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ving Done Meritorious Deeds in the Past
(일찍이 공덕을 쌓음)
The commentary explains ‘To have done meritorious deeds in the past’ in the stanza cited above as follows:
‘To have done meritorious deeds in the past’ means having accumulated wholesome actions in previous existences towards the Buddhas, the Pacceka Buddhas, or those who have eradicated all taints. This is also a blessing.
앞서 인용된 구절인 ‘일찍이 공덕을 쌓고’에 대해서 주석서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일찍이 공덕을 쌓고’는 전생에 온갖 존재로 살면서 부처님들과 벽지불, 또는 모든 번뇌를 소멸시킨 분들을 향해 유익한 행위들을 쌓아왔음을 의미한다. 이것도 또한 행복이다.
Our faith in the Buddha, the Dhamma, and the Saṅgha is due to our having accumulated wholesome kamma related to Buddhas, Pacceka Buddhas, and disciples of the Buddhas.
우리의 불-법-승에 대한 믿음은 부처님과 벽지불, 그리고 부처님의 제자들과 관련하여 유익한 업을 쌓아온 덕분입니다.
For that reason, we have faith in the Buddha, the Dhamma, and the Saṅgha in this very life. Our faith is related to our past accumulated kamma; and without the support of such past kamma, such faith would be impossible.
그런 이유로 하여, 우리는 바로 이 금생에서 불-법-승에 대한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과거에 축적된 업에 연관되어 있으며, 그러한 과거업의 지원 없이는 그러한 믿음도 불가능한 것입니다.
Because we accumulated meritorious actions in the past, we have had the opportunity to take conception in the womb of a mother who believed in the Buddha, the Dhamma, and the Saṅgha.
우리가 전생에 공덕을 쌓았기 때문에, 우리는 불-법-승을 믿는 어머니의 자궁에 수태하는 기회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For this reason as well, we have had the opportunity to be reborn in a place where the teachings of the Buddha are available. In this way we become people who have faith in the Buddha, the Dhamma, and the Saṅgha. Our faith in the Triple Gem is related to ‘pubbe ca katapuññatā’, the meritorious actions we have done in the past.
또한 이러한 이유로 하여,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살아있는 곳에 다시 태어나는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이고요.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불-법-승에 믿음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삼보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뿝베 짜 까따뿐냐따’, 즉 ‘일찍이 우리가 쌓은 공덕’과 연관됩니다.
Each of us would surely like to encounter a faithful person, a faithful friend, and have such a person in our lives. A faithful person is difficult to find. In looking for a faithful person of this sort, we are seeking someone external to ourselves.
우리들 각자는 충실한 사람, 충실한 친구를 만나게 되길 분명히 바라고, 우리의 삶에서 그러한 사람과 함께 하고 싶어 합니다. 충실한 사람을 찾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이와 같은 충실한 사람을 찾는 데에 있어서, 우리는 자신의 외부에 있는 누군가를 찾고 있습니다.
However, we seek for another person, external to us, while we can hardly be said to be faithful to ourselves. If we are unfaithful even to ourselves, it is unreasonable to expect someone else to be faithful to us.
그러나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충실하다고 말하기 어려우면서도, 우리의 외부에 있는 또 다른 사람을 찾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자신에게조차 충실하지 않다면, 누군가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충실하도록 기대한다는 건 불합리한 것입니다.
Nonetheless, there is something - not an actual person, but something like a person - which is truly faithful to us all the time. It is our kamma. Our kamma is faithful. If you have accumulated good kamma, it is faithful. If you have accumulated bad kamma, it is also faithful.
하지만 우리에게 항상 진정으로 충실한 어떤 것 – 실제 사람은 아니지만 사람과도 같은 것 –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업입니다. 우리의 업은 충실합니다. 여러분이 선업을 쌓으셨다면, 그 업은 충실하게 다가옵니다. 악업을 쌓으셨다면, 그 업도 또한 여러분에게 충실할 것입니다.
They never give inconsistent or unreliable results. Good kamma always gives good results, and bad kamma always gives bad results. They are always faithful in giving their respective results. Carefully consider whether you would like to continue your life’s journey with good faithful kamma or with bad faithful kamma. The choice is yours.
업은 일관성이 없거나 신뢰할 수 없는 과보를 절대로 가져오지 않습니다. 선업은 항상 좋은 과보를 가져오고, 악업은 항상 나쁜 과보를 가져오게 됩니다. 업은 항상 충실하게 저마다의 과보를 가져다줍니다. 여러분의 인생 여정을 충실한 선업과 함께 계속하고 싶은지, 아니면 충실한 악업과 함께 계속하고 싶은지를 잘 고려해 보시기 바랍니다. 선택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우 레와따 사야도 'The Truth Taught by All the Buddhas'
첫댓글 고맙습니다
사두 사두 사두 _()()()_
사두 사두 사두
사두 사두 사두_()_
사ㅡ두 사ㅡ두 사ㅡ두 _()_ _()_ _()_