대폭 달라집니다. 주사파들은 ‘이전’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투신’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투신이란 게 뭐냐 하면, 가슴속에 김일성주의 사상을 강고하게 지니고 있다면 굳이 노동현장 혹은 농민 계층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탁월한 혁명가가 될 수 있고 또 그 자체로도 훌륭한 투쟁이 될 수 있다며 기본적으로 사회운동 진출의 개념을 180도 전환시켰습니다.
주체사상에 입각한 혁명론은 전통적 ML주의와 달리, 청년 학생 지식인을 혁명의 주요 동력으로 격상시킨 것이 특징이기도 합니다. 노동자-농민과 동격으로 쁘띠브르주아지들이 혁명의 주력군이 된다는 주사파 혁명이론은 한국 좌파들의 대중적 인프라를 확장시키는데 결정적 요소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시골에서 뼈 빠지게 뒷바라지 해준 부모님도 겉으로는 전혀 알 수 없게 ‘김일성 주의’를 가슴에 품은 인자들의 사회 진출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게 되었습니다. “이놈이 철없이 운동권에 들어갔다가 대학 졸업할 때 되니까 열심히 공부하는 구나..” 그래서 행정고시로 정부 관료가 되기도 하고 사법고시를 해서 변호사도 되고 하니까...... 열심히 공부해서 방송국 PD가 되고 대기업에 취직도 하고 하니까 사상적으로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겉으로는 아무도 알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주사파들은 학생운동에서 사회운동으로 진출하는 과정을 이렇게 변모시켰습니다. 굳이 노동자 농민이 되지 않아도 혁명의 주력군이 될 수 있다는 ‘주체사상적 혁명론’으로 학생운동 역량을 고스란히 사회운동 역량으로 진출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순진했던 70-80년대 민주화운동 시기에는 대학 초기에 돌 던졌던 사람들이 나중에 끝까지 돌 던지겠다고 남는 사람은 극소수였지만, 주사파 헤게모니가 관철된 이후에는 그 숫자가 오히려 불어납니다.
KBS 사장 바꾼다고 KBS가 안 바뀌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지금 방송국 PD 혹은 중견급으로 방송국 일꾼이 되는 사람들이 연령층으로 보면 대략 386세대 전후입니다. 이들 중에는 과거에 ‘주사파 조직원’이었던 사람도 있지만, 대학시절 여러 가지 이유로 데모대에 끼지 못했지만 뭔가 데모대에서 열심히 했던 친구들에게 괜히 좀 주눅 들고 혹은 부채의식도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자기의 존재 근거는 대한민국의 눈부신 성장의 과실을 따먹는 지위를 누리고 있으면서도 마음속에서 혹은 머리 속에서는 아주 이중적인 사고를 하게 됩니다. ‘친북반미’로 대표되는 주사파 핵심코드가 이들의 인식과 사고 기준에 깊이 각인되어 있고, 또 과거에 자기가 열심히 못했던 것들을 이제는 자신들의 사회적 기반을 무기로 뭔가 해보겠다는 ‘열의’를 갖게 됩니다. 정연주 전 KBS 사장도 이와 비슷한 인식 수준을 갖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그런 상황에서 노무현 정권을 다시금 정리해 보면 청와대, 집권여당, 시민단체권력, 언론권력, 법조권력, 문화예술권력 등을 전부 주사파들이 장악하게 돼버렸습니다. 결국 ‘주사파’들이 학생운동권은 물론 사회운동권의 주력이 되면서, 대한민국은 빠르게 ‘주사파’ 부류에 의해 권력이동이 진행되고 말았습니다.
대한민국 사회는 1990년대를 거치면서 ‘주사파’가 핵심 코어세력인 한국 좌파들로 국가적 헤게모니가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시장주의적 관점으로 볼 때도, 얼치기 좌파류는 시장에서 먹혀들었지만, 애국우파들은 지리멸렬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미국을 씹고 뭉개는 책들은 저절로 불티나게 팔려나갔지만, 애국우파적 관점에서 기술된 책들은 파리를 날리게 되었습니다. 결국 한국사회의 메인스트림이 ‘얼치기 좌파’ ‘주사파에 의해 주도되는 좌파’로 변한 것입니다.
