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에 The Vegetarian by Han Kang Reviews를 검색해보았다. 한결같이 찬양 일색. 대개는 영역된 작품을 들춰보지도 않았을 사람들이 'The Vegetarian'에 대해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는 우리나라의 사정은 국뽕에 연관 지을 요소도 많겠지만 외국 사람들, 특히, 그들이 보기에는 주변어에 불과할 언어인 한국어에 대한 지식이 전무할, 영어로 된 텍스트가 전부일 비평가들은 'The Vegetarian'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해서다. 아주 드물게 비판적인 비평가들도 만날 수 있었지만 대부분은 칭찬을 하기 바쁘다. 카프카의 작품에 베지테어리언이 비교 되는가 하면 내 인격을 바꾼 책(it’s changed me as a person), masterful, visionary, 온갖 표현들이 동원이 된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책읽기가 궁금해진다. 그들은 작품을 어떻게 읽는 것일까? 아니, The Vegetarian을 어떻게 읽은 것일까? 알레고리로? 디테일은 사소한 소품에 불과한 의식의 흐름으로? 갑자기 그들의 독서 태도가 궁금해진 것은 책 초반(세 번째 페이지)에 나오는 확연한 컨텍스트의 오류를 지적하는 사람들이 이제껏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블로그를 지켜본 이들은 그보다 터무니없는 오역이나 삭제, 첨언 등이 부지기수로 책에 등장한다는 것을 알겠지만 영역본 The Vegetarian에 관한한 그것을 칭찬하는 사람들이든 혹여 비판적인 견해를 보이는 사람들이든 책이 시작되자마자 나오는 치명적인 하자를 언급하는 사람은 없었다. 책머리에 나오는 뻔한 논리적 흠결은 독서의 의욕을 확연히 감소시키는 법이다. 그런데도 이 책은 어떻게 다섯 명의 심사위원들의 매 같은 눈을 통과해서 만장일치로 맨부커 인터내셔널 수상작까지 된 것일까?
외국 사람인 내가 읽을 때에도 한눈에 두드러지게 들어온 (leapt out) 문장을 그들은 더 잘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이야기가 시작되자마자 꼬이는 줄거리를 그들은 어떻게 이해한 것일까? 아예 그것의 존재를 깨닫지도 못한 것일까?
'The Vegetarian'은 용의 꼬리가 되기보다는 닭의 머리가 되는, 안전한 삶의 스타일을 유지해온 남자가 자신의 아내를 어떻게 선택했는지에 대한 독백으로 시작된다. 20대 중반부터 나오기 시작한 똥배, 새 다리, 왜소한 성기로 열등감을 지닌 남자는 맞선 장소일지 소개팅일지, 아무 두드러질 것 없는 외모의 아내를 처음 본 느낌, 자신에게 과분한 여자를 아내로 맞았을 경우 자신이 치러야 했을 희생(high maintenance). 기대대로 무난하게 아내 구실을 하는 아내에 대한 만족감을 표현한다. 그러다가 그는 단 한 가지 아내의 기벽(奇癖)을 소개한다. 아내가 브라 하기를 싫어한다는 것이다. 그는 그런 사실을 자신이 막 사춘기를 벗어나 아내와 데이트를 하던 시절 발견했다고 한다.
적어도 20대 중반은 넘었을 남자가 맞선을 통해 만난 여자와 무난한 결혼을 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막 사춘기를 벗어나 아내와 데이트를 하던 시절'이라는, 마치 풋사랑의 결실을 맺은 것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내용이 바뀌었다.
네이티브 독자들은 오역이나 삭제, 첨언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주의를 기울여 영역본을 읽는 사람이라면 단번에 알아차릴 수 밖에 없을 -- 적당한 직장, 적당한 스펙의 남자가 적당한 나이에 무난한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한다라는 컨텍스트와 사춘기를 막 벗어난 청춘들의 목마른 성애라는 켄텍스트 -- 모순이 어떻게 그들의 독서에서 처리된 것인지, 심지어는 데보라 자신도 지금은 그런 모순을 인지하고 있기나 한 것일지, 날이 갈수록 더욱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