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세대
윤별
고속터미널 전철역에 내렸더니
어디서 나왔는지 꾸역꾸역
정말, 인간들 많네
표지판을 봐도 미로 같은
길
이리저리 헤매다 겨우 찾았네
파미에 스테이션에 있는
크리스탈 제이드 상하이
샹그릴라
지금도 유치원 원장으로
세계를 활보하는
똑 부러지는 친구도 여길
못 찾고
뱅뱅 몇 바퀴를 돌았다네
시어머니 못 찾아오게
아파트 이름 영어로 길게
짓는다더니
노인네들 물 흐릴까 봐
어렵게 지었나
우스개 소리로 깔깔 웃는다
홍콩서 데려온 유명한 딤섬
요리사 있고
소롱포 맛있고 단단면 별미라
해
입호사 한번 해보려 정했더니만
젊은 입맛 믿을 게 아니구먼
그래도 소롱포 맛은 괜찮았네
우리 입맛엔 여전히 짜장면
탕수육이 최고.
미국 사는 의사친구 왈
요즘은 병원에 내과의사
지원자가 줄어든다네
미래엔 인공지능 의사로
대체될 1순위 직종이라나
머지않아 도래할 인간과
기계의 혼돈 시대
자식, 손자들 힘든 세상 살 거라고 걱정하며
우린 그런 세상까지 살고
싶지 않다며 도리질한다
반딧불 모아 병에 담은
빛부터
무궁무진한 빛 발하는 레이저
광선까지
아날로그 디지털 세상 모두
경험한
제일 행복한 세대라고 자축한다
미군 지프차 꽁무니 따라다니며
초코렛 맛보고
껌도 씹다 벽에 붙여 씹고
또 씹고
학교서 옥수수, 우유가루 배급 주면
엄마가 찐빵처럼 쪄주던
가난한 시절 동창들
의사거나 박사거나 땅부자나
김밥 마는 분식집 친구까지
제자리가 꽃자리라며 마음
환한 얼굴들
건강해서 자주 만나자며
서운해 돌아오는 길
아파트 앞, 붕어빵 굽는 정겨운 아줌마 얼굴에
그 옛날 학교 앞 풀빵집
아저씨가 겹쳐진다
첫댓글 이 시를 읽으면서 김광규 시인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가 생각나네요.
그 시는 대학동창들을 만나며 지나간 젊은 날을 회상하며
사회와 타협하며 살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죠.
그들은 불행한 세대라고 자조하는.
한 시대를 돌아보는 사람들의 시각을 대비할 수 있지 않나요 .
무겁게 진지하게
아니면
가볍게 밝게
툭툭 치고 가는 일을 비교해 볼만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시를 해피엔딩으로나 둥그럽게 아름답게 마무리하려는 태도에는
가끔 안이함과 평이함을 느낄 수 있다는 점도 있다는 점을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작자의 결정이지요. 어떻게 느꼈느냐이니까요.
좋거나 좋지 않거나는 아닙니다.
시인은 행복한 것 보다는 불행에 다가서서 들여다 보기를 해야 공감을 더 얻어내겠지요.
고통이 없는 행복은 존재하지 않을 것 같으니 행복하다는 건 이미 고통을 거쳤다는 의미가 되구요.
전 가벼운 듯 툭툭 건드리면서도 생각의 여지를 줄 수 있는 그런 시를 쓰고 싶어요.
너무 안이하게 흐를까 걱정하시는 선생님의 마음 명심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