노무현 권력의 출현도 따지고 보면, 대한민국의 메인스트림이 주사파 주도의 얼치기 좌파로 이전된 결과를 반영한 것이었습니다. 주사파에 의해서 길러진, 그래서 스스로 자신을 ‘도구’라고 자인했던 그런 노무현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고 말았습니다.
소수의 집단이 일시적으로 국민을 속여서 잠시 대한민국 최고 권력을 찬탈했던 게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는 이미 그러한 사람들이 집권할 수 있는 그런 튼튼한 인프라가 갖춰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주사파 출신의 권력 장악이 왜 문제인가>
너그럽게 본다면, ‘정의감’으로 학생운동에 투신했고 어찌하다보니 ‘주사파 조직원’까지 되었었지만, 이미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굳이 그 때의 경력을 문제삼을 수 있느냐는 항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김영환씨를 비롯해 실제로 과거 주사파 핵심들이 이른바 ‘사상 전향’을 통해, 지금은 자신이 과거에 가르쳤던 주사파들과 투쟁하고 있는 인사들도 조금은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절대 다수의 과거 주사파 출신들로부터 경원당하고, 때론 협박까지 당하고 있는 것을 보면 ‘주사파 출신’들은 ‘과거’가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사상이념측면에서 냉정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특히 주사파 출신들이 학생운동을 마감하고 사회운동에 진출한 이후에도 대다수가 끈끈한 인간관계로 묶여 있었고, 이 과정에서 서로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며 제도권력 진입의 폭을 넓혀왔었다는 점을 되돌아보면, 과연 이들이 세월이 지났다고 하여 과거 ‘김일성 주의자’로서의 핵심 코드를 완전히 청산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실제로 주사파 출신들이 장악했던 노무현권력의 행태를 보면 ‘친북반미’로 대표되는 주사파 코드가 가장 확실하게 작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노무현정권은 이라크 파병과 한미FTA 추진을 예로 들며, 정권적 차원의 ‘반미’ 성향을 희석시키려 하고 있습니다만, 노정권 기간동안에 역대 어느 정권보다 한미관계가 내용적으로 파괴되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주사파 출신들이라고 하여, 아직까지 이들이 가슴 속에 ‘위대한 수령’을 되뇌이고 있을 가능성은 많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대한민국의 ‘공직’에 진출한 주사파 출신들의 경우에는, 과거의 ‘간첩죄’에 대한 사상검증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를 사실상 장악했던, 그 수많은 주사파 출신 또는 주사파 잔당류 공직자들 중에서 공개적으로 자신들의 과거 행적을 반성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들의 절대 다수는 과거 자신들의 ‘주사파 경력’을 오히려 자랑스러운 훈장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주류’가 되었다는 자신감으로, ‘친북반미 코드’를 드러내는 일에 오히려 경쟁적인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집권세력의 핵심들이 북에서 남파된 간첩임을 알고도 자연스럽게 만났고, 이를 당국에 고발하지도 않았습니다. ‘일심회 간첩단’ 사례에서 드러났듯이, 북한권력은 마음만 먹으면 과거 주사파 출신들을 접촉해 대한민국의 기밀을 빼내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쉽게 되었습니다.
주사파 출신들은 맹목적이고 기계적인 ‘친북반미 코드’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너무도 자연스럽게 김정일권력의 이해관계에 복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은 대한민국 성장신화의 핵심 기반을 허무러뜨리고 싶다는 김정일 권력의 간절한 소망에 자발적으로 헌신했습니다.
한미공조를 무너뜨리고, 대북 안보기능을 사실상 와해시키는 일에 누구보다 헌신적이었던 것이 바로 주사파 출신들이었습니다. 그것이 궁극적으론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하는 길이라서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김정일 권력에의 충성심에서 그러했던 것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행태상 남파 공작원이 해야 할일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았다는 점이 핵심적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이미 대한민국은 적화됐었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위대함과 현명함입니다. 그렇게 최고 권력까지 주사파 아류 혹은 주사파 잔당들에 의해서 장악됐음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대한민국 국민들은 지난 대선의 정권교체를 통해서 다시 한번 적화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되살릴 수 있는 그러한 절호의 기회와 계기를 살려준 것입니다.
3.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지난 대선에서의 정권교체를 통해, 우리는 절호의 기회를 얻었지만 한편으로는 그 이상의 걱정과 우려를 갖게 됩니다. 이 절호의 기회를 또 다시 날려버리면 대한민국이 도대체 어디로 가게 될 것인지 참 암담하기 그지없습니다.
<이념대결은 피할 수 없는 애국우파의 숙제>
재미있는 것은 제가 한국인터넷미디어협회(인미협) 회장입니다. 인미협은 그 동안 잃어버린 10년의 암울했던 좌파권력 치하에서 보수우파적 가치관을 내걸고 인터넷언론을 통해 좌파들과 투쟁했던 신문들이 30여개 모인 곳입니다.
이 협회 회원들이 정권교체 이후에 더 아우성입니다. 정권교체 이전에는 ‘목숨 걸고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서 좌파들과의 사상투쟁에 나서야 되겠다.’는 신념만으로 열심히 싸워왔는데, 정권교체 되고 나니까 오히려 신문사 운영이 다들 어려워졌다는 것입니다. 주사파류의 좌파들과 일선에서 투쟁했던 사람들이 정권교체 이후에 더욱 어려워졌다는 것은 과연 무슨 뜻일까요?
이는 이명박 정권의 핵심 주체들이 ‘사상투쟁’의 의미를 과소평가하고 있거나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 않느냐는 의문과 우려를 갖게 만들고 있습니다.
저는 소위 지식인을 자처하는 사람들 중에서 “아, 그놈의 철지난 이념논쟁은 이제 좀 그만하자”는, 이런 종류의 말을 하는 사람들이 제일 싫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철지난 이념논쟁 이제 그만 좀 두자 하는 사람들은 주사파 핵심코드를 갖고 있는 골수좌파거나 아니면 그 골수좌파들이 바라는 대로 형성된 여론기반에서 춤추는 꼭두각시들에 불과합니다.
대한민국 사회가 주사파 아류의 잘못된 이념에 의해서 난도질당하고 사실상 점령당한 상태에서 ‘이념논쟁은 의미없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정말 현실을 모르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주사파류의 이해관계에 복무하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주사파 잔당들은 이미 행동으로, 힘으로 대한민국 사회를 장악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이념논쟁’이 불필요한 상황입니다. 다만 ‘이념 논쟁’을 통해 자신들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을 뿐입니다.
현시점에서 이념논쟁을 하겠다고 목소리 높이는 사람들은 대한민국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애국우파들입니다. 대한민국을 장악한 저 사람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국민대중에게 고발하고 싶기 때문에 이념논쟁을 해야 된다고 박박 우기고 울부짖고 있는 것입니다.
이념논쟁에 관한 한 정말 웃기는 것은 한나라당입니다. 한나라당 일각에서도 이제 쓸모없는 좌우 이념대결, 이념논쟁은 극복해야 한다는 소리가 높습니다.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라는 사람조차 “진보보다 더 진보적 가치를 수용해야 된다.”는 얘기를 자랑스럽게 늘어놓고 있습니다.
진보적 가치가 뭔가요? 대한민국 사회에서 진보라는 건 뭡니까? 진보라는 건 좌파들이 자기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 만든 용어에 불과합니다. 전형적인 좌파들의 ‘용어전술’에서 비롯된 것이 바로 ‘진보’라는 용어입니다.
진보라는 이름으로 세계 역사에서 진정한 진보를 이룩한 사례는 전무합니다. 이른바 진보적 가치가 추구한다는 인권이나 삶의 질 향상은 언제나 보수우파들의 몫이었습니다. 100% 실패의 역사를 간직한 좌파들이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고 대중을 호도하는 용어가 ‘진보’일 뿐입니다.
특히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진보’란 곧 ‘좌파’를 의미하며, 이들은 ‘주사파’에 의해 좌우되는 ‘주사파 아류’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한나라당이 ‘진보적 가치’를 중시하겠다는 것은 주사파 아류에 굴복하겠다는 의미와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주사파 코드가 이미 대한민국 정치시장에서도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부시 미 대통령을 원색적으로 욕하는 반미주의자를 자처하면 인터넷에서 추앙받는 정치인이 되지만, 친미적 성향을 보이는 정치인들은 ‘미래가 없는’ 정치인이라고 낙인찍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다못해 대중가요를 부르는 가수들조차 ‘반미’를 상업주의적으로 울궈먹고 있습니다. 한나라당 주도의 국회모임에서 상을 받았던 대중 가수가 그 상을 반납하면서 생쑈를 했는데, 그로 인해 그는 인기가 더욱 올라가고 국영방송인 KBS에서 중요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위치에 올랐습니다.
케이블TV 가요 프로그램에서조차 이름도 생소한 친구들이 나와서 부시 욕하며 자신들의 줏가를 올리기에 혈안이 되어있습니다. 이게 패션이고, 이게 장사가 된다는 거 알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이미 친미보다는 반미가 훨씬 장사가 잘 되고, 그거 해야 먹고 사는 나라가 돼 있습니다.
한나라당 의원들 역시 그러한 흐름을 다 눈치 채고 있습니다. 얼치기 좌파 정치인들이 미국을 욕하면서 줏가를 올리는 것이 내심 부러운 것입니다. 주사파류 좌파들의 흉내를 내지 못해 안달하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이른바 ‘소장파’로 분류되는 의원들이 특히 그렇습니다.
한나라당 소장파라면 대개 80년대 초중반 학번들인데, 이 사람들 역시 과거에 ‘운동권’이었다는 전력을 자랑스럽게 내걸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말씀드렸듯이 이 시기에 운동권이었다는 것은 주사파 끄나풀이거나 주사파 꼭두각시로 행동했다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그걸 지금 자랑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제가 우연히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봤을 때 그랬습니다. “한나라당 의원들을 공천할 때 좀 시험이라도 보고 뽑으면 안 됩니까? 대한민국 역사에 대해서 긍지와 자부심이 있는지 확인 좀 해 보면 안 됩니까? 대한민국의 역사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자들에게 어떻게든지 빌붙어 볼려고 안달하는 자들이 어떻게 한나라당 의원이 될 수 있습니까?...”
한나라당이 과연 애국우파의 정치 제도적 기지가 될 수 있는지 참 한심스럽습니다. 한나라당은 자신들의 이념과 노선에 대해 ‘공동체 자유주의’라는 걸 내걸었습니다. 그거 참 좋습니다. 우파적 이념운동가들이 좌파를 압도할 수 있는 분명한 이념 노선을 만들어보자며 고민하고 그 과정에서 나온 것 중에 하나가 바로 공동체 자유주의였습니다.
한나라당이 이것을 당헌에 아마 자기들의 정체성이라고 명시해 놓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한나라당 젊은 의원들을 만날 때마다 ‘공동체 자유주의’가 뭔지 설명해보라고 다그치면 제대로 답하는 경우가 한번도 없었습니다. 자기가 소속된 정당, 그 정당의 가장 중요한 이념 철학체계인 공동체 자유주의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어떻게 한나라당에게 정치철학적 통일성이나 자부심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한나라당은 한국정당사는 물론 세계정당사에서 유례가 드물 정도로 훌륭한 정치 유산을 갖고 있습니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전통을 아울러 갖고 있으며, 국리민복의 이념노선을 끊임없이 추구해 온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얼치기 좌파류 정당과 비교해볼 때, 한나라당 사람들은 오히려 자긍심과 우월감을 가져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가진 가치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주류가 되다보니, 늘 얼치기 좌파들을 흉내 내지 못해 안달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미공조 파괴를 위한 주사파류 좌파들의 총공세가 펼쳐질 때마다 몸을 사리고 돌아앉아 눈치를 보는 것이 바로 한나라당 의원들입니다.
얼치기 좌파들이 주도한 촛불광풍이 휘몰아칠 때 한나라당이 뭐했습니까? 대세가 어디로 흘러가나 눈만 굴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한나라당이 어떻게 적화된 대한민국을 원상회복시킬 수 있을지, 암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나라당부터 재교육시켜 정신무장 태세를 바로잡지 않는 한, 이명박 정부가 험난한 좌파들의 공세를 돌파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중심을 제대로 잡아야 할 것입니다. 주사파 아류의 얼치기 좌파들이 대한민국 사회의 주류로 성장한 상황에서, 가까스로 대통령만 바뀐 처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조차 자신의 정체성이 진보라고도 하고 운동권 경력을 자랑스럽게 내세울 때도 있었습니다.
물론 선거운동 기간이라면 득표 전략 차원에서 자신이 갖고 있는 이념적 스펙트럼을 넓힐수록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뭐 선거운동 하자는 것도 아닌 상황입니다. 무엇이 대한민국 사회의 본질적 모순이고 문제인지 그 핵심을 찔러서 그것을 과감성 있게 개선하고 나가라는 것이, 지난 정권교체에서 부여받은 이 대통령의 역사적 사명입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현명하고 위대한 선택은 바로 그것을 현 정권에게 요구하고 있는데, 이 정권은 그에 대한 신념이 부족한 듯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4. 마무리
< 이념대결은 지피지기부터>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우리나라 좌파들은 서구적 기준으로 분류되는 전통적 좌파와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분배의 정의를 강조하는 전통적 좌파들도 존재하고 있습니다만, 한국 좌파의 절대 다수는 ‘주사파 잔당, 또는 주사파 아류’에 불과합니다.
이들은 대북 화해를 시대정신으로 포장하고 있습니다만, 그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남북한 동포들의 화해와 공존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최악질인 북한 권력과의 화해요 굴종일 뿐입니다. 북한 인민들의 고혈을 쥐어짜는 세력과의 타협일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주사파 아류의 한국 좌파들을 ‘좌파’라고 불러주기도 어렵다고 보기 때문에, 정확히 표현하자면 ‘얼치기 친북반미 좌파’라고 규정합니다.
분명한 것은 이들 얼치기 친북반미 좌파들이 지금 대한민국을 휘어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대한민국 사회의 주류로 성장했습니다. 따라서 이들의 권력 인프라가 애국우파들과 비교해 훨씬 우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만 합니다.
이런 여건을 냉정히 돌아보면, 70년대식 공안기능의 부활로 얼치기 좌파들의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생각은 순진한 생각일 수 있습니다.
최근 경찰이 오세철 교수와 사노련 그룹 7명에 대해 기세좋게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가 모두 기각되는 망신을 당한 바 있습니다.
지난 정권에서 대한민국 공안기능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거나 아니면 손발이 잘려나가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 상태였습니다. 국정원이 간첩신고 홍보전단에서 ‘좌익사범 신고’를 슬그머니 빼버렸습니다. 청와대를 비롯해 서슬퍼런 권력핵심에 ‘간첩급 좌익사범’들이 즐비한 마당에,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좌익사범 색출’을 거론할 수 있었겠습니까.
비록 정권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공안기관들이 다시 예전처럼 나서 칼을 휘두른다면 순기능보다 역기능과 부작용이 더욱 클 뿐입니다. 오세철과 사노련 검거에서 보듯, 오랫동안 공안기관들이 휴면상태에 놓였던 탓인지 공안활동의 우선 순위 선택이나 기술적 능력에서 녹이 슬었다는 느낌마저 주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사회는 본질적으로 자생 사회주의자 몇몇 때문에 흔들릴만큼 녹녹하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주사파류의 얼치기 좌파들이 대한민국을 폭넓게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며, 이들과의 투쟁은 좀 힘들고 어렵겠지만 끊임없는 진지전으로써의 사상이념 운동을 대중적으로 최대한 확산시키는 노력을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일거에 상황을 역전시킬 수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얼치기 좌파들과의 사상전에서 가장 우선되어야 할 과제는 역시 ‘교육’이며, 특히 ‘역사 교육’을 바로잡는 것이 긴급한 과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파와 주사파 중심의 얼치기 좌파들과의 구분선은 지난 대한민국의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이냐 하는 것부터 갈라집니다. 그들은 이름하여 김일성 주의적 세계관으로 대한민국 역사를 폄하하고 있는 것이고, 적어도 대한민국파들은 이승만, 박정희라고 하는 그런 위대한 지도자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이런 대한민국이 만들어졌다는데 대해서 적극적으로 의미 부여하고 평가하는 사람들입니다.
전교조를 비롯해 대한민국 얼치기 친북좌파들이 지난 수십년간의 선전선동을 통해 이룩한 성과들은 눈부신(?) 것입니다. 386세대 이후의 젊은 층에서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은 친일파들을 규합해 권력을 찬탈한 반역자요, 장기집권을 획책하다 쫓겨난 노욕의 화신일 뿐입니다. 인혁당 간첩들이 증거불층분으로 복권되고, 박정희는 민주주의를 압살한 학살자로 전락해버렸습니다.
이승만, 박정희의 위대성을 활활 되살려내지 않고는 이 주사파 중심의 좌파들과의 싸움에서, 특히 대중을 겨냥한 이념전선에서 이기기 어렵습니다. 해방 전후에 이승만이라는 위대한 지도자가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지금 형편없는 꼴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젊은 친구들이, 어린 친구들이 믿고 확신하게 만들고, 그래서 그들이 이승만을 존경하게 만들어줘야 합니다.
대한민국 화폐를 새로 만든다는데,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이나 경제성장 신화의 박정희는 원천적으로 배제되고 있습니다. 백범 기념관은 성대하게 지어졌지만, 이승만은 기념관도 없습니다. 얼치기 친북좌파들의 관점과 가치관을 기준으로 대한민국 근대사가 굴절되고 왜곡됐지만, 지금까지는 이러한 문제를 돌파하려는 애국우파들의 노력이 너무 미흡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성장 신화를 다시 재현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비뚤어진 역사인식부터 바로 잡는 것이 최우선이라 할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를 내걸고 대통령이 된 마당이라면, 우리 경제를 좀먹는 가장 큰 적이 ‘얼치기 친북좌파류’ 역사관, 경제관, 가치관이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역사 바로잡기는 ‘경제살리기’ 차원에서도 시급한 과제라는 말씀입니다.
얼치기 친북좌파들은 김정일에게 대한민국 국권을 통째로 헌납하려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들도 대한민국 국민들이 결코 그것을 용납하지 않으리란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하는 방식과, 김정일 권력의 이해관계가 절묘하게 일치한다는 것이 우선적으로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
그들이 대한민국의 성장기반중 핵심요소였던 한미동맹 허물기에 혈안이 된 것이나, 한미FTA를 비롯한 세계화 흐름에 역행하려는 것, 그리고 철지난 친일파 사냥을 국가적 어젠다로 올려놓은 일 등, 이 모든 일련의 흐름은 얼치기 친북좌파들이 김정일 권력과 ‘사상적 동반관계’라는 것을 입증하는 사례라 할 것입니다.
역사 투쟁과 더불어 사상이념전의 과제는 도처에 널려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이러한 과제들을 지혜롭고 끈질기게, 그리고 확실하게 풀어가야 할 것입니다. 굳이 뭐 이마에다가 붉은 띠 두르고 “좌파척결”을 외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항상 웃는 얼굴이되, 그러나 알게 모르게 좌파권력 10년간 만들어진 얼치기 좌파들의 권력 인프라들을 하나씩 하나씩 치워가고 제거하는 노력, 이런 것을 해주기를 기대하는데, 글쎄 잘 모르겠습니다. (웃음) 지금까지 하는 걸 보면 기대보다는 걱정이 많이 앞서게 됩니다만.
아울러 이명박 정부의 실패는 얼치기 친북좌파들에게 다시 한번 대한민국을 망가뜨릴 기회를 던져주는 결과가 될 것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이명박 정부의 성공을 위해 애국 우파들의 진심어린 단결과 지원이 필요하다 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거듭 말씀드립니다만, 여기 계신 선배 어르신들이 갖고 있는 국정경험 이런 것들이 이명박 정부에서 충분히 활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거대담론 뿐만이 아니라 세밀한 스킬 차원에서도 초보적 국정운영에 따른 시행착오가 줄어들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셔야 할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하든 안하든, 애국우파들과 이명박 정권은 운명공동체임을 회피할 수 없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망하면 다시 얼치기 좌파들의 시대가 옵니다. 밉든 곱든 이명박 정부가 성공해서, 그래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다시 한 번 바로 세우고, 또 다시 한 번 성장의 깃발을 높이 내걸고 대한민국의 성장신화를 다시 써내려갈 수 있도록, 힘을 합쳐야 할 것입니다.
장시간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답) 강길모
네. 아주 중요한 핵심을 지적을 해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전교조는 좌파들의 오랜 꿈이었습니다. 일본의 교사 노조를 보면서 그들도 교사 노조를 통해 대거 학생들을 ‘얼치기 좌파적 인간형’으로 만들어낼 교육을 꿈꿨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이 마침내 현실이 됐습니다. 그게 바로 전교조입니다.
전교조는 초기에 ‘촌지 없애기’ 등을 앞세운 ‘참교육’을 내걸고 교사는 물론 학부모들로부터 상당히 환영을 받았습니다. 결성 당시 전교조 주력들은 순수한 교육운동 차원에서 참여한 사람들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전교조 역시 ‘주사파 광풍’에 휘말렸습니다. 주사파 조직에서 성장한 활동가들이 교사로 진출하면서 전교조의 핵심으로 진입했습니다. 전교조가 통일교육을 명목으로 북한의 교재를 그대로 베껴쓰는 일이 벌어진 것도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습니다.
전교조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쓰러뜨려야 할 사상전 차원의 가장 거대한 적임에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 역시 단숨에 쓰러뜨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최근 들어 부쩍 전교조에 대항하는 교육계 내부의 흐름이 강화되고 있음을 체감하게 됩니다. 전교조 내부의 이탈 현상도 확대되고 있습니다. 전교조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분들이 그만큼 늘어났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현명한 국민들이 전교조의 실체를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전교조는 갈수록 위축되어 갈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갖고, 뜻이 맞는 분들이 분연히 맞서 간다면 전교조라는 거대한 적도 충분히 쓰러뜨릴 수 있다고 봅니다.
문) 김석우 NDI원장
강 사 (강길모) :
네, 저도 100% 동의합니다. 촛불문제에 대해서는 이 정권에서 제가 보기에는 정부핵심이 처음부터 문제의 본질이 뭔지 제대로 짚지 못했고, 또 하나는 이런 종류의 이슈를 다루는 데 있어서 기술적으로도 세련되지 못했다고 봅니다.
앞으로도 이명박 정부는 얼치기 친북좌파들에 의해 곳곳에서 발목을 잡히게 될 것입니다. 건수만 발생하면 저 사람들은 호각소리 한 번에 물불을 안 가리고 달려올 집단이 있고 단체가 있고 언론이 있고 인터넷이 있고 시스템이 있습니다. 그래서 촛불광풍 비슷한 것들은 앞으로도 계속 되어질 거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촛불광풍을 겪으며, 우리는 앞으로 우리가 준비하고 강화시켜가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 그 우선순위와 중요성을 치밀하게 따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인터넷 전선에서도 그동안 애국우파들이 많은 노력을 해왔고, 성과도 있었습니다만 여전히 얼치기 좌파들에 의해서 헤게모니가 관철되고 있습니다. 아직도 우리는 멀었습니다.
인터넷 언론시장을 봐도, 거대권력인 ‘포털’이 좌파 인터넷신문은 우대해주고 우파 인터넷신문은 외면하기 때문에 우파 언론이 클 수가 없습니다. 정권교체 이전에는 얼치기 좌파정권이 정부 광고 몰아주기 등을 통해 집중적으로 얼치기 좌파 인터넷 언론을 지원하고 육성했습니다. 그것이 밑바탕이 되어 ‘촛불광풍’에서 인터넷이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한심한 것은 아직도 정부 광고가 좌파 인터넷 매체에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바로 얼치기 좌파의 위력에 굴복하는 ‘투항주의적 사례’들이라 할 것입니다. 얼치기 친북좌파들과의 싸움은, 얼렁뚱땅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넘어가는 방식으론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저들의 썩은 이념과 철학을 혁파하겠다는 굳은 신념과 의지를 바탕으로, 지혜롭고 집요하게 맞서 싸워야만 할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이 점을 명심하고, 향후 얼치기 좌파들과의 싸움에서 결코 밀리지 않기를 바라며, 10년 20년 이상 대한민국의 성장 발전을 이어갈 수 있는 토대를 굳건히 구축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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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길 모 대표 약력
·연세대 중앙대의원회 의장
·주사파 전국조직 ‘반미청년회’연세대 교육책
·대통령 언론보고팀장, 총리실 공보실전문위원실장
·프리존뉴스 대표, 한국인터넷미디어협회 회장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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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용 NDI 이사장 인사말씀>
회원 여러분, 반갑습니다. 이른 아침에 이렇게 많이 참석해 주신 것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오늘 이 세미나에는 아주 특이한 분을 모셨습니다. 좋은 얘기를 듣게 되리라 믿습니다.
신정부가 수립되고 난 후에도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전 정권의 잘못된 유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유산이 무겁고 어렵고 힘든 만큼 이 정권도 감내해야 될 어려움이 앞으로 많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이 유산 중에 가장 무서운 유산은 ‘사회적 분열이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이 사회적 분열 중에서 특히 90년대 초부터 현상화 되기 시작을 했던 이념적 대결이 우리사회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우리의 이념적 대결이 생겼는지에 대해서 그 근원을 오늘 얘기를 한번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요즘은 3·1절, 6·25, 8·15 등 국가적 행사가 있으면 시청 앞에서 또 종로에서 두 갈래 갈라져서 행사를 합니다. 해방정국 3년 동안에 구경했던 일들이 이제 60년이 지나서 다시 재현되고 있습니다. 사회발전 과정에서 진보나 보수의 이념적 대결은 있을 수 있습니다만 이 이념적 대결이 통일과 반통일, 반미와 친미, 민족과 반민족, 자주와 반자주 이런 식의 대결로 치달음으로 해서 우리는 무거운 분위기를 느끼고 있습니다.
80년대 운동권의 한 중심에 서있었던 강길모 선생을 이 자리에 모시고 그 구체적인 얘기를 듣고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작년 이 자리에서 한때 주사파 운동가였던 김영환이라는 서울대 출신을 불러서 얘기를 들은 적 있습니다. 그때 많은 분들이 “‘그대들의 잘못된 생각으로 우리 사회가 얼마나 많은 진통과 고통을 받았는지 아는가?”라는 질문들을 한 것을 기억합니다.
그런 차원보다도 80년대에 학원가에 일어났던 그 일들의 소상한 내용을 듣고 우리가 이 사회를 진단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차원에서 오늘 이 모임을 갖습니다.
앞으로 활동사항을 소개가 되겠습니다만 지금은 이 사회 한복판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강길모 선생의 활동에 대해서 큰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 경청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